
재밌는 생각거리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주식 얘기는 아닙니다만, 게임이론의 현실 적용과 그 맹점을 다루는 내용이라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아 소소하게 적어봤습니다.
최근 인터넷을 달군 '미스터비스트의 버튼 딜레마'를 아시나요? 룰은 단순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빨간 버튼과 파란 버튼 중 하나를 비밀 투표로 누릅니다. 파란 버튼을 누른 사람이 50%를 넘으면 모두가 생존합니다. 하지만 50%를 넘지 못하면, 빨간 버튼을 누른 사람만 살아남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느 버튼을 누르실 것 같나요?
이 단순한 사고실험은 순식간에 거대한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파란 버튼을 누르겠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타인을 희생시키려 하느냐"고 묻고, 빨간 버튼을 누르겠다는 사람들은 "빨간 버튼이야말로 나와 타인 모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유일하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반박합니다.
흥미로운 건 빨간 버튼 진영의 논리가 꽤나 날카롭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파란 버튼을 누르는 건 80억 명의 타인에게 내 목숨을 거는 도박이다."
"내가 빨간 버튼을 누른다고 파란 버튼을 누른 사람이 죽는 게 아니다. 그들은 50%를 넘기지 못한 집단 전체의 실패로 죽는 것이다."
"어차피 내 한 표가 50%라는 거대한 확률을 바꿀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어차피 모두가 빨간 버튼을 누르면 모두가 사는 거 아닌가? 파란 버튼 누르는게 이상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게임이론의 우월 전략(dominant strategy)을 완벽하게 따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타인을 신뢰할 수 없을 때, 내 생존을 100% 보장하는 선택을 하는 건 수학적으로 너무나 타당하니까요. 심지어 한국의 SNS에서는 이런 댓글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파란 버튼 누르는 사람들은 지능이 낮아서 어차피 도태될 사람들이다. 그들을 위해 내가 죽을 이유는 없다."
수학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논증에서 시작해, 결국 타인에 대한 경멸 섞인 가치관 선언으로 끝나는 이 흐름. 빨간 버튼의 논리는 정말 완벽한 걸까요?
빨간 버튼의 논리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지점은 논리가 아니라 '전제'에 있습니다. 게임이론은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려는 고립된 합리적 개체"라고 가정합니다. 이 전제 안에서 빨간 버튼은 완벽합니다.
그런데 잠깐, 이 전제를 한 번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이론이 말하는 '합리적 개체'란 어떤 존재일까요? 자신의 이익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냉정하게 계산하며, 타인과의 관계나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존재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를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부릅니다. 이 가상의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도, 지키고 싶은 공동체도,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오직 생존 확률만을 최적화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파란 버튼을 누르겠다고 결심할 때, 그 이유는 "확률 계산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내 주변에 파란 버튼을 누를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과 같은 편에 서고 싶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선택이 위험을 수반하더라도요.
이건 목표 자체가 다른 문제입니다. 빨간 버튼은 '생존'이라는 단일 효용함수를 가집니다. 반면 파란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선언하는 겁니다. "나는 생존만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건 게임이론이 처음부터 모델링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게임이론은 '무엇을 선택하면 이기는가'를 계산하지만,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는 계산하지 않으니까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 딜레마가 사실은 훨씬 오래된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의 답은 단순했습니다. 그것은 쾌락도, 재산도, 심지어 생존도 아닙니다. 자신의 덕(arete)을 온전히 발휘하며 사는 삶, 즉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폴리스적 동물', 즉 공동체 안에서만 완전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아남는 것은 생물학적 생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생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은 삶'이 아닙니다. 파란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생존 확률을 계산하기 이전에, 자신이 어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 있는 겁니다.
생존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지 않는 사람에게, "빨간 버튼이 생존을 ...

감사합니다. 넘 재밌었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귀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얼마남지 않은 가정의 달..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써 봐야곘네요 :)

멋진 글입니다!

파란버튼 누르기!

당연히 빨간 버튼 누르면 다 산다고 생각했는데, 의미가 있는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택지의 숨은 뜻을 풀어주니 너무 재밌었습니다! ㅎㅎ

너무 잘 봤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선택이 더 많을 지도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