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플래쉬>로 결혼까지한 이야기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라떼만 해도 반복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명사로 삼국지가 있었다.
삼국지는 청년, 장년, 중년에 읽는 것이 다 다르고, 읽을 때 마다 또 다르다
10대 때는 유비와 제갈공명이 돋보이고, 20대와 30대 때는 조조에 끌리며,
40대 이후에는 또 다른 인물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대략 이런식의 구절이었는데,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나이에 따라, 혹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좋게 말하면 인간의 유연함, 나쁘게 말하면 인간의 간사함을 잘 표현한 말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저 말이 영화 <위플래쉬>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지금까지 10번 가까이 봤지만, 아직까지도 볼 때마다 영화의 주제와 감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위플래쉬>는 뉴욕의 명문 셰이퍼 음악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앤드류가 최고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고,
독재적이고 폭군 같은 플레쳐 교수에게 극한까지 몰리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과정을 그린다.
때문에 영화는 내내 드럼만 치다 끝나지만, 담고 있는 주제는 드럼과는 거리가 멀다.
처음 <위플래쉬>를 본 건 대학생 때였다.
당시 메가박스와 대형극장만 있던 대학가에 대형극장과 손을잡고 CGV가 진출했고
이에 대항하고자 메가박스에서 50%에 가까운 영화 할인 쿠폰을 학교에 뿌리던 시기였다.
그 덕에 싼값에 당시 개봉한 영화들을 보다가 큰 감명을 받고 꽃혀버린 영화가 <위플래쉬>였다.
할인 덕분에 극장에서만 3~4번 정도 반복해서 위플래쉬를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나에게 다른 의미로도 인생 영화가 되었다.
자대 대학원 적응에 실패한 후, 학비가 없는 곳으로 대학원을 진학하기 위해 처음으로 대전이라는 도시에 가게 되었다.
연고도, 친지도, 아무것도 없는 낯선 환경에 외롭고 답답하던 시기,
동기들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살피다 <위플래쉬> OST를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해 놓은 동기를 발견했고,
반가운 마음에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자 그 동기에게 카톡을 보냈던 인연이, 연애를 거쳐 결혼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여자친구와 오랜만에 <위플래쉬>를 같이 보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 두번째 시기다.
그리고 오늘, 이제는 아내가 된 그때의 여자친구와 다시 <위플래쉬>를 보게 되었다.
딱히 계기는 없었다. 오랜만에 <위플래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저 밥을 먹으며 함께 틀어놓을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삼국지의 내용이 나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위플래쉬>의 내용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매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내 인생과 가치관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 같다.
20대 대학생의 나는,
어중간한 재능에도 평범하기를 거부하며 몸부림 치던 주인공 앤드류의 생각이나 행동과 거의 90%의 싱크로율을 보였던 것 같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독기가 필요하다는 그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고, 그를 위해 쏟아붓는 노력과 몰입에 큰 감명을 받았다.
주인공이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며 내뱉었던 말들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해왔던 말들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 시절, 나는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어떻게 해야 나를 저렇게까지 극한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를 저렇게까지 몰입하게 만들 수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지도교수님께서 유하셔서 직접 찾아가 저를 좀 몰아 붙여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최근 드는 생각은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순간들이 분명히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데 분명히 도움됐던 것은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일이 실패하거나 잘 안되면 나의 노력이나 열정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그것 외에도 수 많은 요소들이 작동하는 것이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유하셨던 이유는 몽상과 사색님이 잘 하고 계셔서가 아니었을지. 본인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성과를 꼬박꼬박 가져오는 학생들에게 굳이 본인의 리소스를 투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수들도 많습니다. 소속된 실험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수도 사람인 이상 본인의 제한된 리소스를 각 학생들에게 효율적으로 나눠서 투입해야 하니까요. 길을 헤매고 있는 학생 하나 건져 올리는 것도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 네 맞습니다. 여기 커뮤니티에서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삶에 버려마땅한 기억은 없으니까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게 참 소속된 집단에 많이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제가 80% 역량을 발휘해도 못해 보이는 것 같고, 어떤 집단에 가면 50% 역량을 발휘해도 잘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만해지고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는 자신이 싫어서 교수님께 그렇게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selfishmartyr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항상 생각하려고 하지만 가끔 까먹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