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하건데, 저는 고등학교 때 리처드 도킨슨의 저서들에 심취를 하였고, 몰랐던 사이에 '적응적 자연선택설'은 저의 세계관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리처드 도킨슨은 유명한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한 여러 권의 저술활동에서 유전자 레벨에서의 적응적 자연선택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탁월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당시의 저는 러셀의 수학에 대한 공리주의적 접근에도 매료되었었고, 핵심원리로 세상을 설명하는 단순명료함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리처드 도킨슨과 적응적 자연선택설은 생명과 인간활동을 과학의 이름으로 모두 설명할 수만 있을 것 같아, 절대적인 세계의 원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세밀한 변이와 그에 따른 fittness가 진화를 이끌었는지 보여주는 화려한 예시들에서는 감탄을 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생명체의 요소를 fittness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직관적인 의문이 들었고, 특히 성/짝짓기/동물행동학의 영역으로 들어올수록 해결되지 않은 답변들만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세월이 흘렀고, 이따금씩 진화론의 학문적 계보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 이전의 의문들이 언뜻언뜻 지나갔으나 이를 해소해줄 기회는 없었습니다. 20대를 모두 보내고 난 후 2017년에 쓰여진 책, The evolution of beauty를 만나게 되었고, 탄식이 나오게 하는 충격과 함께 다시 한 번 세계관을 수정하게 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진화의 원리는 적응적 자연선택설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메커니즘인 성선택에 의해서도 추동됩니다. 자연선택설은 유전자 생존에 이득을 주는 형질과, 연관된 외부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