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화하다(體化-)는 생각, 사상, 기술, 이론 등이 단순히 머리로 아는 수준을 넘어, 반복적인 경험과 실천을 통해 몸에 배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월가아재님이 골백번 이야기한 것처럼, 단순히 동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는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vallyai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고수들의 분석 방법도, 사고 틀도 체화되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기록입니다.
인상 깊은 글을 읽고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행동 양식과 사고의 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솔직하게 남겨두려 합니다.
지식의 습득 경로, 습득 프로세스, 그리고 투자적 명제까지.
이번 글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저는 백화점을 싫어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vallyai의 한 글을 읽고 나서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싫어한다고 단정 지어버린 것들이 사실은 백화점 자체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특정 시기, 특정 조건에서의 경험에 대한 감정이었을 수 있다는 것. 경험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일시적인 상태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명제의 조건을 바꿔보면 실제로 경험이 달라지는가. 경험이 달라지면 나의 인식도 달라지는가.
이 글은 그 실험의 기록입니다.
인두같았던 문장
https://www.valley.town/space/@qualityinvestlab/articles/696e0719c8443eaa006834e2
매우 단순한 문장입니다. 당신은 아마 수십 가지의 활동, 음식, 음악 장르, 또는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 대해 이와 유사한 말을 해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언을 마치 세상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보고하는 것처럼 무심하게 내뱉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우리의 주관적 경험이 처한 일시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묘사들이 주체성을 보존한다는 점입니다. "나는 달리는 게 싫어"라고 말할 때, 당신은 달리기와의 관계에 대해 스스로 무력함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눈 색깔처럼 바꿀 수 없는 사실이 됩니다. 하지만 "현재 나의 체력 수준으로는 달리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라고 말할 때, 당신은 해결하기로 선택한다면 바뀔 수도 있는 일시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사실 당신의 발달 단계 중 특정 시기, 특정 조건 하에서의 '경험'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닫힌 문과 살짝 열려 있는 문의 차이와 같습니다.
글을 읽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싫다고 단정 지어버린 것들을 한번 꺼내서 분해해보자고.
첫 번째로 떠오른 게 쇼핑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는 것. 어린 시절부터 딱히 좋았던 기억이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싫다고만 생각했지, 왜 싫은지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어요. "나는 백화점이 싫다"는 말을 마치 내 성격의 일부처럼 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친구의 쇼핑에 지쳐서 가게 옆 소파에 털석 앉은 적이 있습니다. 쇼핑백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는데, 옆에 핀란드 출신으로 보이는 시니어 분이 앉아 계셨어요.
우연히 눈이 마주쳤는데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분의 눈빛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자네도?"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국적도, 나이도 달랐지만 그 소파 위에서의 감정은 완벽하게 같았어요.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꽤 의미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쇼핑을 싫어하는 감정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꽤 보편적인 경험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보편성 안에 뭔가 분석할 거리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험을 하나씩 꺼내보니 패턴이 보였습니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였습니다. 부모님이랑 가거나, 연인이랑 가거나. 그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게 기준이 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옷을 사러 가거나 비싼 걸 사러 간다는 목적이 먼저 정해진 상태에서 따라가는 구조였습니다. 공간의 주도권이 처음부터 나한테 없었던 거죠.
시간대도 문제였습니다. 저녁 시간대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백화점 저녁은 사람도 많고 조명도 자극적이고, 피로도가 높은 상태에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기다 관심 없는 상품들 사이를 따라다니는 것 자체가 소모적으로 느껴졌고요.
쇼핑이 끝날 때쯤이면 뭔가를 잃은 기분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이든, 시간이든, 에너지든.
그리고 한 가지 더. 반복이 없었습니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어요.
가더라도 특정 목적으로 특정 층만 다니다 나오는 구조였으니, 그 공간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를 볼 눈 자체가 생길 수가 없었습니다.
정리해보면, 내가 싫었던 건 백화점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조건들이었습니다.
- 주체성 없이 따라가는 구조
- 관심 없는 목적
- 피로한 시간대
- 반복되지 않아서 익숙해질 수 없는 공간
결국 나는 백화점을 한 번도 내 방식으로 가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조건을 바꿔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