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어떻게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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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오징어
2025.12.22조회수 224회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세상의 이치’란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깨달음, 혹은 난해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마주하지만,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세상의 작동 원리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간단한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여, 우리가 겪는 불필요한 고통과 비효율을 줄이자는 것이 정신치료의 목적이자 치료자인 나의 목적이다.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를 명확히 분해해야 한다. 세상은 크게 '나''세상'이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집합 안에는 인식의 주체인 '나'가 있고, 내가 인식하는 대상인 '세상'이 존재한다.


'나'는 다시 두 가지로 세분화된다.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감각 기관이자 신체인 '몸', 그리고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하고 가공하여 다시 세상에 투사하는 '마음'이다. (이 부분은 다음 편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오늘 집중적으로 다룰 부분은 '나'를 둘러싼 '세상'이다.


세상은 다시 생명이나 의지가 없는 '자연 현상'과,


나와 마찬가지로 생명과 독자적인 의지를 가진 '남(타인)'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이 두 가지 대상을 다루는 방식의 오류에서 기인한다.


1. 자연 현상: 통제 불가능한 상수, 그리고 '대비'


첫 번째 구성 요소인 자연 현상의 이치는 명료하다. 자연은 인간의 의지나 감정과 무관하게, 철저한 물리 법칙과 인과율에 따라 작동한다. 여기에는 선악의 개념도, 자비도, 악의도 없다. 그저 법칙이 있을 뿐이다. 지구 평평론이나 천동설, 혹은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자연 현상이 물리 법칙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앞서 언급했듯, 중력이 작용하는 공간에서 물건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컵을 떨어뜨리고 나서 "왜 컵이 아래로 떨어져서 깨지는가?"라고 반문하며 화를 내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최소한 이 글을 읽는, 지적인 탐구를 하는 사람 중에 중력에 대해 불평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우리는 수시로 자연 현상에 대해 중력에게 하듯 불평을 늘어놓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날씨다. 여름이 되면 기온이 오르고, 겨울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는 것은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 공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천문학적 현상이다. 내가 덥다고 짜증을 낸다고 해서 태양의 위치가 바뀌지 않으며, 춥다고 불평한다 해서 계절이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 즉 '통제 불가능한 상수'다.


이치에 맞는 행동은 명확하다. 통제할 수 없는 현상에 감정을 소모하는 대신, 예측 가능한 미래에 대해 '대비'를 하는 것이다. 겨울이 오면 대기가 건조해지고 기온이 낮아져 우리 몸의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이 낮아진다. 그러므로 겨울에 독감이 유행하는 것은 우연한 재앙이 아니라, 조건이 갖춰졌기에 발생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또 독감이 유행이야?"라고 세상이나 정부를 탓하는 것은 하수다.


실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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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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