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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능이 전제되어 있다.
Suldanessellar철학

이미 기능이 전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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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nicus
2025.03.25조회수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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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nicus
구독자 7명구독중 8명







보통 언제 '기능'이란 말을 쓰는지

살펴보면


'이 스피커의 이 받침대는 지지대를 하는 기능을 갖는다. 즉 서있게 해주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뭔가를 해주게 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쓰인다


라는 방식으로,

그런 계기로

'기능'이란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지.


내가 이 단어를 쓸 때에는 이런 식으로 쓰려 한다.







근데

어떤 사람이

[나는 기능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그것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 보라 세상에는 이미 블라블라]



했다고 해보자.

그럼에도 이 문장에는 기능이 잇다.

[나는 기능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그것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자기가 할 말이고


[잘 보라 세상에는 이미 블라블라]] 이 부분이 자기가 계기로서, 어떤 것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그 계기를 보여줄려고 하는거지.



자기 말부터 이미 기능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얘기다

저 말은 [잘 보라 ~] 라는 부분은, 저 앞 부분의 말을 지탱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려고 지금 저 말을 하는 거 아닌가?

만약에 그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면, 그 말에는 이미 기능이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내가 말하는 뜻으로서.


그러니

저 사람의 '기능'에 대한 표현은, 도구화에 대한 불만을 언급하려고, 그 말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건

이건 내가 가정한 예가 되니

아주 실증적인 부분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내 입장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선제되는 것 중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기능적 부분이라고 본다.


이 기능은 있다 반드시.

물론 의식을 하여 의미부여를 하는 경우도 없잖아 있지만

(예컨대 내 팔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 기능한다 라는 등의, 애초에 말이없는 그 부분에 대해서, 내가 생각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후판단이 가능하다.

내가 밥을 먹었다고 해보자. 손이 있었으니 밥을 먹었겠지?


그래서

이 '기여하다'라는 측면에서. (이런 상황을 이 표현으로 명명했다고 했을 경우)

바로

이런 상황 자체를 지칭하는 게

'기능'이란 표현이라는 거다.


이런 상황이 있다.

뭔가가 뭔가를 도와주는. 지탱해주는. 되게끔 해주는.





그래서

이미 기능은 전제되어 있다고 보는 바다.

이렇게 접근하면

나머지는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예전에 철갤에서 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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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자체를 영어로 보면 어떨까? 한국어로 번역하지 말고 저 자체를 보면 말이다. 지시가 있겠지? 그러면 서술자의 존재도 있겠지? 즉, 화자의 존재가 있겠지? 그러면 화자가 저것을 발화한다 그럴 때 첫째 - 자기 지시가 있고 둘째 - 서술어에 해당하는, 조작관계를 지시하고 있고 (나는 일단 이렇게 본다) 셋째 - 목적어에 해당하는 지시가 있다. 즉, 대상의 지시가 있다. 이 세 개는 분해된 것이고 이 세 개를 묶으면 저 문장을 칭하는 하나의 명명을 해낼 수 있을 거다 뭐라고 부를까? 나는 앞에서, \'사건들의 상태\'라는 정의를 잠깐 보여줬는데, 이 때 \'상태\'라는 것을 잘 봐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가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지점인데, i saw the matrix라는 표현에는 \'상태로 봐주세요!\' 라는 식의, 가이드가 명시되어있지 않다. 그저 i saw the matrix 라는 기호만 있을 뿐 이걸 어떻게 읽어달라 어떻게 읽어주시라는 그런 식의 요구가 여기 명시되어있나? 아니라는 거지 지금 내가 쓴 글도 내가 어떻게 읽어달라고 가이드 일일이 쓰고 있나? 아니거든. 그럼에도 이를 읽는 활동은 있는 것이고 이를 읽는 방법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눈을 댄다는 차원은 아니겠지? 어디를 어떻게 봐야하고 어디를 어떻게 볼 때 어떻게 머리속을 정리해야되는지. 이런 것들이 있을 거 아냐? 근데 이것을 체계화시킨 사람이 있냐는 거다 독서하는 방법 어쩌고 지랄 하는 책들은 많아도 이 책들의 한계는 바로 그 책도 마찬가지로, 그 책을 읽을려면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될 거 아냐. 애초에 그 방법이 없다면 그 방법을 쓴 책은 어떻게 읽겠냐는 거다. 참으로 애매한 문제가 생기지. 물론  근데 꼭 혼란만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교육을 할 때는 아이가 책을 보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옆에서 하나하나 몸으로 체험하게 해주지. 엄마가 물건을 하나하나 가리키면 "이거 뭐라고 하니?"라는 식으로 지겹도록 반복을 하는거다. i saw the matrix라는 표현은 뭘까? 여기에서 뭐부터 보는 게 좋을까? 일단 이 글은 가설이다 나는 이 순서를 생각해본다. 첫째 - 관계/상태 이 둘을 먼저 의식한다. 즉 선제의 틀을 깐다. 이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는 규정을 해놓는다. (자기의식의 문제다.) 둘째 - 개별적인 것을 찾는다. 이게 왜 나오냐면 나는 ~ 상태다 라고 할 때\' \'상태다\' 라고 하는 것은 아주 바탕적인 표현이라, 신체의 계기로 보면, 어떤 지시는 일어나고 있으나, 아주 추상적이고 희미한 낌새 정도이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뭐냐? 라는 물음을 던지면, 그 이후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데, 그럴 때 나오는 게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위의 경우, 개별적인 것은 \'본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상태 중에서도 본다 라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둘이 결합되어있는 걸 살필 수 있다. 선제되는 건 \'상태\'라는 얘기다. 이건 언어에 명시되어있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i saw the matrix라는 표현은, 너한테서, 어떻게 읽어달라고 명시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니가 읽어야되는 거다. 아마 이런 문제로, 이 부분에 관련해서 옛날 사람들 중의 일부는, 해독법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걸어본다. 해석학 이런 것도 있을 건데, 아무튼 원리는 비슷할거다. 언어 자체는 읽는 방법 자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떻게 읽어달라고 스스로 명시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 언어를 마주한 사람은, 그걸 읽어내야되는 미션을 갖게 된다. 여기서 골치가 아파온다 도대체 어떤것을 봐야되는가? 인간은 추리한다. 그래서 추리로 도달한 곳은,  이것이 있다는 말은 누군가 쓴 사람이 있다는 말인데, (즉 귀환법을 적용하는 게 보이나? 연역적 사고를 갖고 놀아야지 이게 된다.  글은 누군가가 쓴 것이다. 여기 누군가가 쓴 게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글이다.  누군가가 쓴 것은 글이다. 글이 여기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쓰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글을 쓸 때는 어떤 방법에 따라 쓴다. 여기 글이 있다. 어떤 방법에 따라 쓰지 않았을까?) 따라서 그 사람이 쓴 전략을 알아야, 그 전략을 중심으로 독해를 하는 것인데 달리 말해, 전략을 중심으로 한 독해법을 체계화시키고 이를 연역적 적용을 하여, 게속 적용해내는 것이다. 이 적용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그럴 때 한 사람의 글을 읽는 방법툴을 고정시킬 수 있다. 이 고정이란 말을 부정하게 보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고정된다는 말은 가둬버린다는 암울한 뉘앙스를 주기도 하는데 이 경우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방법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부분이 있고 그것은 그 상대방이 \'발생시킨 방식\'에 해당하는 것인데 바로 그 부분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 입장이 개입하는 건 그 사람이 쓴 방법과 전략을 부정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똑똑하든 아니든 간에, 옳든 틀리든 간에) 그리고 이것은 상대에 동조해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전략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단순히 말해, 전략만 지적해둬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다는 거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을 적용시켜서 i saw the matrix라는 표현을 분석하고, 이 말의 정체를 찾아내면 그것은 상태인데 saw한 상태이고 (따라서 이 \'상태\'란 표현은 명시되지 않지만, 언제나 선제되어있다는 의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애초에 이 문장이 있을 때, 이 문장을 누가 썼는지에 대한 언급 자체도 명시되어있지 않다는데 주목해라.  그럼에도 이게 제시될려면, 누군가가 써야지만이 그게 가능하다는 인과적 관계를 살펴봐라. \'내가 썼으니, 저 문장이 있는거잖아? 이 부분을 찾으란 ...
철학
2025.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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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사고 도구에 해당하는, 표현들을 찾아보자.

일단 잔소리 좀 하고 시작하자. 나는 전형적인 독자를 원하지 않는다.  한 주제에 대하여 같이 사고를 하고 고민할 사람을 필요로 하지 내 글을 읽고 의도를 추측하고 캐낸 뒤에 갑자기 그것을 댓글로  이런 식, "너 이거 때매 썼지?" 하는 이상한 탐정 지랄 놀이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거 알면 뭐할래? 알면 내가 의도한 걸 하냐 마냐의 문제인데 씨발. ㅎㅎ. 그리고 그런 건 비판적 사고만 갖췄다면 초딩도 찾아낸다. 그게 문제가 아니란다. 따라서 이 글도, 그러한 제안으로 읽고 니가 할 건지 말 건지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접하도록 해라. 내 글 읽어서 주장과 근거를 찾고 이것의 진리를 따져서 뭐 할래?  진리를 따질려면 애초에 니가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ㅉ. 게다가 귀납의 한계상, 연역의 한계상, 프레임의 한계상, 포지션의 문제상, 제대로된 기준을 갖추기란 힘들단다. 내가 댓글 쓰는 사람들 중에서, 내 글에 대해 아는 척 하는 새끼들 글 대부분 무시하는데, 그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니가 맞다면 니가 맞는 이유를 밝혀라. 밑도끝도없이 싹 싸지르고 지랄 때리지 말고, 니가 어떤 기준에서 맞는지 니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면,  너는 은근슬쩍 니 말이 맞다고 어리광 부리는거나 다를 바 없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내 말이 맞다고 해줘!!! 빨리!!!" 이런 상태에 해당한다. 내 대답은? 좆까라 이거지. 그래서 나는, 내 글을 보고 난 뒤, 별도로 자기 연구를 시작한 사람을 높게 평가하고 내 글을 다른 외부의 개념으로 명명하면서 덮어버리는 이상한 행동에 대해서 경멸을 한다.  결국 자기 반성적 구성의 문제다. 결국 이게 시작점이라면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하는 게 이득 아닌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하자. 논리학 책을 가끔 보면 개념 판단 추론 이런 순서로 설명이 되어있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내 생각에는 이 순서가 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편의상 그렇게 순서를 잡는 게 익숙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순서로 잡으면, 내 생각인데 판단 추론 개념 이렇게 가는 게 적합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개념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문장 단위로 설명한다. 애초에 판단이 있었다는 얘기지. 그러면 판단부터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 그리고 판단부터 시작하고 나서 그것에서 개념화 작용이 일어난 것. 그리고 그 어떤 부호들을 압축시킨 것. 내 생각인데 이게 바로 개념이고. 이게 단어들이다. 단어의 탄생은 이렇게 나온다고 본다. 인지언어학에서는 문장에 대해서 뭐라고 하냐면 '발생하는 사건들이 존재하는 상태'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사건들의 상태를 말한다. 또는 사물들의 상태라고 해도 되는데 이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문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핵심은 관계에 있다. 이 인지언어학에서 '개념핵'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건 관계에 해당한다. 관계가 있다는 말은 참여자가 있다는 말이다. 즉 참여자가 얽힌 상태를 말하는 게 '상황'이고.  이 상황에 설정되는 것.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적당한데, 이런 것이 있다. 그것을 '배경'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장소, 시간, 환경 이걸 말한다. 관계가 있다고할 때 이것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내가 I love you라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은 '나 너 사랑해'라는 고백일 수도 있지만 상태라는 단어로 살펴보면, 내가 지금 그런 상태에 있다는 나의 상황(정신상황)을 노출하는 것이다. 즉 '나와 너'라는 참여자가 있다면, 이 둘의 관계를 설정했다는 얘기이고, 이와 관련된 배경이 있다는 말은, 내가 어디에서/언제/어떤 이유로(조건으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얘기가 있다. 근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건 이 단어가 생성되는 현장이 어디냐는 거다. 내 머리 아닌가? 내 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작업 아닌가? 따라서 이것은 자기 의식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므로 이 순간 내 머리속에서 이런 단어단어들이 구성되는 현장이 있다. 즉 단어가 나오기 이전에 인간의 머리에서 작동되는 어떤 기구들이 있고 (비유컨대) 그것들이 계속 작동되면서 인간의 머리에서 언어를 생산해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어로 생긴 게 아니라서, 이것을 언어로서 접근하는 건 힘들고, 이 순간에는 소위 직관이라고 하는 것, 즉 '봄' '느껴봄' 이 '봄'이라는 표현에서 자주 나오는, 감각/지각의 활동을 통해서 이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접근을 하여 들어갔을 때 이것을 보다가 어떤 순간 어떤 것이 나오는가? 이 관계를 잡아내면 바로 그 어떤 순간(어떤 때에) 해당하는 것이, 계기가 될 것이고 바로 그것이 정말로 유일하게 신체 내에서 찾아낸 언어 스위치가 되는 거다. 내가 전에 썼던 글 중에서 목적어라는 것은, 주체가 행위한 것의 대상. 이런 것으로도 갈 수 있지만 또 다른 식으로는 내 시선이 밖으로 나갔을 때, 그것을 느낄 때, 바로 이 순간 목적어(라는 단어로 명명된)가 발생한다고 했다. 즉 "내 팔을 봐라" 라고 할 때, 나는 분명히 지금 '팔을' 이라는 것으로 '팔'을 목적어로 취급했는데, 이 때에 실제로 이것의 계기는 뭐냐? 그것은 시선의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 그리고 이렇게 글을 써줘야 분명히 와닿을 것 같은데 지금 내 글이 하나의 깔끔한 문장을 단위로 보여주고 있어도 실제로 내가 이것을 하나하나 타이핑 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라. 그러면 실제로 어떤 순서에 의해서 쓰였을까? ------------------------------------------------------------------------------------------------------- 이  ---- 로 가둬놓은 쪽에 해당하는 글을 가지고 예시를 보여주려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런 얘길 했다고 하지. "나는 문장마다 쉼표를 넣어서 읽으려고 한다" 이런 얘길 했다고 하지. 이 사람이 지금 하고자 했던 게, 지금 내가 하려는 것과 약간 유사한데가 있다. 문장은 완결된 하나의 문장처럼 독자에게 다가가지만 실제로 그것은 작성자가 쓰면서, 속으로 되풀이했던 것이기도 하고, 또한 하나하나 쓰면서, 하나의 의미에 대해서 머리속에서 고민하고, 하나하나 선택한 것이다. 손으로 표현하면, 내 계획에 따라 내가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서 여기다가 배열시킨 것이다. 다음을 보자. [그리고 이렇게 글을 써줘야 분명히 와닿을 것 같은데] 이 문장은 실제로 어떻게 쓰였냐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았다. 그리고  (한 텀 쉬자) 이렇게 글을 써줘야 (이후 계획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하고 있고,   글'이라는 오브제를 떠올리면서,  여기에 내가 조작을 가한다는 느낌을 갖고서, 그에 합당한 표현(형태)가 무엇인지 잠깐 머리속에 물음을 던졌고  순간적으로 '쓴다'라는 표현이 잡혔다. 그래서 그걸 갖다 붙인다.) 분명히 (상태에 대해서) 와닿을 것 같은데 (어떤 것이 움직여서 내 쪽으로 온다는 이미지를 얼핏 갖고 있었다.) 위 설명들을 다시 조립을 해보자. 계기 --------------------> 표현 한 텀 쉬고,                           그리고 계획-직접 보여주자              이렇게 글을 써줘야 어떻게? = 뭔가 보여주자       이렇게 글을 써줘야 그렇게 될 것이다 (추측)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추측)        와닿을 것 같은데 다시 말해서  이것의 지시하는 게 뭐냐면 내 마음속에는 어떤 계기가 있다. 의지라고 부르든 뭐라고 하든 간에 어떤 마음의 충동이 있고, 그것을 갖고서 재빠르게 그것에 해당하는 것들,  또는 그것을 표현시킬 수 있는 것들 말그대로 의사표현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유사표현들, 그게 뭔가를 내 스스로 잠깐 떠올린 뒤에, 이 단어들을 잡은 것이다. 나는 진짜 이렇게 글을 썼다 지금도 위의 샘플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쓴다. 다시 한번 더 예를 들자. [나는 진짜 이렇게 글을 썼다 지금도 위의 샘플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쓴다.] 이 문장을 내가 쓴대로 끊어보면 나는 진짜/ 이렇게/ 글을 썼다 지금도/ 위의 샘플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끊었는데 여기에는 단어단어가 주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위 '틀'이라고 하는, 추상적 층위에 해당하는 부분이 더 먼저 잡힌다. 즉, 일단 주체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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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 상황에 관게한다는 것은 두 가지 상이한 기능을 수반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이를 '인지적 기능'이라고 부른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고, 상황을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변화시키려고 한다.  나는 이를 '참여적 기능' 혹은 '조작적 기능'이라고 부른다.  인지적 기능과 조작적 기능이 동시에 작동되면 이들 사이에 양방향의 간섭이 일어나는데 이를 '재귀성 Reflexivity'라고 이름 붙였다. 재귀성은 '참여자의 기대치와 실제 사건 사이의 순환성 또는 양방향의 피드백 고리' 정도로 바꿔 불러도 좋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실제 상황이 아닌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이나 인식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다. 또 그러한 결정은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조작적 기능), 상황의 변화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는다 (인지적 기능).  이 두 가지 기능은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작용하므로 참여자들의 생각에도, 실제 사건의 흐름에도 불확실성이 생겨난다. 모든 거품은 두 가지 요소를 수반한다. 한 가지는 현실에 근거한 추세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 추세에 대한 오해 또는 오역이다.  금융시장은 대개 오해를 바로잡는데 뛰어난 기량을 보이지만 때때로 오해는 거품을 야기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오해는 지배적인 추세를 강화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과 그 현실에 대해 시장이 갖는 인식의 간극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까지 그 힘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오해가 오해로 인식되고, 현실에 대한 각성이 생기기 시작하면 추세는 뒤집힌다. 솔직히 말해서 저 설명만큼 현실에 대해서 강력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 사람들은 대개, '질서'를 찾고 싶어하지, 그러나 실제로 발견되는 것은, 질서를 찾고 싶어하는 저마다의 의지이지, 실제 질서는 아니다. 왜냐? 누군가의 질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혼란스러움이 될 수도 있다.  질서잡힌 것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둘이 마주하게 되면, 둘은 서로에 대해서 조작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서로가 서로를 탐색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위에 언급된, '상황에 대한 해석/인식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그 이후에 일어나는 전략, 그리고 전략의 실행, 그리고 그 실행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것이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심지어 거기에 편견과 오류가 개입된다는 것까지 포함해보자.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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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적 사고 과정에 대해서, 환기를 해보자.

여기 글이 하나 있다. 니가 지금 클릭한 것이지. 이것은 너에게 '대상'이다. 그리고 너는 이것을 마주하고 있다.  소위 직관의 문법이라는 것, 이런 것은 아직 개발되지도 않았다. 니가 대한민국에서 '직관의 문법'이라고 해서, 관찰하는 법 이런 것 배운 적이라도 있는지 되물어봐라. 그리고 전 세게적으로 표준적인 기준이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직관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공부해본 적이나 있는지 되물어봐라. 이런 건 없다. 그러나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이 끊임없이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생각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게 아니라, 인간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오류'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를 통해, 인간의 사고 작동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지.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으로 가게 된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철갤에서 가장 글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필시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고 그 마음에 대한 글이 상당히 와닿기 때문이다. 이건 예외가 없다. 니네가 읽는 모든 철학책이나 통찰력 쩌는 에세이같은 것 읽어봐라. 니 마음을 파고드는 것. 그게 바로 가장 잘 쓴 글의 특징일 것인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마음을 예리하게 도려내는듯한 특징을 갖고 있다. 가까운 에로 조지소로스 같은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 조지 소로스의 이론 중에 '재귀성 이론'이라는 것은, 딱 보면 느낌이 온다. 다음의 사전을 참조하자.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637426&mobile&categoryId=200000127 물론 이것은 좀 일반적인 진술이고, 그에 해당하는 세부적인 패턴들 이런 것들은 각자가 찾아야겠지. 그러나 이 틀 자체가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생각하는 방법' '중시해볼만한 지점'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지. 예컨대 재귀성 이론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좋은 게 인간관계다. 내가 어떤 인간관계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고, 이것은 조작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조작은 이후 경험이 되고, 이후 이 경험은 다시 인식이 된다. 근데 이건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고 이제 나 아닌 사람을 관계지어보자. 그 사람도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이 없지는 않을 거잖아? 그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인지하고 있는 것을 조작할 것이고, 그에 따라 그 나름의 '경험'을 갖겠지? 니가 그렇게 하듯이. 이 부분을 더 파고들어가면, 이제 이건 간학문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게 된다. 나 혼자만이 다른 사람들의 자료도 필요하게 되니까. 근데 이 조지소로스를 언급한 이유는, 이 사람이 제시한 이 이론은, 사실 조지 소로스도 자기 책에서 밝히고 있지만 결국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이 부분이다. 결국 가장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마음'의 문제를 다룰 수 밖에 없다. 여기를 해명하지 않고서 이론을 만든다? 미친 새끼. 그 새낀 뒤져야 된다. 근데 재밌는 건. 재귀성 이론으로는 이것도 설명할 수 있다. 그 주관이 '조작한 것'이라고,  그리고 그 조작으로 인해 또 '지식'이 ...
철학
2025.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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