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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멈춘 사람들 (下)
V I R T U E K I N G덕왕의 지식한스푼

생각을 멈춘 사람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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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2025.12.16조회수 162회

착한 사람들이 왜 정치 앞에서는 악마가 되는가?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에른스트 블로흐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멈추고 악에 동참하게 되는지,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적으로 느끼는 정치적 극성화 현상까지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여섯 겹의 덫을 확인했습니다. 정치를 생존의 위협으로 착각하는 뇌, 부족주의를 강화하는 호르몬, 자기기만을 정당화하는 확증편향, 우리 대 그들의 프레임을 만드는 집단 정체성, 경제적 결핍이 빼앗아가는 인지 능력, 그리고 분노를 상품으로 파는 알고리즘 미디어까지.


이 모든 것이 거미줄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하기는 이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탈출구를 찾아볼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을 되찾을 것인가?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냉철해야 할 투자자로서 어떻게 이 광기에서 벗어날 것인가?


본격적으로 해법을 탐구하기 전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두 번째 시간의 글은 첫 번째 시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민감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안의 작은 아이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간절히 속삭였지만 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마음은 두려움을 필연적으로 수반하지만 상자 속엔 희망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자료에 근거하여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객관화란 존재할 수 없으며 여러분의 생각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이유는 덕왕의 '무지'와 '부덕'에서 나온 것이기에 모든 비판은 제게 해주십시오. 상호 간의 건전한 토론은 환영하지만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과 세대 및 성별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은 자제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글을 다 읽고 난 이후에는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두 번째 시간을 시작합니다.


PART 3: 이대남과 이대녀, 세대 간 단절의 뿌리


12. 일곱 번째 덫: 20대 남자의 보수화와 그들의 진짜 속마음

앞서 살펴본 여섯 겹의 덫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치명적인 두 개의 덫이 더 있습니다. 바로 20대를 중심으로 한 세대와 성별 간 갈등입니다.


숫자가 말하는 세대 전쟁

20대 남녀의 정치 성향이 극명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58.7%가 윤석열 후보에 투표했고, 20대 여성의 58.0%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2025년 대선에서는 이 균열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20대 전체에서 41.3%가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이를 성별로 나누어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약 74%가 보수 후보들 중 한 명에게 투표하고 이재명 후보에게는 24.0%만이 투표한 반면, 20대 여성에서는 약 58%가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고 35.6%만이 보수 후보에게 표를 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닌 같은 세대 내에서 완전히 다른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022년 대선에서 처음 드러난 20대 남성의 보수화와 20대 여성의 진보화라는 균열의 조짐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정당의 지지율도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 2월 기준,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36%인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14%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20대 여성은 민주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한국갤럽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대를 통틀어 20대 남성의 보수화 경향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전통적으로 젊은 세대는 진보 성향을 보여왔고,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20대 남성은 50-60대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2023년 Financial Times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도 젊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정치 성향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격차는 40점 이상으로 미국의 31점, 독일의 30점, 영국의 25점을 훨씬 상회합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7-10점 차이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도 세계 1등을 하다니, 자랑스러워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한국의 20대를, 특히 20대 남성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기성세대들은 20대 남자들을 '이대남'으로 부르며, 뭐가 부족해서 보수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이것은 세대 간의 보수화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60대 이상의 세대가 '반공'과 '정부 주도의 성장 우선주의'를 핵심으로 한 '이념적 보수'라면 20대 남성은 '반(反) 페미니즘'과 '공정성'을 핵심으로 한 '기능적 보수'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다른 세대와 다르게 돌아선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경제적 박탈감: 사다리가 사라진 세대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 박탈감입니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단순히 가난하다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격차의 확대"입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20-30대의 순자산은 연평균 4.3% 증가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수치처럼 보이지만 같은 기간 40-50대의 순자산은 6.8% 증가했습니다.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피케티의 경고: r > g의 저주

토마스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r > g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다)라는 유명한 부등식을 통해, 자산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사람이 땀 흘려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이미 자산을 가진 기성세대와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 세대의 격차는 좁혀질 수 없습니다. 마치 아무리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제논의 역설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자본수익률(r)이 연 5%이고 경제성장률(g)이 연 2%라고 가정해 봅시다. 10년 후의 격차를 보면, 1억 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1.6289억 원(6,289만 원 증가)이 되고, 연봉 3,000만 원인 사람은 3,657만 원(657만 원 증가)이 됩니다. 격차는 9.57배입니다.


20년 후의 격차를 보면, 자산 보유자는 2.6533억 원(1억 6,533만 원 증가)이 되고, 노동자는 4,458만 원(1,458만 원 증가)이 됩니다. 격차는 11.34배로 벌어집니다.


2024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 이하(20~39세)의 순자산은 평균 약 2억 2천만 원인 반면, 40-50대는 4억 5,000만 원에서 5억 초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대 간 자산 격차가 두 배 가까이 벌어진 것입니다. 2억 원 이상의 절대적 격차도 이들에겐 아득한 차이인데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은 절망감을 안겨줄 뿐입니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이 격차가 좁혀지기 어렵습니다. 2024년 기준 서울의 PIR(주택가격/연소득 배수)은 13.9배입니다. 숨만 쉬고 일해도 내 집 마련에 14년이 걸립니다. 청년가구(19-34세)의 자가점유율은 12.2%로 전체 평균의 5분의 1 수준입니다. 40년 전만 해도 20대의 자가 보유율이 30%였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추락한 것입니다.


이를 부채질한 것이 바로 '금리'와 '통화정책'입니다. 돈을 많이 풀면 필연적으로 자산가격이 높아지는데 비해 이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는 불평등하게 이루어집니다. 소득이 높고 자산가치가 높은 사람들은 저금리로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지만 소득이 낮고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적은 금액을 고금리로 대출받거나 아예 그마저도 불가능합니다.


결국 기성세대의 부는 더욱 증가하고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젊은 세대의 부는 상대적으로 감소하여 세대 간 차이가 더욱 확대됩니다. 지난 십 년 이상의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와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저축해도 노후를 준비할 수 없으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사치를 넘어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성 프레임: 과연 평등한가?

두 번째 이유는 "공정성"에 대한 의문입니다. 20대 남성이 느끼는 박탈감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채용 시 여성 할당제에 대한 불만,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무고죄"로 악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2018년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편파 수사 논란과 이에 대한 메갈리아의 반응, 미투 운동의 확산 등은 20대 남성에게 "우리는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TMI: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

2018년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은 여성 모델이 남성 모델의 나체를 몰래 촬영해 남성혐오 사이트인 워마드에 유포한 사건으로, 가해 여성은 징역 10개월 실형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편파 수사' 논란을 일으켜 대규모 페미니즘 시위를 촉발했습니다. 여성들은 '피해자가 남자라서' 여성 피의자에 대한 가혹 수사를 비판했으나, 젊은 남성들은 오랫동안 남성들에 대한 편파수사가 있었음을 주장하며 남성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가해자를 피해자처럼 포장한다고 느꼈습니다.



보수 진영은 이 불만을 "공정성"의 프레임으로 포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자산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 "역차별이 만연하다", "능력주의가 무너졌다"는 메시지는 경제적으로 불안한 젊은 남성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그들이 지난 진보 정권에 의해 소수의 목소리와 감정에 좌우되어 공정이 파괴된 사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수 및 약자를 보호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저 또한 찬성하나 개인의 노력을 무력화시키거나 공론화의 과정 없이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법의 제정은 지난 진보 정권이 저지른 분명한 실수입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제정된 '민식이법'은 희생자의 아픔에는 동의하지만 법률 제정에 있어서 충분한 토의와 공론화 과정 없이 당시 사회적 분위기 몰이로 인해 제정되었습니다. 운전자가 아무리 조심해도 불가항력적 사고가 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형량을 부과하여 감성이 법리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요원들의 정규직 채용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정의 공정함과 결과의 정의로움을 외쳤던 진보 정부의 목소리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치들은, 노력 없이도 운만 좋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노력하는 청년들을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양성 평등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스스로를 페미니즘 정권이라 자처했던 것도 정치적으로는 아마추어적 패착에 가깝습니다.


의무와 사랑을 혼동하는 사회: 군대 문제

그리고 20대 남성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 바로 군 복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휴전 국가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군인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세계의 군인 대우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국가는 그 나라가 배출한 인물뿐만 아니라, 그 나라가 기억하고 존경하는 인물에 의해 그 정체성이 드러난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시민들은 군인을 마주칠 때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말하고, 노르웨이에서는 여성 징병제를 '특권'으로 여깁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의무만 있고 존중은 없습니다. 군인을 '군바리', '집 지키는 개'라고 비하하며, 성스러운 군복무의 의무를 '군캉스'라고 비웃는 목소리는 젊은 남성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20대 남성의 보수화는 단순히 보수 정당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국가가 나를 부려먹고 버렸다", "젊음을 희생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비웃는다"는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국은 2013년부터 공무원·공기업 채용 시 군가산점제를 전면 폐지했습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미국은 연방 공무원 채용에서 Veterans' Preference 제도를 통해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부여합니다. 영국은 공공부문에서 제대 군인 채용의 우선권을 주며 채용 기업에 세제혜택 및 홍보를 지원합니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이스라엘은 제대 후 대학 진학 시 학비의 75%를 장학금으로 지원합니다. 국가를 위한 헌신을 교육의 기회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역시 징병제 국가인 싱가포르는 현역 복무부터 예비군 완료 시까지 NS HOME Award를 통해 총 17,000~18,500 싱가포르 달러(약 17,000~19,000 미국 달러)를 지급합니다. 이는 단순한 월급 외에 국가가 제공하는 확실한 금전적 보상입니다. 또 다른 징병제 국가인 스위스는 징병제 유지에 대한 국민투표 찬성률이 73%에 달할 정도로 사회적 합의가 견고합니다. 그 비결은 '소득 보전'입니다. 고용주는 복무 중인 직원에게 급여를 100% 지급하고,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환급받습니다. 징집병이라도 실질 소득 손실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군가산점제는 폐지되었고, 복무 기간 동안의 학비 지원도, 전역 후의 세제 혜택도, 사회 진출 시의 소득 보전도 전무합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된 나라에서 말입니다.


최근 병장 월급이 2025년 기준 150만 원, 지원금을 합치면 205만 원까지 오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충분한 보상일까요? 2025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0,030원입니다. 주 40시간 기준 월 환산액은 약 209만 6,270원입니다. 병사들은 사회와 격리된 채 24시간 부대 내에서 생활하며 통제를 받습니다. 노동 시간과 자유의 박탈을 고려하면, 205만 원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입니다. 이건 마치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데 고무신을 주며 "발 안 아프지?"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출산과 군 복무: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이 논쟁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남자는 군대 가지만, 여자는 애 낳잖아"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틀린 비교입니다.


의무 vs 권리: 군 복무는 헌법과 법률이 강제하는 '법적 의무'입니다. 반면 출산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과 사랑에 기반한 '선택'적 권리입니다.


본질의 호도: 만약 출산이 군 복무의 등가교환이라면, 아이를 낳지 않은 비혼 여성은 병역 기피자와 같은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이런 비교가 더욱 나쁜 이유는 본질에 대한 사유와 토론을 그 시작부터 불가능하게 만들며 사회적 합의를 위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0대 남성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부름에 응해 가장 빛나는 젊음을 바치고 위험을 무릅쓴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사회적 존중"입니다.


13. 여덟 번째 덫: 20대 여성의 두려움과 유리천장의 현실

이제 고개를 돌려 반대편에 앉아 있는 20대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20대 남성이 '공정성'과 '역차별'에 분노한다면, 20대 여성은 '생존'과 '구조적 차별'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분노 역시 막연한 감정이 아닌, 차가운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문제: 안전에 대한 공포

많은 20대 남성에게 밤길은 그저 어두운 길이지만, 많은 20대 여성에게 밤길은 '죽을 수도 있는 길'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대검찰청의 <2023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흉악 강력범죄(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피해자의 약 85%가 여성입니다. 특히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여기에 더해 '딥페이크 성범죄', 'N번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불법 촬영(몰카)', '스토킹 범죄' 등 디지털 성범죄와 신종 범죄의 타깃 역시 압도적으로 젊은 여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20대 여성들은 뉴스를 볼 때마다 자신의 얼굴을 대입합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들에게 정치는 단순한 정책 대결이 아니라, "누가 나를 죽지 않게 지켜줄 것인가"라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치권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이들에게는 생존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유리천장: 보이지 않는 벽

20대 남성이 군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과 사회 진입 지연을 억울해하듯, 20대 여성은 취업 이후 마주할 거대한 벽, 즉 '유리천장'에 절망합니다.


"여대생이 학점도 더 높고, 공무원 시험 합격률도 더 높지 않으냐"는 반문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회 진입 초기, 즉 20대 초중반의 스펙 경쟁에서는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보면 현실은 다릅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The 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2013년부터 2024년까지 12년 연속 OECD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23년 기준 약 6%에 불과합니다. 입사는 비슷하게 했더라도,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은 사라집니다.


M-커브의 절망: 경력 단절의 덫

20대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M-커브'입니다. 여성의 연령별 고용률 그래프가 30대 중후반에 푹 꺼졌다가 40대 이후 다시 올라가는 M자 모양을 그린다는 데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이 푹 꺼진 구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Career Break)입니다. 20대 여성들은 선배들이 출산과 함께 회사에서 밀려나거나, 복직하더라도 승진에서 누락되고 한직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합니다.


"애 낳으면 회사 그만둬야 하나?"라는 고민은 20대 남성에게는 드물지만, 20대 여성에게는 실존적인 공포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 일자리는 대부분 기존보다 임금과 처우가 낮은 비정규직이나 서비스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채용 성차별의 잔재

2023년에도 여전히 채용 면접장에서 "결혼 계획이 있느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야근이 많은데 여자가 버틸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는 여성들이 존재합니다. KB은행, 신한은행 등 여러 금융권과 서울메트로, 한국가스안전공사 등의 공기업의 채용 비리 사건에서 남성 지원자의 점수를 올려주기 위해 여성 지원자를 고의로 탈락시킨 사례들은 20대 여성들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성별 때문에 안 될 수 있다"는 깊은 불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행성, 같은 고통

정리해 봅시다.

20대 남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군대 가서 2년 썩고 왔는데, 사회는 나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고, 역차별받는 느낌이다. 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원한다."


20대 여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전하게 살고 싶고, 결혼과 출산이 내 커리어의 무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구조적 차별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 두 목소리는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 뿐입니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은 같은 2025년을 살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마치 같은 영화관에서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치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이들을 '제로섬 게임'의 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보수는 "공정"을, 진보는 "페미니즘"을 외치지만 실상은 "쟤를 죽여야 네가 산다"는 악마의 속삭임을 하며 갈등을 키우고 싸움을 부추기며 표를 구걸하고 있습니다.


14. 공정이라는 이름의 가면: 통계의 이면

두 진영은 통계의 함정을 이용하여 그들의 목소리에 권위를 부여합니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차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2024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9%로 회원국 중 최하위입니다. 지표에서 여성 고용률은 남성보다 20% 포인트 낮고, 관리직 여성 비율은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20대 남성에게 이런 통계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체감 현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여학생의 높은 성적, 공무원 시험에서의 여성 합격자 증가, 미디어에서의 페미니즘 담론의 확산입니다. 반대로 20대 여성들은 이 통계를 보며 그들이 여전히 차별 속에서 살고 있으며 나아지지 않는다며 더 많은 정책적 보호를 호소합니다.


서로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 공통점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색의 부족과 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 공급되는 의견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조로 인해 서로를 적으로 돌리며 진정한 해결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 불평등의 갈라치기를 위해 가장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수치가 바로 OECD 성별 임금격차(OECD Gender Pay Gap)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2024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9%로 부동의 1위입니다. 이 숫자를 두고 한쪽에서는 "여성 차별의 명백한 증거"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조작된 선동"이라고 합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각자의 결론을 잠시 내려놓고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OECD 통계의 맹점: 중위소득의 함정

OECD 통계에서 말하는 성별 임금격차는 정확히는 "남녀 전체의 중위 임금(median earnings)을 비교한 값"을 의미합니다. 이 지표는 전체 현황의 평균일 뿐 동일노동, 동일조건을 보정하지 않습니다. 즉 직종, 직급, 근속연수, 근로시간, 고용형태(정규·비정규), 기업 규모 등 다양한 요소를 따로 통제하지 않은, 이른바 '조정 전(unadjusted)' 격차입니다.


OECD Gender wage gap / 출처: https://www.oecd.org/en/data/indicators/gender-wage-gap.html



이 수치는 "전체 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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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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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구독자 368명구독중 3명
이세계에 환생한 삼국지의 진정한 덕왕은 지혜와 덕을 베풀고자 오늘도 수련에 매진한다 투자자산운용사, 금융투자분석사 https://blog.naver.com/virtue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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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
2025.12.16

정말 잘 심사숙고하셔서 중립적으로 쓰신 글 같습니다. 책도 많이 읽으시고 글을 쓰시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열심히 고민하셨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행정학 교과서 상으로는 중도 좌파로 분류가 되지만, 현재는 2찍 이대남 극우 틀딱으로 분류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쓰신 글에 짤막하게 감히 말씀을 드리기조차 조심스럽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1과 2의 갈라섬은 1의 정치공학적 천재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2의 정책은 무관심자에게는 친절한 말로 들리고, 실제로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은 강성 지지층이 될 수밖에 없는데다 친절하게 보이는 이가 언론에서는 유리할 수밖에 없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의 참모진이 강성 지지층을 확보한 채로 부동층에게 어필하는 정치공학이 가히 천재적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2는 그 프레임을 깨지 못하고 끌려다니기만 하고, 4는 아직 어리고 약하구요.


저는 이러한 과정이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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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
2025.12.16

- 이어서 -


언젠가는 대한민국도 좌와 우가 악셀과 브레이크처럼 건강하게 견제하면서 제 기능을 하기를 바랍니다. 한쪽은 근시안적인 정책만 내놓고 한쪽은 그건 틀렸다만 하는게 아니라 각자가 각자의 이상을 좇으면서 확대해서 보면 노이즈가 오락가락하지만 장기 시계열에서는 국가가 발전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국민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겠지요.


대한민국에 과학이 제대로 자리잡은지는 20년 남짓이나 되었고, 문맹이 퇴치된지는 고작 60~70년 남짓이나 되었을겁니다. 사실 그동안 이렇게 무시무시한 성장을 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할 일이지만, 조금만 더 사회가 성숙하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회가 유독 성숙하지 못한데에는 여러 이유가 많겠지만, 사회문화적인 경향중에 모두가 하나의 게임 -돈과 내집마련-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생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고찰할 여유가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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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슬립
2025.12.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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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견
2025.12.17

한국은 양차대전 이후 해방과 전쟁을 겪고 초토화된 국토 위에 유례 없는 고성장을 한 국가입니다.

물질적 풍요를 구축하는데 전념하는 바람에 정신의 빈곤을 외면하거나 방치했죠.

그 결과 부의 대물림, 빈부격차, 지역격차, 세대갈등, 이념갈등, 등의 성장통을

극복할 역량이 내재되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죠.

하지만 제 눈에는 꾸역꾸역 국민들이 역사의 조타수 역할을 하는 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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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별건가요.

결국 지금의 2030세대에 적든 많든 부(혹은 빚 ㅡㅡ;;)를 대물림할 세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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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Kim H
2025.12.17

저도 이렇게 좋은글 한번 써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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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ie
2025.12.17

좋은 글...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기득권이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기득권의 기준을 가지고 또다시 같은 다툼이 생길 듯 해서 씁쓸한 마음입니다.

명상을...일상에 추가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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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서바이벌
2025.12.17

덕왕님의 분열된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사회에 대한 애정이 모두 느껴져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애정하는 것을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들일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40대 영포티로서 상대의 입장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저부터도 노력하겠습니다. ;; :) 글 쓰시느라 수고하셨고 다시한번 생각할 거리를 잔뜩 던져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덕왕의 지식한스푼 카테고리의 다른글

생각을 멈춘 사람들 (上)

착한 사람들이 왜 정치 앞에서는 악마가 되는가? 프롤로그: 계엄의 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싸운다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급박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경찰과 군의 저지선을 뚫고 국회로 달려갔고, 6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전 세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저력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날부터 SNS는 전쟁터였습니다. "이게 나라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정당한 통치행위였다”,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반역자를 처단하라", “빨갱이 놈들” 등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진정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더 극렬해졌습니다. SNS과 커뮤니티 게시판을 열면 증오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커뮤니티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전쟁터가 되고, 직장에서는 정치 성향만으로 사람을 재단하며, 대학가에서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를 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평소에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웃에게 친절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그런데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변합니다.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다른 사람이 됩니다. 언론과 유튜브, SNS는 이 광기에 기름을 붓습니다. 클릭을 위해, 조회수를 위해, 그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냅니다. "충격", "경악", "이것은 반역이다", "나라가 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맹목적으로 소비합니다. 팩트를 확인하지도 않고, 맥락을 살피지도 않고, 그저 우리 진영의 서사에 맞으면 무조건 공유하고 분노합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럴까? 착한 사람들이 왜 정치 앞에서 악마가 될까? 합리적이어야 할 지식인들이 왜 진영논리에 갇힐까? 사랑하는 가족이 왜 정치 때문에 등을 돌릴까? 평소 이 문제를 궁금해하던 중, 회사 게시판의 한 독자님께서 똑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계시고 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는 댓글을 달아 주셨고, 마침 좋은 시기라 생각하여 몇 주간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여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하고 반대편의 사람을 눈엣가시처럼 여길까요?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구조적이고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현상입니다. 우리의 뇌가, 우리의 진화가,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입니다. 과학의 렌즈로, 심리학의 도구로, 사회학의 통찰로, 그리고 역사의 교훈으로, 정치적 극성화가 무엇이고, 왜 발생하며, 무엇보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온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중심축으로 삼겠습니다. 그녀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관찰하며 충격적인 발견을 했습니다: 악은 악마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이것은 정치적 극성화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열쇠입니다. 이 글은 네 파트로 구성됩니다. PART 1에서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살펴보고, 이것이 현대 정치 극성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봅니다. PART 2에서는 왜 착한 사람들이 생각을 멈추는지, 뇌과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경제학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PART 3에서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 사례들과 함께 과학적으로 검증된 구체적 방법들과 이를 개인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토콜까지 살펴보겠습니다.  PART 4에서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생각을 살펴봅니다. 정치적 편향이 어떻게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망칠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투자자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긴 여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정을 함께 걸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증오의 소용돌이에 갇혀 살 것인가, 아니면 생각을 되찾고 대화를 복원할 것인가. 답은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의 이야기는 정치적 판단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 글을 토대로 많은 분들이 함께 생각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어느 한쪽이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사례와 실천적 방법들에 대해서도 반드시 옳다고 단정 짓지 않으며 판단은 각자의 몫임을 미리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PART 1: 생각을 멈춘 순간, 악마가 깨어난다 0.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생각을 멈춘다"는 개념 자체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생각을 멈춘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주제는 학술서에서부터 대중문화까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 왔습니다. 니콜라스 카의 베스트셀러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인류의 사고 능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는 "인류의 사고 능력은 기술 혁명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무한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 우리는 정말 더 많이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역설적으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있는 것일까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를 만나게 됩니다. 러셀은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했습니다. 러셀이 활동하던 20세기 초중반,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유럽을 휩쓸던 그 시기에도 "생각을 멈춘 사람들"의 문제는 핵심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지한 주제는 의외의 장소에서도 등장합니다. 바로 일본의 유명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입니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는 이 작품에서 유래한 인터넷 유행어로, 등장인물 카즈가 생각하기를 멈추고 영원히 우주 공간을 떠돌게 되는 장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나오는 카즈 재미있게도, 이 만화적 표현은 우리가 다룰 주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카즈는 절대적인 힘을 얻었지만, 바로 그 순간 생각을 멈추고 영원한 정지 상태에 빠집니다. 이것은 강력한 메타포입니다. 우리가 절대적 진리를 가졌다고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생각을 멈춥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성장을 멈추고 고립됩니다. 정치적 극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100% 옳다", "그들은 100% 틀렸다"는 확신의 순간, 우리는 카즈처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주 공간을 떠도는 카즈처럼, 우리도 대화가 불가능한 고립된 공간에 갇히게 됩니다. 러셀이 지적했고, 니콜라스 카가 경고했으며, 심지어 대중문화까지 표현한 이 "생각 정지" 현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탐구할 핵심입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는 이 현상의 가장 극단적인 결과를 아이히만의 재판정에서 목격했습니다. 1. 아이히만의 얼굴: 악은 왜 평범한가 가장 큰 악은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다. 그들은 동기도 없고, 신념도 없고, 악마성도 없다. 단지 생각하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1961년 예루살렘. 수백만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습니다. 전 세계는 어떤 괴물이 등장할지 궁금해했습니다. 좌: 2차 대전 당시의 아돌프 아이히만 우: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에 의해 이스라엘로 납치되어 전범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 그런데 법정에 나타난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했습니다. 중년의 대머리 남자. 안경을 쓰고, 진부한 말만 반복하고, 자신의 경력 승진에만 관심이 있던 관료. 재판을 담당한 정신과 의사는 그를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 오히려 검사를 받은 나보다 더 정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마치 여러분의 직장 동료나 아파트 이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치 독일을 피해 망명한 유대계 철학자였던 그녀는 이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악의 새로운 얼굴이었습니다.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 명명했습니다.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관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말할 수 없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이 명백해졌습니다.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부재 말입니다. 깊이도 없고 악마성도 없습니다. 단지 타인이 경험하는 것을 상상하기를 거부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입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인간이 아닌 "숫자", "통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봤습니다. 자신은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 주장했습니다.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하며 자신을 "이상주의자"라 불렀지만, 칸트를 완전히 오해했습니다. 그는 "보편 법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단지 "명령에 복종"하는 것으로 왜곡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그가 느낀 것은 오직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아쉬움"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아이히만과 우리는 무슨 상관일까요? 안타깝게도, 많은 상관이 있습니다. 2. 당신의 이웃이 아이히만이 되는 순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되는 당신의 지인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도 아이히만처럼 "생각을 멈춘" 것입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거부합니다. 반대 진영 사람들의 고통이나 두려움, 합리적 이유를 상상하지 않습니다. 대신 진부한 슬로건만 반복합니다. "그들은 다 ○○이야", "이건 상식이야", "명백한 사실이잖아".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특징입니다: 무사고(thoughtlessness). 생각의 부재. 숙고의 거부. 물론 규모의 차이는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대량학살을 조직했고, 우리는 SNS에 혐오 댓글을 다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메커니즘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유명한 전기충격 실험(1961)을 기억하십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65%가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타인에게 치명적 수준의 전기충격을 가했습니다. 밀그램은 이 실험이 바로 "악의 평범성"을 입증한다고 말했습니다. 2017년 폴란드 SWPS 대학의 Dariusz Doliński 연구팀이 밀그램 실험을 재현한 결과(실험은 2015년 실시), 여전히 90%의 참가자가 최고 레벨 전기충격을 가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2020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명령", "규칙", "집단의 압력" 앞에서 생각을 멈춥니다. 정치적 극성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무섭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신념을 "진리"나 "상식"으로 포장하고, 반대 의견을 "명백한 오류"나 "악"으로 규정하며, 집단의 압력을 통해 개인의 사고를 억압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을 멈춥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그런 이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평범한 이웃은 당신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3. 생각의 죽음이 가져오는 것들 아렌트는 <정신의 삶(The Life of the Mind)>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악을 예방할 수 있을까?" 그녀의 답은 조심스러운 긍정이었습니다. 생각하는 행위, 특히 자기 자신과의 대화(내적 대화)는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만듭니다. 나 자신과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내가 타인에게 행하는 것과 내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강력한 도덕적 제약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극성화는 정확히 이 "생각하는 행위"를 차단합니다. 어떻게? 첫째, 사고의 외주화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사유하는 대신, 우리 진영의 "전문가"나 "리더"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이히만이 나치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처럼, 우리도 정치적 진영의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합니다. 둘째, 언어의 진부화입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진부한 말만 반복"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적 극성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좌파 빨갱이", "수구 꼴통", "이게 나라냐", "적폐 청산" - 이런 진부한 표현들은 사고를 대체합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셋째, 타자의 비인간화입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인간이 아닌 "통계", "숫자", "처리해야 할 문제"로 봤습니다. 오늘날 정치적 극성화에서도 반대 진영은 "적", "빌런", "악"으로 프레이밍 됩니다. 일단 누군가를 인간 이하로 규정하면, 그에 대한 공격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4. 데이터가 말하는 극성화의 실체 수치로 봅시다. 미국 퓨 리서치 센터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호감도 차이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1994년에는 평균 17포인트였던 차이가 2022년에는 63포인트로 확대되었습니다. 더 무서운 건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의 증가입니다. 즉, 자기 정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상대 정당을 혐오해서 투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힐러리에 투표한 사람들의 각각 70% 이상이 상대 후보에 대한 혐오가 주된 동기였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라고 다를까요? 2022년 한국의 사회동향 보고서(통계청/국가통계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가 주된 특징입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자의 감정온도 차이는 평균 39점으로, 이는 2016년 미국 대선의 정서적 양극화(40.9점)와 거의 동일한 수준입니다. 2023년 28개국 32,000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조사에서 한국은 브라질, 멕시코, 프랑스, 영국, 일본,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정치·경제 양극화 위험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고려대 KU-POPS의 2023년 조사는 더 섬뜩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결혼 상대로 고려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20대에서 43.7%에 달했습니다. 즉, 젊은 세대의 절반 가까이가 정치적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가 이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2025년 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가구 간 소득 격차가 처음으로 연 2억 원을 초과했고, 자산 격차는 15억 원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렌트가 말한 "생각의 죽음"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오직 우리 진영의 서사만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반대 진영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왜 착한 사람들이 정치 앞에서 악마가 될까요? 5. 에른스트 블로흐의 통찰: 같은 공간, 다른 시간 답을 찾기 전에, 또 다른 20세기 철학자의 통찰을 빌려봅시다.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입니다.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으로 무사고의 메커니즘을 밝혔다면, 에른스트는 "비동시성의 동시성(Gleichzeitigkeit des Ungleichzeitigen)"이라는 개념으로 극성화의 구조를 설명합니다. 같은 시간, 다른 세계 에른스트의 핵심 통찰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2025년이라는 똑같은 물리적 시간을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은 각기 다른 역사적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달력을 보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계엄의 밤을 예로 들어봅시다. 같은 사건을 목격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왜일까요? 에른스트의 렌즈로 보면 명확해집니다. 그룹 A - 현재의 시간에 사는 사람들 이들에게 2025년은 정말로 2025년입니다. 민주주의 절차와 현대적 법치 시스템이 당연한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헌법은 최고의 규범이고, 국회는 국민의 대표이며, 군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이들에게 계엄은 "있을 수 없는 과거의 야만"입니다.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공개 교수형을 21세기에 다시 하자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것입니다. 그룹 B - 과거의 시간에 사는 사람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1960-70년대, 혹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마음속 시대"에서는 국가의 안보나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공권력이나 군사적 개입이 가능했습니다. 5.16 군사정변도, 긴급조치도, 광주의 계엄도 그 시대에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계엄은 "가능한 해결책의 하나"입니다. 극단적 위기에는 극단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
덕왕의 지식한스푼
2025.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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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멈춘 사람들 (上)

불타는 빈곤의 집

방치된 죽음, 글로벌 주거 빈곤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2025년 11월 26일 홍콩 타이포 왕푹코트 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이 단지는 정기 수선 및 보수공사 필요 지침에 따라 2024년 1월부터 단지 전체 리모델링에 들어갔으며, 2025년 11월에는 내부 벽 페인팅, 외벽 보수를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보수공사를 위해 8개 건물 전체의 외벽은 비계(飛階, Scaffolding: 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작업자, 장비, 자재 등을 지지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가설 구조물)와 그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모든 창문은 ‘폴리스티렌’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TMI: 폴리스티렌의 화재 특성 높은 가연성: 불꽃에 직접 노출되거나 고열(약 230℃ 이상)에 이르면 쉽게 불이 붙습니다. 빠른 연소 및 용융: 일단 불이 붙으면 빠르게 타면서 녹아내립니다. 이 과정에서 불이 붙은 액체 방울이 떨어져 화재를 더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짙은 연기 및 유독 가스 발생: 연소 시 다량의 검은 연기와 함께 일산화탄소, 스티렌 등 인체에 해로울 수 있는 독성 가스가 발생합니다. 화재 확산의 주요 원인: 특히 건축 단열재로 사용되는 발포 폴리스티렌(스티로폼)은 화재 시 불길이 빠르게 번지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후 2시 25분경 단지 F동의 1층 외벽에서 불이 난 것을 발견한 주민의 신고로 소방관들이 몇 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작았던 불은 그물망을 타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번져서 1시간 만에 5개 이상의 블록이 불길에 휩싸였고 최종적으로 8개 블록 중 7개 블록이 화마에 무너졌습니다. 이 사고로 11월 30일 기준으로 소방관 1명을 비롯한 최소 146명이 숨졌고 79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상자들 중 상당수가 위중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는 즉시 애도 기간을 정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으나 세계적으로 이런 대형 화재는 처음이 아닌,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2024년 4월 10일 아침, 홍콩 조던 지역의 '뉴 럭키 하우스(華豊大厦)'라는 지은 지 60년 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화재로 5명이 사망하고 43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방화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고, 화재 3주 전에 복원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2017년 6월 14일 새벽, 런던 그렌펠 타워에서 72명이 사망했습니다. 건물주는 방화 외장재 대신 가연성 외장재를 선택해 29만 3,368파운드(약 4.8억 원)를 절감했습니다. 이 절감액은 총 피해액 12억 파운드(약 2조 원)의 0.024%에 불과했습니다. 절약한 돈의 4,000배를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오늘은 전 세계 도시 빈곤층의 주거지가 왜 반복적으로 불타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설계된 불평등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치 대형 투자 사기처럼 말이죠. 다만 이 사기의 피해자들은 투자금을 잃는 게 아니라 목숨을 잃습니다. Chapter 1. 홍콩: 새장 속 인간, 60년 된 죽음의 덫 우리는 홍콩을 여행하며 거리의 번잡함 속에서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며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기지만, 대다수의 홍콩 사람들에게 지면에서의 10미터 이상은 지옥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 지옥은 더럽고 불편한데 비싸기까지 합니다. 홍콩에서 가장 비싼 것은 땅이 아니라 '공간'입니다. 정확히는 살 수 있는 공간입니다. 2024년 현재 홍콩에서는 약 22만~24만 명이 '부적절 주거'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분화 아파트(SDU: Subdivided unit, 한국의 쪽방보다 좁음), 새장집(籠屋), 관집(棺材房: Coffin homes). 이름부터 섬뜩합니다. 새장집은 문자 그대로 철망으로 둘러싸인 2단 침대 공간으로, 한 사람당 16평방 피트(1.5제곱미터)만 배정됩니다. 화장실 칸보다 작습니다. 이 작은 공간에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없습니다. 참고로 홍콩 교도소 독방 면적은 75평방 피트입니다. 범죄자가 더 넓은 공간에서 사는 아이러니는 지금 홍콩의 현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홍콩은 정기적으로 큰 화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홍콩 주거 빈곤의 숫자들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약 107,400 가구, 215,700명 이상이 SDU에 거주하며, 이는 홍콩 전체 인구의 약 3%에 해당합니다. 이 중 약 34,000명은 15세 미만 아동입니다. SDU 거주 인구는 2007년 53,000명에서 2021년 215,700명 이상으로 4배가량 증가했습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새장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SDU의 중위 면적은 118.4평방 피트(약 11제곱미터)로, 홍콩의 일반 주차 공간(135평방 피트) 보다 작습니다. 전체 SDU의 약 25%는 86평방 피트(8제곱미터) 미만이며, 관집은 15-20평방 피트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이런 곳에서 살까요? 이유는 미친 홍콩의 주택 가격 때문입니다. 2024년 기준 홍콩의 주택 가격-소득 비율은 25배입니다.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25년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죠. 베이징(41배)보다는 낫지만 서울(~15배), 도쿄(~15배), 런던(14배)과 비교하면 압도적입니다. 임대료도 미쳤습니다. 저소득층은 소득의 45-50% 이상을 임대료로 냅니다. 한국에서 "월급의 30%는 집값으로 나간다"고 하면 많이 나간다고 하는데, 홍콩에서는 그게 꿈입니다. 토지 프리미엄의 악마적 유산 이 구조는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형성된 고지가 정책의 유산입니다. 1841년 영국이 홍콩섬을 점령한 이후, 식민 정부는 낮은 세금을 유지하면서 인프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토지를 고가에 매각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모든 토지는 왕실(Crown) 소유로 선언되었고, 정부가 유일한 지주가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1997년 반환 이후에도 지속되어, 토지 프리미엄이 정부 수입의 20-30%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2017-18년에는 토지 프리미엄 수입이 1,648억 홍콩달러로 총 정부 수입의 26.6%에 달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땅값이 떨어지면 재정이 파탄 나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땅값을 낮출 인센티브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2023-24년에는 토지 프리미엄이 196억 홍콩달러로 급락하여 총수입의 3.6%만 차지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정부도 돈이 없어진 겁니다. 이 구조는 소수 부동산 재벌의 독점을 낳았습니다. 상위 5개 개발업체가 신규 주택 공급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상위 3개 업체(청콩홀딩스, 선훙카이, 뉴월드개발)가 MTR 공사 주거지 프로젝트의 83%를 통제합니다. 2012년 선훙카이 경영진이 부패로 체포되었고, 2014년에는 라파엘 후이 전 정무사장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2011년 여론조사에서 홍콩 시민의 78%가 '부동산 패권'이 존재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복잡한 법적 행정적 문제 홍콩의 많은 아파트 건물, 특히 구룡반도와 홍콩섬의 오래된 건물들의 안전 규정 준수가 미흡한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법적 처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규정 준수가 지연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홍콩 건물조례(Buildings Ordinance)는 안전 규정을 준수하지 않거나 불법 건축물을 설치할 경우 벌금형이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정 명령이 내려졌을 때 건물주들은 이를 즉각 이행하지 않습니다. 이행 강제력이 약하거나, 소송으로 이어져 처리 기간이 매우 길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사정 규정 미준수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막대한 비용입니다. 수리 및 보강 비용: 낡은 건물을 현재 기준에 맞게 보수하거나 불법 개조된 부분을 철거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듭니다. 특히 건물의 안전 관련 주요 보수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까지 들 수 있습니다. 건물주의 경제적 부담: 홍콩의 많은 노후 건물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개인 소유주들이 여럿이 나눠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보수 비용 분담에 합의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분할 주택(쪼개기 임대): 저소득층에게 비싸게 임대하기 위해 벽을 허물거나 불법적으로 주택을 쪼개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물주는 불법 개조를 통해 벌금보다 더 많은 임대 수익을 얻으므로, 행정 조치를 따를 유인이 부족합니다.   느슨한 단속과 인력 부족 홍콩 정부는 노후 건물이 너무 많아 모든 건물을 동시에 관리 감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단속 인력 부족: 건물 안전 점검 및 불법 건축물 단속을 담당하는 공무원 수가 방대한 건물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행정 절차의 지연: 시정 명령 발부부터 실제 집행(강제 철거 등)까지 행정 절차가 매우 길고 복잡합니다. 이 과정에서 건물주들이 시간을 끌며 법망을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안전 조치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습니다. 건물주의 방치와 행정의 무력함은 차곡차곡 쌓여 예정된 참사로 이어집니다.   반복되는 비극 홍콩은 이미 비슷한 참사를 반복적으로 경험했습니다. 1996년 11월 20일 가리 빌딩 화재로 41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같은 조던 지역에 위치한 이 상업 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 수리를 위한 용접 작업 중 불꽃이 열린 승강기 통로를 타고 떨어져 아래층의 가연성 건축 자재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른바 '굴뚝 효과'로 화염이 대나무 비계와 승강기 통로를 통해 상층부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화재는 약 20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2011년 11월 30일에는 몽콕 화원거리 화재로 9명이 사망했는데, 새벽에 시작된 불이 노점상을 집어삼킨 뒤 인접 주거 건물로 번져 8시간 동안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2025년 11월 26일, 왕푹코트에서 홍콩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146명이 사망했습니다. 1948년 이후 최악의 화재입니다. 패턴이 보이십니까? 오래된 건물, 좁은 공간, 가난한 사람들, 이권과 책임 회피, 방치된 안전, 그리고 예고된 죽음. Chapter 2. 피해를 더욱 키운 홍콩의 도시 구조 홍콩의 화재 참사를 키운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료를 찾던 중 네이버 블로거 effeconstruction님의 글에서 도움이 되는 자료를 찾았고 허락을 받아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원문: 홍콩 건축의 구조적 위험 홍콩의 도시 구조는 왜 화재에 취약한가? 홍콩의 화재 취약성은 도시 자체의 구조적 특성에도 기인합니다. 도시계획·인구밀도·건축 유형이 결합해 “화재 취약의 삼중 구조”를 만듭니다. 초고밀도 도시(Hyper-density)가 가진 구조적 한계 홍콩의 도심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약 6만~10만 명/㎢)으로 이는 두 가지 큰 위험을 만듭니다. 1) 화재 시 ‘열·연기 갇힘 효과’가 심해짐 건물과 건물 사이 틈이 좁아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수직 상승합니다. 특히 ‘도시 캐니언(urban canyon)’에서 바람이 난류를 발생시켜 불길을 더욱 확산시킵니다. 또한 초고층 밀집으로 사다리차 접근도 제한적입니다. 2) 피난 흐름이 집중되어 ‘병목 현상’ 발생 모든 주민들이 저층 출입구·1~2개 계단을 함께 씁니다. 이 것은 화재 초기 몇 분 안에 벌어질 수 있는 패닉 속에서 피난경로가 붕괴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서울의 고밀도 중심지에서도 동일한 물리적 위험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혼합용도(Mixed-use) 건물의 구조적 위험 홍콩 도심의 고전적 건축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1층~2층: 상가·찻집·헬스장 / 3층~6층: 게스트하우스 / 상부층: 주거 이 구조는 화재 시 최악의 조합이 됩니다. 저층부 상가가 갖는 ‘고화재하중’ 1~2층에 밀집되어 있는 식당, 카페 등의 주방에는 기름과 가스, 전열기구 등 인화성 물질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또한 기름등은 냉난방기에 누적되고 청소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 “아래에서 위로” 확산될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복잡한 동선(動線)과 피난의 지연 이렇게 상가·주거·게스트하우스가 서로 섞이면 혼잡, 지연, 장애가 발생합니다. 1층에는 연결되지 않은 서로 다른 출입구들이 존재하고 잠금장치로 잠겨 있으며 그나마 있는 통로에는 물건들이 적치되어 있습니다. 건물의 저층부에는 게스트하우스들이 있고 외국인과 관광객이 많은데 피난 안내 표지판은 미흡합니다. 이로 인해 더욱 혼란과 지연이 가중됩니다. 화재 초기 3~5분이 골든타임인데 홍콩의 화재사건에서 그 소중한 시간을 대부분 놓쳐버렸고, 이로 인해 인명피해가 늘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주상복합건물에도 해당될 수 있는 위험요인입니다. Chapter 3. 한국 지옥고: 월 4만 원의 차이 이게 과연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홍콩보다는 낫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한국의 주거 빈곤은 '지옥고'라는 신조어로 집약됩니다. 지하(地下), 옥탑(屋塔), 고시원(考試院)의 첫 글자를 딴 이 용어는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거 형태를 총칭합니다.   TMI: 가구원수별 최소 주거면적 필수 시설: 면적 기준 외에도 주택은 다음과 같은 필수 설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방: 가구 구성원 수와 구성 형태에 따라 적절한 수의 방(침실, 거실/식당/부엌)이 있어야 합니다. 시설: 입식 부엌, 전용 수세식 화장실, 목욕 시설을 갖추어야 합니다. 구조 및 환경: 구조적 강도가 확보되고, 적절한 방음, 환기, 채광 및 난방 설비를 갖추어야 하며, 소음, 진동, 악취 등 환경 기준에 적합해야 합니다. 현재 이 기준은 2011년 이후 개정되지 않아, 변화된 인구 구조(특히 1인 가구 증가)와 주거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2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8%가 최저주거기준 미달 상태에 있으며, 19-34세 청년 가구는 8.2%가 최저주거기준 미달 환경에 거주합니다. 청년층이 두 배 이상 높습니다. 반지하: 침수 위험을 안고 사는 사람들 한국 전국의 반지하 주택은 2020년 327,000 가구에서 2024년 398,000 가구로 21.7% 증가했습니다. 서울이 전국 반지하의 약 61%를 차지합니다. 2022년 8월 8일, 거센 장맛비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3명이 침수로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시간당 최대 141.5mm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서 싱크홀이 형성되어 수도관이 파열되었고, 물이 순식간에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피해자는 40대 여성, 발달장애가 있는 48세 언니, 13세 딸이었습니다. 서울의 하수 처리 용량(시간당 75mm)을 거의 두 배나 초과한 강우량 앞에서 반지하 주택은 죽음의 덫이 되었습니다. 고시원: 창문 4만 원 고시원의 평균 방 크기는 7.2제곱미터이며, 전체의 53%가 7제곱미터 미만입니다. 창문이 없는 '먹방'(먹물처럼 어둡다는 의미)은 월 25-28만 원, 창문이 있는 방은 32-40만 원에 임대됩니다. 2022년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실직, 이혼, 빈곤 등에 의한 중장년층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고시원은 고시생이 아니라 도시 빈민의 주거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9일 새벽 5시경,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3층 301호실의 전열기에서 시작된 불은 탈출로를 막아버렸습니다. 건물은 1982년에 지어진 35년 이상 된 노후 건물로, 140.93제곱미터(42.6평)의 공간에 29개 방이 들어서 있어 개별 방 면적이 약 2.64제곱미터(0.8평)에 불과했습니다. 스프링클러는 2009년 이전에 개업한 고시원에는 설치 의무가 없었고, 건물주는 고시원 측의 설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사망자 대부분은 50-60대 중장년 남성으로,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기초생활수급자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망자는 창문이 없는 방에서 발생했습니다. 창문이 있는 '내창방'은 월 32만 원, 없는 '먹방'은 28만 원. 단돈 4만 원의 차이가 생사를 갈랐습니다.  최소한의 안전한 거주환경마저 저가항공사의 비행기 좌석처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압축 성장의 그늘 한국의 주거 빈곤은 압축 성장기 ...
덕왕의 지식한스푼
2025.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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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빈곤의 집

모래바람 위에 피어난 찐사랑

한국과 UAE의 백년가약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밸리에는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기다리셨던 분이 계셨을까요? 11월 12일에 사내게시판에 연재했던 <지식한스푼>이 1주년을 맞이하여 제가 할 수 있는 소규모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5분을 추첨하여 책을 보내드리는 행사였는데, 무려 139분이 지원하셔서 공정한 추첨을 거쳐 (무려 Gemini 3.0 pro로 프로그램을...) 5분을 선정하여 어제 책을 배송했습니다. (택배비가 20,000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ㅠ.ㅠ) 그래도 이렇게 나누는 것을 저는 참 즐거워해서 다음 기념일이 되면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벌써부터 듭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호흡을 아주 길게, 그리고 깊게 가져가 보려 합니다. 커피 한 잔, 아니 주전자째로 진하게 타 오십시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단순한 뉴스나 분석이 아닙니다. 2025년 11월,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에서 놀라운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대한민국과 아랍에미리트(UAE)가 맺은 '포괄적 전략 동맹'. 언론에서는 "협력 강화" 같은 점잖은 단어를 쓰지만, 이는 앞으로 100년 동안 서로를 먹여 살릴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구축되었음을 천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혼인 신고'이자, 장인이 사위에게 처갓집 곳간 열쇠를 통째로 맡긴 대사건입니다. 1971년, 영국군이 짐 싸 들고 떠나버린 휑한 사막. 건국 선언을 하기도 전에 이웃집 깡패에게 앞마당을 뺏기고 피눈물을 흘렸던 작고 약한 나라가 50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똑같이 힘없던, 하지만 떡잎은 남달랐던 동방의 작은 나라와 손을 잡고 '100년의 혈맹'이라는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기까지의 여정 뒤에는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토리가 숨어 있습니다. 일자무식 청년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대감집 따님의 가정교사가 되고, 무예까지 출중하여 그 가문을 지키는 경호원이 되고, 결국엔 '데릴사위'가 되어 대감마님으로부터 곳간 열쇠를 물려받게 된다는 스토리는 고전 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뻔한 클리셰지만 사실 현실은 엄청난 노력과 행운마저 함께 해야 실현될까 말까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135조 짜리 데릴사위가 되기까지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여정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부: 아부다비에 울려 퍼진 21발의 예포 1-1. 숫자로 보는 '최고의 예우' 2025년 11월 18일,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 '국가의 궁전'이라 불리는 웅장한 '카스르 알 와탄(Qasr Al Watan)' 앞마당은 긴장감과 설렘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얀 대리석과 22k 황금으로 장식된 거대한 돔 아래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대한민국 대통령을 맞이하는 국빈 방문의 현장에서는 사막의 건조한 공기를 가르는 21발의 예포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21발의 예포가 흔한 걸까요? 전혀 아닙니다. UAE는 의전에 매우 까다로운 나라입니다. 보통 외국 정상이 방문하면 장관급이 공항 영접을 나오거나, 의장대 사열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21발의 예포는 국가 원수급 중에서도 '최고의 예우'를 갖춰야 할 때만 쏘아 올리는 강대국급 의전입니다.  아무리 최고급 의전이라지만 이 장면은 정말....음...뭐랄까... 하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대통령의 직접 영접: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MBZ) 대통령이 공항 트랩 아래까지 직접 걸어 나와 우리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통상 왕세자급이 하던 관례를 깬 파격 중의 파격입니다. 하늘의 에어쇼: UAE 공군 F-16 Block 60 전투기 4대가 대통령 전용기 좌우를 호위하며 비행했고, 아부다비 상공에 태극 문양의 붉고 푸른 연막을 5km나 수놓았습니다.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문(2019년) 이후 두 번째로 제공되는 극진한 예우입니다. 낙타와 기마대: 궁전 입구에서는 50기의 낙타 기병대와 30기의 아라비아마 기마대가 도열해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이는 2019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문 때보다 규모가 30%나 더 큰 환대였습니다. 도시를 덮은 태극기: 아부다비의 랜드마크인 에티하드 타워, ADNOC 본사 건물 등 15개 주요 건물 외벽이 LED 조명으로 태극기를 띄웠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환영을 넘어 UAE가 전 세계에, 그리고 특히 주변국(이란, 사우디)에게 보내는 강력한 시그널입니다. "한국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다. 우리의 가족이다."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Mohamed bin Zayed Al Nahyan), 흔히 MBZ라고 부르는 UAE 대통령은 특유의 온화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우리 대통령을 맞이했고, 두 정상은 이날 매우 중요하고도 충격적인 문서 하나에 서명합니다. 이름하여, "다음 세기를 향한 공동의 여정(A New Leap toward a Shared Journey for the Next Century)".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외교적 수사(Lip service)를 걷어내고, 덕왕식으로 쉽게 풀이해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 우리 둘은 한 이불 덮고 자는 운명 공동체다. 이혼은 없다." 내용을 뜯어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지다 못해 턱이 빠질 지경입니다. 에너지: "한국이 기름 떨어져서 공장 멈추는 일 없게, 내 개인 금고(유전)를 한국에 열어주겠소. 금고를 한국(한국석유공사 기지)에 두고 급하면 사돈네가 먼저 써도 좋소. 일단 1,000만 배럴 정도면 되겠소? 부족하면 얼마든지 말씀하시구려." 미래 기술: "OpenAI 하고 마이크로소프트랑 1,000억 달러(약 135조 원) 짜리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라는 걸 하려고 하는데, 자네가 알다시피 난 돈만 있지, 기술 같은 건 잘 모르지 않소? 그러니 자네가 다 맡아서 지휘해 주시게. 반도체야 뭐 자네가 다 알아서 해줄 테고, 전기도 많이 필요하다고 하니 전력망도 다 알아서 깔아주시게나." 국방: "사돈네가 요즘 KF-21이라는 새로운 전투기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우리 참모총장도 타보고는 정말 좋다고 하더군. 듣자 하니 동네 양아치(인도네시아)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푼돈 몇 푼에 잔머리 굴리는 의리 없는 놈은 제끼고 그거 나랑 하세나. 얼마면 되겠는가? 아무 걱정 마시고 연구나 하게." 국가의 존망이 걸린 석유(에너지), AI(미래 먹거리), 국방(생존)이라는 3대 급소를 서로 완전히 공유하기로 한 겁니다. 이건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이 아닙니다. 서로의 운명을 묶어버린 '세기의 결혼식'입니다. 1-2. 왜 지금인가?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특별한 이유는 타이밍에 있습니다. 취임 후 첫 양자 국빈 방문지로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아닌 UAE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중동에서 대한민국의 베이스캠프는 UAE다"라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입니다. 특히 G20 정상회의 참석차 남아공으로 가는 길에 UAE를 들른 것은, 다자 외교 무대보다 실리적인 양자 경제 외교를 우선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방문 5일 전인 11월 13일에는 강훈식 비서실장이 특사로 미리 날아가 실무 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보통 국빈 방문은 외교부 실무진이 준비하는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직접 나선 것만 봐도 이번 방문이 단순한 악수나 하러 간 게 아닌, 철저히 경제적으로 계산된 '수주전(受注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왜? 돈 많고 친구 많은, 전 세계가 러브콜을 보내는 UAE는 왜 하필이면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에게 이렇게까지 진심인 걸까요? 미국도 있고 중국도 있는데 말이죠. 그 절박한 이유를 알기 위해선 그들의 가장 아팠던 기억, 1971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합니다. 2부: 1971년의 트라우마 - "힘없는 평화는 비참하다" 오늘날 두바이의 화려한 마천루, 부르즈 할리파, 경찰차가 람보르기니인 세상을 보면 상상이 안 가지만, 건국 초기 UAE는 그야말로 '돈만 있는, 힘없고 약한 빵셔틀 같은 아이'였습니다. 더구나 동네에는 이란이나 사우디 같은 무시무시한 형들이 득실거리는데, 믿었던 보디가드가 도망가버린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2-1. 믿었던 영국의 '먹튀' (1968~1971) 19세기부터 페르시아만 연안의 7개 부족 국가들(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등)은 영국의 보호령 아래 있었습니다. 영국은 이들을 '트루셜 스테이트(Trucial States)'라 부르며 치안을 담당해 주었습니다. 일종의 월세 받는 유료 경호원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1968년, 영국 노동당 정부가 청천벽력 같은 폭탄선언을 합니다. "우리 재정이 좀 힘들어. 파운드화 가치도 떨어지고... 돈 없어서 이제 그만 집에 갈래. 수에즈 운하 동쪽으로는 군대 다 뺄 테니 그리 알아?" 당시 아부다비의 통치자이자 UAE의 국부인 셰이크 자이드(Sheikh Zayed)는 기가 찼습니다. 당장 호랑이(이란)와 사자(사우디)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보호자가 사라진다니! 그는 다급하게 제안했습니다. "가지 마시오! 빼먹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빤스런이오? 군대 주둔 비용, 우리가 전액 다 대겠소!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제발 있어만 주시오!" 하지만 영국은 냉정했습니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책 문제요. 우린 갑니다. 굿럭."이라며 짐을 싸서 1971년 말 훌쩍 떠나버립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분쟁의 원인의 반은 역시 영국이라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킴과 동시에 UAE 지도부의 뇌리에는 씻을 수 없는 교훈을 남깁니다. "강대국이란 놈들은 지들 이익이 안 맞으면, 우리가 돈을 싸 짊어지고 가도 언제든 우리를 버릴 수 있다. 돈으로 평화를 살 순 없다. 진짜 힘, 진짜 친구가 필요하다." 2-2. 건국 이틀 전의 치욕: 1971년 11월 30일 비극은 영국군이 떠나자마자 현실이 되었습니다. UAE가 정식으로 건국(1971년 12월 2일)되기 딱 이틀 전인 11월 30일 새벽. 페르시아만의 패권국을 자처하던 이란(당시 팔레비 왕조)이 군함을 몰고 쳐들어옵니다. 목표는 호르무즈 해협의 목줄을 쥔 전략 요충지, 아부 무사(Abu Musa) 섬과 툰브(Tunbs) 섬들이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걸프 지역의 경찰'을 자처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었고, 영국이 떠난 힘의 공백을 노린 것이죠.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섬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유조선들의 목덜미를 잡을 수 있는 위치입니다. 이곳을 뺏기면 UAE는 앞마당을 내주는 꼴이 됩니다. 당시 그 섬을 지키던 건 고작 라스 알 카이마의 경찰 6명. 그들은 소총을 들고 이란의 구축함과 정규군 상륙부대에 맞서다 전원 사살당합니다. 이란은 섬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나려는 신생국 UAE는 자기 영토가 유린당하고 국민이 쫓겨나는 걸 눈앞에서 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력감'과 '공포'. 이것이 바로 UAE의 DNA에 새겨진 원초적 트라우마입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이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는, 절대로 다시는 이런 꼴을 당하지 않겠다.   우리에겐 진짜 힘, 그리고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진짜 친구가 필요하다." 이것이 UAE가 지난 50년간 그토록 강한 군사력과 믿을 수 있는 동맹에 집착해 온 이유입니다. 그들에게 안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으니까요. 3부: 한국을 향한 '러브콜'의 변천사 - 마당쇠에서 사위까지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일까요? 미국도 있고, 영국도 있고, 프랑스도 있고 심지어 UAE의 제1의 경제 파트너인 중국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몇십 년간의 관계의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그들의 '원픽'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50년간 한국은 UAE에게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신분 상승 성장 드라마' 같습니다. 3-1: 1970~90년대 "애는 착해" - 성실한 마당쇠 1970년대, 오일쇼크로 돈방석에 앉은 중동은 건설 붐이 일었습니다. 선진국 기업들은 "더워서 못 해", "돈 더 줘", "조건이 안 맞아"라며 콧대를 세웠죠. 더워. 땀 나. 피부 상해.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게 바로 한국 기업들이었습니다. 현대건설, 동아건설의 전설: 1977년 현대건설이 아부다비 첫 프로젝트를 수주했습니다. 당시 계약 규모는 2억 달러(현재 가치 약 10억 달러)였죠. 섭씨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횃불을 켜고 야간작업을 했습니다. "빨리빨리" 정신으로 공기를 단축하고, 품질은 완벽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인프라를 까는 그들의 모습은 현지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감동 포인트: 라마단 기간(이슬람의 금식 기간)에는 현지인들을 배려해 물도 몰래 숨어서 마셨다는 일화는 현지 왕족들 사이에서도 유명합니다. 일도 잘하는데 예의까지 바른 겁니다. 이때 UAE는 한국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얘네 진짜 성실하네? 시키면 군말 없이 완벽하게 해내는데 착하기까지 해?" UAE는 그렇게 돌쇠의 치명적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3-2: 2000년대 "착한데 공부까지 잘해!" - 바라카의 기적 세월이 흘러 2000년대, UAE는 '석유 이후(Post-Oil)'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름이 말라버리면 우린 뭐 먹고살지?" 그래서 선택한 게 첨단 기술과 원자력 발전이었습니다. 2009년, 200억 달러(약 25조 원) 규모의 바라카 원전 입찰 당시 세계는 원전 종주국인 프랑스(아레바)나 기술의 일본이 승리할 거라 점쳤습니다. 한국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라고 봤지요.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승자는 한국전력 컨소시엄이었습니다. 왜 한국이었을까?: 강력한 경쟁자였던 프랑스는 당시 핀란드 올킬루오토 원전 3호기 건설 현장에서 2005년 착공하여 4년 후인 2009년에 완공 예정이었던 공기를 계속 지연시켰고 당초 대비 예산 또한 초과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올킬루오토 원전 3호기는 2023년 4월에 가동을 시작했고 예산은 최초 대비 3배 이상 초과함) 반면 한국은 과거부터 꾸준한 실적을 통해 "우리는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예산으로 완벽하게 짓는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제시한 가격도 프랑스보다 14억 달러 이상 저렴했습니다. 바라카의 기적: 한국은 사막 한가운데에 APR1400이라는 3세대 한국형 원전을 무려 4기나 지었습니다. 모래폭풍과 폭염을 뚫고,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원자로를 설치했습니다. 납기 준수와 완벽한 운용: UAE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무서운 실행력을 다시 한번 목격했습니다. 프랑스가 약속을 어길 때, 한국은 약속된 공기 안에 원전 4기를 모두 완벽하게 지어 올렸습니다.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 위에. 2024년에는 바라카 원전 4호기까지 모두 상업 운전을 시작했고, 현재 이 원전들은 UAE 전체 전력 수요의 무려 25%를 담당하며 사막의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국의 지위는 수직 상승합니다. 이제 한국은 단순한 일꾼이 아니라, UAE에게 에너지 자립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해결해 주고 미래를 제시하는 '실력 있는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UAE에게 한국은 대략 이런 느낌 (애니: 사카모토 군) 3-3: 2010년대 "싸움까지 잘해!?" - 아크부대와 K-방산 하지만 UAE의 가슴속엔 여전히 1971년의 안보 트라우마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란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하고, 예멘의 후티 반군은 미사일을 쏘아댔습니다. 어느 달 밝은 밤, 정원을 거닐며 한숨을 쉬던 마님을 발견한 가정교사 한국이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물었습니다. 아부다비의 외로운 달은 마님의 마음 같아라  "마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지요?" "아… 한국이 자네인가… 동네 깡패들이 날마다 집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데 자네도 알다시피...
덕왕의 지식한스푼
202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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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위에 피어난 찐사랑

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DLC확장판)

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_DLC확장판 겸손과 호기심으로 써 내려온 인류의 우주 서사시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세 시간에 걸쳐 우리는 별을 함께 헤아렸습니다. 명왕성의 지구를 향한 외로운 짝사랑과 블랙홀의 실루엣을 직접 보았으며, 우주의 95%가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을 통해 겸손함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주를 향한 여정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끊임없는 질문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미지를 향해 나아가는 감동적인 서사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모든 경이로운 발견의 이면에는 단지 호기심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별을 향한 낭만과 꿈도 중요하지만,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입니다. 1960년대 아폴로 프로그램은 국가의 자존심과 냉전의 산물이었지만, 2020년대의 우주는 SpaceX, Blue Origin, Rocket Lab 같은 민간 기업들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주산업은 더 이상 NASA와 록히드 마틴 같은 전통적 강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2024년 글로벌 우주경제는 사상 최대인 6,130억 달러에 달했고, 2032년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발사 비용이 20년 만에 kg당 54,500달러에서 2,720달러로 95% 급락했고, SpaceX의 기업가치는 3,500억 달러(약 450조 원)에 도달했습니다. 우주는 이제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꿈'에서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SpaceX 정도만 들어봤으며 어떻게 돈을 버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우주 산업에 관련된 여러 기업들에 대해 살펴보며 실제로 돈을 버는 기업과 아직 미래에 베팅하는 기업을 명확히 구분하고, 검증된 재무 지표로 판단하는 실전 투자 가이드로써 지난 세 시간 동안의 "별 헤는 밤"을 지나 우주를 향한 낭만을 돈이 되는 투자 기회로 전환하는 방법에 대해 함께 탐구해 보겠습니다. ※  주의: 무지무지 깁니다. 마음을 굳게 먹으세요.   (이렇게 긴 무료 DLC라니! 혜자롭지 아니한가!) 별을 사는 사람들: 1조 달러 우주 경쟁 흔히 우주 탐사를 '사치스러운 투자'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NASA가 개발한 기술이 만들어낸 경제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과합니다.   스핀오프 기술이 지구를 바꾼다: 1달러의 우주 투자가 20달러의 경제 가치를 만든다 의료 이미징의 혁명 - MRI와 CAT 스캔 현대 의료에 가장 필수적인 MRI(자기공명영상) 기술은 우주 관측 기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천문학의 전파 간섭법(interferometry, 전파망원경 여러 대의 신호를 합쳐 분석하는 기법)이 의료 기술에 응용되면서 MRI, CAT(컴퓨터단층촬영), PET(양전자단층촬영) 스캔이 탄생했습니다. 현대 병원의 99% 이상이 디지털 유방촬영술을 사용하는데, 이는 1990년대 허블 우주망원경의 CCD 이미지 센서 기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NASA는 1994년 이 기술이 미국의 의료비를 연 10억 달러 절감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메모리 폼: 아폴로 우주인 보호에서 매트리스 시장 80억 달러로 1966년 NASA Ames 연구센터의 과학자들이 우주인의 충돌 보호를 위해 개발한 메모리 폼(memory foam)은 단일 품목만으로 현재 연 81-85억 달러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2032년까지 124-134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응용 분야는 매트리스, 베개, 의료용 침대, 인공 팔다리, 스포츠 장비 등으로 다양합니다. GPS: 군사 기술이 3조 달러 경제를 만들다 GPS(위성항법시스템)는 원래 우주 및 군사 목적으로만 개발되었지만 민간에 개방되면서 세상을 바꿨습니다. 2024년 글로벌 GPS 시장은 507억-1,107억 달러에 달하며,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정밀 농업, 물류 최적화, 응급 서비스 등 핵심 산업 전반에 응용됩니다. GPS 없이 현대 경제는 작동할 수 없으며 덕왕도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최근 NASA 스핀오프 기술들 (2024년) NASA는 연간 40개 이상의 상용화 기술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무선 관절경(arthroscope)은 우주복과 위성 배터리 기술에서 파생된 의료 카메라이며, 신약 개발 진단 기술은 코로나19, 간염, 암 진단 기술로 우주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3D 프린팅은 로켓 엔진과 대형 알루미늄 부품 제조 기술이 항공우주 산업에 적용되었으며, 50년 전 아폴로 프로그램의 연료전지 기술이 이제 재생에너지 기반 그리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주에 대한 투자는 몇 배로 남는 장사 1989년 Chapman Research Group 연구에서는 NASA 투자 1달러당 7~15배의 경제적 승수를 제시한 이래, 최근 자료들도 스핀오프 효과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2024년에 발표된 NASA FY2023 경제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약 250억 달러 예산으로 미국 전역에서 756억 달러 규모의 경제 효과 및 30만 4천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기술 이전 프로그램을 통해 1,500건이 넘는 신규 기술과 수천 건의 상업화 계약을 이뤄냈습니다.  2023년 Nature Astronomy에 실린 학술 연구는 장기적 효과를 분석해 승수 효과가 최대 21배에 달한다고 추정했습니다. 또한 2025년 Spinoff 보고서는 극한 환경 미생물로 만든 지속 가능한 단백질, 넷제로 항공 기술 등 최신 스핀오프 사례를 소개하며, 우주 투자가 과거보다 더욱 정교하고 광범위한 지구 경제 가치를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NASA의 투자가 단순 비용이 아닌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과 혁신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별을 향한 여정은 결국 지구로 돌아옵니다.  우주경제의 급성장: 숫자로 보는 구조적 전환 글로벌 우주경제 규모는 2024년 6,130억 달러에서 연평균 9% 성장하여 2032년 1조 달러를 돌파할 전망입니다. 이는 글로벌 GDP 성장률의 2배에 달하며, 상업 부문이 78%(약 4,780억 달러)를 차지하며 성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Arranged by Perflexity 발사비용 혁명이 모든 변화의 시작점입니다. 우주왕복선 시대 kg당 54,500달러이던 발사비용이 SpaceX의 Falcon 9 재사용 기술로 2,720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SpaceX의 내부 발사 비용은 발사당 1,500-2,800만 달러에 불과하며, 개발 중인 Starship은 kg당 무려 10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의 발사량은 259회에 달했고(평균 34시간마다 1회), 2025년 상반기에는 149회로 28시간마다 1회 발사가 진행 중입니다. SpaceX가 53%의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덕분에 우주 접근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LEO(저궤도: Low Earth Orbit) 위성들이 위성 서비스 시장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Starlink는 6,750개 이상 위성으로 125개국에 서비스하며 2024년 7.7-8.2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그 외 Amazon Kuiper 3,236개, OneWeb 648개로 지구 저궤도  (LEO: Low Earth Orbit) 위성 시장은 2025년 55.5억 달러에서 2032년 273억 달러로 연평균 25.5% 성장이 예상됩니다. 전 세계 30억 명 이상이 여전히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해 위성 브로드밴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 뒤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으며 정부 지출이 상업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글로벌 정부 우주 예산은 1,3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7% 증가했습니다. 미국이 NASA 250억 달러, Space Force 287억 달러, Golden Dome 미사일 방어 250억 달러 등 약 770억 달러를 투입하며 전체의 58%를 차지합니다. ESA는 76.8억 유로(79.3억 달러), 일본 JAXA는 정기 예산 1,558억 엔(12억 달러) 외에 10년간 1조 엔(67억 달러) 전략 펀드를 조성했습니다. 민간 투자가 회복세를 보이며 유니콘 기업이 47개로 증가했습니다. 2024년 우주산업 민간 투자는 260억 달러로 2023년 200억 달러 대비 30% 반등했습니다. 2015-2024년 누적 투자는 291-298억 달러에 달하며, 1,830개 이상 기업이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주요 딜로는 Blue Origin 5억 달러, Firefly 8억 6,800만 달러의 IPO, Virgin Galactic 4억 달러 등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기업들의 약진에 따라 S-Network Space Index를 추종하는 UFO ETF는 2024년 27.21%, 2025년에는 연초부터 11월 9일까지 67.67% 상승하며 최고 수준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주요 우주/방위산업 기업 재무 지표 종합 비교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이렇게 발전하는 우주산업에 관련된 기업을 덕왕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건 못 참지) 아래 표는 2024-2025년 데이터로 검증한 주요 기업들의 재무 데이터를 정리한 것입니다. 우주산업은 기존의 방위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과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절대 매출 규모에서 전통 방위업체의 압도적 우위가 보이지만, 성장률과 수익성에서는 주목할 만한 새로운 우주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수치는 계산 방식과 참조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우주기업별 매출 우주기업별 영업이익률 전통 방위산업체: 안정적 수익성의 요새 Raytheon Technologies (RTX): 미국 방위산업의 첨병 RTX 하면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를 떠올리시겠지만, 미국 주식시장의 티커(Ticker)로써의 RTX는 미국 방위산업의 첨병, 레이시온(Raytheon Technologies)을 뜻합니다. 2020년 레이시온과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가 합병하여 탄생한 RTX는 807억 달러 매출에 연 9% 성장을 기록하며 세계 2위 방위산업체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2024년 실적을 보면 영업이익률 7.67%, 순이익 47억 7천만 달러로 건전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ROE 18.2%로 자기자본 대비 안정적인 수익 창출 능력을 보여줍니다. (영업이익률이 7%대로 낮은데 ROE가 10% 후반 대라면 이 회사는 자기자본 이외에도 부채를 조달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RTX의 대표 제품들: 하늘과 우주를 지배하는 기술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 패트리어트 미사일 요격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대공 미사일 방어 시스템으로 한국, 일본,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에서 운용 중이며 한국군에게는 북한 미사일 방어의 핵심자산입니다.    SM-3/SM-6 요격 미사일 SM-3/SM-6 요격 미사일은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되어 대기권 밖에서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첨단 무기체계이며 한국의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에도 탑재되었습니다. Pratt & Whitney 항공기 엔진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조 업체로서 F-35 전투기용 F135 엔진을 독점 공급합니다. 전 세계 민항기의 30% 이상이 이곳에서 만든 엔진을 사용하며 한국 공군의 최신예 스텔스기 F-35A도 이 엔진을 탑재했습니다. Collins Aerospace 항공전자 보잉, 에어버스 등 거의 모든 민항기에 부품 공급하고 있습니다. 조종석 디스플레이, 통신장비, 비행제어시스템을 제공하며 우주정거장 ISS의 생명유지장치도 Collins Aerospace의 제품입니다. AIM-120 AMRAAM 공대공 미사일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공대공 미사일로써 한국 공군의 F-15K, KF-16도 운용 중입니다. 사거리는 180km에 이르며 발사 후 자동 추적 기능이 있는 현존 최고 기술을 가진 독보적 수준의 미사일입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19개국에 배치, 연간 매출 약 40억 달러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베스트셀러입니다. JASSM (Joint Air-to-Surface Standoff Missile) 장거리 순항 미사일로써 사거리는 370km 이상이며 스텔스 기능으로 적 레이더를 회피할 수 있습니다. 한국 공군도 도입 검토 중인 게임체인져입니다. 스팅어 휴대용 미사일 (Stinger) 보병이 어깨에 메고 쏘는 대공 미사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헬기와 드론 격추하며 그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전 세계 30개국 이상에서 운용 중입니다. 이렇듯 여러 다양한 파이프라인은 가지고 있는 RTX는 2025년 매출 가이던스를 835-85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으며, 국방 현대화와 글로벌 긴장 고조로 수주 잔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5년 11월 기준 시가총액 2,370억 달러로 P/S 2.9배, P/E 36배는 성장성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밸류에이션입니다. Lockheed Martin (LMT): 최고 수익성의 방위산업 리더 Lockheed Martin은 710억 달러 매출에 방산업체로서는 드물게 높은 9.87%의 영업이익률로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F-35 전투기, 미사일 방어 시스템(THAAD), 우주 시스템에서 1,657억 달러의 기록적 백로그(Backlog: 미처리 주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5년 이래로 지속적으로 성장 중인 매출은 2024년에는 5% 성장했고, 2025년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됩니다. 2024년 순이익은 53억 달러로 순이익률 7.5%입니다. 2025년에는 원가상승과 이자비용의 증가로 전년 대비 35% 이상의 순이익 감소가 예상되지만 B2G 중심의 제품 및 서비스 특성상 가격전가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에 순이익은 다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1,060억 달러로 P/S 1.46배, P/E 15.70배로 방위산업 섹터에서 저평가된 종목 중 하나입니다. 22년 연속 배당 증가로 주주 환원도 우수합니다.   L3 Harris Technologies (LHX): 확실하게 돈 버는 방위산업의 강자 L3 Harris라는 회사를 아시는지요? 처음 들어보셨다면 그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없다면 한국군의 통신망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L3 Harris Technologies는 전체 매출의 약 60%가 방위산업(디펜스) 분야에서 발생하는 미국 5대 방위산업체 중 하나입니다. 미사일, 항공, 해상, 지상, 정보전, 우주·위성 등 폭넓은 국방·안보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군용 무기·통신·정찰·센서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L3 Harris는 220억 달러 매출에 매년 10% 씩 성장하며, 조정 영업이익률은 15.4%로 업계 최상위권입니다. 업계최강자 중 하나인 이 회사는 우리나라 국방에도 매우 중요한 회사입니다. 2025년 최근 실적: 숫자가 말하는 건전성 L3 Harris Technologies는 매우 견고하게 "돈을 버는" 회사입니다. 2025년 Q3 실적을 보면, Q3 2025 매출: 57억 달러 (전년 대비 +10% 유기적 성장) Q3 2025 영업마진: 15.9% (지속적 개선 중) Q3 2025 순이익: 4억 6,200만 달러 2025년 연매출 가이던스: 220억 달러 (6% 유기적 성장 전망) 2025년 비 GAAP EPS: $10.50~$10.70 (전년 대비 +10%) 2025년 자유현금흐름: 26억 5천만 달러 *Book-to-bill 비율: 1.2배 (수주가 매출보다 20% 많다는 뜻, 미래 성장성 우수) TMI: *Book-to-bill비율 이 지표는 주로 반도체 장비 산업과 같이 주문 후 제품 인도까지 시간이 걸리는 산업에서 수요와 공급의 관계를 파악하고 향후 경기 동향을 예측하는 선행 지표로 활용됩니다. BB율 공식 = 신규 수주액 / 출하액 (또는 청구된 매출) BB율 해석 BB비율 > 1: 신규 주문이 출하량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강하고 시장이 성장 국면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BB비율 = 1: 주문량과 출하량이 일치하여 수요를 효율적으로 충족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BB비율 < 1: 출하량이 신규 주문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수요가 약화되었거나 재고가 쌓이고 있음을 나타내며, 시장이 침체 국면에 들어섰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배당 지급: L3 Harris 지속적으로 배당을 지급하며 현금유동성이 매우 긍정적인 매력적인 기업입니다. 정부 계약(한국, 미군, NASA 등)과 Aerojet Rocketdyne 인수로 사업 영역을 크게 확대했습니다. 결론: L3 Harris Technologies는 꾸준한 매출 성장, 안정적 이익률, 강력한 현금흐름, 업계 평균을 뛰어넘는 수주 전망을 유지하며 "확실하게 돈을 버는" 글로벌 방위·우주·통신 테크놀로지 그룹입니다. 방위산업 매출 비중 (2025년 기준) 방산 매출: 전체의 약 60% (약 120억~150억 달러) 나머지: 민간용 항공전자, 정부 우주임무, 상업 위성 등 주요 방위산업 사업부 A. 통신 시스템 (Communication Systems) 군 무전기/위성통신 분야에서 미군 지휘·작전 통신망의 prime contractor입니다. 대표 제품인 Falcon III 군용 무전기는 십만 대 이상 배치되어 미군·NATO 표준 장비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술 데이터링크(TDL) 분야에서는 Link-16 네트워크를 제공하여 전투기·이동 군부대 간 실시간 정보공유를 가능케 합니다. B. ISR (정보·감시·정찰, Intelligence, Surveillance & Reconnaissance) 전자·광학 센서를 통해 정밀 타격과 표적 확인을 지원하며, MQ-9 리퍼 드론 센서와 조기경보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미사일 경보 시스템은 다양한 방위 위성과 미사일에 탑재되어 운용됩니다. C. 전자전 (Electronic Warfare, EW) 재머/스푸프 장비로 적 드론·무인기의 전파를 방해하고 GPS를 교란합니다. 미군 전자전 차량 및 항공기에 광범위하게 탑재되어 있습니다. D. 항공전자 (Avionics) 항공기·헬기 계기판, HUD(Head-up Display), 조종실 통합시스템을 공급합니다. F-35, F-22, 블랙호크, 시호크 등 주요 기종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E. 군수 드론 및 무인기 (UAS) Stalker 무인기 등 전방 정찰용 Tactical Drone을 생산합니다. F. 무기 유도 및 센서 미사일/폭탄 유도장치, 야간 조준경, IR 카메라 등을 개발·생산합니다. 실전에서 입증된 대표 제품과 서비스 Falcon III 군용 무전기 미군, NATO, 한국 군,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사용 (2022~2025년 실전 사진 노출) 휴대용/차량용/항공기 탑재 등 다양한 형태로 운용 F-35/조기경보기·전투기 센서·항전장비 미국/한국/일본 등 F-35에 통합 전투기 HUD, 조종실/정보통제장치 제공 Link-16 데이터 네트워크 "육/해/공/우주 모두 연동" 하는 미군의 핏줄, 실전 사례 다수 한국 군, 폴란드, 동유럽 NATO 현장 배치 위성·미사일 경보 페이로드 미국 우주군, NASA, NOAA 등에서 위성 감시 임무 중동·우크라이나 미사일방어 시스템에 적용 NPOESS(차세대 극궤도 환경위성), GOES-R 기상위성 등 우주 전자전 수단/장비 우주전 대응용 '광통신 암호화·방해' 시스템 Link-16: 한국 방위의 보이지 않는 척추 L3 Harris의 핵심 제품 중 하나인 Link-16 데이터링크(Tactical Data Link, 전술데이터링크)는 삼군(육해공군)과 미군, NATO 동맹국 간 실시간 전장 정보를 공유하는 국제 표준 통신 시스템입니다. Link-16 데이터링크의 핵심 하드웨어와 원천 개발은 원래 BAE Systems와 Collins Aerospace 합작사인 DLS가 주도해 왔고, 이후 L3 Harris가 Viasat의 Link-16 사업 인수를 통해 시장에서 주요 공급사로 부상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Link-16 생태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L3 Harris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 상황입니다. 공군: KF-21 보라매(국산 전투기)는 초도비행부터 Link-16을 기본 스펙으로 탑재했습니다. KF-16, F-15K 등 기존 4.5세대 전투기들도 Link-16 표준을 사용하고 있으며, KF-21은 이를 통해 NATO/미군 연동 실시간 전장정보, 아군-적군 식별, 다수 표적 동시 공유 등 첨단 공중작전 네트워크를 완벽히 지원합니다. 해군: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KDX-III 구축함 등 모든 주요 미사일 구축함에 Link-16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함대 내 실시간 상황 공유, 비행기-헬기-드론과의 데이터 송수신, 미사일 요격 위치 정보 실시간 업데이트에 Link-16이 활용됩니다. 한국이 Link-16 시스템 도입과 운영에 지불하는 비용은 상당합니다. FA-50 성능개량은 2,000-3,000억 원, KF-16 성능개량, 이지스 구축함 등을 합치면 수천억 원 이상이 Link-16 관련 비용으로 지출됩니다. 비용 구조는 초도 구매 + 주기적 암호키/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5-7년마다) + 연간 유지보수로 이루어집니다. 한국군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육군의 경우 Link-16과 연동가능한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투자적 의미 L3 Harris의 강점은 명확합니다. 든든한 수주 잔고: Book-to-bill > 1로 미래 매출 확보 방산+우주+민수 균형: 경기·정치 리스크 극복 실전 검증: F-35, Link-16, Falcon 시리즈 등 세계적 실전 사례로 입증 요약하면, L3 Harris는 무기 그 자체(폭탄·미사일 외형)보다 "지휘, 감시, 무기 유도, 전술통신"의 첨단 전장 두뇌를 공급하는 회사이며, 실제 매출 기준 미국·동맹국의 핵심 국방기술·전장 통신을 책임지는 기업입니다. 우크라이나, 중동 등 실제 전쟁에서 그 위력이 실전으로 입증되었으며 앞으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68억 7천만 달러(매출의 32%)를 차지하며 핵심으로 자리 잡은 우주항공 시스템 부문을 주목해야 합니다. Aerojet Rocketdyne 인수로 추진 시스템 역량을 확보했고, 340억 달러의 기록적 백로그를 보유 중입니다. Northrop Grumman (NOC): 착실한 모범생 Northrop Grumman은 418억 달러 매출에 13.74% 영업이익률, 순이익 57억 5천만 달러로 높은 수익성을 보입니다. 2024년 Q3 영업이익률은 13.77%로 2년 이상 최고치이며, 마진 개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848억 달러 백로그와 1.17배 Book-to-Bill 비율(수주 대 매출 비율)은 수주 모멘텀을 입증합니다. 우주 시스템 부문은 29억 달러 매출에 12% 영업이익률로 Space Development Agency(SDA, 우주개발청) 위성 프로그램에서 ...
덕왕의 지식한스푼
202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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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DLC확장판)

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下)

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下) 겸손과 호기심으로 써 내려온 인류의 우주 서사시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두 번째 시간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짧게 썼습니다. 새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주말에 착실하게 독감 예방주사도 맞고 옷도 따뜻하게 입고 지냈습니다. 여러분도 올 겨울 따뜻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별 헤는 겨울밤의 마지막 시간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특히 지난 시간에 한 독자분께서 굳이 상중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3편으로도 못 끝내면 이어 써도 된다는 말씀에 마치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인류가 태양계를 넘어 성간 공간으로 탐사선을 보내며, 우주의 95%를 차지하는 암흑의 비밀에 도전하는 모습과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마무리하겠습니다. 21. 일본, 태양돛을 펼치다 (2010년) 2010년 5월 21일, 일본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공적인 태양돛(solar sail) 우주선 IKAROS를 발사했습니다. IKAROS는 "Interplanetary Kite-craft Accelerated by Radiation Of the Sun"의 약자로, 태양 복사의 힘으로 추진되는 행성 간 연 우주선이라는 뜻입니다. 일본 가고시마의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H-IIA-17 로켓에 실려 금성 기후 탐사선 아카츠키와 함께 우주로 향했습니다. 최초의 태양돛 IKAROS (Interplanetary Kite-craft Accelerated by Radiation Of the Sun) 태양돛(Solar Sail)이란? 태양은 끊임없이 빛을 방출하는데, 빛은 질량이 없지만 운동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바람이 돛단배를 밀어주듯이, 빛도 물체를 밀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극도로 약하여, 지구 궤도에서의 태양 복사압은 1제곱미터당 약 9 마이크로뉴턴, 즉 1원짜리 동전 무게의 100만 분의 1 정도입니다. 그래서 태양돛은 극도로 넓고 가벼워야 합니다. IKAROS의 돛은 14미터 × 14미터(대각선 20미터, 면적 196㎡)로 테니스 코트의 절반 크기인데, 두께는 불과 7.5 마이크로미터,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10에 불과했습니다. 무게는 약 16kg이었고, 탐사선 전체 질량은 약 310kg이었습니다. 돛에는 80개의 액정 디스플레이(LCD) 패널이 내장되어 있어 반사율을 동적으로 조절하며 연료 없이 자세 제어가 가능했습니다. 한쪽은 반사율을 높이고 다른 쪽은 낮추면, 받는 압력 차이로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마치 요트가 돛의 각도를 조절해서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지요. 성공의 기록 2010년 6월 9일 돛 전개에 성공한 후, 7월 9일 1.12 밀리뉴턴의 추력을 측정했습니다. 이것은 종이 한 장을 손에 올려놓은 정도의 힘이지만, 우주의 진공 상태에서는 계속 가속할 수 있음을 뜻하는 의미 있는 수치입니다. 첫 6개월 동안 초속 100m의 속도 변화를 달성했고, 2013년 8월까지 총 약 400m/s의 속도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2010년 12월 8일 금성으로부터 80,800km 거리에서 근접 비행을 수행했습니다. 임무는 15년간 지속되어 2025년 5월 15일 공식 종료되었으며, 당초 6개월의 목표 임무 기간을 무려 25배나 초과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왜 태양돛이 중요한가? 태양돛은 연료가 필요 없습니다. 화학 로켓은 무거운 연료를 싣고 가야 하고, 연료가 떨어지면 끝입니다. 하지만 태양돛은 태양이 빛나는 한 계속 가속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느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빨라집니다. 이론적으로 광속의 10%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래에는 거대한 태양돛으로 성간 여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뒤에서도 다룰 예정이지만  Breakthrough Starshot 프로젝트는 지상 레이저로 나노 탐사선을 광속의 20%까지 가속하여 알파 센타우리까지 20년 만에 도착하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IKAROS 이후 일본은 OKEANOS(40m × 40m 돛으로 목성 트로이 소행성 탐사)를 제안했으나 비용 문제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PIERIS(5m × 5m 피라미드형 돛)가 개발 중입니다. 미국도 LightSail 2(2019년)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태양돛은 인류가 태양계를 넘어 별들 사이를 항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그 첫걸음을 뗀 것입니다. 22. 명왕성, 나를 잊지 말아요 (2015년) 2006년 1월 19일, 뉴호라이즌스는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아틀라스 V 로켓으로 발사되었습니다. 목적지는 지금은 왜소 행성으로 강등된 작고 외로운 행성, 명왕성이었습니다. 9.5년의 여정, 30억 마일 이상의 비행 끝에, 2015년 7월 14일 11:49 UTC 명왕성 표면 상공 12,500km를 통과했습니다. 신호가 4.5 광시간 거리를 여행하여 지구에 도착하는 데 약 13시간이 걸렸습니다. 도착 예정일날 관계자들은 숨죽이며 기다렸습니다. 뉴호라이즌스는 무사할까? 제대로 찾아갔을까? 드디어 7월 15일 00:52 UTC, 확인 신호가 도착했습니다. NASA 관제센터는 환호로 들끓었습니다. 대기의 놀라움 놀랍게도 명왕성은 대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로 질소로 구성되며 메탄 0.25%, 일산화탄소 약 0.0515%를 포함합니다. 표면 압력은 약 11 마이크로바(지구의 10만 분의 1)로 거의 진공에 가깝지만, 그래도 대기가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20개 이상의 뚜렷한 안개 층이 350km 이상 높이까지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태양 자외선이 메탄을 분해하여 복잡한 유기 화합물(톨린)을 만들고, 이것이 안개가 됩니다. 뉴호라이즌스가 역광으로 찍은 사진에서 이 안개 층들이 환상적인 푸른 후광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명왕성이 빛나는 왕관을 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작고 얼어붙은 죽은 세계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명왕성은 짝사랑하던 지구의 작은 우주선을 반기기 위해, 마치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다는 듯 놀랍도록 복잡하고 지질학적으로 활동적인 세계를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카론과 작은 위성들 명왕성의 가장 큰 위성 카론은 직경 1,208km로 명왕성 직경(2,377km)의 약 절반에 달합니다. 두 천체는 6.4일 주기로 서로에게 같은 면만 보이도록 조석 고정되어 있으며, 공동 질량 중심이 명왕성 표면 960km 위의 빈 공간에 위치하는 사실상 이중 행성 시스템입니다. 카론은 적색 극관(명왕성에서 탈출한 메탄이 얼어붙어 자외선에 의해 붉게 변함)과 거대한 적도 구조 단층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층대는 과거 지하 얼음 바다가 얼면서 팽창하여 지각이 갈라진 흔적일 수 있습니다. 닉스, 히드라(2005년 허블 발견), 케르베로스, 스틱스(2011-2012년 발견)는 모두 불규칙한 소형 위성으로, 약 45억 년 전 명왕성과 다른 카이퍼 벨트 천체 충돌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행성에서 왜소 행성으로 명왕성의 비극은 뉴호라이즌스 호가 열심히 명왕성을 향해 날아가고 있던 2006년 8월 24일 프라하에서 일어났습니다. 국제천문연맹(IAU) 총회에서 행성의 정의를 정했는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1) 태양 공전, (2) 자체 중력으로 구형 달성, (3) 궤도 주변 청소성 명왕성은 첫 두 기준은 만족했지만 세 번째를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카이퍼 벨트에 명왕성과 비슷하거나 더 큰 천체들(에리스, 마케마케, 하우메아 등)이 많이 있었고, 명왕성은 자신의 궤도를 "청소"(다른 천체들을 흡수하거나 제거)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클라이드 톰보가 1930년 2월 18일 발견한 이래 76년간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었던 명왕성은 왜소 행성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이 결정은 세계 천문학자의 약 5%만이 투표(424명 중 237명 찬성)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뉴호라이즌스 수석연구원 앨런 스턴을 포함한 많은 행성과학자들이 반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특히 논란이 컸습니다. 명왕성은 미국인이 발견한 유일한 "행성"이었으니까요. 일부 주(뉴멕시코, 일리노이)는 명왕성을 여전히 행성으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명왕성의 비밀 그렇게 태양계의 구성원에서 탈락한 명왕성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갈 무렵 명왕성에 도착한 뉴호라이즌스 호가 보내온 첫 사진은 지구를 향한 명왕성의 경이로운 짝사랑이었습니다. 거대한 하트 모양은 사람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선사했고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가장 유명한 것은 하트 모양 지형 ‘톰보지역(Tombaugh Regio)’입니다. 명왕성 발견자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 LA다저스 투수인 커쇼의 외증조부)의 이름을 딴 이 폭 약 1,000km 지형은 2017년 IAU가 공식 승인했습니다. 서쪽 스푸트니크 평원(Sputnik Planitia)은 태양계 최대 빙하 분지로, 질소, 메탄, 일산화탄소 얼음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평원에 크레이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왜 놀라운 현상일까요? 스푸트니크 평원의 표면 나이는 1억 년 미만으로 추정되는데, 명왕성은 45억 살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지질학적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명왕성은 태양에서 너무 멀어서 행성의 지질활동의 원인 중 하나인 조석 가열(목성 위성들처럼 중력으로 내부가 가열되는 현상)을 받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은 명왕성 내부에 방사성 원소의 붕괴열이나 과거 충돌의 잔열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또는 질소 얼음의 대류가 표면을 계속 갱신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끓는 물에서 대류가 일어나는 것처럼, 질소 얼음도 천천히 순환할 수 있습니다. 명왕성에는 최대 3,500m 높이의 물 얼음 산맥도 있습니다. 명왕성에서 물 얼음은 암석처럼 단단합니다(-230°C 환경에서). 질소와 메탄 얼음은 너무 부드러워서 산을 만들 수 없지만, 물 얼음은 가능합니다. 뉴호라이즌스가 보여준 명왕성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경이로운 세계였습니다. 작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명왕성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작지만 태양계의 끝에서 언제나 당신을 바라보고 있어요." 카이퍼 벨트 너머: 아로코스 명왕성을 지나친 뉴호라이즌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9년 1월 1일 오전 12시 33분, 카이퍼 벨트 천체 아로코스(Arrokoth)를 표면 3,500km 거리에서 방문했습니다. 태양으로부터 43.28AU(64억 km) 떨어진 이 천체는 인류가 탐사한 가장 먼 천체입니다. 아로코스는 접촉 쌍성 구조로 두 개의 엽(접촉 쌍성이나 땅콩 모양 천체에서 각각의 덩어리를 지칭함)이 연결된 형태입니다. 큰 엽 "웨누"는 22 × 20 × 7km, 작은 엽 "위요"는 14 × 14 × 10km로 전체 길이는 약 35km입니다. 마치 눈사람이나 땅콩처럼 생겼습니다. 아로코스는 약 45-46억 년 전 형성되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원시 천체입니다. 두 엽은 "걷는 속도"(시속 1-2마일)로 충돌했으며, 연결부에 충돌 흔적이 없어 부드러운 형성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관측은 행성이 폭력적인 충돌보다 부드러운 중력 붕괴로 형성되었다는 "구름 붕괴" 모델을 지지하며, 수십 년간의 행성 형성 논쟁을 해결했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는 현재도 계속 카이퍼 벨트를 탐사하며 태양계 외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전력이 유지되는 한, 2030년대까지 데이터를 보낼 것입니다. 유로파 클리퍼와 JUICE: 다음 목표 명왕성이 태양계 외곽의 비밀을 보여주었다면, 이제 인류는 목성의 얼음 위성들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유로파 클리퍼는 2024년 10월 14일 발사되어 2030년 목성 궤도에 진입할 예정입니다. 유로파를 49회 근접 비행하며 지하 바다, 얼음 두께, 플룸(물) 분출을 조사할 것입니다. JUICE(Jupiter Icy Moons Explorer)는 2023년 4월 14일 발사되어 2031년 목성에 도착합니다. 가니메데, 칼리스토, 유로파를 연구하며, 특히 가니메데 궤도에 진입하는 최초의 탐사선이 될 것입니다. 명왕성에서 유로파까지, 인류는 태양계 곳곳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세계들이 우리에게 큰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3. 우주에서 온 금 (2017년) 2017년 8월 17일, 인류는 우주의 가장 폭력적인 사건 중 하나를 목격했습니다. LIGO와 Virgo 중력파 검출기가 두 중성자별의 충돌로 발생한 중력파 GW170817을 관측한 것입니다. 1억 3천만 광년 떨어진 NGC 4993 은하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에 예측했지만 직접 검출된 것은 2015년이 처음이었고, 중성자별 충돌로 인한 것은 이번이 최초였습니다. 중력파 검출 후 전 세계 70개 천문대가 일제히 망원경을 그 방향으로 돌렸습니다. 이것이 '다중메신저 천문학(multi-messenger astronomy)'입니다. 중력파로 위치를 파악하고, 가시광선, X선, 감마선, 전파 등 모든 파장으로 동시에 관측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킬로노바: 우주의 연금술 충돌 후 '킬로노바(kilonova)' 잔광이 관측되었습니다. 킬로노바는 초신성보다는 약하지만 일반 신성보다 1,000배 밝은 폭발입니다. 방사성 물질의 붕괴로 빛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중원소가 생성됩니다. 덴마크 닐스 보어 연구소의 다라크 왓슨 팀이 스펙트럼에서 스트론튬 흡수선을 식별하여 r-과정(rapid neutron capture process, 급속 중성자 포획 과정)을 직접 증명하였습니다. TMI: r-과정 원자핵이 중성자를 연속적으로 빠르게 흡수하여 무거운 원소로 변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환경에서만 일어납니다. 온도는 수십억 도, 밀도는 물의 수백조 배, 중성자가 너무 많아서 원자핵이 중성자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환경입니다. 모델링 결과 이 한 번의 충돌로 지구 질량의 수 배에 달하는 금과 백금이 생성되었습니다. 철(Fe) 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별 내부의 핵융합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를 만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별은 철까지만 만들 수 있습니다. 초신성 폭발이나 중성자별 충돌 같은 극한 상황에서만 r-과정을 통해 금, 백금, 우라늄 같은 원소들이 생성됩니다. GW170817 하나로 우리 은하의 금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의 다니엘 카센 교수는 "수십 년 동안의 이론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금반지는 우주의 선물 즉 지구의 금은 46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때 이미 포함되어 있던 우주의 유산입니다. 당신이 착용한 금반지는 수십억 년 전 우주 어딘가에서 두 중성자별이 충돌하며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혼반지를 보며 이 금이 별들의 사생결단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부부싸움을 덜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칼 ...
덕왕의 지식한스푼
202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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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