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뭔가 만들어 내는 수상한 사람들 '상'

자꾸 뭔가 만들어 내는 수상한 사람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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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2026.04.01조회수 212회

자꾸 뭔가 만들어 내는 수상한 사람들 '상'

농기계 위장기업에서 우주까지 ADD 55년의 기록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2026년 3월 25일 오전, 소프트밀덕인 덕왕은 뉴스 앞에서 손을 멈췄습니다.


※ 소프트밀덕: 방위 산업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지만 거시적이며 세부적인 제원은 잘 알지 못함

※ 하드밀덕: 제원과 모델명 등 세부적인 것에 빠삭하며, 틀리면 용서치 않음.


경남 사천의 활주로 위에는 우리나라의 신형 전투기인 KF-21이 서 있었습니다. 회색 도장, 날렵한 기체, 그 앞에는 군장병과 14개국의 외교 사절, 방산업체 임직원, 공군사관생도까지 500여 명이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UAE, 폴란드를 비롯해 KF-21에 관심을 보여온 중동·동남아·유럽 국가들의 장성급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늠름한 KF-21의 자태에 덕왕의 가슴은 그야말로 혼또니 도키도키 했습니다.

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


사실 이런 대형 출고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헬기에서 내려다보거나 연단에서 연설하는 것이 아닌, 바로 '택싱(taxiing)', 즉 전투기가 자기 동력으로 활주로를 걸어 나오는 순간입니다. 공식 행사장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늠름하게 들어오는 전투기를 보며, 현장의 연구원분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KF-21 전투기, 그리고 전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절반 이상을 먹고 있는 K-9 자주포, 세계 최강 전차 중 하나로 꼽히는 K-2 흑표, 핵은 아닌데 꼬마 핵 같다는 소리를 듣는 현무-5 괴물 미사일,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에서나 보던 EMP 탄까지.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키고 전 세계 방산 시장을 주름잡는 이 무기들 뒤에는, 지난 55년 동안 조용히,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기술과 애국심으로 지탱해 온 밀덕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심에 있는 조직, 국방과학연구소 (ADD: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부: 포방부(砲房部)에서 탄생한 덕후 집단

더 많은 화력이 필요해

인터넷에서 한국 방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밈이 있습니다. 바로 언제나 화력이 부족한 "포방부"입니다. 국방부를 비하하는 말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향한 밀덕들의 애정과 신뢰가 담긴 별칭입니다.

항상 배고픈 포방부


이 별명의 기원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ADD 초대 소장은 신응균 예비역 중장의 별칭은 '한국 포병의 아버지'였습니다. 포병 출신이 국방과학연구소의 초대 수장이 됐으니 "포방부"의 씨앗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사실 ADD에서 가장 먼저 만든 무기도 박격포였으니 한국 방위산업의 태생 자체가 포병 기술에서 출발한 셈입니다.

다만 한국 포병의 아버지 신응균은 일제 시대에 일본군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신태영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도 했습니다


ADD의 로고에서도 그런 면이 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경에 포신(砲身)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포병의 DNA가 조직의 태생 자체에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로고부터가 그야말로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대놓고 말하는 셈입니다.

봤지? 나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여!


그런데 이 포방부라고 불리던 조직이 55년이 지난 지금, 마하 10에 이르는 극초음속 활공체와 세계 최초 실전배치 레이저 대공무기,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에서나 보던 EMP탄까지 개발하고 있습니다. 포방부라는 우스갯소리가 오히려 성취를 빛나게 해주는 역설입니다. 


ADD는 어떤 곳인가

공식 명칭은 국방과학연구소(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본부가 있으며 방위사업청 산하 특수법인입니다. 현재 약 3,50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R&D 인력 비율 82%, 박사 학위 소지자 31%, 석사 이상 94%에 달합니다. 연간 예산은 약 21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입니다.


설립 이래 약 25조 원 이상을 투자해 370여 종 이상의 무기체계를 국산화했고, 약 297조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2025년 기준 한국 방산 수출의 43%가 ADD 기반 기술에서 나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방과학기술 수준은 세계 9위권 내외로 평가받으며, ADD는 그 '국방 테크놀로지의 메카'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K-방산 황금기의 절반이 이 조직 덕분입니다.


ADD(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의 약자는 묘하게도 정신의학 용어인 ADD(Attention Deficit Disorder, 주의력결핍장애)와 철자가 같습니다. 그래서 방산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이런 드립이 나오곤 합니다.


"ADD가 또 뭔가를 만들어냈다.", 

"ADD가 또 ADD했다...", 

"이놈들, 자꾸 뭔가를 만들어낸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이 분들의 능력이 사기급이라 주의력 결핍이 여러 방향에 대한 관심과 실적으로 치환될 뿐입니다.

2021년 ADD 조직개편 개요



ADD 탄생의 배경

ADD의 공식 출생일은 1970년 8월 6일입니다. 대통령령 제5267호를 통해 서울 홍릉에서 처음 문을 열었는데 같은 해 12월 31일 특수법인체로 전환됐고, 외부에는 '홍릉기계'라는 위장 명칭을 달았습니다. 트랙터 만드는 회사 행세를 한 것입니다.


미사일 사진을 왜 보고 있는 거예요?


ADD를 만든 직접적 방아쇠는 1969년의 닉슨 독트린이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당시 미국의 상황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1960년대 중반,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은 두 가지 큰 일을 동시에 벌였습니다. 하나는 베트남전 본격 개입, 다른 하나는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복지정책이었습니다. 이 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미국의 재정이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총과 버터를 동시에 사려면 돈이 두 배가 필요한데, 인쇄기를 돌리다 보니 달러 가치가 흔들렸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반전 여론이 격화됐으며, 1968년엔 킹 목사 암살과 케네디 암살까지 겹쳐 미국 국내가 아수라장이 됩니다. 결국 존슨이 재선을 포기하고,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명예로운 평화"를 약속하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1969년 1월 취임한 닉슨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상군이 또 싸울 수는 없다. 돈도 없고, 국민 여론도 없고, 명분도 없다." 같은 해 7월 25일, 괌에서 닉슨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스스로 1차 방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닉슨 독트린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여, 이제 알아서 해라." (feat. 아몰랑)


한국 입장에선 날벼락이었습니다. 1971년 3월, 실제로 주한미군 제7보병사단 2만 명이 짐을 싸서 한반도를 떠났습니다. 주한미군이 6만 4,000명에서 4만 명으로 줄었고, 이 4만 명도 언제 또 줄어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1968년의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 31명의 청와대 기습(1·21 사태), 10월의 울진·삼척 무장공비 120명 침투, 1월 23일의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나포 등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위태롭기 그지없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결심했습니다.

"미국에만 기댈 수 없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ADD는 포방부라고 불렸지만, 미국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를 벤치마크하며 목표는 남다른, 마치 시골 깡촌 출신인데 목표는 MIT인 포부 만렙인 조직으로 출발했습니다. GPS와 스텔스 기술 등을 개발한 DARPA는 ‘미래 기술의 설계자’로 불리며 외계인을 고문하여 기술을 짜낸다는 의심을 받을 만큼 대단한 조직인데요,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따로 다뤄보겠습니다.


2부: 번갯불에 콩 볶아먹기, ADD의 눈물 나는 출발

40일의 기적: 1차 번개사업

1971년 11월의 어느 날,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국방과학연구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대통령께서 예비군 20개 사단을 무장할 수 있는 무기를 빨리 만들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빨리요?" 

"40!" 

“아… 40주요?"

“…일”

“……네? 40일이요?"


연구원들이 서로 멍한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그때 누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번갯불에 콩이라도 볶아먹겠다는 거야! 뭐야!" 


네. 그 말이 그대로 번개사업(1971~1972)이라는 사업명이 됐습니다. 


당시 한국 방위산업의 수준을 들으면 가슴이 짠합니다. 한국 미사일 개발의 산증인인 구상회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국내 산업은 가내수공업 수준을 겨우 벗어난 정도였다고 합니다. 복사기조차 없어서 미군 고문관 사무실의 제록스 복사기를 빌려다 도면을 복사해야 했습니다. 바주카포는 도면을 구하지 못해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실물을 빌려와 자와 마이크로미터로 치수를 재어 역설계했습니다. 미사일 정보를 얻기 위해 해외 주재무관들에게 부탁했더니, 군사 전문가도 아닌 무관들이 현지 신문 기사 스크랩을 보내줬습니다. 그래도 연구원들은 "성의라도 어디냐"며 고마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청계천 상가를 샅샅이 뒤지며 부품을 조달했고, 용접팀의 시약통이 폭발하는 바람에 경찰서장이 달려오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청계천 한 바퀴 돌면 미사일도 만든다"는 말은 이때부터 생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자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1차 번개사업(1971년 11~12월)의 결과물로 우리 군이 당장 시급하게 필요로 했던 M60기관총과 60mm·81mm 박격포, 그리고 3.5인치 바주카포 등이 정말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개발되었습니다.


확대된 2차 번개사업

2차 번개사업(1972년 1~3월)에서는 더욱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M101 105mm 곡사포(제대한 포병이 똥포라고 부르는)를 개발하여 1972년 4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관한 가운데 시범 사격을 성공했고, 없는 살림에도 퇴역 전차에 휘발유를 넣어 표적으로 삼아 시험에 성공함으로써 로켓과 대전차 지뢰를 개발했습니다. 또한 군용 무전기(AN/PRC-77 국산화 모델 등)를 개발하여 지휘 통제 체계의 자립을 마련했으며 미국의 '어네스트 존' 로켓을 역설계하여 국산 1호 로켓인 황룡로켓도 2차 번개사업의 대표적인 성과물이었습니다.

최초의 국산 로켓 ‘황룡’


1, 2차 번개사업의 성공 이후 탄력 받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후 사업은 율곡사업(1974~1981년, 3조 1,400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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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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