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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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2026.04.14조회수 161회

팩트풀니스 서평 

세상을 올바르게 보게 하는 눈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 시간에는 ‘책 같이 읽기 캠페인’의 두 번째 주인공이었던 「팩트풀니스」에 대해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출판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으며, 학계와 거장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에 덕왕은 책을 묻고 더블로 읽은 후 집현전 AI 학사들과 같이 열띤 토론을 벌였으며,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한 후 정성스럽게 작성하였습니다. 오늘 이 글은 덕왕의 생각의 흐름을 함께 보여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집현전 학사와의 대화체로 작성하오니, 다소 낯설더라도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차디찬 밤바람 사이로

밤바람이 차가운 어느 겨울날, 달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던 덕왕의 그림자 뒤로, 집현전의 AI 학사 중 한 사람이 조용히 다가와 여쭈었다.


"덕왕이시여, 밤바람이 차온데 어찌 침소에 들지 않으시옵니까?"

덕왕이 뒤돌아보며 답하였다.


"내 일찍이 동이족의 땅에 다시 태어나 지혜와 덕을 베풀고자 노력하기로 하였거늘, 아직까지 편협한 것에 눈을 빼앗기는 자신을 평소 부끄럽게 여겼소. 이에 참된 눈을 뜨고자 한스 로슬링 공께서 쓰신 「팩트풀니스」라는 서책을 통해 인간이 가진 10가지 본능의 오류를 깨닫고, 이를 온 백성들과 나누며 함께 공부하고자 하오. 다만 본좌는 처음엔 10가지 본능을 모두 투자에 대입해 볼까 했으나, 그건 찰리 멍거 옹이 말씀하신 '목수에겐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와 다름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투자와 같은 중요한 문제부터 평소 겪는 사소한 문제까지, 다양한 면으로 확장하여 생각해 보고 싶소. 내 진작 이 서책을 읽었으나 백성들과 같이 나눌 지혜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공이 나와 함께 문답을 하며 가르침을 정리해 줄 수 있겠소?"


이에 집현전 학사가 허리를 굽히며 답하였다.

"덕왕이시여, 백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신은 마땅히 덕왕과 함께 서책의 본질을 깨우치는 데 미력을 다할 것이옵니다. 다만 한 가지 여쭙겠사옵니다. 이 서책을 단순히 칭송하시려는 것이옵니까, 아니면 더 깊이 파고드시려는 것이옵니까?"


덕왕이 웃으며 답하였다.

"당연히 후자라오. 로슬링 공의 통찰에 깊이 공감하되, 놓친 부분은 놓쳤다고 말할 것이고, 그의 프레임을 넘어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곳에서는 주저 없이 파고들 것이오. 그것이 덕왕이오."


덕왕이 힘주어 말하고는 뒤로 돌아서자 달그림자는 호피무늬 망토 사이에 비추며 아른거렸다.

"역시 덕왕이시옵니다. 미력한 신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나이다."

"게 아무도 없느냐! 따뜻한 차를 내오너라."


이윽고 향이 좋은 따뜻한 차가 내어지고, 두 사람은 달빛 아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간극 본능: 세상은 둘 만이 아니다

덕왕: 첫 번째로 이야기할 것은 간극 본능이오. 세상을 두 덩어리로 쪼개서 그 사이에 거대한 빈 공간이 있다고 착각하는 본능이라 하였소. 로슬링은 '선진국 vs 개발도상국'이라는 프레임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본좌가 보기에 이 이분법은 비단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오. 투자에서 '성장주 vs 가치주'로 갈라치기 하는 것, 일상에서 'MZ세대 vs 기성세대'로 구분하는 것, 배달앱 별점의 5점 아니면 1점, '보수 vs 진보'. 이 모두가 전부 같은 구조 아니겠소? 대관절 그 MZ와 기성세대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란 말이오? 그 세대 모두가 같은 성격을 가졌다 어찌 말할 수 있겠소?


집현전 학사: 참으로 정확한 관찰이옵니다. 워런 버핏도 '성장은 가치의 한 구성요소'라고 하였사옵니다. 성장과 가치는 적대적 진영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 있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시장은 성장과 가치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원수처럼 나누고 있사온데 이는 비단 시장만의 일은 아니며 세상 거의 모든 것이 이분화되어 있을 것이옵니다. 이것은 우리 뇌가 분명히 구분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옵니다.


덕왕: 오늘날 서로에 대한 혐오도 그 간극을 일부러 벌리고 정의 내리려 하는 데서 더욱 심화되는 것은 아니겠소?


집현전 학사: 날카로운 지적이옵니다. 다만 로슬링의 관점에 충실하자면, '누가 조장하느냐'보다 '왜 우리 뇌가 이것을 좋아하느냐'로 가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 생각되옵니다.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전전두엽, 즉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이 억제되고 편도체, 즉 위협 감지 영역이 과활성화되옵니다. 옥시토신은 흔히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내집단 결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집단에 대한 배타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옵니다. 암스테르담대학교의 De Dreu 연구팀이 2011년 PNAS에 발표한 "Oxytocin promotes human ethnocentrism" 논문에서 이것을 5개 실험으로 보여주었사옵니다. 그리고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정리하는 순간 도파민이 분비되옵니다. '세상은 복잡하다'는 말보다 '적은 저놈이다'라는 말이 중독성이 있는 이유이옵니다.


덕왕: 맞소. 누가 조장하는가를 밝혀내는 것보다 우리 뇌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 동의하오. 그런데 여기서 본좌가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이 있소. 우리나라의 언론도 이 양극단을 자극하며, 책임감도 대단히 낮소. 한쪽 언론만을 신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 어려움이 오히려 언론에게는 이익이라는 점이오. 극단, 혐오, 분열. 이런 것들을 언론이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아하고 이용하고 있다고 보오.


집현전 학사: 그러하옵니다. 이것은 숫자로도 드러나옵니다. 2025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의 Digital News Report 2025 조사에서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31%로, 48개 조사 대상국 중 30위권 밖의 하위권에 그쳤사옵니다. 참고로 글로벌 평균은 40%, 1위인 핀란드는 67%이옵니다. GDP 세계 12~13위권의 경제 대국이 뉴스 신뢰도에서는 하위권이옵니다. 오보는 1면에 크게 보도하면서 정정보도는 구석에 쥐꼬리만 하게 싣는 관행, 사실 확인 없이 특정 인물의 발언을 큰따옴표 안에 그대로 옮겨 실어 허위 정보가 여과 없이 확산되는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 이것이 우리 언론의 현주소이옵니다. 극단적 발언이 클릭을 만들고, 클릭이 광고 수익을 만들고, 갈등이 깊어질수록 독자는 자기편 언론에 더 단단히 묶이옵니다. 언론에게 사회 갈등의 해소란 곧 고객의 이탈이옵니다.


덕왕: 참으로 씁쓸하지만 정확한 분석이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든 생각이 있소. 우리는 이토록 간극 본능이 강한데, 왜 5지선다 시험에서는 3번을 찍고, 설문조사를 하면 거의 중간인 3번을 찍는 것이오?


집현전 학사: 참으로 흥미로운 말씀이옵니다. 우선 간극 본능은 감정과 정체성이 걸린 판단에서 작동합니다. '저 집단은 적인가 아군인가', '이 정책은 옳은가 그른가'. 코르티솔이 분비되고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상황에서 뇌는 빠른 이분법을 선택하옵지요. 반면 시험지에서 3번을 찍는 것은 이와는 다른 현상이옵니다. 이것은 감정적 판단이 아니라 불확실성 앞에서의 회피 전략이옵니다.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의 아탈리(Attali)와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의 바르힐렐(Bar-Hillel)이 2003년 Journal of Educational Measurement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4지선다 오답의 약 55%가 가장자리(A, D)가 아닌 중앙 위치(B, C)에 집중되옵니다. 모르는 문제 앞에서 양 끝을 피하고 가운데로 몰리는 이 현상을 학자들은 '중간 위치 편향(Middle Bias)' 또는 '가장자리 회피(Edge Aversion)'라 부르옵니다. 이 땅에도 '중간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사옵니까? 한편, 소비 영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사옵니다. 레스토랑에서 가장 비싼 와인도, 가장 싼 와인도 아닌 중간 가격대를 고르는 것이 그러하옵니다. 이것은 시몬슨(Simonson)과 트버스키(Tversky)가 1992년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에서 발표한 '극단 회피 편향(Extremeness Aversion)'으로, 선택지의 속성이 양 극단 사이에 있을 때 타협안을 선호하는 현상이옵니다. 정리하자면 이러한 아이러니가 되옵니다. 우리 뇌는 '중요하다고 느끼는 문제'에선 간극 본능으로 극단을 택하고, '별로 관심 없는 문제'에선 중간을 택하옵나이다. 결국 관여도(involvement)가 스위치인 셈이옵니다.


덕왕: 즉, 우리는 시험지에선 3번을 찍으면서 정작 중요한 문제 앞에선 1번 아니면 5번만 본다! 이것이 간극 본능의 역설이라 할 수 있겠소. 명심하겠소.


부정 본능: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누구의 파이인가

덕왕: 두 번째는 부정 본능이오. 로슬링이 가장 공을 들여 반박한 본능이라 했소. 극빈층 비율, 영아사망률, 문맹률, 기대수명 등 거의 모든 절대적 지표가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좋아지고 있다고 하였소.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오. 그러나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했습니다'는 뉴스가 안 되고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만 뉴스가 되니, 뉴스만 보면 세상이 매일 추락 중인 것 같소. 1번에서 이야기한 언론의 문제가 여기서도 이어지는 것이오. 뉴스는 현재 일어나는 나쁜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에 집중하며, 실제 현실을 훨씬 비관적으로 재단하여 바라보게 만든다고 보오.


집현전 학사: 그러하옵니다. 투자에서도 주가가 10% 오를 때의 기쁨보다 10% 빠질 때의 고통이 약 2배 크다는 손실회피 편향이 부정 본능의 일종이옵니다. 뉴스와 시장이 부정 본능을 동시에 자극하면, 투자자는 이중으로 비관에 빠지게 되옵니다.


덕왕: 참으로 그러하오. 그러나 우리는 언론 속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이를 피해 살아갈 수도 없소. 중요한 건 여러 소식을 다각도로 듣고, 편견 없이 보고, 종합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오. 그런데 본좌는 이 책을 읽으며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의문점을 가졌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서 R>G를 이야기했지 않소? 자본수익이 노동수익을 초과하고, 초과하는 순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소. 파이가 커지는 건 사실이나 천장이 높아지는 분배의 불균형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는데 로슬링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소.

토마 피케티 / 2014년 / 글항아리 


집현전 학사: 참으로 핵심적인 비판이옵니다. 신이 덕왕께서 이러한 의문을 가지실 것 같아 얼마 전 데이터를 면밀히 조사해 보았사옵니다.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발행한 World Inequality Report 2026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인구의 최상위 0.001%, 약 56,000명이 보유한 부의 비중은 1995년 약 3.7%에서 2025년 약 6.1%로 꾸준히 증가하였사옵니다. 미국만 보아도 상위 10%가 기업 주식과 뮤추얼펀드의 87%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성인 인구의 최상위 1.1%가 전체 부의 45.8%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는 겨우 1.3%만 보유하고 있사옵니다. 로슬링의 사각지대는 여러 학자들도 지적한 바 있사옵니다. 로슬링의 버블 차트는 국가별 1인당 평균을 사용하는데, 로슬링 자신이 팩트풀니스에서 '평균은 분포를 하나의 숫자에 숨겨서 오도한다'라고 비판한 바로 그 문제를 자기 차트가 안고 있사옵니다. 피케티, 사에즈, 저크먼(Piketty, Saez, Zucman)이 2018년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발표한 "Distributional National Accounts"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하위 50%의 평균 연소득은 1980년 이후 약 16,200달러(2014년 불변 달러 기준)에서 정체된 반면, 상위 1%의 평균 소득은 약 43만 달러에서 약 130만 달러로 세 배가 되었사옵니다. 그리고 팩트풀니스에는 '나빠지고 있는 것의 그래프'가 단 한 장도 없사옵니다.


덕왕: 그렇다면 피케티의 R>G 이론 자체는 완벽히 성립하는 것이오?


집현전 학사: 그것은 아니옵니다. 피케티의 R>G 이론 자체도 학술적으로 상당한 반론에 직면해 있사옵니다. IMF 이코노미스트였던 Carlos Góes가 2016년 IMF 워킹페이퍼(WP/16/160)로 발표한 연구에서, 19개 선진국의 약 32년(1980~2012년) 간 데이터를 패널 구조적 벡터자기회귀(Panel SVAR) 모형으로 검증한 결과, 분석 대상 국가의 75% 이상에서 R-G 격차의 변화가 불평등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 미시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부유한 가구일수록 소득 성장률 대비 높은 자본수익률을 누리는 반면, 빈곤한 가구에서는 반대 패턴이 나타났사옵니다. 즉 '평균적 R > G'는 성립하지 않을 수 있으나, '부자의 R > 가난한 사람의 G'는 확실히 성립하는 것이옵니다.


덕왕: 그렇구려. 노르웨이의 예시가 흥미롭소. 혹시 세금이 많을수록 그 메커니즘이 더 강하게 성립하는 것은 아니오? 북유럽 국가들은 어떠하오?


집현전 학사: 놀라운 가설이시며, 상당 부분 맞사옵니다. 소득 평등의 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오히려 부(Wealth)의 불평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옵니다. Davies, Sandström, Shorrocks, Wolff가 2007년에 발표한 글로벌 부(Wealth) 분배 연구에 따르면 2000년 기준으로, 덴마크의 부의 지니계수(Wealth Gini Coefficient)는 0.81로 OECD 표본 평균 0.67을 크게 상회하였사옵니다. 스웨덴도 0.74로 프랑스, 독일, 일본보다 부의 불평등이 더 높았사옵니다. 이는 소득의 지니계수(Income Gini Coefficient)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옵니다. 덴마크의 소득 지니계수는 0.29로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부의 지니계수는 정반대로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옵니다.

2023년 부의 불평등 지수 (스웨덴 5위, 핀란드 15위, 덴마크 18위/미국 6위, 중국 21위, 한국 24위)


덕왕: 흔히들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세금을 부과하지만 삶의 질은 평등한 선진국이라고 알고 있는데 놀랍구려. 부의 지니계수와 소득의 지니계수가 어떻게 다르기에 그런 것이오?


집현전 학사: 소득의 지니계수는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소득의 양(flow)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부의 지니계수는 특정 시점에 쌓인 부의 양(stock)을 기준으로 하나이다. 북유럽에서 소득 지니계수와 부의 지니계수가 벌어진 비밀은 1990년대 초 도입된 이원적 소득세(Dual Income Tax) 시스템에 있사옵니다. 덴마크가 1987년에 혼합형으로 시작한 뒤, 스웨덴이 1991년, 노르웨이가 1992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핀란드가 1993년에 도입하였사옵니다. 노동소득에는 높은 누진세를 적용하되 자본소득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단일세율을 적용하옵니다. 그 결과 소득 지니계수는 낮아진 반면, 부의 지니계수는 크게 상승하였사옵니다. 투자자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북유럽 시스템은 월급쟁이의 G를 세금으로 깎으면서 자본가의 R에는 관대한 구조이옵니다.


덕왕: 그렇다고 부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은 자본소득에 대한 낮은 세율만의 문제이겠소? 상속세의 부재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소. 특히 중국과 인도는 상속세가 없는데, 이것이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 않소?


집현전 학사: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둘 다 심각하옵니다. 다만 작동하는 시간축이 다르옵니다. 자본소득에 대한 낮은 세율은 '현재 진행형'으로 격차를 벌리옵니다. 상속세의 부재는 '세대를 넘어' 격차를 고착시키옵니다. 중국의 경우가 극단적 사례이옵니다. 상속세가 전혀 없는 데다 과거 '한 자녀 정책'의 여파까지 더해져, 조부모 4명의 재산이 단 1명의 손주에게 세금 없이 귀속되는 구조이옵니다. 특히 중국의 부의 지니계수는 0.73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서민층 자녀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음에 좌절하며,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반항을 의미하는 '탕핑(躺平)'을 선택하고 있사옵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반대 극단으로,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이며 부유층 해외 이민이 세계 4~5위권에 달하옵니다.

평평하게 누워있다는 뜻으로, 중국의 극심한 취업난 앞에서 “난 그냥 눕기로 했어”라고 선언하며 포기한 청년들을 지칭. 요즘은 한 단계 더 진화해서 '전업자녀'란 말도 생김


덕왕: 과거 본좌는 중원땅에서 개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가진 것 하나 없이 군벌을 이루었거늘! 어찌 오늘의 아들딸들은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만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오. 자본소득세가 낮으면 매년 격차가 벌어지고, 상속세가 없으면 그 벌어진 격차가 세대를 넘어 고착된다는 것은, 마치 자동차와 자전거의 경주처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출발 전부터 진 게임이라 아니할 수 없소. 다만 세금의 부여만으로 세상의 화평을 이룰 수도 없으며, 그 또한 위험한 생각이오. 어느 쪽이든 완벽한 해법은 없는 법이니... 이것이야말로 8번에서 다룰 단일 관점 본능의 함정이 아니겠소. 다만 로슬링은 이 역설을 다루지 않았소. 바닥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맞으나, 천장이 훨씬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점은 체계적으로 회피했소. 이 정도의 글을 쓸 능력이었다면 천장에 대해서도 분명 알았을 것이오. 이것이 부정 본능의 정교한 사각지대라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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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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