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하'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 '중'편으로 깔끔하게 끝내려 했던 덕왕의 장대한 꿈이 먼지처럼 사라진 후 집에서 술 한잔을 하며 기필코 반드시 ‘하’ 편으로 끝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은 덕왕의 글 중에서 가장 깁니다. 점심시간 정도로는 어림없으며 기존에 점심시간과 글을 등가교환하셨던 분이시라면 이번 글을 통해 비자발적으로 간헐적 단식에 참여하실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만약 식사를 하며 읽고 싶으시다면 즉시 테이크아웃을 해 오실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밥은 먹고 싶고 글은 읽어야겠고
지금까지 참으로 먼 길이었습니다. <최애의 아이>로 '상'편의 문을 열며 보석의 세계와 우주의 역사를 지나, '중'편에서는 우주로부터 버림받은 베릴륨의 40억 년 동안의 존버 후 마침내 지구 문명의 전면에 등장하여 인류에게 거부할 수 없는 청구서를 내미는 복수의 시작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릴륨은 성격은 개차반이었지만 재능 하나만큼은 끝내주던 전직 축구선수 '탐욕왕’ 아델 타랍을 떠올리게 합니다. 폐를 망가뜨릴 만큼 치명적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악마적 재능을 동시에 가졌습니다. 핵발전소의 부품이 되면서 동시에 핵폭탄의 방아쇠가 됩니다. 미량을 넣어도 5배 이상의 물성 향상을 가져오면서도 그보다 적은 양으로도 생명을 빼앗고 파멸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양 극단을 오갑니다.
이번 시간에는 덕왕에게 남아있는 열 두 챕터를 통해, 이런 혼란한 베릴륨의 이중성에 대해 살펴보고 과연 인류가 베릴륨이 내미는 청구서를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시리즈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구에서 베릴륨을 지배하는 단 하나뿐인 회사의 이름은 마테리온(Materion Corporation, NYSE: MTRN)입니다. 1931년 Brush Beryllium이라는 사명으로 시작하여 201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으며, 오하이오주 메이필드 하이츠에 있는 본사가 있는, 직원 2,880명 규모의 작은 회사입니다. 시가총액은 약 40억 달러로 코스피로 따지자면 시총 60위권의 대형주지만, 미국 상장사 기준으로는 미드캡(중형주)의 하위에 해당합니다. 그들의 고객이 있는 S&P500의 거대 기업들과 비교하자면 '매우 작은' 회사입니다.
사업부는 총 셋입니다. 채굴과 정제를 담당하는 Performance Materials가 회사의 본진이고, 그 외 반도체 소재 부문의 Electronic Materials와 광학 부품을 담당하는 Precision Optics 사업부가 있습니다.
핵심 자산도 셋입니다. 유타주 Spor Mountain에는 가장 중요한 베르트란다이트 광산(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적으로 채굴되는 베릴륨 광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하이오주 Elmore에는 정제소와 함께, 핵융합 및 핵반응로에 필수적인 베릴륨 페블(Beryllium Pebbles, 작은 구형 입자)을 생산하는 핵심 시설인 'Pebbles Plant'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머리에 이런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고? 다른 곳은 엄두도 못 낸다고?
더구나 앞으로 더욱 미래가 기대된다고? 세상에, 완전 로또잖아?"
100년 가까이 오로지 한 우물만 판 회사. 세계에서 하나의 광물을 지배하고 있는 단 하나의 회사. 미국 정부가 밀어주는 회사. 이 정도라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사면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사기꾼들이 늑대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돈을 노리는 이 냉혹한 투자의 세계에서, 우리는 이제 막 태어난 ‘맛있는’ 아기염소일 뿐입니다. '신이 내린 로또'라는 말이 신중함이 아닌 직관으로부터 나오고, '매수'에 대한 결정이 자신의 판단이 아닌 타인의 권위에 의한 것이 되는 순간, 그 회사는 가장 위험한 종목이 됩니다.
덕왕은 매수 매도 추천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하편에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쌓아 온 베릴륨에 대한 선입견을 최대한 지우고 다시 면접을 보는 마음으로 업계에서 왕으로 군림해 온 마테리온에 대해 최대한 숫자와 사실에 근거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뱁새 같은 다른 새의 둥지에 슬쩍 알을 낳고 사라지는 '탁란(托卵, Brood Parasitism)'을 합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뻐꾸기는 같은 둥지 안에서 키워준 어미새의 다른 알들을 하나씩 등으로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뜨립니다. 둥지에 자기 혼자만 남을 때까지.
마테리온이 8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일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쟁자들은 둥지 밖으로 떨어졌고 마테리온은 살아남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부활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한데,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아니,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중국이나 땅덩이 넓은 러시아에 베릴륨이 없을까?
정말 없는 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면 덕왕은 당신의 날카로운 시선에 물개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베릴륨은 희귀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보게 작가 양반. 미국에만 있다면서 이제 와서 희귀하지 않다니,
대관절 이게 무슨 곱버스 ETF 상하이 트위스트 추는 소리요?"
마침내 포트폴리오에서 ‘왕이 될 상'을 찾았다며 좋아하던 여러분이 이 한마디에 내뱉는 장탄식이 덕왕의 키보드 앞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사실 베릴륨은 희토류처럼 6대 대륙 모든 곳에 골고루 흩어져 있습니다. USGS(미국지질조사국: U.S. Geological Survey)의 2017년 글로벌 베릴륨 분포 지도를 보면 밀도의 차이는 있지만 점이 찍히지 않은 대륙은 없습니다. 지각 평균 함량은 약 2~6 ppm으로 우라늄(2.7 ppm)이나 주석(2.3 ppm)과 비슷한 수준이며, 크롬·니켈·아연 같은 흔한 금속보다는 적지만, 금이나 백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합니다. 중국에도 러시아에도 카자흐스탄에서도 베릴륨이 있습니다.
출처: https://www.usgs.gov/media/images/world-map-showing-beryllium-deposits
즉 매장량이 부족해서 마테리온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단 한 회사만 살아남았을까요?
그 이유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세 개의 방벽보다 단단한 네 겹의 장벽 때문입니다.
첫째, 순도와 규모. 미사일 자이로스코프나 핵무기 중성자 반사체에 들어가는 베릴륨은 99.8퍼센트 이상의 고순도가 요구됩니다. 그에 비해 카자흐스탄·중국에서 나오는 베릴륨은 상당량이 순도가 낮은 합금용 또는 산업용 등급이며, 무기에 쓸 만한 고순도 등급을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곳은 마테리온뿐입니다. 또한 규모에 있어서도 유타 Spor Mountain광산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써(베르트란다이트 광상 기준), 매장량은 19,000톤에 이르며 앞으로 70년 이상 채굴 가능한 압도적인 경제성을 지녔습니다.
둘째, 공정 노하우. 베릴륨의 대표적인 가공 공정으로는 성형 공정(HIP)과 영역 정제(zone-refining)가 있습니다. HIP 공정(Hot Isostatic Pressing: 열간 등압 성형)은 소재에 높은 열과 균일한 압력을 가해 내부의 기공을 없애 밀도를 극대화하는 고밀도 성형기술로써, 방위산업이나 첨단 부품 제조에 필수적입니다. Zone-refining(영역 정제법)은 긴 금속 막대의 한쪽 끝을 녹인 후, 이 녹은 영역(Zone)을 천천히 반대쪽 끝으로 이동시켜 한 방향으로 불순물이 몰리게 하고 반대쪽에 99.999% 이상의 초고순도 베릴륨이 남게 만드는 공정인데, 반도체나 고성능 검출기 제작에 필수적입니다. 이 공정에 대한 노하우는 오랜 시간에 걸친 시행착오와 목숨의 등가교환을 통해 축적되었습니다.
셋째, 공급 안정성과 인증 장벽. 미국 국방부는 자국 무기 부품을 외국 공급망에 맡기는 것을 전략적 자살로 간주합니다. 카자흐스탄이 아무리 좋은 베릴륨을 만들어도, NASA의 화성 망원경에 카자흐스탄산 베릴륨이 들어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품질의 문제를 넘어선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타국에서 생산할 수 있다 쳐도 NASA·Pentagon·반도체 OEM의 2차 공급원 인증을 받으려면 기본 3~7년의 세월과 함께 1,000만~5,000만 달러의 심사 자금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베릴륨 거울 인증만 7년이 걸렸습니다. 원서비만 최소 150억에 불합격이 99% 예정된 상황에서 지원할 학생은 없겠지요.
넷째, OSHA 0.2 마이크로그램 규제와 ITAR 수출통제. 게다가 군용·원자로용 베릴륨은 미국 수출통제 대상이라, 외국 회사는 미국 방산 수요에 법적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ITAR(International Traffic in Arms Regulations, 국제 무기 거래 규정)’은 미국 국무부가 관장하는 수출 통제 규정으로, 미국의 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방위 물품, 기술 데이터, 서비스의 해외 수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법률입니다. 베릴륨 합금이나 고순도 베릴륨 등은 군사적 응용 가치가 높아 ITAR의 군용물자품목목록(USML)에 포함되어 관련 기술과 함께 통제됩니다. 이에 따라 미국산 베릴륨이나 관련 기술을 거래하고자 할 때는 국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허가 없이 제3 국으로 재수출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거기에 80년간 구축된 강력한 환경 규제는 미국 외의 어떤 나라도 공정 기준을 충족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야구장에서 고래밥 한 알 만큼 흘려도 환경파괴범으로 잡혀가는 수준입니다.
이쯤 되면 견고한 4겹 장벽 앞에서, 둥지에 들어가 보려 했던 다른 알들의 최후가 어땠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식의 형태에서 가장 은밀하고 까다로운 '암묵지(Tacit Knowledge)'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개인의 경험, 학습, 노하우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정량적으로 측정되지 않으며 대규모로 공유되기 어렵기에 거의 현장에서 도제식 전수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대표적인 암묵지 중심의 산업입니다. 암묵지가 풍부할 때는 개인이나 조직, 그리고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지만 한 번 끊기면 오히려 문서화된 전수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지적 역량의 손실(Loss of intellectual capacity)'을 가속화하여 '사라진 기술(Lost Art)'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베릴륨의 절대강자 마테리온이 정확히 이 암묵지의 함정에 빠져 숨통이 끊어졌다가 미국 정부의 파묘로 인해 2012년, 12년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한 번 죽었던 마테리온을 미국 정부가 되살린 이야기
1990년대 후반, 미국 국방부가 보유한 '베릴륨 잉곳 비축분(National Defense Stockpile)'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냉전이 끝나며 핵무기 수요가 줄었고, 비축분만 갖다 써도 한참 쓴다는 판단이 우세했지요. 마테리온(당시 이름은 Brush Wellman) 입장에서는 정제 라인을 돌리는 것보다 정부 비축분을 사다 가공해 파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였습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이어 온 1차 정제 능력을 — 그것도 세계에서 유일한 — 자기 손으로 묻어버렸습니다.
10년쯤 지나자 미국 국방부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냉전이 끝나며 불행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지만 소련의 빈자리를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채우기 시작했고,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며 모든 것에 대한 통제가 주요 화두로 떠올랐는데, 이는 안보에 필수적인 전략 자원 수급 문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급한 마음에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비축분은 야금야금 줄어들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2011년에 바닥을 친다는 충격적인 예측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이 10년 간 손을 놓고 있던 동안 전 세계 어디에도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고순도 베릴륨 공급원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발등을 찍었다"는 자각이 의회를 흔들었고, 2003년 하원 군사위원회는 마침내 "전략물자인 금속 베릴륨 고갈 직전"이라는 보고서를 의결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국방생산법(DPA, Defense Production Act) Title III'입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지만 시장 논리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 국가 기간산업을 정부 자금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준 것인데,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George W. Bush)이 이 조항을 베릴륨에 발동시켰습니다. 마테리온이 관뚜껑을 열고 들어간 지 십여 년 만에 미국 정부에 의해 다시 파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2004년 의회가 DPA Title III 예산으로 첫 $300만을 배정해 예비 설계에 들어갔고, 2005년 10월에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900만 규모의 본격 설계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후 단계적으로 추가 예산이 배정되며, 마테리온은 관에서 끌려 나와 강제로 소생술을 받으며, 닫았던 공장의 샷다를 다시 올려야 했습니다.
안돼. 돌아가.
당시 정부 부담은 약 $7,323만(약 $73.23M, Inside Defense 보도 기준)으로, 정부와 회사가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였지만, 말이 좋아 분담이지, 시설이 운영될 수 있게 된 대부분의 자금은 정부가 지원했습니다. 연간 73톤(160,000파운드) 생산을 목표로 부활한 라인은 2011년 4월 15일, 다시 베릴륨 알갱이를 토해냈고, 2012년 1월 정식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베릴륨 해자의 본질을 한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미국 정부가 "세상에서 베릴륨을 다룰 줄 아는 회사"를 새로 찾으려 했다면 절대 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본금 $7,300만으로 80년 치 노하우를 가진 회사를 대체 어디서 사 올 수 있을까요? 결국 미국도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부활시킬 곳은 그곳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테고, 이미 죽은 회사를 파묘하여 다시 살려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테리온이 가진 강력한 해자입니다. 네 겹의 성벽도 모자라, 국가의 절대적인 지원과 의존까지 받는 회사라니! 그것이 이 기업으로 하여금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경쟁자들은 어떻게 둥지에서 떨어졌을까요?
둥지에서 떨어진 알들
1. 카자흐스탄 Ulba. 마테리온이 생산하는 광물만으로는 수요를 맞추기 어려운 미국은, 전체 수입량 중 약 31%를 카자흐스탄에서 들여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에는 베릴륨 광산이 없습니다.
"엥? 광산이 없는데 어떻게 베릴륨을 수출한다는 거지?"
덕왕처럼 여러분도 이 말에 당혹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르지만, 광산이 없는 카자흐스탄이 베릴륨 수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소련 붕괴 당시 '에르마코브스코예(Ermakovskoe)'와 같은 러시아 지역 광산으로부터 대량의 베릴륨 정광(Ore Concentrate) 비축분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는 금반지를 팔아 야금야금 생활비로 쓰듯, 울바(Ulba) 공장은 비축분을 조금씩 정제하여 미국에 판매해 왔는데, 이는 미국이 마테리온을 다시 되살리기 전부터 지금까지 일정 부분 유지되며 미국 외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베릴륨 공급국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이 물려받은 소련 시대 비축분은 이미 거의 바닥을 드러냈고, USGS 자료에 따르면 울바 공장이 현재 정광을 가져오는 곳은 다름 아닌 러시아에 남아있던 소비에트 시대의 잔여 비축분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런 구조입니다. 카자흐스탄의 돼지저금통은 이미 텅텅 비어서 옆집 러시아 저금통의 배까지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가 광물을 보내면, 카자흐스탄이 그것을 정제해서, 미국에 팝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자국 안보의 핵심 광물을, 러시아가 캐고 카자흐스탄이 가공해서 보내주고 있는 이상한 협력관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앞에서 이념은 솜사탕처럼 살살 녹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합니다. 러시아발 비축분도 무한하지 않으며, 만드는 것도 대부분 원천제품에 해당하는 업스트림 피드(후방산업, 저부가가치)이고 마테리온처럼 고부가가치의 다운스트림(전방산업,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능력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Rosatom과의 지분 관계 때문에 미국 방산 인증은 사실상 영구적으로 받을 수 없으니, 자원이 소모되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습니다.
2. 중국 Fuyun Hengsheng. 중국이 믿고 있는 이곳은 Zone-refining 라인까지 갖췄지만 서방 항공우주 인증 실적은 전무합니다. 결정적으로 신장 위구르인을 동원했다는 강제노동 의혹으로 인해 미국 강제노동방지법(UFLPA)에 의해 미국 시장 진입이 차단되었습니다. (핑계가 좋은걸?) 물론 베릴륨은 단순한 자원이 아닌 전략물자기에 정부의 지원 하에 자국 내에서 첨단 재료로 쓰일 수는 있겠으나, 규모의 경제가 필수적이며 여러 번의 과정을 거치며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베릴륨 가공의 특성상 경제성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3. 러시아 Ermakovskoe. 한때 세계 최대급 매장지로 꼽혔던 에르마코브스코예(Ermakovskoe) 광산은 지금은 상업 생산 자체를 중단했습니다.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산업 인프라가 무너졌고 이로 인해 공정을 관리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지식 체계도 사라져 버리는 완벽한 'Lost Art(암묵지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 광산은 다시 가동되지 못했고, 정제 공장도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카자흐스탄, 중국, 러시아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은 미국의 우호국가들이 아니기에 둥지에서 떨어진다 한들 미국에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충격은 같은 뻐꾸기 동지마저 둥지에서 떨어뜨렸다는 데 있습니다.
4. IBC Advanced Alloys. 이 회사는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릴륨을 이용해 첨단 부품을 만들던 곳이었습니다. 사실 이 회사의 베릴륨-알루미늄 합금 정밀 주조 공장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윌밍턴에 있었기에 반쯤은 미국 회사라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회사가 만든 부품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록히드 마틴의 F-35 전투기 부품도 있었습니다. 미국 방산의 진짜 핵심 공급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2024년 4월 25일, IBC가 갑자기 공장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장기 수요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못 찾았다. 누적 적자가 모회사의 구리 사업 자금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 회사가 밝힌 이유였습니다. 특히 보도자료에서 CEO인 Mark A. Smith의 발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IBC 팀은 12년 동안 베릴륨-알루미늄 합금 시장을 키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장기 시장 수요가 끝내 형성되지 않았고 우리의 가능성은 끝났습니다."
그렇게 2024년 6월, IBC는 마지막 계약을 마무리하고 베릴륨-알루미늄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며 인디애나주 프랭클린의 구리 합금 사업장만 남은 시총 2,500만 달러 수준의 작은 회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5월 11일 기준으로는 시총 약 1,640만 달러로 더 작아졌습니다. 한때 F-35 부품을 만들던 회사가 지금은 마테리온 시가총액의 1/256 수준이 되었으니, 둥지에서 떨어진 알의 운명이 어떠한 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마테리온은 이제 고작 작은 게임에서 살아남은, 어미새로부터 먹이를 받아먹어야 하는 아직은 어린 새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둥지에 홀로 남은 이 새끼에게(욕 아님) 먹이를 줘야 하는 어미새들은 누구일까요? 마테리온이 생산한 베릴륨이 어디로 흘러들어 가는지 살펴보면 답이 보입니다.
이 표를 보면 익숙한 이름들이 제법 많으실 겁니다. 미국 방산 4대장인 록히드 마틴, RTX(레이시온), 노스럽 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있고 반도체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ASML, Applied Materials, Lam Research와 함께 MRI·CT 장비로 유명한 진단계의 최강자 Siemens도 등장합니다.
표 아래쪽에는 Schott AG라는 이름도 보입니다. 혹시 이 회사의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집의 주방에 검은색 인덕션 쿡탑이 있다면, 그 검은 유리 표면 한쪽 구석에 작은 글씨로 SCHOTT CERAN이라고 새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971년 이 회사가 인덕션 유리를 처음 만든 후 반세기 동안 대명사가 된 브랜드입니다.
1960년대 말, Schott은 막스 플랑크 천문학 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천체 망원경 거울 기판용 유리세라믹인 '제로두(Zerodur)'를 개발했습니다. (주의: 제로투 아님) 제로두를 만들면서 쌓인 강화유리 기술은 1971년에 인덕션 쿡탑으로 응용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덕션 유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지금도 마테리온의 12개 주요 고객사 중 하나입니다.
Schott은 '초경량'이 요구되는 우주·군사 프로젝트에서, 베릴륨을 기반으로 한 광학 시스템을 '더 가볍고, 더 단단하게' 제작하기 위해 마테리온의 소재를 사용합니다. 천체 망원경 거울에서 시작한 회사의 이력이 우리 집 주방과 우주에 같이 맞닿아 있다니 신기하네요. 앞으로는 주방의 인덕션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12개의 거인들이 필요로 하는 베릴륨을 공급하는 회사가 단 하나, 마테리온뿐이라는 것은 이 회사가 강력한 해자(moat)를 갖고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우리의 긍정편향된 추측뿐일까요, 아니면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요? 다행히 재무제표를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이를 뒷받침하는 아주 깔끔한 증거가 있습니다.
드라마 〈허준〉에서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줄을 서라며 소리쳤던 장면이 나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제한적이면 일찌감치 줄을 서거나 돈을 싸들고 가야 하지요. 이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개인과 기업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베릴륨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먼저 받기 위해 돈을 들고 줄을 서는 풍경이 마테리온의 회계 장부에 선수금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선수금은 기업의 해자 혹은 우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마테리온의 2025년 3분기 10-Q 보고서에는 Unearned income이라는 항목으로 잡힌 4,640만 달러가 있는데, 이는 ‘Precision Clad Strip (고성능 금속 접합 소재)’ 제품의 확보를 원하는 고객으로부터 미리 받은 돈입니다. 또한 2026년 2월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미국 방산 대기업이 6,500만 달러(약 920억 원)를 미리 입금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회계 용어를 풀고 가겠습니다. 선급금과 선수금은 형제 같지만 방향은 서로 다른 용어인데 처음 접하면 조금 헷갈릴 수 있습니다. (덕왕도 실제로 공부하면서 많이 헷갈렸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계를 작성하는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선급금(Prepaid)은 '내가 돈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파듯이, 제발 나 먼저 살려달라며 얼마 안 되지만 넣어두라며 상대의 지갑에 돈을 찔러 넣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돈은 나갔지만 물건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니 나의 재무제표에는 '자산'으로 잡힙니다.
선수금(Advances)은 "내가 돈을 미리 받는 것(受: 받을 수)"입니다. 조선시대 세도가가 뇌물 값에 따라 관직을 팔았듯이, 선수금은 "보이는 성의에 따라 살려는 드릴게."라는 명백한 나의 우위 신호입니다. 돈은 미리 받았지만 나중에 물건을 줘야 하는 의무가 생기기에 나의 재무제표에는 '부채'로 잡힙니다.
덕왕은 당시 선수금과 선급금을 구별하기 위해 단 하나의 문장을 기억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돈을 미리 받으면 나중에 갚아야 하는 '부채'가 생기고, 돈을 미리 줬으면 나중에 받아야 하는 '권리'가 생기는 것은 세상에 공짜란 없기 때문입니다. (어때요, 참 쉽죠?)
기업회계에서 부채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가치평가를 할 때 부채비율이 좋다고 하지만, 선수금 같은 부채는 오히려 좋은 신호입니다. 판매자인 내가 구매자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투자에서는 대박의 기회를 발견하는 것보다 쪽박의 위험을 피하는 것이 장기적 성공에 더욱 유리하기에, 초보 투자자라면 부채비율 200%가 넘어가는 기업을 제외하는 것만으로도 포트폴리오의 안정성과 수익성이 적어도 한 단계는 높아지겠지만, 투자에 대한 공부가 깊어지며 같은 부채라도 성격이 다름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 수 있다면 투자에서의 엣지는 확실히 커질 것입니다. (대충 공부하자는 말)
어쨌든 현실에서도 좋은 물건에 사람들이 모이듯,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공급자가 적다면 미리 돈을 싸들고 가는 '입도선매(立稻先賣)'가 심심치 ...




🤖 삐빅! 내일 점심이 삭제되었음을 알립니다.

심화편이 기대되네요.
아프리카 동부에서 겨울을 보낸 뻐꾸기가 한국에 와서 탁란을 하고...
그렇게 태어난 뻐꾸끼는 급성장!
그렇게 급성장한 마테리온은... 멀리 돌아다녀야 하는 숙명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꼭꼭 씹어서 두번세번 읽겠습니다 ㅎㅎ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정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주시는군요 🙏🏻🙏🏻

엄청납니다 ㅎㅎ 정말 매력적인 기업이네요 베릴륨 이야기도 자세하게 잘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장편이지만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

일단.지하철에서 급히 내려야하기에 북마크먼저 하고 갑니다.

점심은 소중하기에 퇴근길과 함께 했습니다.
정신차려보니 집 앞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방산과 반도체에 연결되는 마테리온의 베릴륨 합금에 대해서 자세히 다뤄주셔서 아주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