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끝났어야 할 영역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투자는 왜 아직도 사람이 하고 있을까.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메달리온 펀드는 1988~2018년 동안 수수료를 뺀 뒤에도 연평균 약 39% 수익률을 냈다고 알려져 있다. 정확히 어떻게 굴렸는지는 여전히 잘 모른다. 세부 운용내역은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명한 한 가지는 그 기록이 인간의 감이나 배짱만으로 만들어진 기록이 아니라, 수학자,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들이 만든 시스템이 시장에서 남긴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고빈도 거래 쪽으로 가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호가창을 눈으로 읽고 손으로 주문을 내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시장의 아주 작은 가격 차이, 주문의 흐름, 뉴스 첫 문장에 담긴 신호를 잡아내고,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주문을 넣고 빼는 일은 사람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눈이 빠르고 손이 빠른 정도로는 전혀 경쟁력이 없다.

펀드 시장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국에서는 패시브 뮤추얼펀드와 ETF 자산이 2024년에 액티브를 처음 넘어섰고, 2025년 말에는 패시브 자산이 19.4조 달러, 액티브 자산이 16.0조 달러였다고 한다.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골라 시장을 이긴다는 약속은 예전만큼 강하게 들리지 않는다. 특히 비용까지 빼고 오랜 기간을 놓고 보면 더 그렇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
기계가 인간보다 빠르고,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투자라는 행위는 이미 기계에게 완전히 넘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은 생각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개인 투자자는 오히려 늘었다. 한국만 보더라도 2024년 개인 주주 수는 2020년에 비해 약 800만 명 증가했다. 액티브 펀드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해도, 사람들이 투자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짜고, 손실과 수익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전에는 투자를 한다는 말에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다. 증권사 지점, 객장, 펀드 가입서, 펀드매니저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지금은 다르다. 월급이 들어오면 앱을 열고, 남는 돈으로 ETF를 사고, 해외 주식 소수점 매수를 하고, 연금계좌에서 S&P500이나 나스닥100을 고른다. 투자가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월급을 받는 사람의 생활 습관에 가까워졌다.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계가 아무리 좋아져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고. 장기적 안목, 산업을 보는 감각, 경영자를 판단하는 눈, 숫자로 바로 잡히지 않는 질적 판단 같은 것들 말이다.
반대편에서는 더 차갑게 말할 수 있다. 인간 투자자가 남아 있는 건 기계가 아직 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인간 투자자는 꼭 필요한 존재라기보다, 기술이 더 좋아지기 전까지 남아 있는 과도기적 존재에 가깝다고.
나는 둘 다 충분한 설명은 아니라고 본다.
인간에게 기계가 절대 못 하는 능력이 남아 있어서 투자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기계가 아직 부족해서 사람이 임시로 버티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다. 우리는 투자라는 말을 너무 하나의 일처럼 쓰고 있다.
투자 안에는 꽤 다른 일들이 섞여 있다. 돈을 더 불리는 기술, 자본을 어디에 둘지 정하는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자기 삶에서 견디는 일. 이 셋을 한꺼번에 묶어놓고 “인간이 이기나, 기계가 이기나”라고 물으면 답을 내기 어려워진다.
인간은 기계에게 질 때마다 방어선을 뒤로 물려왔다.
한때 체스는 인간 지성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체스가 계산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직관과 전략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딥블루가 카스파로프를 이기자 사람들은 갑자기, 체스는 결국 계산 문제였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방어선은 바둑이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고, 인간의 직관 없이는 둘 수 없는 게임이라고 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자 사람들은 갑자기, 바둑도 결국 패턴 인식의 문제였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언어와 창작도 한동안 안전한 영역처럼 보였다. 규칙이 명확한 게임과 달리 글쓰기, 그림 그리기, 대화는 인간 고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경계도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지금은 누구나 AI가 쓴 글과 그림을 매일 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도 많지만, 예전처럼 “기계는 이런 걸 못 한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과거를 되돌아 보았을 때 우리가 얻어갈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기계가 본질적으로 못 하는 일”의 목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짧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투자자의 자리를 “기계가 아직 못 하는 일” 위에 세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결론이다. 장기적 서사 구성, 정성적 판단, 경영진 평가, 산업 변화에 대한 감각도 언젠가는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다. 적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자신이 진 영역을 사후에 격하시킨다. 체스는 결국 계산이었다고 말하고, 바둑은 결국 패턴이었다고 말한다. 투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어느 날 AI가 훌륭한 장기 투자 판단을 내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뒤늦게 “장기 투자도 결국 데이터와 패턴의 문제였다”고 ...


요즘은 사람도 결국 기계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유기체일뿐..

아직 감정이라는 부분에서 기계와의 구분점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ㅎㅎ 하지만 이 구분조차 희미해지는 순간이 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