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잡한 논의, 난잡한 생각
오늘 회사에서의 회의는 난잡함 그 자체였다. 주제는 A였으나 대화는 금세 탈선했다. A-1을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B를 꺼냈고, 논의는 자연스럽게(?) B로 흘러갔다. B는 묘하게 A와 연관되어 있었고 회의 중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B는 지금 우리가 논의할 주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B-1에 대해 떠들다가 결국 아무 결론 없이 A-2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온 A-2 는 A-1의 결론에 종속된 문제였다. 각자 머릿속으로 A-1의 결론을 다르게 가정한 채 A-2라는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회의는 그렇게 돌고 돌았다.
이런 난잡함은 많은 사람이 모여야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내가 집을 살지 말지 고민하던 때에도 그러했다. (지금도 잘 모르지만) 부동산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지금 집을 사야하나?’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당시 나는 호갱노노 앱을 켜서 지역별 아파트 가격을 알아보다가 재개발 호재를 찾아보기도 하고, 청약 공고를 분석하다가 다시 유튜브에서 부동산 시장 전망을 찾아보았다.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착각했고, 그렇게 파편화된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의사결정에는 설계도가 필요하다
의사결정에도 설계도가 필요하다. 하나의 질문에 답을 내리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한다. 그리고 각각의 결정 안에 어떤 가정이 숨어있는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별 호재를 찾아보는 것은 이미 집을 사겠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나 유효한 행위이다. 집을 살지 말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호재를 찾아보는건, 건물의 토대를 쌓기도 전에 창문 손잡이 모양을 고민하는 것과 같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