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는 정치의 산물이다 — Eichengreen이 신간에서 풀어낸 화폐 패권의 역사
어제 라이브에서 나왔던 분이죠? 최근 인터뷰 몇개를 가져왔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했는데 관심 있는 부분은 별도로 자세히 요약해서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뉴스 한줄을 보더라도 다채롭게 해석하려면 역사 지식을 필수인 것 같습니다.
"Barry Eichengreen - 분열된 세계에서 달러의 미래(요약)"
이건 간략히 요약한 버전이고 하단은 인터뷰 전문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1. Eichengreen의 지적 여정과 방법론
학부 시절 그는 역사·정치·경제 모두에 관심이 많았지만 역사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고 회상해요. 경제 이론이 그 혼란을 정리할 수 있는 분석적 프레임을 제공했고, 그래서 경제사학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나이가 들수록 정형 모델에 덜 의존하고, 내러티브 역사·문학적 표현 방식에 더 끌린다고 한 점이에요.
→ 저도 그렇습니다...나이가 들수록.......
젊을 때는 편하지 않았던 영역인데 이제는 그 안에서 더 풍부한 이야기를 발견한다고 해요. 신간을 쓰면서 그리스·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고고학과 화폐학(numismatics) 문헌까지 새로 공부해야 했고, 그게 오히려 흥미진진했다고 합니다.
→ 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유사하기에 역사를 거슬러 가면 시대는 다르지만 유사성을 발견하지 않나 싶네요.
내러티브 vs 모델에 대한 그의 입장도 정리해볼 만해요.
그는 둘 사이의 강한 구분에 동의하지 않아요. 경제이론가에게 모델이 뭐냐고 물으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답할 텐데, 다만 형식 모델은 시간에 따라 전개되는 동학을 다루기 어렵고, 그런 현상은 내러티브가 더 잘 전달한다는 거예요. 학자가 누구에게 말하느냐도 중요하고요. 형식 모델링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동료 학자들에게 말하는데, 그는 학술 논문도 쓰지만 더 넓은 청중을 향한 책도 쓰고 싶어 해요.
공공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입장.
경제학계 일부는 "우리는 과학적 연구에 집중하고 대중과의 소통은 저널리스트에게 맡기자"고 하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아요. 이번 대담과 팟캐스트 참여 자체가 그 입장을 보여주는 거고요. 다만 현실은 톱5 저널 게재 압박 때문에 젊은 학자들이 공공 글쓰기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가 학계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런 압박이 없었고, "괜찮은 저널에 좋은 논문을 내면 동료들이 읽고 평가해줬다"고 회상해요. 지금은 톱5 저널 편집자들이 사실상 게이트키퍼가 되어 누가 테뉴어를 받을지를 결정한다는 거예요. 그 공백을 자기 같은 나이 든 학자들과 Project Syndicate, CEPR의 VoxEU 같은 플랫폼이 메우고 있다고 봐요.
연구 방법론에 대한 조언.
대학원생들이 흔히 묻는 질문 —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서 데이터를 찾을지, 데이터에서 시작해서 아이디어를 만들지?" — 에 대해 그는 항상 상호작용적이라고 답해요. 어떤 아이디어의 씨앗과 어떤 데이터로의 단서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발전한다는 거예요.
→ 고민하지 말고 일단 뭐든 하라는 메시지
2. 대공황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
대담에서 Maja Eden이 인용한 (출처가 불분명한) Keynes의 말 — "대공황 같은 일이 과거에도 있었나?"라는 질문에 "있었지. '암흑시대'라고 불렀고 400년 동안 지속됐어" — 에 대해 Eichengreen은 Keynes가 다소 과장했다고 봐요. 암흑시대는 단순한 시장 붕괴가 아니라 제도와 사회 전체의 붕괴였거든요.
대공황 자체에 대해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정리됐다고 느끼는 모양이에요. 주요 포인트들을 자세히 보면요.
국제적 현상이었다는 점.
그가 학계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대공황 분석은 미국 중심·폐쇄경제 중심이었어요. Friedman & Schwartz의 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가 대표적이고요. Charles Kindleberger(MIT)나 Arthur Lewis(Manchester/Princeton) 같은 소수만 글로벌 차원을 이해했어요. 지금은 비교 분석과 글로벌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가 표준이 됐고, 미국 밖의 학자들이 가장 흥미로운 연구를 한다는 점이 진보라고 봐요.
통화정책 vs 재정정책.
동료인 Christina Romer의 "What Ended the Great Depression?" 논문이 보여주듯, 회복에는 통화정책이 재정정책보다 훨씬 중요했어요.
1933년 달러 평가절하 이후 회복이 시작됐고, 재정 부양은 제한적이었어요(주로 1935년 1차 대전 참전용사 보너스). FDR도 사실 재정 매파에 가까웠다는 거예요. 가계 예산과 정부 예산을 유비로 보면서 "정부도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고요. 그래서 1936-37년 균형재정 회귀가 통화 긴축과 맞물려 더블딥 침체를 만들었어요.
World War II의 역할.
완전고용 회복은 결국 1941년 이후 전시 동원에서 왔어요. 미국에는 U4, U5, U6 여러 실업률 측정 방식이 있는데, 1941년에도 가장 좋은 측정치 기준 실업률이 14%였어요. 1932-33년 25%에서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높았죠.
전쟁이 노동공급 측(징집)과 수요 측(전시동원) 양쪽에서 충격을 줘서 빠르게 완전고용을 회복시킨 거예요. 만약 미국이 더 일찍 금본위제를 버리고 금리를 낮추고 통화공급을 확대했다면, 그리고 현대적 재정정책 이론이 있었다면, 회복이 훨씬 빨랐을 거라는 게 그의 반사실적 시나리오예요.
연구의 진화.
30년 전엔 금융위기를 0-1 더미변수로 다뤘다면(국가가 위기에 있다/없다), Bernanke와 Harold James 같은 사람들이 국가별 데이터베이스를 모았어요. 지금은 개별 은행 수준 데이터, 더 나아가 은행과 기업 간 연계 데이터를 활용해서 충격 전파 과정을 추적해요. 미시 빅데이터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3. 5년 전과 지금: 미국 제도에 대한 불안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5년 전(2021년경)에 누가 미국에서 권위주의로의 추락이 가능하냐고 물었다면, 그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답했을 거예요. 법치, 견제와 균형, 권력분립, 의회·법원에 대한 존중, 강건한 시민사회가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렇게 자신할 수 없다고 해요.
대담자가 흥미롭게 짚은 부분 — 자신의 가장 큰 두려움은 5년 전 COVID 때였다고요. 둘째 아이가 막 태어난 시점이었고, "이 아이가 어떤 세상에 태어난 걸까, 우리는 봉건제 같은 자급자족 시스템으로 후퇴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Eichengreen은 그 두려움에 공감하지만, COVID는 결국 정부들이 건설적으로 대응해서(백신, 재정·통화 부양 — 어쩌면 과도했지만) 위기를 넘겼다고 봐요. 다만 그 경험이 정부·정치인·과학에 대한 신뢰를 광범위하게 훼손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에요.
본인 연구(과거 전염병들과 Gallup World Poll, Wellcome Trust 설문을 연결한 작업)로도 18-25세 사이 인격 형성기에 전염병을 겪은 사람들은 정치인·정부·과학자(특히 민간 부문)에 대한 신뢰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다는 걸 보여줬어요.
그가 5년 전이라고 말한 시점은 사실 COVID가 아니라 Biden이 Trump를 이겼던 2021년이었어요. 그땐 1차 트럼프 임기가 "일탈"로 끝났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돌아왔다는 거죠. 더 깊은 우려는 향후 4년이 지나면 회복될지에 대한 것이고, 그는 일부 손상은 영구적일 수 있다고 봐요. 다음 정치적 진자가 2028년에 돌아오더라도(예측은 아니지만) "권력분립과 법치가 미국에서 우리가 가정했던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게 입증됐고, 미래에 다시 같은 도전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4. 국제통화의 역사 — 신간의 핵심
신간 Money Beyond Borders는 Lydia의 Croesus(BC 650년경 주화 발명)부터 현대 크립토까지 약 2,000년의 흐름을 추적해요. 그는 "international currency"라는 용어가 국민국가 이전 세계에는 시대착오적일 수 있지만, 발행 정치체의 경계를 넘어 사용되는 통화 단위를 의미한다고 정의합니다. 더 나아가 진정한 "global currency"는 발행국과 무관한 두 당사자 간에 사용되는 통화라고요.
Hidden Forces 팟캐스트에서 추가로 다룬 화폐의 기원
David Graeber 같은 인류학자는 "신용이 먼저, 동전은 나중"이라는 견해를 폈는데, Eichengreen은 고고학·화폐학·인류학 문헌을 두루 읽은 결과 전통적 견해(상품화폐가 먼저, 신용이 나중)에 동의해요. Berkeley 동료 중에는 Graeber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어서 점심 시간 화제라고 합니다.
핵심 문제의식: 상거래의 진화는 "개인적 유대 안의 거래(가족·씨족·종교 네트워크)"에서 "비개인적 거래(모르는 사람과의 신뢰할 만한 거래)"로의 전환이고, 표준화된 회계단위·지불수단이 그 전환의 핵심이었어요.
4-1. 고대 세계: Lydia, 아테네, 로마, 비잔틴
Lydia의 Croesus: BC 650년경 아나톨리아에서 주화가 처음 등장했어요. Croesus의 아버지가 electrum(금-은 합금)으로 첫 주화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electrum이 금-은 비율이 달라 가치가 들쭉날쭉했다는 점이에요. Croesus의 혁신은 이중금속본위제 도입과 표준 각인이에요. 왕이 가치를 보증함으로써 마찰을 줄이고 더 널리 유통되게 했어요. 무역을 통해 그리스 도시국가로 확산됐고요.
→ 예전에 이더리움 사인할때 쓰던게 일렉트럼이었는데 그 의미 였군요
아테네의 부엉이(Owls): 큰 무역국이었고, Piraeus 항은 당대 최대 교역 중심지였어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보다도 아테네의 1인당 밀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해요. 노예와 상품을 동지중해 전역에서 거래했고, Alexander 시대 영토는 그리스 본토부터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인도 일부까지 뻗었어요. 동전의 중량과 순도가 수 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고, Delian League라는 강력한 군사동맹의 수장이었어요. 즉 경제력 + 안정성 + 군사력의 결합이 부엉이 동전을 국제통화로 만든 거예요.
로마 데나리우스: 영국부터 레반트, 아프가니스탄, 인도 일부까지 유통됐어요. 신간에서 그가 특별히 강조하는 점은 공화정 시기 강력한 토지소유 원로원이 화폐 조작을 견제했다는 거예요. 즉 권력분립과 법치가 통화 안정의 정치적 기반이었다는 거죠.
비잔틴 솔리두스: 약 700년간 안정적으로 유통됐어요. 비잔틴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현재 중동 상황이 이걸 상기시키죠)였고, 약속어음(promissory note)이 여기서 발달했어요. 플로렌스 같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이 비잔틴과 거래하면서 이 어음 기술을 배웠고요. 솔리두스는 지중해 이슬람 남해안과 이베리아 일부, 중동 전역에서 통용됐어요.
4-2. 가장 의외의 사례: 피렌체와 플로린
Eichengreen은 신간에서 가장 놀라운 사례로 피렌체를 꼽아요. 작은 도시국가에 항구도 해군도 광산도 없었지만, 14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