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곳에서 무얼 하든 떠나는 것은 슬픈 일. 하지만 떠난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모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미술작품을 걸어 놓겠다는 생각은 별로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글씨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해왔다. 글씨에는 그 사람이 보인다. 자신감 있는 사람인지, 조심스러운 사람인지, 날 아끼는 사람인지, 지혜로운 사람인지 혹은 배려하는 사람인지 등등.
많은 글씨들 중에서도 내가 개인적으로 모르는 유명한 사람보다는, 내 주변을 살았던 사람들의 글씨를 갖고 싶었다. 특히 연로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글씨. 그 에너지를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늑장을 부리다가 인터넷에서 한 참 후에야 주문을 했다. 캔버스가 도착한 것이 매우 추웠던 재작년 겨울 12월 23일 밤이었다. 주말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부탁을 하리라...
다음날인 12월 24일 토요일. 일을 끝마치려는데 어머니께 전화가 걸려왔다. 격앙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빠가 이상해"
곧바로 아버지가 계신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코마(의식불명) 상태셨다. 영하 14도를 넘나드는 추위에. 응급실 들어가기 전에 코로나 검사를 한다고 밖에서 벌벌 떠셨다고 했다. 먼 발치에서 내복 없이 단촐한 홑겹의 바지와 간결하고 짧은 신사용 양말을 신은, 아버지의 핏기 없는 굳은 발이 보였다.
COVID 시기라 응급실에는 보호자 한 명만 출입이 가능했던 터. 멘탈이 안 좋으신 어머니는 대기실에 두고, 내가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 드린 것은 담요로 다리를 덮어드린 일이었다. 차갑게 식은 손과 발을 쉴 새 없이 주물러 드렸다.
시간은 정신 없이 흘러갔다. 나는 중간 중간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말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의사들은 어떤 질문을 했는데 나는 아버지에 대해 사실상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동의서를 내밀면 사인을 했다. 들리는 소리대로 그 내용을 엄마와 형 누나들과 단톡방으로 공유를 했다. 누나들은 검색을 해서 무슨 말인지 해설을 달았다.
극적으로 몇 시간 만에 의식이 돌아오셨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대로 허무하게 떠나시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남긴 메세지와 ...

인텔렉츄얼한 insight와 멘탈적인 inspiration이 충만해지는 글이네요. 토요일 밤의 결정이 24년 최고의 결정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에서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원하는 바 성취하시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