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1-3: 원유에서 제품으로: 정유와 마진

[시리즈 연재] 1-3: 원유에서 제품으로: 정유와 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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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쟁이
2026.02.24조회수 3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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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우리는 원유의 품질(API 밀도, 황 함량)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경질+저황 원유가 프리미엄을 받고, 중질+고황 원유는 할인되며, 지정학적 리스크는 품질마저 압도한다는 점까지 다뤘죠.


이번 글에서는 한 발 더 나가 보겠습니다. 원유 그 자체는 사실 쓸모가 없습니다. 땅에서 나온 원유를 그대로 자동차에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원유는 정유소(refinery)를 거쳐야 비로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휘발유, 디젤, 제트유, 플라스틱 같은 제품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투자자 입장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정유사 주가는 유가 자체보다 크랙 스프레드(crack spread), 즉 정제마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유가가 올라도 정제마진이 줄면 정유사는 손해를 보고, 유가가 떨어져도 정제마진이 유지되면 정유사는 돈을 법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번 글에 통해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정유 공정: 원유에서 석유제품으로

왜 정유소가 필요한가

원유는 수천 가지 탄화수소 분자가 뒤섞인 혼합물이라고 2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 혼합물을 그대로 쓸 수는 없고, 분자 크기와 특성에 따라 분리해야 합니다. 그 작업을 하는 곳이 정유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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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설명: 정유소의 핵심 설비인 상압 증류탑(Crude Distillation Unit). 원유를 가열하여 끓는점 차이로 분리하는 장치 (출처: Chevron Refining Overview)


미국 정유소를 기준으로 보면, 2023년 한 해 동안 총 67.2억 배럴이 투입되었고 이 중 87%가 원유였습니다. 나머지는 에탄올(5%), 천연가스액(HGL, 3%), 블렌딩 성분(3%) 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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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미국 정유소 투입 구성 (2023년). 원유가 87%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 총 투입량 67.2억 배럴 (출처: EIA, Petroleum Supply Monthly)

정유 공정의 큰 그림: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정유 공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 첫째, 원유를 끓는점 차이로 분리하는 증류(Distillation).

  • 둘째, 증류된 중간 산물에서 황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여 품질을 높이는 정제(Refining).

  • 셋째, 정제된 각 산물을 제품 규격에 맞게 혼합하고 첨가제를 넣는 배합(Blending)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증류와 업그레이딩(크래킹, 코킹)뿐 아니라, 최종 제품으로 완성하는 배합(blending) 단계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분별 증류: 끓는점으로 분리한다

정유의 첫 단계는 분별 증류(fractional distillation)입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원유를 가열하면 끓는점이 낮은 분자부터 기화되어 올라가고, 끓는점이 높은 분자는 아래에 남습니다. 이걸 층층이 받아내면 서로 다른 석유제품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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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설명: 상압 증류 곡선. X축은 누적 수율(vol%), Y축은 끓는점. 낮은 온도에서 프로판/부탄, 경질 나프타가 먼저 나오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중질 나프타, 등유, 디젤, 잔사유 순서로 분리 (출처: Chevron Refining Overview)


아래 사진은 증류 과정에서 분리된 유분(fraction)을 실제 병에 담은 것입니다. 왼쪽부터 경질 나프타, 중질 나프타, 등유, 상압 가스오일, 상압 잔사유 순서인데, 색깔이 점점 짙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거운 분자일수록 어두운 색을 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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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설명: 증류 유분(fraction)의 실제 모습. 왼쪽부터 Light naphtha(투명) → Heavy naphtha → Kerosene → Atmospheric gas oil → Atmospheric residuum(진한 갈색). 끓는점이 높을수록 색이 짙어짐 (출처: Chevron Refining Overview)


각 유분은 다른 용도로 사용됩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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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설명: 원유 증류 시 끓는점에 따라 분리되는 주요 유분과 용도. 가벼운 제품(나프타, 휘발유)이 고부가가치 제품(출처: Chevron Refining 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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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정유 과정의 전체 제품 흐름. 원유가 정유소에 투입되면 경질 제품(가스, 나프타, 등유, 디젤)과 중질 제품(중유, 진공 가스오일, 아스팔트, 코크스)으로 분리 (출처: Chevron Refining Overview)


미국 정유소의 최종 산출물을 보면, 휘발유가 5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경유(distillate fuel oil)가 25%, 제트유가 9%를 차지합니다. 즉 정유소는 본질적으로 "휘발유와 디젤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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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미국 정유소 산출물 구성 (2023년). 휘발유 50%, 경유 25%, 제트유 9%로 상위 3개 제품이 전체의 84%를 차지. 총 산출량 71.0억 배럴 (출처: EIA, Petroleum Supply Monthly)

정제: 불순물을 제거하고 품질을 높이다

증류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말씀드렸듯, 원유에는 황(sulfur), 질소 같은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어 그대로는 환경 규제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첨탈황(hydrotreating) 같은 정제 공정을 거쳐 이런 불순물을 제거하고 품질을 높입니다.


2편에서 사워크루드(고황 원유)가 스위트크루드(저황 원유)보다 할인 거래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황 함량이 높은 원유는 추가 탈황설비를 거쳐야 하므로 정제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죠. 반대로, 한국처럼 고도화 탈황 설비가 잘 갖춰진 정유사는 저렴한 고황·중질유를 수입해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으로 전환한 뒤 수출하는 수익 구조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정제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배합(blending) 단계를 거칩니다. 이 배합이라는 게 단순히 섞기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유소 수익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배합: 블렌드스톡을 섞어 최종 제품을 만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정유소는 사실 우리가 주유소에서 넣는 "완성 휘발유(finished gasoline)"를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정유소가 만드는 것은 휘발유 블렌드스톡(gasoline blendstocks)이라는 중간 제품입니다. 이 블렌드스톡들이 배합 터미널(blending terminal)로 보내지면, 거기서 여러 성분을 혼합하고 첨가제를 넣어 최종 제품이 완성됩니다. EIA에 따르면 미국 내 배합 터미널은 정유소보다 훨씬 많고 전국에 분산되어 있는데, 완성된 휘발유를 탱크로리에 실어 각 주유소로 배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배합에 들어가는 주요 성분은 무엇일까요? 휘발유를 예로 들면, 크게 세 가지 블렌드스톡이 핵심입니다.


첫째, 리포메이트(reformate)입니다. 앞서 증류 과정에서 나온 나프타를 기억하시죠? 나프타는 그 자체로는 옥탄가(octane rating)가 낮아 자동차 연료로 쓰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촉매 개질(catalyt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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