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의 삶 중, 레지던트 1년차는 어느 과가 되었든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다. 하지만 유독 마취과 1년차는 상대적으로 더 힘든 주변의 타과 1년차들 때문에 ‘꿀을 빤다’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한다.(우씨, 그러게 누가 힘든 과 하래?) 물론, 나의 1년차 때를 생각해보면 실제로 타 수술과 동기들 보다는 여유가 있는 삶을 살았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전체 수련 기간을 되돌아보면? 고년차가 되었을 때 보았던 타 수술과 레지던트들의 여유로움은 상상 이상인 경우도 많았기에 도긴개긴, 도토리 키재기 였지 않았을까.
왜 갑자기 수 년이나 지난 레지던트 1년차 시절 얘기냐? 최근, 그 시절 수도 없이 섰었던 당직의 나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취과 1년차 입장에서 가장 힘든 당직은 무엇일까? 바이탈(vital; 혈압, 맥박, 호흡 등의 활력징후)이 심하게 흔들리는 외상 환자나 패혈증 환자가 수술로 들이닥쳤을때? 응급 심장 수술이 떴을때?(심장 수술은 2년차 담당이라 1년차한테는 상관 없긴 하다.) 남은 응급 수술 일정들을 보니 밤새 수술방을 돌려야할 각이 보일때? 물론 위와 같은 상황 중 하나라도 걸리면 그날의 당직은 상당히 힘든 축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힘든 당직 날이 따로 있었다. 바로 ‘희망고문’만 하다가 끝나는 당직.
이런 날이 있었다. 예정되어 있던 응급 수술들도 다 끝났고, 오늘 밤은 왠지 잠을 좀 잘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날. 그럴 때 밤 12시 쯤 아뻬(appendectomy; 맹장수술)가 하나 생긴다. 아뻬 정도는 1년차 혼자서도 커버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보통 고년차들은 뭔 일 있으면 전화하라는 말만 남긴채 먼저 잠에 든다. 1년차 입장에서도 보통 1시간 이내로 끝나는 짧은 수술이기에 어서 끝나고 자야지 하고 큰 부담감 없이 마취에 임한다. 그렇게 수술은 진행되고, 수술이 끝나갈 즈음 외과 당직 폰이 울린다. 응급실에 아뻬 환자가 한명 더 있다고.
이러면 수술방 전체에 가벼운 한숨이 새어 나온다. 금식 시간 지켜졌으면 바로 이어서 진행하는 일정으로 수술을 잡는다. 그래, 아뻬 하나 정도 더 한다고 잠을 못 자진 않지. 새벽 2시면 잠들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을 갖고 두 번째 마취에 들어간다.(고년차들은 계속 자고 있다.) 이렇게 두 번째 아뻬도 끝. 환자를 깨워서 회복실로 잘 보내고, 이제 누워서 좀 자보려고 등을 뉘이는 그 순간. 당직 폰이 울린다. 이번에도 아뻬 환자. 환자들이 오늘 작정하고 단체 맹장염에 걸렸나 싶다.
이쯤되면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꿀일 것 만 같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