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A-side: <가난한 찰리의 연감> “ 격자모델 사고법 筆記錄 ”






이번 연재글은 앞으로 쓸 연재글 중 가장 ‘필기록’같은 형태를 띤다. 이는 일종의 존경과 감명, 더 나아가 선망에서 비롯되었을 지 모른다. 필자의 경우, 글을 쓸 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마도 그 당시에 읽고 있는 책일 것이다. 지난달에 발행한 시리즈 연재 2편 역시, 사실 오늘 다룰 이 책을 읽던 도중에 작성되었고, 그렇기에 지난 달 글에서 <가난한 찰리의 연감>의 아이디어들을 차용하였던 흔적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찰리 멍거는 다소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워런 버핏이라는 눈부신 빛의 그림자에 숨어 있다. 스스로도 익명성을 즐겨 버핏의 '조용한 파트너(silent partner)'로 불렸으며, 또 어떤 이들은 이 막후의 인물을 두고 현재 버크셔의 실질적인 설계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필자에게서 그는 르네상스적 학자 형태와 자본주의적 실용가 형태를 절묘하게 융합한, 흔치 않은 인물로 다가온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이작 뉴턴처럼 다방면에 걸쳐 학문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했다. 하지만 다빈치처럼 과제를 미완으로 남겨두지도 않았고, 뉴턴처럼 극단적인 천재성에 기반해 순수 학문적 탐구에만 침잠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흔치 않은 면모를 지녔기에, 멍거와 가장 유사한 역사적 인물은 그가 평생의 우상으로 삼았던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점은 당연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과학자, 발명가, 외교관, 출판업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대표적인 팔방미인(Polymath)이었다. 그는 정규 교육을 단 2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지독한 독학으로 많은 성취를 이뤄냈다. 그는 피뢰침이나 이중초점 안경 등을 발명했고, 특허를 내지 않고 기꺼이 사회에 공유했다. 더 나아가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 프랑스 동맹 조약, 파리 평화 조약 그리고 미국 헌법에 모두 서명한 유일한 인물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기틀을 다잡았다. 또한 그는 ‘리처드 손더스’라는 가명으로 25년간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을 발행해 실용적 지혜를 대중에게 널리 전파했다.
사물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 이름만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벤자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
지혜의 문은 결코 닫히지 않는다.- 벤자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
텅 빈 자루는 똑바로 서 있기 힘들다.- 벤자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
멍거가 프랭클린에게서 배운 것처럼 우리도 멍거의 다학제적 접근 및 사고방식을 습득해 나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또 다른 긍정적인 사실은 놀랍게도 멍거는 철저한 '비전공자'였다는 점이다. 앞서 프랭클린과 마찬가지로, 그는 평생 동안 화학, 경제학, 심리학, 비즈니스와 관련된 정규 수업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독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한 학문의 좁은 울타리에 갇히는 것을 거부했다.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일 학문이 아닌, 역사, 심리학, 수학, 공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얻은 핵심 아이디어들을 머릿속의 '격자 모형(latticework of mental models)'에 엮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긍정적 사실에 덧붙여, 그는 생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가장 훌륭하고 실용적인 지혜는 기초적인 학문적 지혜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기초 과목의 신입생 수준 강의에서 배우는, 배우기 쉬운 개념들을 일상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80~90개 정도의 중요한 모델만 있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의 90%를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뉴턴 수준의 지적 능력이나 특정 학문에 대한 깊은 통달이 아니었다. 오히려 학교 수준에서의 매우 기초적인 학문들을 활용하여, 현실의 문제들을 단순화하여 그 본질을 포착해 연결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먼저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찰리 멍거라는 거인이 평생을 바쳐 다학제적 사고를 실천했다고 해서, 우리마저 굳이 그 복잡해 보이는 방식을 따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단 하나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부족한 것일까? 프랭클린과 멍거의 독자적인 사고 방식은 어떤 특별한 장점이 있기에 우리에게 이토록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일까?
바텀업이 아니라, 필요한 지식은 그때 그때 바로 공부하여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잡고 끝까지 완성해라
배운 건 전부 자기 말로 정리해서 가르쳐라
남과 비교하지 마라 -OpenAI 공동창업자 Andrej Kapathy의 ‘전문가가 되는 법’
제 생각에 사람들이 가장 빨리 배우는 방법은 기존의 학교 교육방향인 ‘기초부터 시작해야 한다’를 역행하는 탑다운 방식입니다. 문제에서 시작하면 더 빨리 배울 수 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걸 전부 찾아보고, 그렇게 문제의 핵심까지 내려가는 것이죠. -가브리엘 피터슨(고졸 출신 OpenAI 연구자; 그의 말에 따르면 박사가 하는 일을 머신러닝과 수학에 대해 배우지 않고, AI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High School Dropout to OpenAI Researcher - Gabriel Petersson Interview (Extraordinary) (youtube.com))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AI의 등장으로 핫한 학습법 논제; 바텀업 학습법과 탑다운 학습법 논제 또한 생각난다. 멍거는 기초적 학문에 집중했다는 점은 마치 바텀업 학습법과 결이 같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필자는 현재 바텀업과 탑다운 학습법 논제 속 본질을 꼬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B-side에서 다루어보자 뒷 주석에서 다루고자 한다.
찰리 멍거는 단일 학문이나 제한된 사고 모델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는 현상을 ‘망치를 든 사람 증후군(man-with-a-hammer syndrome)’이라 불렀다. “오직 망치만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처럼 보인다”라는 격언처럼, 하나의 좁은 관점으로 복잡한 현실을 해석하려는 것은 치명적인 인지적 맹점을 낳는다. 이러한 증후군은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들이나 지식인들사이에서도 종종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발생한다.
멍거는 그의 강연 <인간 오판의 심리학>에서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인간의 태생적인 25가지의 심리적 경향들을 다루었고, 이러한 경향들을 통해 원인을 분석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망치를 든 사람 증후군은 여러 심리적 경향이 모든 문제를 못처럼 보이도록 동시 다발적으로 결합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롤라팔루자 경향(Lollapalooza Tendency)이라 할 수있다.
이 망치 증후군의 근간에 바탕이 되는 첫번째 원인은 용불용 경향(Use-It-or-Lose-It Tendency)이다. 멍거에 따르면 아무리 높은 수준의 기술이나 지식이라도 일상적으로 연습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서서히 퇴화해버린다. 우리가 다양한 도구를 배웠을지라도 이를 끊임없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자신이 가장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망치만 덩그러니 남게된다.
나머지 경향들은 이렇게 남겨진 유일한 망치를 인간이 어떻게 맹신하게 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의심 회피 경향(Doubt-Avoidance Tendency):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성급히 결정을 내려는 성향이다. 멍거는 인류가 진화론적으로 포식자의 위협 등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심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기보다 어떤 결론이든 재빨리 내려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고 말한다.
불일치 회피 경향(Inconsistency-Avoidance Tendency): 일단 도달한 결론이나 익숙한 방식을 바꾸기를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다. 멍거는 인간의 마음을 '난자'에 비유했다.난자에 하나의 정자가 들어오면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 장치가 작동하듯, 인간의 뇌 역시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한번 자리 잡은 첫 번째 결론(망치)에 반하는 새로운 도구의 진입을 무의식적으로 차단해 버린다.
가용성 편향(Availability-Misweighing Tendency): 가장 쉽게 떠오르는 정보나 도구만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다. 이 편향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는 새로운 문제 앞에서 자신의 뇌가 가장 쓰기 쉬운 유일한 망치만을 습관적으로 빼 들게 된다.
독학과 실전 속 직관으로 깨달았다고 하기에는 멍거의 오판 심리학은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다. 이번에는 멍거의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이론으로 이 현상을 번역해 보자.
카너먼은 인간의 인지 체계를 이해하기 쉽게 두 가지 시스템으로 분류했다. '시스템 1'은 노력이 전혀 들지 않고 자동적이며 빠르게 작동하는 직관의 영역이다. 반면 '시스템 2'는 느리고 분석적이며 깊은 집중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지적 노력을 최대한 아끼려는 성향을 지닌 '게으른 시스템'이다.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직관적으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은 시스템 1의 영역이고,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골치 아파하는 것은 시스템 2를 가동하는 행위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시스템 2가 특정 패턴을 감지하여 주의를 동원하도록 시스템 1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적절한 반복 훈련을 거치면 애초에 시스템 2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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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네요. 늘 신세지고 있는 멍거옹 감사합니다.🙏

심리 편향에 대해서 잘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함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