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투자철학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투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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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백
2025.12.19조회수 243회

내면화의 힘과 탈중앙화의 한계

지난 글에서 나는 피터 버거의 종교사회학적 관점을 빌려 비트코인을 분석했다. 현대 사회의 붕괴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낸 일종의 '종교적 현상'이자, 내면화된 최면 상태라고 말이다. 다소 도발적인 이 주장에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 '내면화'라는 개념에 대해 오해를 풀고 넘어가려 한다.

사실 나는 그 내면화를 폄하하려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투자의 세계에서, 아니 우리 삶의 대부분에서 진리는 언제나 허무할 정도로 심플하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라." "장기 투자하라." "자산을 배분하라."


이런 진리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실천하지 못한다. 이 단순한 명제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강력한 자기 확신, 즉 '내면화'의 과정이다. 내가 굳이 골치 아픈 인문학을 끌어와 투자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뻔한 정답을 뻔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 철학, 역사, 문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자의 본질을 다각도로 비춰보는 것. 이 지적 유희의 과정이야말로 단순한 진리를 우리 뼈에 새기는 가장 강력한 내면화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트코이너들의 그 뜨거운 믿음은,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강렬함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들의 지향점인 '완전한 탈중앙화'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 지성사의 문제다. 인간의 정신사는 언제나 '중심을 세우려는 응집의 열망''그 중심을 부수려는 해체의 열망'역동적으로 교차해 온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한번 짚어보자. 혼돈스러운 야만의 시대에서 인류는 생존을 위해 '신'과 '왕'이라는 강력한 질서를 세웠다. 시간이 흘러 그 절대 권력이 부패하자, 르네상스를 통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번째 해체를 시도했다. 그 빈자리에는 다시 '이성'과 '과학'이라는 근대의 새로운 절대신이 들어서며 강력한 응집을 이뤘다. 그리고 20세기, 우리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시금 모든 중심을 부정하고 이성을 해체하려는 시도,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통과했다.


그렇다면 모든 권위를 부수고 절대적 자유를 외쳤던 현대의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오히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냉소적인 지성인들에게 피로감을 느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중심 없음'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다. 결국 우리는 다시 의지할 수 있는 확실한 가치를 찾게 된다. 과거의 망령을 다시 소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유튜브나 SNS 속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열광하기도 한다. 해체된 폐허 위에서 새로운 의미를 재건하려는 움직임, '새로운 진정성'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역사는 정반합의 흐름 속에 있는 역동 그 자체다. 나는 투자 시장 또한 인류 지성사가 겪어온 이 궤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느낀다. 탈중앙화에 대한 열망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지만, 그것이 영원한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안 때문에 만들어진 토템을 숭배하기보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단순한 진리를 내면화해야 한다.

이 글의 결론은 아주 심플하다. 하지만 먼 여행을 다녀와서야 비로소 ‘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듯, 긴 사유의 여정을 돌아서 다시 마주하는 뻔한 결론은 분명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거대한 사상사의 흐름을 빌려, 우리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리고 이 냉소와 오만의 사이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투자 철학을 세울 수 있을지 논의해 보겠다.



응집과 해체의 드라마

파일:Pieter Bruegel the Elder - The Tower of Babel (Vienna) - Google Art Project - edited.jpg

정신 문화의 역사는 거대한 시계추와 같다. 한쪽 끝에는 확실한 정답을 갈구하는 '응집'의 욕망이, 반대쪽 끝에는 억압을 부수고 자유를 찾으려는 '해체’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문명을 건설하고, 또 무너뜨려 왔다. 이 거대한 진자 운동의 틀 속에서, 고대부터 이어져 온 사상사의 궤적을 따라가 보자.


1. 첫 번째 중앙화와 탈중앙화

태초의 야만과 혼돈 속에서, 인류는 생존을 위해 강력한 '중심'을 갈구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를 주창했고, 기독교는 이를 받아들여 유일신 사상을 완성했다. 그 결과 하늘에는 신, 땅에는 왕이라는 중심을 기반으로 견고한 질서의 세계가 열렸다. 의심은 곧 죄악이었고, 믿음이 곧 생존이었던 거대한 '내면화'의 시대. 중세까지 이어진 이 '응집'의 시대에 진리는 오직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절대 권력의 부패는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첫 번째 균열을 일으켰다. 종교개혁은 "중개자 없이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상적 혁명을 가져왔고, 교황이라는 절대 중심으로부터 탈중앙화가 시작되었다. 신의 자리에는 인간이 놓였고, 문화적 자유가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성역 없이 권력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더이상 인간은 시스템의 부속품이 아니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독립된 존재, 즉 ‘근대적 개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중심 없음'을 오래 견디지 못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렸다. 과거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절대적 가치가 사라지자, 자유와 함께 끔찍한 공허가 밀려들었다. 방향성을 잃은 신념은 정신적 타락으로 이어졌고, 니체는 분열과 혼란에 빠진 이 시대를 '데카당스'라 진단했다.

하지만 곧, 인간은 신을 몰아낸 빈자리를 채웠다. 그곳에 등극한 것은 바로 '이성'과 '과학'이라는 새로운 절대신이었다. 합리적 개인은 세상을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점령해 나갔다.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영역은 더 이상 신의 뜻으로 유예되지 않았다. 정교한 수리적 논리 아래 차곡차곡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세상을 뉴턴의 물리학처럼 완벽하게 계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효율성과 생산성,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 서사 아래, 우리는 다시 강력하게 뭉쳤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오만한, '재응집'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 탈중앙화의 열병

영원할 것만 같았던 모더니즘의 견고한 성벽은 다시금 처참한 대가를 치르며 무너져 내렸다. 이성의 승리라 믿었던 과학기술은 양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야만으로 귀결되었다. 합리적 개인이 발명해낸 초기 자본주의는 인간을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시켰다. '집단의 최대 이익'이라는 논리는 겉보기엔 완벽해 보였으나, 실상은 개개인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는 폭력이었다.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명분은 피지배계층은 물론 시스템을 운용하는 지배계층의 영혼까지도 철저하게 착취하는 도구로 변질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 20세기 중엽, 모든 견고한 것을 파괴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그들은 단호하게 선언했다. "절대적 진리는 없다."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들뢰즈, 푸코와 같은 철학자들은 기존 질서 체계의 허점을 파고들어 권위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견한 아킬레스건은 바로 인간 사고의 근간인 '언어의 취약성'이었다. 모더니즘이 숭배했던 절대신, '이성'조차 결국은 불완전한 언어 위에 지어진 사상누각임을 폭로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완벽하게 포착하려 할 때, 의미는 손에 쥔 모래처럼 계속해서 미끄러져 나간다. 언어가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면, 언어로 지어진 '객관적 진리'나 '절대적 이성' 또한 우발적이고 불안정한 작용의 산물일 뿐이다.

이러한 통찰을 무기로 지성인들은 권위적인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합리적 자본주의가 내세운 효율성의 폭력을 고발했고, 민족과 국민이라는 거대 서사가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을 해체했다. 그들의 무기는 조롱과 비꼼, 그리고 아이러니(Irony)였다. 이성이라는 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엄숙한 문장들은 전복되고 비틀어졌다. 덕분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랫동안 억압받던 다양성을 해방시키고, 중심이 아닌 주변부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3. 중심에 대한 향수

해체의 축제가 끝난 후, 우리는 폐허 위에 남겨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엇이든 가능하다(Anything goes)"는 구호는 역설적으로 "무엇을 해도 의미 없다"는 허무주의로 변질되었다. 진리가 사라진 자리는 냉소주의가 채웠다. 사람들은 이제 진심을 말하는 것을 촌스럽게 여기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쿨한 척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섰다.

특히 9.11 테러와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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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자이자 금융강사. 단순히 재무적 안정이나 부자되기를 넘어, 물질과 정신 모두 풍요로운 삶을 지향한다. 이를 '멋지게 나이들기'라는 철학으로 삼고, 이곳 <멋나들 연구소>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