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대충돌
국가, 코드, 그리고 21세기 그레이트 게임
"Suppose we were an influence, an idea, a thing intangible, invulnerable, without front or back, drifting about like a gas? Armies were like plants, immobile, firm-rooted, nourished through long stems to the head. We might be a vapour, blowing where we listed. Our attacks could be like the sting of a wasp: quick, sure, and leaving nothing behind... It seemed a regular soldier might be helpless without a target, owning only what he sat on, and subjugating only what, by order, he could poke his rifle at... In these conditions the Arab Revolt became a war of mobility, surprise and time... Our war was one of dervishes against regulars. In it, the regulars would be like a sword beating the water."
"만일 우리가 하나의 감화력, 하나의 이념, 손에 잡히지 않고 상처를 입힐 수도 없으며 앞뒤도 없고 기체처럼 떠다니는 존재라고 가정해보자. 군대는 식물과 같아서 움직이지 못하고 뿌리가 단단히 박혀 있으며 긴 줄기를 통해 머리까지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우리는 수증기가 되어 우리가 내키는 대로 불어갈 수 있었다... 우리의 공격은 말벌의 침과 같았다. 신속하고 확실하며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정규군 병사는 표적이 없으면 속수무책일 것 같았다. 그가 점령하는 것은 그가 앉아 있는 자리뿐이고, 그가 복종시키는 것은 명령에 따라 소총 개머리판으로 찌를 수 있는 것뿐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아랍 반란은 기동전, 기습전, 시간전이 되었다... 우리의 전쟁은 정규군에 대항하는 이슬람 탁발승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정규군은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을 터였다."
T. E. 로렌스 (T. E. Lawrence), 『지혜의 일곱 기둥 (Seven Pillars of Wisdom)』(1926)¹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Son, 1819–1823, oil mural transferred to canvas, 143.5 cm × 81.4 cm, Museo Nacional del Prado, Madrid.
제7장: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리바이어던의 반격
"폭력은 권력이 위태로워졌을 때 나타난다."
한나 아렌트²
서론: 사투르누스의 그림자와 리바이어던의 딜레마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어두운 방 한구석에 걸린 그림 한 점이 관람객의 숨을 멎게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19-1823).³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광기 어린 눈, 이미 머리와 팔 하나가 뜯겨 나간 작은 몸뚱이를 탐욕스럽게 물어뜯는 거인의 모습은 원초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신화 속 사투르누스(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이 두려워 자식들을 집어삼켰다.
이 끔찍한 이미지는 단순한 신화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의 도전에 직면한 기존 권력이 느끼는 실존적 두려움과, 그 두려움이 어떻게 자기 파괴적인 폭력으로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영원한 알레고리다. 권력은 자신의 영속성을 위협하는 미래를 용납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판 사투르누스의 광기를 목도하고 있다. 수 세기 동안 군림해 온 근대 국가, 즉 리바이어던은 자신의 통제권을 벗어난 새로운 화폐 시스템, 비트코인의 출현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비트코인은 국가 주권의 심장부인 화폐 발행 및 통제권을 분리시키는 '위대한 이혼'을 강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리바이어던에게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반란이며, 자신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적'의 출현이다.
이 장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왜 국가는 비트코인을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닌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하며, 이에 대한 국가의 반격은 왜 정당한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절박한 '폭력'의 분출인가?
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국가의 비트코인 탄압은 화폐 주권 상실에 대한 근원적 공포의 발현이다. 이는 카를 슈미트가 규정한 '적'에 대한 '예외상태' 선포이며, 한나 아렌트의 통찰처럼, 자발적 합의에 기반한 '권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폭력'의 분출이다. 더욱이, 암호 기술이 변화시킨 '폭력의 경제학'으로 인해 영토 국가는 네트워크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 따라서 리바이어던의 반격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저항이라기보다는, 황혼으로 향하는 필사적이고 광기 어린 몸부림에 가깝다.
1. 주권의 심장부와 예외상태: 화폐적 적의 출현
국가가 왜 비트코인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국가 주권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는 가장 냉철한 안내자는 카를 슈미트다.
주권의 본질: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힘
슈미트는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라고 선언했다.⁴ 법과 질서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그러나 시스템의 존립이 위협받는 비상 상황, 즉 '예외상태'가 발생했을 때, 법은 침묵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주권자다. 주권자는 무엇이 예외상태인지를 결정하고, 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법률을 초월하는 결단을 내린다.
이러한 결단을 내리고 실행하기 위해, 국가는 자원을 동원하고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전쟁, 재난, 경제 공황 등 모든 예외상태에서 이 능력의 핵심 혈액이 바로 화폐다. 화폐 통제권 없이는 국가는 예외상태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화폐 발행 및 통제권은 단순한 경제 정책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주권을 행사하고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기반이다. 화폐 주권을 잃는다는 것은 곧 국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1933년의 결단: 금이라는 적을 제거하다
이러한 슈미트적 관점에서 볼 때, 1933년 미국의 금 몰수 조치(행정명령 6102호)는 주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다.
대공황은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적 예외상태였다. 당시 미국은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는 정부의 통화 팽창 능력을 엄격하게 제약했다. 금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외부 화폐'였다.
그러나 주권자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금은 시스템의 생존을 위협하는 장애물이자, 주권 행사를 제약하는 '적'이었다. 1933년 4월 5일, 그는 행정명령 6102호를 발동하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