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erms.naver.com/entry.nhn?cid=272&docId=1530367&mobile&categoryId=272
간단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어떤 사물이나 사건, 현상에 대해서 일정한 내용을 가지고 하는 말)]
근데
여기서 [에 대해서] 라고 하는 부분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어떤 현상 또는 표상 이라는 덩어리와, 존재가 만나는 지점을 말한다.
라쇼몽이나 라이프 오브 파이로 예를 들면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여기에는 진술자가 들어간다. 진술자의 존재가 없을 수가 없다. 이해관계도 빠질 수가 없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감동적일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영화를 잘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진술자는 파이 밖에 없다. 내용과 구성은 파이에 의해서 잡히는 것이고, 여기에 요리사의 입장은 부재한다.
따라서 라쇼몽식으로 재편집을 하면, 이제는 파이가 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왜곡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
이야기 자체도 진술자의 정체에 따라
그 배열 방식이 상당히 달라진다.
그러할진대,
이야기에 대한 이론,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똑똑하고 못하고를 가리는 건,
보유한 지식 정도가 아니다. 그건 사전으로 기록하면 될 일이지 굳이 머리속에 집어넣고 다닐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정리할 수 있는 능력, 꺼낼 수 있는 능력이다. 한마디로 지식'에 대해' 대처하는 능력이다.
이 '~에 대해'라는 키워드를 중점으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그리고 이것 역시, 하나의, 입장이라는 것을 주목하길 바란다.
이야기에 대한 정의는 많다.
어떤 사건에 대한 진술이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균형을 잃은 사람이 회복하는 것에 대한 은유, 이런 쪽으로 정의내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시대를 알게 해주는 창' 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 입장은 좀 다르다.
들어가기 앞서, '~에 대해'라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야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는 말은, 이미 스토리를 말하기 전부터, 편견(선입관)을 깔고 들어간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대한 어떤 정의를 내리기 전에
자신이 어떤 입장을 선제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그 자신이 계속 지속적으로 관련 증거를 찾아내고 정당화시키려는 행동의 동기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부터, 해당되는 증거들을 찾으려고 들어갈 것이고,
또한 이야기 속에서 그걸 구현해내려고 할 것이고, 흄의 말대로, 평가방식대로 습득방식을 권장하게 되는 사태가 생긴다.
이것은 곧 재귀성과 연관되며,
스토리는 계속 그러한 틀을 답습하는 전개를 보이게 된다. 왜? 선례가 그걸 요구하니까 그런갑다 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강화되고, 세습된다.
인물의 행동 자체를 중점으로 본다면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선택'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의사결정'에 대한 것이다.
스토리를 그 다른 이론을 접목시키지 않고, 행동 자체만을 본다면
이것은 '의사결정'이 주가 되는 것이고, 이후에 여기에 실수나 착오가 달라붙고 억압이 달라붙는 것이다.
하지만 근원은 의사결정이다. 모든 것의 으뜸이 되는 스위치는 '의사결정'이고,
의사결정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들이 실수, 착오, 억압, 분출, 같은 것이다.
왜?
내가 선택을 내릴 때에 정보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고, 그걸 모른채로 판단할 수도 있고, 그래서 뒤늦게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의 삶에서 이런 일은 얼마나 많은가?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거라고 짐작해서 샀다가 여자친구가 깬다면서 헤어지자고 할 때, 당신은 그 때 하마르티아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은 사후적으로 알게 된다. 당신은 작품을 읽을 때 전체를 조망하는 식으로 읽어선 안된다. 오이디푸스가 병신이라서 그렇게 실수를 한 게 아니다. 그 순간에는 정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의 재료가 별로 없는 것이다. 당신의 현재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이 말에 반박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주식을 해봐라.)
여기에 어떤 사회학 이론이나 심리학 이론을 덧붙이지 말자.
그것들은 다 '~에 대해' 연구한 것을 기록해놓은 것이고, 달리 말하면 어떤 경향성이나 방법에 대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이 재귀적으로 다시 적용되는 경우는 있다 하더라도, 앞서 말했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원을 먼저 보자.
모든 것의 최초의 위치에 자리하는 그것을 보자는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가 '스토리'라고 말하는 것의 지시부분은, '의사결정'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액션(쌈질)은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덤 같은 것이다.
내가 결정을 내렸는데 누군가가 그 결정이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고 여겨서 시비를 걸고, 당신은 그 시비에 방해를 느끼고,
두 사람이 타협이 안되는 순간 주먹이 나가는 것, 어떻게 보면 그게 쌈질이다.
이것도 의사결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스토리
이것을 다른 말로 써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이 스토리 자체에 해당하는 으뜸을 바로 바탕에 깔고, 하나의 '관'으로 취급해도 무방할거라고 본다
어차피 당신이 지금 이 시점에서 의사결정을 한 것을 가지고 복기를 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의 전 사건이 되고, 그것을 언급하는 순간 '스토리 텔링'이 된다.
우리가 겪은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거치는 사고 과정은 바로 위의 방식과 같다.
내가 의사결정을 했던 한 텀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