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가격은 왜 급등락할까?
2000.12 ~ 2001 초 [캘리포니아 전력 위기]
1996년에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그동안은 정부가 "전기 1칸에 100원!" 이렇게 가격을 정해줬는데, "전기 만드는 회사들끼리 알아서 가격을 정해서 팔아라"하고 시장에 맡겼다. 이걸 자유화라고 한다. 그리고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바뀐 룰 적용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보통 전기는 [전기 만드는 공장] => [중간에 전기를 사다가 집까지 보내주는 회사] => [우리 집] 이런 과정을 거친다. 캘리포니아는 공장이 중간 회사한테 파는 도매 가격은 자유롭게 정하게 했다. 하지만 중간 회사가 우리 집에 받는 소매 가격은 정부가 규제로 묶어뒀다. 중간 회사 입장에서는 사오는 값은 마음대로 오르는데 파는 값은 못 올리는 것이다.
2000년 여름, 캘리포니아에 큰일이 동시에 터졌다. 첫째는 무지하게 더운 여름이 왔다. 사람들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대면서 전기 쓰는 양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둘째는 가뭄이 들었다. 캘리포니아는 옆 동네 댐에서 만든 전기(수력발전)도 받아 쓰는데, 물이 부족하니까 그 전기가 확 줄었다. 셋째는 전기 만들 때 쓰는 천연가스 가격도 동시에 올랐다.
쓰는 전기 양은 늘었는데 만들 수 있는 양은 줄었다. 그러니까 도매 가격이 미친 듯이 올랐다. 평소에는 1메가와트시(MWh)에 30달러쯤 했는데, 1000달러를 넘기는 날도 생겼다. 30배가 넘게 뛴거다. 여기서 시한폭탄이 터졌다. 중간 회사(PG&E, Southern California Edision)는 전기 사오는 값이 30배가 됐는데, 우리 집에 파는 값은 그대로인 것이다.
거기에 더 나쁜 일도 생겼다. Enron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전기를 사고파는 큰 회사였는데, 캘리포니아 안에서 만든 전기를 잠깐 다른 주로 빼돌렸다가 다시 가져오는 척하면서 비싸게 팔았다(나중에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발전소는 이유 없이 멈춰서 "지금 전기 없어요"하고 가격을 더 올렸다. 자기들끼리 작전 이름까지 붙여서 이런 짓을 했다. "데드 스타", "팻 보이"같은 이름이었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자기들이 돈을 버는 구조였다.
결국 전기가 진짜 모자른 상황이 왔다. 2000년 12월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정전이 일어났다. 신호등이 꺼지고, 학교가 쉬고, 공장이 멈췄다. 정부가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잠깐씩 전기 끊겠다"고 발표할 정도였다. 중간 회사 PG&E는 빚이 너무 많이 쌓였다. 매일 손해를 보다가 결국 2001년 4월 파산을 신청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전력회사 중 하나가 무너진거다.
2001년 6월, 드디어 미국 정부가 칼을 꺼냈다. 미국에서 FERC라고 전국 전력시장을 감독하는 기관이 있는데, 이 기관이 "도매 가격에도 상한선을 두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자유화를 한 발짝 되돌린 거다. 여름이 지나면서 날씨가 시원해져서 에어컨 수요도 줄었고, 비가 와서 댐에 물이 찼고, 그러면서 천연가스 가격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새 발전소도 짓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이 데이비스(Gray Davis)는 위기 한복판에서 "더 이상 도매 가격에 휘둘리지 않겠다"며 발전회사들과 장기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가격에 사겠다"고 약속한 거다. 문제는 그 계약을 가격이 가장 비쌀 때 맺었다는 거다. 위기가 끝나고 시장 가격이 다시 30달러대로 떨어졌는데, 캘리포니아는 이미 비싼 값에 몇 년치를 사기로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결국 그 비싼 전기 값을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몇 년 동안 요금에 얹어서 갚아야 했다.
데이비스 주지사는 결국 2003년 10월에 주민 투표로 끌어내려졌다. 캘리포니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후임으로 들어온 사람이 영화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다.
PG&E는 파산 신청 후 3년 동안 법원 관리를 받다가 2004년 4월에 다시 일어섰다. 빚은 결국 다 갚았다. 그런데 그 빚 갚을 돈이 어디서 났을까? 캘리포니아 전기 사용자들이 요금에 더 얹어서 낸 돈이다. 회사는 살아났지만 비용은 시민들이 나눠 떠안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Enron은 결국 분식회계로 무너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회계 사기 사건 중 하나로 남았다. 캘리포니아에서 한 시장 조작은 나중에 따로 조사돼서 사실로 확인됐다. 작전 이름까지 적힌 내부 문서가 다 나왔다.
정리하면, 이 위기로 캘리포니아 시민들이 추가로 부담한 돈이 수백억 달러로 추정된다. 한국 돈으로 수십조 원이다. 시작은 단순한 법 조항 하나였다. "도매는 자유, 소매는 통제" 이 비대칭 하나가 가뭄과 폭염, 시장 조작과 만나서 캘리포니아 전체 경제와 정치를 흔들었다.
2005년 12월 ㅡ 허리케인이 만든 사상 최고가
2005년 8월과 9월, 미국 남쪽에 바다에 거대한 허리케인 두 개가 연달아 들이닥쳤다. 8월에 온 게 카트리나(Katrina), 9월 말에 온 게 리타(Rita)다. 둘 다 역사에 남은 강풍이었다. 카트리나는 도시 하나(뉴올리언스)를 거의 물에 잠기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허리케인이 어디를 지나갔냐다. 멕시코만이라는 큰 바다가 있다. 미국 텍사스, 루이지애나 남쪽에 붙어 있는 바다인데, 이 바다 밑에는 천연가스가 어마어마하게 묻혀 있다. 미국이 쓰는 천연가스의 약 4분의 1이 여기서 나왔다.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철탑 같은 시추 시설을 박아놓고, 해저에서 가스를 뽑아 올리는 식이다. 육지에는 이 가스를 받아 정리하는 공장이 줄지어 있다. 카트리나와 리타가 정확히 이 지역을 강타했다.
해상 시추 시설이 부서지거나 멈춰 섰다. 어떤 건 통째로 바다에 떠내려가기도 했다. 육지의 가공 공장도 침수되고 정전됐다. 미국 천연가스 공급의 4분의 1이 한꺼번에 끊긴거다.
문제는 시기였다. 9월 말 허리케인 피해가 채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곧 겨울이 다가왔다. 미국 사람들은 겨울에 천연가스로 집을 데운다. 한국에서 보일러 트는 거랑 똑같은 원리다. 추워지면 천연가스 수요가 한꺼번에 폭발한다. 공급은 부서졌고, 수요는 폭발하면서 12월에 천연가스 가격은 최고점을 찍었다.
2005년 12월 13일 15.78$. 사상 최고가였다. 평소에 4~5달러 하던 가격이 3~4배 뛴 거다. 5년 전 캘리포니아 위기 때 잠깐 10달러 찍었던 것보다도 훨씬 높았다. 이때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비쌌던 천연가스 가격이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이 사건이 보여준 건 단순했다. 한 나라의 중요한 자원이 한 지역에 몰려 있으면, 그 지역에 자연재해가 한 번 들이닥칠 때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2008년 7월 ㅡ 전 세계가 천연가스를 원해
2008년 여름, 천연가스 가겨은 13$ 까지 뛰었다. 2005년 12월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였다. 이번에는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훨씬 복잡한 이유 3개가 동시에 작용했다.
1. 중국의 발전과 원자재 슈퍼사이클
2000년대 들어 중국이 무섭게 성장했다. 1년에 경제가 10%씩 커졌다. 도시마다 빌딩, 공장, 도로, 다리, 항구, 공항을 미친 듯이 지었다. 중국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인도, 브라질, 러시아도 같이 컸다. 전 세계가 동시에 거대한 공사판이 된 시기였다. 공사판은 자원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다. 시멘트 만드는 데 에너지가 필요하고, 철 만드는 데 가스나 석탄이 필요하고, 공장 돌리는 데 전기가 필요하고, 그 전기를 만드는 데 또 가스나 석유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흐름을 "원자재 슈퍼사이클"이라고 불렀다. 모든 원자재가 동시에 오르는 큰 파도인 것이다. 천연가스만 오른 게 아니었다 석유, 구리, 철, 옥수수, 밀, 금까지 같이 뛰었다. 같은 해 7월에 석유 가격은 1배럴에 147달러까지 갔는데, 이게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사상 최고가다.
2. 약달러
천연가스, 석유, 금 같은 원자재는 전 세계 어디서 거래하든 다 달러로 가격을 매긴다. 그러니까 달러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양의 석유를 사기 위해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해진다. 자동으로 달러로 표시된 가격이 올라가는거다. 2008년에는 달러가 꽤 약했다. 미국 경제가 슬슬 흔들리기 시작해서 미국 정부가 금리를 낮추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달러 가치가 떨어진 만큼 원자재 가격이 더 부풀려졌다.
3. 투기 자금의 쏠림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다. 큰 돈을 굴리는 회사들부터 개인들까지 "원자재는 무조건 더 간다"를 외치며 가스, 석유, 금에 돈을 쏟아부었다. 골드만삭스가 "석유 200$까지 간다"고 보고서까지 냈다. 실제 가스가 더 필요해서 산 게 아니었다. 가격이 오를 거라고 믿어서 산 거다. 사람이 몰리면 가격이 오른다. 가격이 오르면 또 사람이 몰린다. 이게 거품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요즘 메모리 반도체 주식과 똑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3가지가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가 2008년 7월 3일의 천연가스 13$ 고점이다. 두 달 뒤인 9월, 미국에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거다. 갑자기 전 세계가 휘청였다. 공장이 멈추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다들 돈이 없어졌다. 어마어마한 자원을 빨아들이던 공사판이 한꺼번에 멈췄다. 수요가 사라지자 가격은 무너졌다. 7월에 13$였던 가스 가격이 그해 12월 5$대까지 떨어졌고, 그 다음 해에는 3$까지 갔다. 반년 만에 4분의 1토막이 난 거다. 석유도 똑같이 무너졌다. 147$에서 30$까지 떨어졌다. 이 사건이 보여준 건, 가격을 끝까지 끌어올린 게 진짜 수요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필요해서 산 사람들의 수요 위에 "더 오를 거다" 믿는 사람들의 기대가 잔뜩 얹혀 있었다.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가격도 같이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2012년 4월 ㅡ 세상을 바꾼 셰일 혁명
2000-2001년 캘리포니아 위기, 2005년 허리케인 충격, 2008년 슈퍼사이클 — 이건 다 단기 사건이었다. 폭풍처럼 왔다가 지나갔다. 가격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2012년 가격 붕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미국 에너지 산업의 빠대 자체가 바뀐 결과였다. 한 번 바뀌면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종류의 변화다. 사람들은 이걸 "셰일 혁명"이라고 부른다.
셰일(Shale)은 진흙이 오랫동안 굳어서 만들어진 돌이다. 한국말로 "혈암"이라고 한다. 이 돌은 다른 돌하고 좀 다르다. 안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잔뜩 뚫려 있고, 그 구멍 속에 천연가스나 석유가 갇혀 있다. 이게 왜 문제냐.
전통적인 가스 채굴은 단순했다. 땅 밑에 가스가 모여 있는 거대한 풍선 같은 공간을 찾아서, 거기까지 구멍을 뚫으면 가스가 펑 하고 나온다. 풍선에 바늘 꽂는 거랑 비슷하다. 근데 셰일은 풍선이 아니다. 거대한 스펀지에 가깝다. 스펀지 전체에 가스가 골고루 흩어져 있는 상태다. 바늘 하나 꽂는다고 스펀지 안에 있는 모든 물이 한꺼번에 나오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셰일에 어마어마한 가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