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리] 영웅숭배론 - 토마스 칼라일




책 '영웅숭배론' (토마스 칼라일 저, 박상익 역. 한길사, 2023.)은 조직 내 '정신'을 파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읽어보다가, 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완역본)' (막스 베버 저, 박문재 역. 현대지성, 2018.)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있어 보여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종교에 대한 관점들이 흥미롭고 쉽게 풀려 있어서 나름대로 내용을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영웅숭배론'보다 '지도자 형성론'이런 제목이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주목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1100년대 사람들이 자연발생설을 믿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물 안의 원리가 밖으로 표출되어 나온다는' 범신론적 아이디어들이 받아들이기에 불편한 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책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데이비드 맥레이니 저, 이수경 역. 웅진지식하우스, 2023.)
썩은 동물 사체에서 구더기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더러운 천 무더기에서 쥐가 생겨나고, 불타는 통나무에서 도롱뇽이 생겨난다고 믿었다. 그 밖의 많은 것은 진흙 구덩이나 먼지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기러기 싹을 틔우는 나무라는 개념도 합당한 듯 느껴졌다. 게다가 500년 동안 기러기 알을 본 적이 없으니 더욱 그랬다. 학식 있는 수사들이 이런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이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책 중반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진보사관을 차용하기 시작할때에는 적잖이 당황하긴 했습니다. (네이버블로그 '홍', '[가면들의 병기창] 1. 벤야민의 역사: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 2016. 9. 22.)
소논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벤야민이 하고자 한 얘기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헤겔식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헤겔은 역사를 인간의 정신이 성숙해온 일종의 <정신발달사> 따위로 이해하고자 했는데, 이 과정에서 매순간은 그 다음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라 여겨지면서 긍정되었지요. 그러니까 진보사관을 설정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이성의 간지(List der Vernunft)>와 같은 다소 신학적인 개념들까지 곁들이며 모든 것은 역사적으로 발달해가고 있다고 봤습니다. 훗날 헤겔의 후학이었던 마르크스가 역사발전 5단계설을 제시하면서 모든 역사의 귀결점을 공산주의로 설정한 것도, 모두 이와같은 역사주의적 배경 아래에서였지요. 하지만 이런 역사관의 최대 문제점은, 우선적으로 작금의 현실을 진보적인 순간으로 긍정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2차 세계대전에서 수백만의 유대인이 죽은 일은, 후대에 인권문제나 UN창설과 같은 진보를 위한 필연적 수순이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는 셈이죠. 그렇다면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히틀러는 진보의 화신이 되는 건가요?
(박상익. '후세가 잘못 이해한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 중앙일보, 2010. 02. 09.)
19세기 영국 사상계에서 존 스튜어트 밀(1806~1873)과 더불어 쌍벽을 이뤘던 토머스 칼라일은 1881년 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이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귀 기울일 가치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당대에 영향력이 컸으면서도 20세기 들어 철저히 왜곡되고 무관심 속에 외면당한 인물이다.
18세기 계몽주의의 물질주의로 방향을 상실한 19세기 청년들 사이에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의 저작은 계시와도 같은 권능으로 받아들여졌고, "칼라일은 나의 종교"란 말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괴테(1749~1832)는 일찍이 1827년 청년칼라일의 ‘비범한 도덕적 힘’에 주목했다.
칼라일의 영웅은 도덕성을 갖춘 진실한 인간을 의미했고, 그는 ‘숭배’를 ‘존경’과 같은 의미로 섞어 썼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칼라일이 말한 ‘숭배’는 상급자에 대한 수동적·맹목적 복종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 존경이었다. 철학자 니체가 『권력의지』에서 초인과 범인(凡人)의 특징을 ‘의지’와 ‘무(無)의지’로 보고 둘을 상반된 속성을 지닌 인물로 파악한 데 반해, 칼라일은 영웅과 추종자의 차이가 단지 도덕성과 통찰력의 정도 차이에 불과하다고 봤다. 따라서 영웅은 일방적으로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오직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로 자발적 결단을 내릴 때만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다. 지도자의 도덕적 카리스마만이 지지 세력을 확보하게 해 준다는 뜻이다.
칼라일은 2000년 전 초대 기독교를 이상적 영웅 숭배 형태로 간주하고 예수를 ‘모든 위인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봤다. 영웅과 추종자의 관계는 정치적 지배·예속 관계가 아니었다. 고결한 영웅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을 지닌 ‘수많은 작은 영웅’이 있어야만 했다. 영웅의 도덕성을 알아볼 품성과 안목을 지닌 자만이 그를 존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백성에 그 왕’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칼라일이 꿈꾼 세상은 ‘영웅들로 가득 찬 세계’였다.
과거 종교 교리를 보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신이라 부르거나 나무나 돌을 숭배하는 등 '어떻게 이것을 믿을 수 있었을까? 제정신들인 건가?' 싶은 망상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장손의 의견을 먼저 듣는 것처럼, 숭배(* 맹목적 추종)의 태도는 사실 오늘날에도 모든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종교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펼친 정신적 유희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세상과 우주에 대해 받은 어떤 강렬한 인상을 눈에 보이는 형상에 비유하고 의인화하는 게 인간 본성인데, 거기에 역사적 실제성이 더해지면 종교가 된다는 가설이다. 선조들이 목숨을 좌우하는 결정을 우화에 맡겼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종교를 믿은 이유를 더욱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각 종교 속에 어느 정도 진리가 담겨 있고,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지침으로 의지하였다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설명 아닌가? 종교라는 것이 순수하게 사람들을 기만하기만 하는 것이라면, 종교에 의해 조직된 세력은 생명을 낳고 창조적으로 되기보다는 병폐와 사멸만을 낳았을 것이니 말이다.
종교의 본질은 '자연의 힘이 주는 공포와 경이로움을 (신이나 악마와 같은) 거대한 인격체로 바라보며 신성시한 것'이다. 신앙 체계가 생기기 이전 세상 사람들은 태어나 형언할 수도 없고 감탄만 나오는 막연한 경이감에 평생 답만 찾다가 죽었다. 그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사상과 세계관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마음을 일깨워 살려낸 사람은 그들 사이에서 정신적인 영웅이자 사상가가 되었다. 현대에 와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천재(* 대문호)나 시인이라고 부른다. 원시 사회에서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수수께끼를 풀어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자, 인식 세계 밖의 축복을 가져다준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선율을 통해 삶의 흐름에 대한 지혜를 표현하는 이들은 세상에서 해야 할 일과 내세의 모습을 알려주는 등으로, '삶의 혼돈에 빛을 비춘 사람들'이었다.

과학자들은 세상을 하나의 커다란 기계장치라고 생각하며 각 부품에 이름을 붙이고(* 범주화) 현상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면(* 개념화) 세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생명체처럼 학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불가지'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신비의 대상을 (* 과학자처럼) 통찰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는 플라톤과 같은 '성인의 깊이'를 견지해야 가질 수 있다.
최초로 종교적 사색을 시작한 사람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자연 경관과 같은 것에서 무한한 아름다움과 경외감을 발견하는 '천진함'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이렇게 신성한 힘의 복합체로 느껴지는 시간이나 우주와 같은 것에 대해 경건한 사람들은, 전체를 통칭하여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다른 설명 들을 덧붙이는 게 오히려 자연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신'이라는 표현을 제외한 모든 것에, 차라리 침묵하기를 택했다.
최고신이 세상 만물에 대한 상징이라면, 인간 존재는 그중에서도 기적이자 헤아릴 수도 없는 신비이다. 높은 존재는 인간의 육체, 능력, 생명을 하나의 의복으로 삼고 그 자신을 드러낸다. 역사란 이렇게 깃든 사상이 모범이 되는 지도자, 영웅, 위인으로서 실현된 것이다. 고대 사상 체계나 기독교, 그리고 모든 사회에서의 '정기'는 위인의 신성과 숭고함에 대한 완전한 존경, 즉 '영웅 숭배'를 기반으로 한다. 이 사실은 단어 '후작(Duke)'의 언어학적 기원이 '지도자(Dux)'라는 점과, '왕(King)'의 언어학적 기원이 '아는 사람(Könning)'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Canning)'에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신적 영웅은 혼란, 불신, 무기력, 회의주의, 형식주의가 만연한 시대가 불러낸다. 모든 사회의 반석은 정신적 영웅이 보여준 지혜와 용기에 대한 찬탄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을 인간의 본성이 바로 이것(* 정신 찬탄)이다. 이것이 역사 속 모든 종교가 추구하려 했던 가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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