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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中)
V I R T U E K I N G덕왕의 지식한스푼

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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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2025.11.03조회수 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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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구독자 361명구독중 3명
이세계에 환생한 삼국지의 진정한 덕왕은 지혜와 덕을 베풀고자 오늘도 수련에 매진한다 투자자산운용사, 금융투자분석사 https://blog.naver.com/virtueking

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中)

겸손과 호기심으로 써 내려온 인류의 우주 서사시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선언한 1543년부터, 암흑물질의 존재를 발견한 1933년을 지나 우주에 사는 생명체의 숫자를 추청한 드레이크 방정식까지 긴 여정을 함께 했습니다. 

오늘은 이야기의 두 번째 시간으로, 197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의 인류의 우주를 향한 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3. 지구 밖으로 망원경이 올라가다 (1970년~현재)

우주망원경 하면 거의 대부분 허블 우주망원경을 떠올리며,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제임스웹 우주망원경까지 알지만 사실 우주망원경은 꽤 많습니다. 1970년 이후 90개 이상의 우주망원경이 발사되었으며, 현재 약 26개가 가동 중입니다. 가시광선부터 감마선부터 적외선, 그리고 전파까지 8개 파장 영역을 커버하며 지구와 우주를 365일 24시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호기심을 넘어 관음증이라 할 만합니다. 왜 굳이 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릴까요? 지상 망원경도 충분히 크고 강력한데 말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지구의 대기가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대기는 우리를 보호하는 고마운 존재지만, 천문학자들에게는 관찰에 방해만 되는 흐린 유리창과 같습니다. 빛이 굴절되고 흔들리고 일부는 아예 흡수됩니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것도 사실은 대기의 요동 때문입니다. 별 자체는 반짝이지 않습니다.

선생님 거짓말쟁이!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 했잖아요?


허블 우주망원경(1990년 발사~현재): 2.4미터 주경을 가진 허블은 30년 이상 운영되며 천문학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처음 발사되었을 때는 참사였습니다. 렌즈에 결함이 있어서 흐릿한 이미지만 나왔고, 언론은 "10억 달러짜리 실패작"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 우주왕복선 승무원들이 우주에서 수리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후 허블은 우주 나이 측정(138억 년), 암흑에너지 발견, 은하 진화 연구 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1995년 찍은 '허블 딥 필드' 사진은 손톱 크기만 한 하늘 영역을 10일간 노출하여 3,000개 이상의 은하를 담았습니다. 각각의 은하에는 수천억 개의 별이 있습니다. 우주의 광대함을 실감하게 한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허블은 외계행성 대기 프로파일 연구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2001년 HD 209458b에서 나트륨을 최초로 검출하여, 수십 광년 떨어진 행성의 대기 구성을 알아낼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1시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수리 성운 창조의 기둥 / 허블 울트라 딥필드 / 솜브레로 은하 / 황소자리 게성운



찬드라 X선 천문대(1999년~현재): X선으로 블랙홀, 초신성 잔해, 은하단 등을 연구합니다. X선은 대기에 완전히 흡수되기 때문에 반드시 우주에서 관측해야 합니다. 찬드라는 인도 천체물리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블랙홀 주변의 뜨거운 가스(수백만 도)가 내는 X선을 관측하여 블랙홀의 존재를 확인하고 질량을 측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스피처 우주망원경(2003-2020): 적외선으로 먼지에 가려진 은하, 별 형성 지역, 외계행성 대기를 연구했습니다. 적외선은 먼지를 투과할 수 있어서 가시광선으로는 볼 수 없는 영역을 관측할 수 있습니다. 마치 X선이 우리 몸을 투과해서 뼈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2009-2018): ‘통과 측광법(Transit photometry)’으로 2,600개 이상의 외계행성을 발견했습니다. 행성이 별 앞을 지나갈 때 별빛이 약간 어두워지는 것을 감지하는 방법입니다. 케플러는 15만 개의 별을 동시에 모니터링하며 9년간 하늘을 응시했습니다. 단일 임무로는 인류 역사상 최다 행성 발견 기록입니다. K2 미션으로 연장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TESS(Transiting Exoplanet Survey Satellite)가 그 임무를 이어받았습니다.

밝기 변화를 통해 행성을 발견하는 통과측광법 (Transit photometry)



플랑크 위성(2009-2013): 우주배경복사(CMB)를 전례 없는 정밀도로 관측하여 우주 나이를 13.787±0.020억 년으로, 우주 구성을 암흑에너지 68.3%, 암흑물질 26.8%, 일반 물질 4.9%로 결정했습니다. 빅뱅 38만 년 후의 빛을 측정하여 우주의 '베이비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2021년 발사~현재): 현 지구 1 대장으로써 금으로 코팅된 6.5미터의 주경을 가진 적외선 망원경이며, 허블의 공식 후계자입니다. 지구에서 150만 km 떨어진 라그랑쥬 L2 지점(우주세기 건담에 나온 바 있습니다)에 위치하며 테니스 코트 크기의 썬실드(sunshield)로 -233°C의 초저온을 유지합니다.


라그랑쥬 L2 지점은 지구-태양 사이의 중력 균형점으로, 지구와 태양을 동시에 등지고 있어서 태양 빛과 열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마치 해와 달이 일직선상에 있어서 일식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적외선 관측에는 극저온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 위치가 완벽합니다.



JWST는 초기 우주, 은하 형성, 외계행성 대기 연구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023년 외계행성 WASP-39b 대기에서 CO₂와 SO₂를 검출했고(CO₂는 외계행성 최초, SO₂는 광화학 반응의 증거), 134억 년 전 은하를 관측했습니다. 이것은 빅뱅 후 6억 년 만에 형성된 은하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은하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발견은 기존 은하 형성 이론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습니다.


K2-18b에서는 메탄, CO₂, 수증기를 발견했는데, 이 관측을 분석한 결과 풍부한 수소의 대기와 물로 된 액체 바다인 '하이시안(Hycean)'을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수소와 물이라니! 혹시 생명이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JWST는 오늘도 관음증 환자처럼 뚫어져라 쳐다보며 행성들을 스토킹하고 있습니다.


우주망원경은 대기의 한계를 극복하고, 파장별로 다른 우주 과정을 드러냅니다. 허블과 JWST는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우주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허블이 가시광선과 자외선에 강하다면, JWST는 적외선에 특화되어 있어서 함께 사용하면 우주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도구들은 우주의 비밀을 풀어가는 인류의 눈입니다.


이처럼 대단한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일단 아무나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JWST의 건조에는 애초 예상했던 10억 달러의 10배가 넘는 110억 달러(13조 원)가 투입됐습니다. 유럽우주국(ESA), 캐나다우주국(CSA)이 NASA와 함께 제작과 발사에 함께 참여했는데, NASA가 97억 달러, 유럽우주국이 8억 달러, 캐나다우주국이 2억 달러를 부담했습니다. 이후 참여 정도에 따라 유럽 천문학자들은 전체 관측 시간의 15%를, 캐나다 천문학자들은 5%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임스웹은 AS가 불가능합니다. 설계 수명은 최소 5년으로써 NASA는 10년까지는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긴 했지만 고장 나면 그걸로 끝입니다. 먼 라그랑쥬 포인트로 수리기사를 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허블우주망원경은 발사 직후, 중대한 오류가 발생하여 우주왕복선으로 AS기사를 보내 수리는 물론 장비 업그레이드까지 진행한 대단한 역사가 있습니다. 제임스웹 발사를 바라보는 세계 천문학자들의 가슴엔 부푼 희망과 함께 걱정과 부러움 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JWST가 인류에게 선물한 장면들 (1시부터 시계방향): 창조의 기둥 / 고리성운 / 제임스웹 울트라 딥필드 / 슈테판 5중주



TMI: 오리가미(종이접기) 기술이 총동원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자동차 속 에어백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JWST)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모두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접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어백은 차량 내부에, 제임스 웹 망원경은 로켓 안에 접어 넣지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접을 수는 없으니, 바로 종이 접기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오리가미(Origami)’는 일본어 '오리(おり, 접다)'와 '카미(かみ, 종이)'가 합쳐진 말로, '종이접기'를 뜻하며,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단어입니다. 



종이접기는 단순히 동서남북 놀이나 두근두근 내 마음 전해보려 접어보지만 효과 없고 손만 아픈 천 마리 종이학을 접는 것 이상의 활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우주 과학과 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종이접기를 접목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의외의 성과를 보인 분야가 우주 과학입니다.



우주 과학에 종이접기를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미우라 코료(Miura Koryo)’ 박사입니다. 그는 우주 미션을 수행할 장치의 부피와 크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종이접기 기술에 주목하여 네모난 면의 반대편 두 모서리를 잡아당기면 쉽게 펼칠 수 있도록 종이접기 패턴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평평하고 넓은 면을 아주 작게 접을 수 있어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이 패턴은 비단 첨단 우주과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활용도가 높아 ‘미우라 패턴(Miura Pattern)’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우주 과학에 종이접기를 최초로 도입한 미우라 코료(Miura Koryo) 박사


1995년 드디어 미우라 패턴으로 접은 태양열 전지판을 갖춘 위성이 발사되어 성공적으로 태양열 전지판을 활짝 폄으로써 종이접기의 가능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JWST도 미우라 패턴처럼 접어서(혹은 구겨서) 발사했고 라그랑쥬 L2포인트에서 성공적으로 장치를 펼쳤습니다.




14. 화성과 얼음 위성에서 물을 찾다 (1971-2024년)

화성의 물 발견

1971년, 마리너 9호가 화성 궤도에 진입하여 과거 강과 침식 지형을 관측하였습니다. 이것은 화성에 한때 액체 물이 흘렀다는 직접적인 증거였습니다. 마리너 9호가 도착했을 때 화성 전체가 거대한 먼지 폭풍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몇 달을 기다린 끝에 먼지가 가라앉고 거대한 계곡, 화산, 그리고 물이 흘렀던 놀라운 흔적들이 드러났습니다.


1976년, 바이킹 1호와 2호가 화성에 착륙하여 토양에서 0.8%의 물을 확인하고, 계곡 네트워크를 발견하였습니다. 화성 극관의 계절 변화는 이산화탄소가 얼었다 녹았다 하기 때문입니다. 북극관은 주로 물 얼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남극관은 일부 이산화탄소를 포함합니다.


2015년, NASA는 RSL(Recurring Slope Lineae, 반복되는 경사면 선형 무늬)이 계절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염수 흐름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여름철 따뜻한 경사면에서 어두운 줄무늬가 나타났다가 겨울이 되면 사라지는데, 이것이 소금물이 흐른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소금물은 순수한 물보다 어는점이 낮아서 영하의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RSL (Recurring Slope Lineae) on Mars


2024년에는 2022년 임무를 종료한 인사이트(InSight) 착륙선이 보내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화성 중간 지각(깊이 11.5-20 km)에 액체 저수지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화성 물 순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으며 현재도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 Rover)와 큐리오시티(Curiosity Rover)가 화성의 고대 물 환경과 미생물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화성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젖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화성 탐사계의 자강두천

 


목성과 토성 위성의 물 발견

1989년, 보이저 2호가 해왕성의 위성 트리톤에서 질소 간헐천과 얼음 화산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외행성 위성에서 활발한 지질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초기 증거였습니다. 트리톤은 태양계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235°C)인데도 불구하고 활화산이 있었습니다.


2005년, 카시니 탐사선이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남극에서 물 분출을 관측하여 지하 바다의 존재를 시사하였습니다. 카시니의 INMS(이온 및 중성 질량분석기)가 물, 메탄, 암모니아를 검출하였고, 2017년 수소를 발견하여 열수 활동(hydrothermal activity)을 입증하였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지구의 심해 열수 분출구 주변에는 태양 빛 없이도 화학 에너지만으로 생존하는 박테리아, 거대한 관벌레, 독특한 새우와 게 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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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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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팬티
2025.11.03

재밌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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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작성자
2025.11.04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회사게시판. 조회수가 떨어져서 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살짝 고민하던차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감사한 댓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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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서바이벌
2025.11.04

38도의 열에도 멋진 컨텐츠 생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주로 발사한 망원경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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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작성자
2025.11.05

감사합니다. 열나게 쓴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다음 주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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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上) 겸손과 호기심으로 써 내려온 인류의 우주 서사시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열심히 정진하며 잘 지냈습니다.  추석연휴 동안에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뉴스가 끊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정적인 주제를 꺼내볼까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속 잔잔한 호수 하나쯤은 필요할 테니까요. 연휴에 우연히 애니메이션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던 인류가 호기심의 횃불을 들고 혹독한 핍박 속에서도 과학적 업적을 이룩한 여정은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탐구의 노력과 고통 속에서 피어난 진리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언제나 진합니다. 사실 거의 모두가 별을 좋아합니다. 각자의 가슴속에 자신만의 별이 있듯이 제게도 그렇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별들은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오리온자리입니다. 군대 시절 추운 겨울에 경계근무를 설 때마다 밤하늘 가득한 별들 사이로 두 별자리를 발견하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 같이 좋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경이롭고 누구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 별들이 우리의 세계관을 어떻게 뒤집었는지, 그 여정을 흥미롭게 따라가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여정은 인류가 우주 속에서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재정의하고 무지와 편견과 싸워온 장엄한 대서사시입니다. 0.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 (기원전 4세기~1543년) 모든 혁명에는 무너뜨려야 할 구체제가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해하려면 먼저 1,500년 이상 지속된 천동설(天動說)의 세계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유럽까지,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절대적 중심이며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우주관: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은 천체들이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제자 에우독소스는 각 행성이 여러 개의 투명한 구(球)에 실려 회전한다는 동심천구설을 제안했습니다. 하늘의 움직임을 27개의 겹겹이 쌓인 구로 설명한 것입니다. 마치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지구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하늘이 둘러싸고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기원전 384~322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모델을 철학적으로 완성했습니다. 그는 우주를 두 영역으로 나누었습니다. 그의 이론에서 달 아래의 '지상계(sublunary sphere)'는 불완전하고 변화하며, 흙·물·공기·불 네 원소로 구성됩니다. 반면 달 위의 '천상계(superlunary sphere)'는 완벽하고 영원불변하며, 제5원소인 에테르로 이루어졌습니다. 천체들은 완벽한 원운동만 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라 세계관이었습니다. 지구가 중심이라는 것은 인간이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였고, 하늘의 불변성은 신의 완벽함을 반영했습니다. 교회는 이 우주관을 신학과 결합하여 가장 바깥 천구 너머에 천국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정교한 체계: 기원후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천동설을 수학적으로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행성들이 밤하늘에서 가끔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역행 운동'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화성을 관측하면 대부분은 동쪽으로 가다가, 몇 달간 서쪽으로 후진하고, 다시 동쪽으로 갑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재적인 기하학적 트릭을 고안했습니다. 바로 '주전원(epicycle)'과 '이심원(eccentric)' 개념입니다. 행성이 작은 원(주전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작은 원의 중심이 큰 원(이심원)을 따라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입니다. 마치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큰 원판 위에서 돌고, 각각의 목마는 또 자기 축으로 도는 것과 비슷합니다. 더 복잡한 것은 지구가 정확한 중심이 아니라 약간 벗어나 있다는 '편심(eccentricity)'과, 회전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등화점(equant)' 개념까지 도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모델은 놀랍도록 정확했습니다! 천체의 위치를 몇 년 앞까지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1,500년의 지배: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관측 자료와 놀랍도록 잘 맞았고, 철학적으로도 완벽해 보였으며, 종교적으로도 올바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중세 유럽 대학에서 가르치는 표준 우주론이 되었습니다. 단테의 『신곡』도 이 우주관을 바탕으로 쓰였고, 모든 천문학 교과서가 이것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고대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생각한 사람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아리스타르코스는 이미 태양중심설을 주장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이 1,500년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천동설이 지구의 특별함과 하늘의 완벽성을 주장하는 크리스트교의 세계관과 잘 맞았기 때문이며, 또한 관측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천구의 개수가 수십 개에 이르는 등 상당히 복잡했지만 그때까지 관측한 결과를 대체로 잘 설명할 수 있어서 그럭저럭 쓸 만했기 때문입니다. 천동설은 연주시차 문제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태양이 돈다"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도 잘 맞아떨어졌으며, 무엇보다도 '지구는 당연히 정지해 있다'는 우리가 느끼는 상식과도 완벽히 들어맞았습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면 항상 바람이 불어야 하고 새들은 뒤처져야 하며 건물은 무너져야 합니다. 위로 던진 돌은 앞이나 뒤로 떨어져야 하며 우리는 항상 어지럼증을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도 벌어지지 않으므로 지구는 분명히 움직이지 않는 세상의 중심임이 당연했습니다. 이 '상식'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적이었습니다. 때로는 진실이 상식보다 더 낯설고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관측이 정밀해질수록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은 더 많은 주전원을 필요로 했습니다. 어떤 버전에는 80개가 넘는 원이 등장했습니다. 너무 복잡했습니다. 마치 엑셀 수식이 너무 길어져서 본인도 무슨 계산을 했는지 모르게 된 것처럼 말이죠. 13세기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는 "만약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나에게 조언을 구했더라면, 더 간단한 설계를 제안했을 텐데"라고 비꼬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1543년, 폴란드의 한 사제가 1,500년의 벽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였습니다. 1.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발견하다 (1543년) 상상해 봅시다. 지구가 우주의 유일한 중심이란 믿음이 1,5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속되다가 어느 날 그 반대의 주장이,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해 생뚱맞게 등장했다면 어떨까요? 아마 신문 한 귀퉁이의 가십란에도 실리지 못할 만큼 미미하거나 어느 미치광이의 주장 정도로 치부해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유력자라면 모든 기득권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사회적 매장을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마치 평생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믿다가, 어느 날 자신이 수많은 등장인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선고받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사망 직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태양중심설을 제시하였습니다. 코페르니쿠가 사망 직전까지 출판을 망설였던 이유는 당시 그가 사제의 신분으로서 정립한 주장이 가톨릭 교회의 우주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저서는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립한 천동설을 무너뜨리는 과학 혁명의 서막을 열었으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여러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Nicolaus Copernicus, 1473 - 1543 이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종교계와 학계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후대 과학자들이 이를 입증하며 불꽃을 이어갔습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1609년부터 1619년까지 행성운동의 세 법칙을 확립하여 행성이 완벽한 원이 아닌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증명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완벽한 천상계'라는 믿음에 또 한 번의 타격을 주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10년 망원경 관측으로 금성의 위상 변화와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며 지동설의 증거를 쌓았습니다. 금성이 달처럼 차고 기울고 하는 현상은 금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갈릴레오는 이 발견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가택연금에 처해졌지만, 그의 관측 기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의 말 또한 진리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써 후세에 길이 남았습니다. Galileo di Vincenzo Bonaiuti de' Galilei, 1564 - 1642 결국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천문학적 발견을 넘어 인류의 우주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지구가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코페르니쿠스 원리'는 현대 우주론의 토대가 되었으며,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인류의 겸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TMI: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1731 ~ 1783) 조선 중기 실학자겸 과학사상가인 담헌 홍대용(1731~1783) '지구자전론'은 물론이고 '우주무한론'을 설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담헌서>에서 "하늘의 뭇별은 각각의 세계를 갖고 있다. 우주세계에서 지구 또한 한 개의 별일 뿐이다. 무한한 세계가 우주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지구 만이 중심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스펙! 2. 초신성을 관측하다 (185년 ~ 1572년) 초신성은 서기 185년 12월 7일,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천문학자들(태사)에 의해 처음 관측되었습니다. 중국의 정사인 《후한서(後漢書)》에는 "객성(客星, Guest Star)", 즉 "손님별"이라는 의미로, 평소에 보이지 않던 별이 갑자기 나타났음이 기술되어 있으며 지금의 알파 센타우리 부근에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으로는 "크기가 방석의 절반만 했다(大如半席)"고 묘사되며, 약 8개월 동안 오색으로 빛나다가 점차 어두워지며 사라졌다고 합니다. 현대에 X선 관측 등을 통해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추적한 결과, 해당 천체가 RCW 86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이 빛나는 '새로운 별'(Nova Stella)이 달보다 훨씬 멀리, 즉 항성들의 영역에 있는 새로운 천체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과학자는 덴마크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입니다. 1572년 11월 11일, 티코 브라헤는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갑자기 나타난 밝은 '새 별'을 목격하였습니다. 이 천체는 금성보다 밝아 낮에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이 불청객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티코는 이 현상을 단순히 경이로운 구경거리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18개월 동안 꾸준히 관측하며 최대 밝기가 -4등급에 달한다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가 보는 가장 밝은 별들보다도 훨씬 밝은 수준입니다. 그는 1573년 『새로운 별에 관하여』를 출간하여 '신성(nova)'이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하였습니다. 이 발견이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요?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000년 가까이 유지되던 '천구 불변성'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달보다 먼 천상계는 신의 영역으로써 완벽하고 영원불변하며, 변화는 오직 불완전한 지상계에서만 일어난다고 믿었는데, 완벽한 천상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 당시 우주관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티코는 시차 측정을 통해 이 천체가 달보다 훨씬 멀리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시차란 관찰자의 위치가 바뀔 때 천체의 겉보기 위치가 변하는 현상입니다. 만약 이 별이 가까이 있었다면 밤새 위치가 바뀌었어야 했지만, 티코가 관측한 결과 위치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항성 영역에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낸 혁명적인 증거였습니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티코가 본 이 초신성은 7,500에서 13,000광년 떨어진 Ia(아이에이) 형 초신성으로, 백색왜성이 동반성으로부터 물질을 흡수하다가 찬드라세카르 한계(태양 질량의 1.4배)를 초과하면서 폭발한 결과입니다. 백색왜성은 죽은 별의 잔해인데, 옆에 있는 동료 별에서 가스를 계속 빨아먹다가 배가 터져버린 것이죠. 그 폭발의 밝기가 너무나 강렬해서 우리 은하 전체보다도 밝게 빛났던 것입니다. TMI: Ia형 초신성(Ia形超新星, type Ia supernova) 표준촛불: Ia형 초신성은 밝기가 일정하여 먼 은하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활용됩니다. 암흑 에너지 연구: Ia형 초신성 관측 데이터는 우주 가속 팽창을 설명하는 암흑 에너지 연구에 중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 연구로 2011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었습니다. 티코의 기록은 ...
덕왕의 지식한스푼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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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上)

비켜! 이 구역 미친놈은 나야!! 바다의 깡패, 남극의 일진 아델리펭귄 (下)

비켜! 이 구역 미친놈은 나야!! (下) 바다의 깡패, 남극의 일진 아델리 펭귄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한 주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주말에 책들이 잔뜩 왔습니다. 추석연휴 때 읽고 싶던 책들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와서 참 기쁘더군요.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저를 보고, 제 삶이 담백하게 잘 익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글을 마친 후 언제나처럼 추석 동안 읽기 좋은 책을 소개한 후 긴 휴가를 떠납니다. 아마 매우 개인적인 기준에서 선정한 책들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아델리펭귄의 파탄적 성격과 행동부터 크릴새우 어업으로 인한 녀석들의 식단 변화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거대 기업에 대한 분석과 자원을 둘러싼 갈등까지 다루며 마무리하겠습니다. 펭귄 똥에서 시작한 2차적 사고의 여정을 함께 떠날 준비가 되셨나요? 출발합니다. 빠라바라바라밤. 7. 분홍색 똥의 비밀 ‘구아노(Guano)’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구아노란 바닷새, 박쥐, 해양동물 등의 축적된 유기 배설물이 수천~수만 년 동안 퇴적, 응고되어 만들어진 ‘돌’입니다. 한낱 돌멩이에 불과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실은 인류의 미래를 쥐고 있는 열쇠입니다.  구아노는 ‘인광석(燐鑛石, phosphate rock)’이라고도 불리는데, 질소와 인산염이 풍부한 천연비료로써 19세기 유럽에서는 '하얀 금'으로 불릴 정도로 경제적 가치가 높았으며, 21세기 들어 전지구적 인구폭증과 식량위기 등을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펭귄 똥은 핑크색 아델리 펭귄의 배설물도 구아노의 일종으로 다른 조류의 그것과는 달리 분홍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크릴새우에 들어있는 '아스타잔틴(Astaxanthin)’이라는 색소 때문입니다. 이 색소 때문에 위성에서도 아델리펭귄들의 서식지를 쉽게 관측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스타잔틴이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숨겨진 보석입니다. 눈 건강 영양제의 성분표에 "루테인, 지아잔틴, 아스타잔틴"이라고 적힌 그 아스타잔틴이 바로 아델리펭귄의 주식인 크릴새우에서 추출한 것입니다. 최고의 성분 아스타잔틴 예전에는 빨강, 주황, 노랑, 녹황색 과일과 채소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베타카로틴 성분이 주목받았습니다. 베타카로틴은 인체 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어 시각 기능 지원, 피부 건강,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며, 특히 강력한 항산화제로 작용해 노화 방지와 자외선 손상 보호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의 연구를 통해 베타카로틴이 흡연자의 폐암 위험을 증가시키며 고용량을 장기간 복용 시 피부가 주황색으로 변하는 '카로티노이드증(carotenodermia)'과 과다 복용 시 일부 간 기능 장애나 소화기 이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주목받게 된 것이 바로 루테인과 지아잔틴, 그리고 아스타잔틴입니다. 항산화 물질 중 하나인 아스타잔틴은 눈의 안쪽까지 직접 도달하여 눈의 피로 개선 효과가 뛰어난 성분인데, 기존 항산화제와는 다른 구조로 강력하게 세포를 결합하여 세포막의 탄력성을 증대시키고 활성산소를 방어합니다. 또한 비타민C보다 6,000배 이상의 효과를 가진 항산화제로써 눈 건강뿐 아니라 신체의 질병과 노화를 막는데도 효과적인 성분입니다. 하루 5mg의 아스타잔틴을 한 달 동안 섭취한 결과, 눈의 피로가 54% 감소했으며, 눈의 초점 조절 능력이 개선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각종 전자기기 사용으로 인해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성분이기에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으며 루테인/지아잔틴이 주성분인 눈 건강 영양제에 보조성분으로 추가되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안연구소(NEI) 주관으로 수행된 대규모 임상연구에 따르면(AREDS) 루테인 10mg + 지아잔틴 2mg+ 아스타잔틴 6mg의 조합이 가장 높은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크릴에서 추출한 천연 아스타잔틴은 합성 제품보다 뛰어난 생체 이용률을 자랑합니다. 이는 크릴오일에 함유된 아스타잔틴이 오메가-3 인지질과 결합되어 세포 내 흡수율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눈 건강 영양제를 구입하실 때  아스타잔틴이 들어있는지 확인하세요. 덕왕은 닥터파이토 제품을 먹습니다 (광고 아님 / 내돈내산) 크릴 전쟁 이렇게 대단한 보물을 두고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습니다. 2025년 기준 글로벌 건강식품(health/wellness foods) 시장 규모는 약 9,000억 달러 내외로 추산되며 2030~203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은 약 8 ~10% 내외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 중 건강식품(건강보조제/식이보충제) 분야가 전체 시장의 약 30~40% 내외를 차지하는 가운데 아스타잔틴의 시장 규모는 2025년 기준 약 19억~28억 달러로 향 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핫’한 분야입니다. 이 때문에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아케르 바이오마린(Aker BioMarine)이 크릴 오일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네덜란드의 DSM(현재 DSM-Firmenich), 일본의 후지케미컬, 미국의 사이아노테크(Cyanotech) 등이 천연 아스타잔틴 생산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투자자인데 생태계 최강자를 살펴보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찍먹해보겠습니다. 8. 크릴계 최강자 AKER BIOMARINE 크릴 회사에 투자하면 대박 날까? Aker BioMarine은 2006년에 노르웨이 Aker Group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생명공학 및 해양 자원 기업으로써 세계 크릴 어획량의 약 70% 이상을 점유하는 압도적인 글로벌 1위의 크릴 원료 공급기업으로 강력한 시장 지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독특한 기술인 *Eco-Harvesting을 활용해 남극에서 지속 가능하게 크릴을 어획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강기능식품, 식품원료, 수산용 사료 등 다양한 크릴 기반 제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Eco-Harvesting: 크릴새우를 지속 가능하고 환경 친화적으로 어획하는 Aker BioMarine만의 독자적인 트롤링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크릴새우만 통과하도록 설계된 매우 미세한 그물망을 사용하기에, 크릴 이외의 다른 해양 생물(부착 생물, 어류, 포유류)의 혼획(by-catch)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크릴을 망에 넣어 끌어올리지 않고, 물과 함께 부드럽게 펌핑하여 선상으로 옮기기 때문에 크릴이 부서지거나 소중한 영양소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 신선한 상태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의 궁극적 목적은 해양 생태계 보호 및 비목적 수산 자원의 혼획 감소이며, 남극 주변 생태계와 해양 자원 보호에 중점을 둔 혁신적 어획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지속가능한 어업 인증(MSC)도 획득하였습니다. ECO Harvesting Aker BioMarine은 크릴 어획용 선박 3척 및 보급선 1척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요 생산시설로는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연간 1,200 톤 규모의 크릴오일 가공 공장이 있습니다. 주식은 노르웨이 오슬로 증권거래소(Oslo Stock Exchange, OSL)에 상장되어 있으며 티커는 ‘AKBM.OL’입니다. 재무분석, 숫자로 보는 속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스타잔틴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공급하는 회사라니! 여기까지 보면 참 전도유망해 보입니다. 하지만 순순히 매수버튼을 누를 덕왕이 아닙니다. 물론 오슬로 증권거래소라 매수할 수도 없습니다만 순수한 호기심은 덕왕으로 하여금 재무제표를 씹고 뜯고 맛보도록 이끕니다. 현재 주가와 재무제표를 간단히 분석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찾았습니다. 2024년 기준으로 갑자기 순이익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입니다. 이익의 증가가 이미 주가에 반영되어 있다면 그 이익이 일회성인지 아니면 지속적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익이 지속적이라면 주가는 합리화될 수 있지만 일회성 이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면 매우 고평가 되어 있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무상태표를 보니 자산과 부채가 한꺼번에 줄었습니다. 현금흐름표도 살펴보니 2024년에 투자활동현금흐름은 크게 증가했고 재무활동현금흐름은 크게 마이너스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번 글이 본격적인 기업분석이나 재무회계시간은 아니지만 이해를 위해 짧게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TMI: 재무제표 실력 업그레이드의 첫걸음, 현금흐름표 기업의 재무제표는 흔히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재무상태표로 나뉩니다. 이중 기업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손익계산서지만 이 것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기업이 외상으로 판 경우 매출로는 잡히지만 실제 현금은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상으로 팔아서 나중에 받을 돈을 근사한 재무제표 용어로 ‘매출채권’이라고 하는데, 이 매출채권이 많을 경우 흑자도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업에 현금이 잘 돌아가는지, 갑자기 닥친 경제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현금이 풍부한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현금흐름표를 확인해야 하며 아래와 같이 3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업활동현금흐름(Cash Flows from Operations: CFO):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얻은 현금흐름으로 순이익에서 감가상각비(Depreciation and amortization)와 운전자본(Working Capital adjustments)등을 조정하여 더하므로 대게 순이익보다 크게 잡힙니다. 투자활동현금흐름(Cash Flows from Investing: CFI): 기업이 영업활동을 위해 유형, 무형자산에 투자하는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금흐름으로 흔히 Capex라고도 불립니다. 공장을 짓거나 회사를 인수할 경우 현금이 나가므로 이때 투자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가 되며, 공장이나 사업부를 매각할 경우 돈이 들어오므로 이 경우 투자활동현금흐름은 플러스가 됩니다. 재무활동현금흐름(Cash Flows from Financing: CFF): 기업이 돈을 빌리면 유입이므로 플러스, 돈을 갚으면 유출이기에 마이너스로 표시됩니다. 기업이 유상증자를 할 경우에도 주주들로부터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때 재무활동현금흐름은 유입인 플러스로 잡힙니다. 이 정도 알고 다시 아래의 현금흐름표를 보겠습니다. operating: 영업활동현금흐름 / investing: 투자활동현금흐름(Capex) / financing: 재무활동현금흐름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24년에 자산과 부채가 같이 줄어들었는데, 현금흐름표를 보니 같은 해에 뭔가를 팔아서 돈이 들어왔고(붉은색), 누군가에게 빚을 갚았기 때문에 돈이 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록색) 보통 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줄었다면, 십중팔구 팔아서 빚을 갚았다는 뜻입니다. 뭔가 냄새가 나는군요. 이 기업이 당근을 했는지 추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2024년 ...

비켜! 이 구역 미친놈은 나야!! 바다의 깡패, 남극의 일진, 아델리펭귄 (上)

비켜! 이 구역 미친놈은 나야!! (上) 바다의 깡패, 남극의 일진, 아델리펭귄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주까지 3주에 걸쳐 애니메이션에 덕력을 소비하느라 기력이 많이 쇠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주에는 가벼운 주제를 다뤄볼까 합니다. 세상에는 외모와 성격이 180도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악인인데 마음은 비단결인 사람이 있는 반면, 세상 착하게 생겼는데 뼛속까지 글러먹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 회사에 누가 봐도 디아블로에서 튀어나온 바바리안 같은 엄청난 근육맨 한 분이 계셨는데, 피를 음료수 삼아 마실 것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정성스럽게 화초를 가꾸고 하늘을 바라보며 “아! 참 예쁘다”라고 말하는, 터질듯한 반전의 감수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얼굴은 전과 50 범인데 마음은 비단결인 엔젤의 전설의 주인공, 기타노 세이치로 오늘 소개할 아델리펭귄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귀여운 외모 뒤에 숨겨진 성격을 가진 이 남극의 깡패를 알게 되신다면 아마 앞으로 첫인상을 믿지 않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이 작은 펭귄에 얽힌 미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TMI: 모든 사람의 얼굴이 악마로 보이는 ‘얼굴변형시증’ PMO 얼굴변형시증(PMO)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람을 인식하는 모습 얼굴변형시증(PMO)은 사람의 얼굴을 원래의 모습이 아닌 왜곡된 모습으로 인식하는 장애입니다. 화면이나 종이에 그려진 얼굴, 기타 사물을 볼 때는 정상적으로  왜곡 없이 보이지만 사람 얼굴만 “악마처럼” 일그러져 보인다고 합니다. ※ 참고로 오늘은 조금 불쾌할 수 있는 내용과 비속어 등이 쓰입니다. 내용을 충실하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지만 다소 불편하실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1. 사랑의 이름으로 태어난 깡패 1840년 프랑스 탐험가 쥘 뒤몽 드위빌(Jules Dumont d'Urville)은 남극에서 새로운 펭귄 종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이 새로운 펭귄을 '아델리펭귄(Pygoscelis adeliae)'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로맨틱한 시작이었지만 이 펭귄의 실체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키 65-75cm, 몸무게 3.9-6.5kg의 이 작은 펭귄은 검은색 머리와 등, 흰색 배, 그리고 양쪽 눈 가장자리의 특징적인 흰색 고리 무늬로 마치 안경을 쓴 신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외모에 속으면 큰일납니다.  2. 남극 대륙을 호령하는 주인들 아델리펭귄은 황제펭귄과 더불어 가장 남쪽에 서식하는 펭귄입니다. 남극 대륙 연안 전체는 물론 스콧섬, 페테르 1세섬, 사우스셰틀랜드 제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무려 379만 쌍이 251곳의 번식지에서 번성하고 있는데, 이는 서울시 인구보다 많은 펭귄들이 남극 전체에 자신들만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이들의 이동 능력은 가히 국제적입니다. 비번식기에는 가까운 아르헨티나에서부터 멀리는 호주, 뉴질랜드까지 이동하며 연간 누적 이동거리가 약 13,000km에 달할 정도로 장거리 여행을 다닙니다. 마치 남극을 본거지로 둔 국제 마피아 조직 같습니다. 이 녀석들은 염분 조절을 위한 특수 기관인 염류샘이 있어 극한 환경에서도 수분과 염분의  균형을 조절하며 장거리 이동에 따른 생존력을 극대화합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을 줄 아는 기특한 녀석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왜 '남극의 깡패, 진정한 도른자'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3. 성격 파탄의 끝을 보여주는 '남극의 깡패' 아델리펭귄의 진짜 모습은 귀여운 외모와는 정반대입니다. 이들은 온갖 포악하고 정신분열적인 행동을 일삼습니다. 펭귄 연구의 선구자였던 조지 머리 레빅은 1911~1912년 남극 케이프 아데어에서 아델리 펭귄의 번식기를 관찰하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레빅은 이곳에서 수컷 펭귄이 죽은 암컷과 짝짓기 하는 장면을 비롯해 자위행위, 강압적 성행위, 새끼에 대한 성적·신체적 학대, 번식과 무관한 성관계, 동성 간 성관계 등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이 기록은 지나치게 충격적이라는 이유로 무려 100년간 봉인되었다가 2012년에야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학자들에 의해 제대로 공개되었습니다. 레빅은 기록을 통해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수컷들을 '훌리건 같은 놈들'이라고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아델리펭귄의 ‘또라이짓’이 이것뿐이었다면 제가 글을 시작할 리 없습니다. 4. 충격과 공포의 행동들 아델리펭귄의 포악함은 번식 행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남극의 여름철 번식기에는 수컷이 맘에 드는 암컷에게 돌을 건네며 '프로포즈'를 하는데, 사람으로 따지면 반지를 건네며 청혼을 하는 셈입니다. 이후 2개의 알을 낳아 암수가 교대로 36일간 포란합니다.  하지만 이 미친놈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남의 혼수, 아니 돌을 빼앗거나 훔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돌로 둥지를 짓는 것이 기본인데, 뺏고 빼앗기는 전쟁속에서 자재가 모자라면 동료의 사체나 뼈를 모아 둥지를 완성합니다. 정말이지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정말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조지 머리 레빅의 기록에 따르면, 일부 아델리펭귄 수컷이 죽은 지 1년이 넘은 암컷 펭귄 사체와 교미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즉 시체에 성적 욕구를 느끼는 ...

귀멸의 칼날을 통해서 본 애니메이션 서사시 (下) - DLC 확장판

덕후의 심장은 도키도키 귀멸의 칼날을 통해서 본 애니메이션 서사시 (下) - DLC 확장판 부제: 지금까지 이런 분석은 없었다. 이 것은 리뷰인가 강의인가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오늘에야말로 끝을 보러 왔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애니특집의 '마지막' 시간으로 보석 같은 명작들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기업들과 거장들, 그리고 산업의 발전과 미래에 대해 살펴보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주의: 깁니다. 진짜 깁니다. 제7장. 세상을 뒤집은 저패니메이션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은 너무 유명하기에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덕력’이 약한 분들을 위해서 대표작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건담, 전설이 된 레전드 건담의 아버지인 토미노 감독은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중요성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방영 초기 당시에는 인기가 없어서 심각하게 조기종영을 고민했지만 이후 건프라가 대박이 나면서 전설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를 통해 반다이(BANDAI)는 지금도 연간 수천억 엔 규모의 프라모델 시장의 탑을 차지한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습니다.  건담의 또 다른 의미는 선악의 구도를 깨뜨렸다는 데 있습니다. 건담 이전의 로봇 애니메이션에서는 선악의 구분이 뚜렷했고 선한 영웅이 악한 존재를 무찌른다는 단순한 개념만이 존재했으나 건담은 전쟁의 참혹함을 현실감 있게 묘사함은 물론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로 인해 싸우는, 정의란 해석하는 존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덕력의 수준에 상관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고 할 것입니다. 덕력이 깊어질 경우 '야메로! 모 야메룽다!'와 같은 고급 밈을 쓸 수 있게 됩니다. 덕력 50 이상의 중상급자 밈 슬램덩크, 영원한 스포츠 만화의 제왕 극장판 'The First Slam Dunk'(2022)는 일본 내 누적 157억 엔 이상을 기록하며 2023년 일본 국내 흥행 1위를 차지했고, 세계 누적은 약 2.79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개봉 첫 주말 12억 9580만 엔, 이후 리바이벌 상영까지 합산해 1,119만 장 이상 판매로 역주행의 대표 사례로 자리했습니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는 스포츠 만화의 영원한 1등이며 전무후무한 작품으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왼손은 거들뿐”,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포기하면 편해”,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 등의 무수히 많은 전설의 밈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에 나오는 기찻길과 역은 수많은 성지순례객으로 붐비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극장판을 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농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피스, 5억 부를 돌파한 애니메이션계의 보이저호 원피스는 2022년 전 세계 누적 5억 부 돌파를 공식 발표했고, '단일 작가 만화 최다 발행부수', ‘단행본 최다 초판 발행 부수’, ‘애니메이션 DVD 최다 출시’ 등 각종 기네스 기록을 경신한, 만화계에서 혼자 태양계 저편으로 가버린 보이저호에 비견됩니다. 위키 정리 기준으로도 5억 1,660만 부 이상(2022년 8월)으로 '최다 판매 만화'의 대표선수로 여전히 자신의 기록을 경신중입니다. 해외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지니며 일본 만화의 글로벌 대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최근 인도네시아 시위에서 원피스 깃발이 시위대의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패왕색 패기”라는 유명한 밈이 있으며 죽기 전까지 완결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루토, 닌자 문화의 세계화 나루토는 세계적인 애니로 일본의 닌자 문화를 전 세계로 퍼뜨렸습니다. 2019년 9월 20일, 외계인 음모론으로 유명한 미국 네바다 사막에 있는 에어리어 51 기지 앞에서 수백 명이 모여 나루토 달리기를 하며 총알을 피하는 애니의 밈을 현실에서 구현했습니다. 이는 온라인 밈이 오프라인 축제로 전이되어 현실의 모습으로 발현하는, 새로운 팬덤의 진화를 보여줍니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정말 인기가 많은데 인도 출장 때 거래처 직원의 아들의 최애가 나루토라는 것을 듣고 귀국하자마자 피규어를 사서 보내주었더니 엄청난 감사의 인사를 받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포켓몬스터, 게임에서 애니로 인생역전 포켓몬스터는 게임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흔치 않은 성공 사례입니다. 보통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게임으로 각색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포켓몬은 그 반대의 길을 걸으며 그야말로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1996년 게임보이로 발매된 포켓몬스터 게임이 일본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끌자, 노 젓는 타이밍임을 직감한 관련회사들은 즉시 ‘제작위원회’를 구성하여 (=빛의 속도로 애니를 만들어), 1997년 4월 1일 TV 애니메이션이 방송했습니다. 당초 50편 내외로 끝낼 계획이었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을 알아버린 회사들로 인해, 잊을만하면 나오는 끝없는 장편 애니메이션이 되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포켓몬은 세계 미디어 믹스 중 총매출 1위(약 1,180억 달러)로, 이는 스타워즈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합한 것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게임 시리즈만으로도 약 4억 4,000만 장이 팔려 마리오, 테트리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 모든 RPG 시리즈 중 가장 많이 팔린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2022년 발매된 포켓몬 스칼렛·바이올렛은 단 3일 만에 1,000만 장을 돌파하며 최단기간 판매 기록을 세웠습니다. 반면에 ‘포켓몬 쇼크’를 통해 컨텐츠가 가지는 위험성을 경고한 첫 사례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포켓몬 쇼크: 포켓몬 쇼크 사건은 1997년 12월 16일 일본에서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제1기 38화 「전뇌전사 폴리곤」 방영 중 발생한 집단 광과민성 발작 사고입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컴퓨터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빨간색과 파란색이 빠르게 번쩍이는 플래시(점멸) 연출이 100회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애니를 시청하던 약 750명의 어린이 시청자들이 발작, 구토, 혼수, 실신 등 뇌전증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실려 갔고, 그중 135명이 입원했습니다. 조사결과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청자에게 강한 점멸 효과가 뇌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광과민성 뇌전증'이 원인으로 밝혀졌고 이 사고로 인해 포켓몬 애니메이션 방영은 약 4개월간 중단되었으며, 이후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의 영상 연출·안전 기준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최애의 아이, 연예계의 어두운 거울 요아소비가 부른 최애의 아이의 오프닝곡 'Idol'은 2025년 5월 기준 유튜브 6억 뷰를 돌파했고, 오리콘·니폰닷컴 등의 집계에서도 여전히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산업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긴장감 있는 서사와 OST의 결합은 글로벌 히트를 통해 유효성이 입증되었으며, "현대 일본의 아이돌 문화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중음악과 애니메이션이 융합된 교과서적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은혼, 유일무이한 장르 처음 볼 때는 병맛이었지만 볼수록 며느리도 모르게 빠져드는 패러디 개그의 제왕이며 눈물 나는 진지함까지 버무린, 법마저도 뛰어넘는 명작입니다. 일본의 방송법은 정치인 실명 언급, 특정 종교 비하, 과도한 성적 표현 등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은혼은 정치인을 패러디하고, 종교적 소재를 개그로 만들고, 성적 농담마저 일상다반사였기에 심의를 통과할 수 없는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웃겨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조차 웃으며 넘어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일본 코미디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이 작품에 대해 팬들은 "은혼의 장르는 은혼"이라 부르며 유일무이한 작품임을 인정했습니다. 진격의 거인, 대지를 흔드는 거대한 메시지 이세계물이 판치던 일본 만화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작품입니다. '진격의 거인'의 "벽 안의 인류" 설정은 국가주의와 이민 문제를 은유하며 다양한 사회학적, 정치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작품은 벽·게토·군국주의적 이미지와의 병치를 통해 파시즘·인종주의·국가주의적 은유라는 논쟁을 촉발해 왔습니다. 일각에서는 '파시즘 미화' 비판과 오히려 반파시즘·반차별 메시지가 핵심이라는 반론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애정하는 후배 ‘김프로’가 뒤늦게 입덕한 후 틈만 나면 제게 ‘신조오 사사게오'(心臓を捧げよ: 심장을 바쳐라)를 외치는데 하찮게 귀찮습니다. 지금은 귀멸의 칼날 교육을 받고 있는데, 수련이 끝나면 또 다가와 전집중 근태의 호흡 제3형 ‘식사후연초’를 외치며 저를 귀찮게 할까 봐 살짝 두렵습니다.  TMI: 특촬물, 왜 지금도 만들어지는가? 울트라맨, 가면 라이더, 후레시맨 같은 특촬물은 과거에는 애니보다 작품의 퀄리티가 우수했고 현실감도 뛰어났으며 제작비가 저렴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대명천지 21세기에 여전히 라텍스 쫄쫄이 바지를 입고 나오는 다섯 명의 패션이 변하지 않는 사이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대기권을 뚫고 올라갔으며 모두 모여야만 괴수에 비벼볼 수 있는 비효율성은 각자도생에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특촬물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완구 판매입니다. 가면라이더의 벨트나 전대물의 로봇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고 수익성이 좋습니다. 둘째, 브랜드 파워입니다. 50년 넘게 이어온 시리즈의 힘은 막강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혁신의 부재지만 좋게 말하면 정통성의 유지라 어찌 되었든 돈은 되고 포맷을 바꾸는 리스크를 기업들은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애니가 실사화되어 망했던 사례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은 그 반대의 리스크도 크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과거의 향수에 젖어사는 매니아층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열광했던 어린이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영웅을 잊지 못하는데, 충성스러운 어른 한 명의 구매력은 열 꼬마 부럽지 않습니다. 제8장. 시대를 관통하는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은 항상 시대를 반영해 왔습니다. 각 시대의 사회적 변화와 불안이 장르의 흥망성쇠로 나타나는데 이는 일본 사회의 집단 무의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인 동시에 꽤나 쏠쏠한 보는 재미를 제공해 줍니다. 장르 변화가 보여주는 일본 사회의 궤적 1970년대 과학 낙관주의와 기술 자신감의 상징으로, '마징가 Z', '겟타로보', '야마토'와 같은 ‘로봇메카닉 작품’들이 시대의 정서를 대변했습니다. 1980년대 경제 성장과 더불어 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스포츠물’이 대세가 되어, '캡틴 츠바사', ‘터치’, ‘슬램덩크’와 같은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슬램덩크는 1990년 10월부터 연재 시작) 1990년대에는 버블의 붕괴와 종신고용이 무너진 사회불안 속에서 '에반게리온' '공각기동대'와 같은 ‘개인의 실존, 정체성, 불안의 심리를 다루는’ 작품들이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일상과 치유' 코드가 대세가 되었고, 학교·취미·동아리의 소소한 행복을 그리는 ‘일상물’과 ‘치유계’가 확산되었습니다. 2010년대에는 계속되는 경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 정체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이(異)세계물’은 주인공의 압도적 능력에 기반한 게임적 서사를 통해 피로감으로 가득 찬 현실의 대체재로 부상했습니다. 2020년대에는 코로나를 통해 가족 간의 유대 회복과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이 재발견되었고 이에 대한 ‘공동체적 가치로의 회귀’는 '귀멸의 칼날', '스파이 패밀리' 등에서 확인됩니다. 당시의 상황과 시대를 빛낸 대표작품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970년대: 로봇물과 과학 낙관주의 사회적 배경 고도경제성장 절정기 (연평균 9% 성장)             오사카 엑스포(1970) 개최로 과학기술 만능주의 확산             냉전 체제 하에서 평화적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열망             대표 작품들 마징가 Z (1972): "파일럿이 탑승하는 거대로봇"이라는 혁신적 개념 도입             겟타로보 (1974): 3대 합체 로봇으로 팀워크의 중요성 강조             우주전함 야마토 (1974): SF 장르의 서막, 성인층까지 확장된 팬덤             특징 분석: 로봇물의 황금기는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반영했습니다. 거대로봇은 일본의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의 상징이자, 군사력으로는 불가능한 "강함"을 과학으로 구현하려는 욕망의 투영이었습니다. 1980년대: 스포츠물과 개인주의의 부상 사회적 배경 버블경제 시작과 개인 소비문화 확산             국제화 진행과 개인의 능력 중시 풍조             서구문화 유입으로 인한 가치관 다원화             대표 작품들 캡틴 츠바사 (1983): 축구 붐 조성, 개인의 꿈과 노력 강조             터치 (1985): 연애와 스포츠의 결합, 일상물의 시작             슬램덩크 (1990년대 초): 농구 열풍,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 메시지             특징 분석: 1970년대 로봇물이 집단(팀)의 승리를 그렸다면, 1980년대 스포츠물은 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에 집중했습니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개인의 꿈"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1990년대: 심리물과 실존적 불안 사회적 배경 1991년 버블 붕괴로 인한 경제적 충격             종신고용제 붕괴와 취업난 심화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1995) 등 사회적 충격 사건들             대표 작품들 신세기 에반게리온 (1995): 우울증과 대인관계 공포를 다룬 심리 드라마             공각기동대 (1995):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철학적 질문             카우보이 비밥 (1998): 과거에 얽매인 채 떠도는 어른들의 이야기             특징 분석: 버블 붕괴와 고용불안, 가스테러 등 9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일본 사회의 집단적 우울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밝고 긍정적인 미래 대신 내면의 어둠과 실존적 고민을 다루는 작품들이 주류가 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밝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에반게리온, 존재해도 괜찮다는 위로 앞서 일본을 대표하는 작품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왜 에반게리온이 없는지 의아해하셨던 독자분들이 있으셨을 겁니다. 이 작품에는 따로 헌사를 담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에반게리온은 1990년대 일본 사회를 강타한 사회적 현상이자, 애니메이션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일본 버블경제 붕괴 이후 나타난 청년 세대의 불안, 고립감,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을 에피소드와 캐릭터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주인공 신지의 무력감, 아스카의 자기혐오, 레이의 정체성 부재 등은 사회 전반에 만연하던 '불안'을 비유적으로 드러냈으며, 시청자들은 이러한 불안과 성찰을 작품에 투영했습니다. 또한 '인류보완계획'이라는 설정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 인정 욕구, 자아의 한계를 문제의식으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결말부의 심리극 양식과 구원의 메시지는 대중들에게 "존재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넸습니다. 마치 불안과 우울에 빠진 사람들에게 "아니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잘하고 있어"라며 손을 내미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에반게리온은 오타쿠 문화와 캐릭터 소비 방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정 캐릭터 유형(쿨하고 무표정한 소녀, 내면에 상처가 있는 소녀 등)의 원형을 만들고 수많은 2차 창작과 상품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에반게리온은 애니메이션의 대중문화적 위상을 높였음은 물론 애니메이션을 철학적·심리적 담론을 생산하는 매체로 자리매김시켰고, 극장판 시리즈와 신극장판까지 이어진 롱런·세계적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에반게리온이 대중들에게 던진 철학적 질문들은- "왜 존재하는가",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이후 공각기동대, 코드 기어스 등 철학과 사유를 중심에 담은 애니메이션의 변화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일상물과 치유의 시대 사회적 배경 "잃어버린 10년"의 연장선, 장기 불황 고착화             취업 빙하기와 프리터족 증가             인터넷 보급으로 개인화된 소비문화 확산             대표 작품들 러키☆스타 (2007): 별일 없는 일상의 소중함             케이온! (2009): 느긋한 학교생활, "모에" 문화 정착             아리아 디 애니메이션 (2005): 테라포밍된 화성의 네오 베네치아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소중함과 위로             특징 분석: 발전하지 않는데 힘들기까지한 현실은 아예 "별일 없는 평화로운 일상"을 동경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쟁과 성취 대신 "치유"와 "힐링"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고, 이는 *‘모에(萌え)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졌습니다. TMI: 모에(萌え) 문화란?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 비디오 게임 등에서 등장하는 가공의 캐릭터나 아이돌, 무생물 등에게 향하는 강한 애정과 열광을 의미하는 문화 현상을 말합니다. 모에는 단순한 좋아함을 넘어서 깊은 애정, 헌신, 감정이입을 포함하며, 특히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모에 감정은 특정 캐릭터의 신상, 복장, 행동, 성격 등 매우 다양한 속성(모에 속성)에서 발생하며, 이를 중심으로 여러 세부 유형이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헤어스타일이나 복장, 나이 등에 따라 '트윈테일 모에', '로리 모에' 등이 분화됩니다. 모에 문화에는 때로 외설적, 페티시적인 측면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주로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중심이 됩니다. 여러분도 아키하바라에 가면 문화충격과 함께 맛있고 (인건비가 가득 들어가서 매우 비싼) 파르페를 드실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이세계물과 현실 도피 사회적 배경 동일본 대지진(2011)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아베노믹스에도 불구한 실질소득 정체             취업난 지속과 사회 계층 고착화와 개인주의 심화 대표 작품들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2016):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세계             오버로드 (2015): 게임 내 세계에서 강력한 언데드 군주로서 살아가는 독특한 다크판타지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2016): 개그 요소가 가미된 이세계 판타지             특징 분석: 현실이 절망적이고 불안하니 아예 "다른 세계"로 가버리자는 극단적 도피주의가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세계물의 폭발적 증가는 일본 젊은이들이 느끼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의 방증입니다. 특히 게임 RPG와 유사한 "레벨업" 시스템은 노력에 비례한 성과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물론 저처럼 그와 상관없이 그냥 뇌 빼고 보는 ‘병맛의 즐거움’이 좋아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2020년대: 가족과 연대의 재발견 사회적 배경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 심화             재택근무 확산으로 인한 관계 단절,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 증대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인한 가족 가치에 대한 재평가             대표 작품들 귀멸의 칼날 (2019): 가족애와 유대감을 중심으로 한 서사             스파이 패밀리 (2022): 가짜 가족이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체인소 맨 (2022): 극단적 현실을 배경으로 한 인간관계 탐구             특징 분석: 불안과 도피에 따른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후,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관계와 유대감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함께함"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고 이는 여러 작품을 통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제9장. 애니 거장들의 세계 - 극장판과 TV판의 경계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의 세계는 흔히 TV판과 극장판으로 나뉩니다. 극장판은 보통 더 높은 예술적, 상업적 지위를 인정받지만, TV판 감독들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전문성을 발휘합니다. 대부분의 감독은 TV판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후 극장판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도쿄구울'의 모리타 슈헤이나, '진격의 거인'의 아라키 테츠로 감독이 이 코스를 밟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초창기 TV의 개척자들 데즈카 오사무 (手塚治虫, 1928-1989) 대표작: 철완 아톰, 정글대제, 블랙잭, 파이어 버드 "만화의 신"으로 불리며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입니다. 의학박사 출신으로 생명에 대한 깊은 철학이 작품에 반영되었습니다. TV 애니메이션 시스템을 확립하고 주요 장면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을 일본에 정착시켰습니다. 토미노 요시유키 (富野由悠季, 1941-) 대표작: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전설거신 이데온, 성전사 던바인 "Kill 'Em All 토미노"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주인공도 가차없이 죽이는 하드한 스토리텔링의 대가입니다. 건담을 통해 리얼로봇 장르를 창시하고 애니메이션을 성인 취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그의 작품에서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복잡성과 선악의 모호성이라는 깊은 리얼리티와 인간에 대한 탐구적 색채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데자키 오사무 (出崎統, 1943-2011) 대표작: 베르사유의 장미, 내일의 죠, 골고 13, 블랙잭 OVA “나는 장미로 태어난 오스칼~”로 유명한 <베르사유의 장미>의 감독입니다. 독특한 연출 기법으로 유명하며, "하모니 처리"와 "포스트카드 메모리" 기법의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정지화면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극적 연출의 선구자로, 그의 기법은 현재까지도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1980-90년대 혁신가들 오시이 마모루 (押井守, 1951-) 대표작: 공각기동대, 천사의 알, 뷰티풀 드리머, 이노센스 철학적이고 난해한 작품으로 유명하며, 특히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

귀멸의 칼날을 통해서 본 애니메이션 서사시 (中)

덕후의 심장은 도키도키 귀멸의 칼날을 통해서 본 애니메이션 서사시 (中) 부제: 지금까지 이런 분석은 없었다. 이것은 리뷰인가 강의인가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개봉을 기념하여 귀멸의 칼날에 얽힌 이야기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일본 애니 산업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제6장. 일본 애니 산업의 역사 카라쿠리에서 애니메이션까지: 일본 기계 문화의 DNA 어린 시절에 합체로봇을 가지고 놀며 그 설계의 정밀성에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의 합체장면이야 그림으로 때운다 쳐도 실제 완구로서의 구현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합체로봇의 정밀함 뒤에는 일본의 “메커니즘”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카라쿠리(からくり)의 유산 무로마치 막부시대(1336~1573년)에 접어들어 서양에서 총과 함께 시계 등의 기계류가 유입되었고, 17세기경 에도시대부터 시계 등에 사용되었던 톱니바퀴 기술을 인형의 동작장치로 응용해 만든 ‘카라쿠리 인형’이 등장했습니다. 일본어로 ‘실을 잡아당겨 움직이게 함’을 뜻하는 동사인 ‘카라쿠루(からくる)’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오늘날에는 기계적 ‘장치/속임수’라는 일반적 의미로도 확장되어 쓰입니다. 스스로 동작하는 자동인형을 영어로는 ‘오토마타(automata)’라고 하는데 카라쿠리는 ‘일본의 오토마타’인 셈이며 외부 조종 없이 동작하는 점에서 꼭두각시와는 다릅니다. 일본 카라쿠리는 주로 극장 공연에서 사용된 ‘부타이 카라쿠리(舞台 からくり)’, 실내에서 갖고 노는 ‘자시키 카라쿠리(座敷 からくり)’와 전통적인 종교 및 축제 행사에서 사용된 ‘다시 카라쿠리(山車 からくり)’ 등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자시키 카라쿠리 중 하나인 ‘차 나르는 인형’(차하코미 닌교)입니다. 찻잔을 올리면 스스로 전진해 손님에게 전달하고, 손님이 찻잔을 받으면 멈추는 태엽·캠·기어 기반의 자동제어 시스템이었는데 현대의 AI 로봇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활을 쏘거나 붓글씨를 쓰는 초정밀 카라쿠리도 있는데, 이러한 메커니즘은 현대의 산업용 로봇 팔과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이며 그 옛날부터 이런 수준 높은 기계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일본이 세계적인 로봇강국으로 올라선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첨단 기술로 이상한 거 만들지 말라고!! 카라쿠니의 핵심 메커니즘과 기술적 특징 카라쿠리의 핵심은 태엽, 캠, 톱니, 실, 중력·탄성 등을 활용한 구동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고탄소강 스프링 제작이 어려워 고래수염을 아교로 처리하여 탄성 부품을 대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카라쿠리는 “숨겨진 구동”을 기계미학으로 승화시킨 공학 예술이었습니다. 설계의 핵심은 동력-기능을 분리·매개하는 캠-링크-탄성 체인의 서사적 구성입니다. 이런 ‘메커니즘’은 현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변형·합체 철학에도 그대로 이어지며 독특한 메카닉 설계에서도 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건담의 변신 시퀀스나 마징가 Z의 합체 과정이 바로 카라쿠리의 DNA입니다. 카라쿠니의 현대적 확장 현대에 와서는 로봇 기술에서 전기나 유압장치를 최소화하고 레버, 중력, 스프링을 활용하는 것에서 ‘카라쿠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화콘텐츠에서 ‘카라쿠리’는 자동인형/기계적 트릭을 상징하는 모티프로 활용되며,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설계(트리거-피드백-정지 논리)로 경험 디자인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혼다 아시모처럼 일본이 로봇에 진심인 이유도 카라쿠리의 역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망가란 무엇인가? 망가(manga)란 일본 만화책이나 그래픽 소설의 스타일을 나타내며 ‘변덕스러운’ 또는 '즉흥적인’을 의미하는 ‘漫’(man)과 ‘그림’을 의미하는 ‘画’(ga)이라는 두 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기발한 그림” 또는 “즉흥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쿠사이의 목판화 망가(manga)라는 단어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19세기 초 일본 에도시대 시기의 유명한 목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에 의해서였습니다. 호쿠사이는 1814년에 풍경, 동물, 사람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의 스케치 모음이 포함된 '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라는 일련의 그림책을 출판했는데, 비록 이것들이 현대적인 의미의 '만화'는 아니었지만, 현대의 만화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잘 그려진 그림첩이었습니다. 물론 호쿠사이가 그 말을 만들어 사용하기 천 년 전에도 일본에서는 '만화적인(Cartoonish)' 그림들이 발견되었지만, 윌 아이즈너(Will Eisner)가 만화(Comic)의 정의로서 말한 "연속적 예술(Sequential Art)"을 기준으로 봤을 때 호쿠사이의 만화부터 진정한 '만화'(망가)가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 / 1814년 호쿠사이가 *데포르메한 인물 기법을 보면 다른 우키요에 작가들과는 달리 현재의 만화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포르메: 미술, 특히 주로 회화에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일부 변형, 과장, 축소, 왜곡하여 표현하는 기법 일본 애니메이션의 탄생 (1917년): 세 명의 개척자 1910년대 중반, 일본의 영화 제작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됩니다. 이들은 '움직이는 그림'에 매료되어 서구의 기술을 모방하고 연구했습니다. 1917년, 일본 애니메이션의 출발 흥미롭게도 초기 기법은 칠판에 분필로 그리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점차 기초적인 페이퍼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발전했는데,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필름과 스튜디오가 대거 소실되며 초기역사가 단절되기도 했습니다. 칠판에 그리는 기법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깝게는 슬램덩크의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가 ‘슬램덩크 그로부터 10일 후’란 짧은 작품을 칠판에 그린 적도 있으며 카페의 메뉴판서도 볼 수 있듯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재능 낭비 중인 덕후들과 ‘슬램덩크 그로부터 10일 후’를 그리고 있는 다케히코 이노우에, 그리고 칠판기법의 흔적이 남아 있는 카페 메뉴판 시모카와 오텐, 고치 준이치, 기타야마 세이타로. 이 세 명의 개척자가 각각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1917년은 이 들 모두가 서로 다른 스튜디오에서 초창기 애니메이션을 잇따라 내놓았던 시기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17년 고치 준이치가 감독한 <나마쿠라카타나>(なまくら刀: 무딘 칼)입니다. <나마쿠라카타나>는 2008년 오사카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시아 애니메이션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래 사이트를 클릭하면 시청도 가능한데 100년 전 애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퀄리티가 좋습니다. 나마쿠라 카타나를 시청할 수 있는 사이트 클릭 TV 시대 개막과 철완 아톰의 혁명 (1950-60년대) 1953년 2월 1일 NHK가 TV 방송을 공식 개시하고, 같은 해 8월 28일 니혼TV가 상업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953년 TV 보급률은 3,000대에 불과했으나, 1958년 14인치 흑백TV가 6만 엔(월급 2.5개월분)으로 하락하며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1959년 아키히토 황태자 결혼식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TV 보급이 폭증하여 1,200만 대를 달성했고, 1960년대 말까지 3,000만 가구가 TV를 보유하게 되어 완전한 대중매체로 정착했습니다. 컬러 TV 시대와 TV 애니메이션 확립 1960년 9월 10일, 일본은 1953년 미국의 컬러방송표준으로 공식 채택된 NTSC방식을 도입하여 미국, 쿠바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컬러TV 방송을 개시했습니다. 컬러TV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확산이 가속화되어 1970년에는 640만 대를 달성했습니다. 1973년에는 컬러TV가 흑백TV 보급률을 넘어섰고, 1977년 NHK 교육방송이 완전 컬러화되면서 일본 방송 전체에 걸쳐 컬러화가 완성되었습니다. 1963년 데즈카 오사무의 혁명: 철완 아톰 TV 컬러화와 함께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 후지TV를 통해 방영된 것입니다. 일본 최초의 연속 TV 애니메이션으로, 최고 시청률 40.7%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습니다. 옷을 입어! 왜 빤쓰만 입고 있는 거야! 데즈카 오사무는 전체 프레임을 모두 새로 그리지 않고 일부 프레임 사이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재사용해 만드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을 도입해 제작비와 시간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장난감, 문구, 과자의 판매를 통해 수익을 냈습니다. 이후 이 ‘미디어믹스’(Mediamix) 모델은 일본 애니의 기본 문법이 되었습니다. 또한 저녁 6-7시 골든타임 이전 시간대가 아동 프로그램 전용으로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철완 아톰>은 단순한 어린이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1945년 패전 후 일본은 원자폭탄 트라우마와 과학기술을 통한 재건의 희망을 동시에 품게 되었는데, 1963년 '철완 아톰'의 등장은 원자력을 평화적 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50년 당시 최고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고 있던 대형 오락잡지 월간 <소년>으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은 데즈카 오사무는 그 무렵 크리스마스 섬에서 있었던 미국의 원자폭탄 실험을 뉴스로 접한 이후 아톰의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원자력 에너지를 전쟁과 살생의 도구로서가 아닌 평화적 과학 기술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 보고자 원자를 뜻하는 ‘아톰’(Atom)을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과학의 시대"로 일컬어지며, 과학기술이 번영과 행복의 길이라는 대중적 믿음이 확산되었는데, 원자력의 "이중성" - 파괴(히로시마)와 재생(평화적 이용)이라는 모순적 감정이 로봇 서사의 선악 이원론에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로봇 애니메이션 등장의 사회문화적 배경 로봇의 유래 로봇'이라는 말은 192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가 1921년 희곡 <R.U.R. (Rossum's Universal Robots,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체코어 'robota'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노역’ 또는 ‘고된 노동’을 뜻합니다. 작품에서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결국 인조인간(로봇)들이 인간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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