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 Fashion : A Philosophy by Lars Svendsen
저자 : 라르스 스벤젠
출간 : 2013년
기간 : 2024-10-18 ~ 2024-11-14
네덜란드 있을 때 샀던 책이다. 그때 패션이니 소비니 하는 개념들에 대해 관심이 있던 시절이라 그런지 이런 책들이 좀 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라거나 [[게오르그 짐멜]] 책이라던가....아니면 [[소비의 사회]] 같은 책들이라거나...
그런데 책은 사놓고 다 읽지도 않고 놔뒀다. 이건 뭐 그냥 허세인거 같다. 반성한다. 아무튼 다시 읽어보려 한다.
사실 요약이라고 하긴 좀 그렇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끌어다 놓은 것에 불과하다.
Chapter 1: 들어가며_패션 철학?
Chapter 2: 패션의 원칙_새로운 것
Chapter 3: 패션의 기원과 확산
통상 사회적으로 안정된 기반의 사람들은 덜 안정적인 위치의 사람들보다 패션이나 유행에 둔감하다. 이미 확고한 사회적 기반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차별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패션의 역사는 주로 아래로부터 발생한다.
상위계층의 패션을 하위계층이 모방하게 되면 지극히 기능적인 것으로 변모하게 된다. 부르디외는 노동계층의 기능적 목적에 대한 선호를 '필요 취향'이라 했다.
유니폼의 도입은 각자가 속한 사회적 위치를 분명하게 표시하고자 하는 상위계층의 전략의 부분임이 분명하다.
부르디외는 상징적 소비의 배후엔 상위계급에 대한 모방보단 자신의 계급을 차별화하고자 하는 상위계급의 전략의 영향이 더 강하다고 본다 (전파모델)
모든 자본의 가치는 '특정 대상을 다른 사람들이 소유했는가'의 사실에 따라 달라진다.
부르디외가 아비투스라 지칭한 것은 우리가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미 우리에게 부과된 것이라 본다. 즉, 자유로운 취향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철학과 미학에서 취향은 자율적인 것으로 본다.
취향문제가 개인적인 관심사가 되고, 계급 개념이 희석된 현재의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부르디외의 주장은 예전만큼의 설명력을 가지기 힘들다.
허버트 브루머 : 패션의 기제는 계급구별의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준이 등장했을 때, 뒤쳐지지 않고 변화하는 세계와 함께 새로운 취향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로 봐야한다.
패션의 발전은 사대정신을 가지고 간단히 설명되진 않는다.
오뜨꾸뛰르 : 맞춤, 럭셔리
피에타 포르테 : 기성복
현재는 패션의 최전선을 담당하던 오뜨꾸뛰르가 이제 피에타 포르테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전 사회보다 패션하우스와 디자이너의 수는 증가했지만, 에이전트의 입김에 밀려 특정 시즌의 트렌드가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 패션이 유포되는 패턴은 소득이나 자산보다는 나이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패션의 확산은 계층간의 수직적 확산보다는 다양한 계층들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전파된다.
Chapter 4: 패션과 언어
의복의 착용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능은 현대엔 많이 퇴색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의상을 통해 특정인에 대한 특정한 의견을 가지게 된다.
시니피앙, 시니피에 (롤랑 바르트)
우리시대의 작가라는 위치는 모든 다른 해석자들과 동일한 위치에서 그것을 해석하는 또다른 자에 불과하다.
엄밀하게는 의복은 언어가 아니다. 종종 언어로 이해되긴 하지만, 그것은 문법과 어휘를 가진 일상적인 의미의 언어를 의미하진 않는다. 의복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은 분명하나, 소통가능한 모든 것이 언어가 될 순 없다.
일상적 언어가 아닌 의복의 언어는 시각적 예술의 언어와 더 유사하다.
의복의 경우 의미가 맥락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의미론적으로 더욱 불안정하다. 의미론적으로 가장 안정된 아이템이라고 꼽는 검은색 의복조차도 시간을 거치면서 의미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패션은 유행에 따라 원래의 의미를 급격히 잃어버린다. 그러기에 패션은 급격한 속도로 소실되어가는 의미의 공간을 끝없이 채워나가는 전챙터와 같다.
Chapter 5: 패션과 육체
금욕주의, 식이요법등이 과거엔 정신고양을 위한 것이었지만, 현대엔 육체를 다듬고 가꾸기 위한 목적이 되었다.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빅토리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체를 통해 정체성을 추구하고, 의복은 그러한 육체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간주된다. 의목은 몸의 형태와 표현을 바꾸면서 육체를 다시 기록한다. 옷을 입지않은 육체라 하더라도 마치 옷을 입은것처럼 해석된다.
노버트 엘리아스 : 공공장소의 ...

현대 산업 태동기에 들어서 유행한 칼라 코트*는, 프랑스 혁명 이후 영국의 귀족들이 '목이 잘려 참수 당한' 귀족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의복에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 https://lp2.hm.com/hmgoepprod?set=format%5Bwebp%5D%2Cquality%5B79%5D%2Csource%5B%2F3c%2Ffe%2F3cfe75791eefec7b13a24a2e4c76bf1edc60c5e0.jpg%5D%2Corigin%5Bdam%5D%2Ccategory%5B%5D%2Ctype%5BDESCRIPTIVESTILLLIFE%5D%2Cres%5Bm%5D%2Chmver%5B2%5D&call=url%5Bfile%3A%2Fproduct%2Fmobilemain%5D 아이러니 하게도, 과거 국경을 넘어 유지하고자 했던 계급주의의 벽이 현대에 들어서는 모두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더욱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관념의 전환(Paradigm Shift)을 주도하는 시발점의 위치가 아래였던 적은 없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그리고.. 딴지는 아니지만 제일 처음 언급된 이 부분은, " 통상 사회적으로 안정된 기반의 사람들은 덜 안정적인 위치의 사람들보다 패션이나 유행에 둔감하다. 이미 확고한 사회적 기반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차별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의복의 발전사와 반대되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보면 (심지어 벽화에 새겨진 귀금속들과 무덤에서 출토되는 장신구들을 보면) 상류층의 럭셔리(Luxury: 정도의 지나침'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Luxus에서 파생된 것으로)를 볼 수 있지, 대감댁 개똥이와 옥순이의 금비녀, 금반지를 찾아보기는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귀족(양반) 이하의 계급에서는 (국가 어딘지 간에) 금비녀와 금반지 하나 살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시기가 훨씬 길지 않았나 싶네요. 오늘도 재밌는 사설과 독후감 감사합니다 🤓

아참, 아래 경구는 재밌는 독후감과 더불어 생각의 환기를 시켜주셔서 답례로 남기고 가봅니다 호홓.. 1.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했는지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이집트'에 관한 모든 일반화는 그 주민의 극히 일부에만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집트인 대다수는 힘들고 혹독하게, 이름 없이 살아간 농민이었다. 역사가 리카르도 카미노스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빈곤과 궁핍과 육체적 고통의 삶을 사느라 발버둥 쳤고, 이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들의 시신은 사막 주변에 버려지거나, 기껏해야 얕은 모래 구덩이에 떨어졌다. 그들의 이름을 적은 초라한 비석 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는 커다란 한계를 인식 하더라도, 우리는 다른 고대 문화에 비해 이집트에 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이집트인들이 직접 우리에게 말해 주었고(그들이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그들의 비문과 편지와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임을 안다. 우리는 모두 로제타석이 그 길을 안내했기 때문임을 안다." - 『신의 기록』, 에드워드 돌닉 2. "교육을 받고, 지식을 갖춘 사람이 육체노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실질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연구를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전의 일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와 그보다 500년 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농민의 일에 대해 노래하고 찬양하였다. 그들의 시는 당대의 어떤 시보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로 칭송되었으나, 그들이 묘사한 농민의 모습이나 노동은 현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사실 그들은 낫을 잡아본 적도 없었고, 양 떼를 돌본 적도 없으며, 심지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베르길리우스로부터 1900년 뒤 독일의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가 육체노동과 육체노동자에 관해 제대로 관찰한 적도 없었고, 기계를 만져본 적도 없었다." 『The Essential Drucker on Technology』, 피터 드러커

어머나 이렇게 긴 댓글을....ㅠ "통상 사회적으로~~때문이다" 이 부분은.. 사실 앞에 말이 더 많이 나오는데 (이래저래 귀찮아서) 메모하지 않았던 부분이 좀 있어요. 이 책에서도 앞부분에 의복의 발전사를 이야기 하면서 말씀하신 부분을 먼저 짚고 넘어가긴 합니다. 가령 고대 이집트에선 일부 계층만 샌들을 신을 수 있었다던가, 로마 시민만 토가를 입을 수 있었다던가...특히 악세서리의 경우 희귀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부 계층만 사용할 수 있고, 또 그것때문에 악세서리는 계급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던가...이걸 적하이론과 결부시켜 설명하긴 합니다. 저 부분은 최근 패션이 계급을 구별하는 기능보다는, 패션의 다양성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기능이 더 커지는 시기...그러니까 최근 약 50년 정도의 시기(대량생산 등으로 모든 계층에게 의복에 선택이 가능해진 이후)를 두고 하는 말이예용. 최근의 패션의 중대한 변화는 최상위 계층보다는 보다 아래 계층에서 주도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나왔어요. 사실 복식사를 보면 말씀하신게 맞긴 하져. 의복 자체가 굉장히 비싼 물건이었으니 하위 계층에게는 요새 말하는 의미의 패션이랄게 존재하기 어렵기도 했을겁니더. 그리고 계급... 저도 요새는 계급의 구분이 모두의 의지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아니 사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인간은 계급을 구분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다만 그 안에서 내가 상위 계급이 되고싶은것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눈에 보이는 계급이 사라진 지금도 사람들은 학벌이나 자산 등등으로 이런저런 차등을 두는게 현실이니까요. '계급을 철폐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 는 말은 사실, '계급제의 새로운 판을 짜자(내가 신분상승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겠다)' 라는 말처럼 느껴지긴 합니다. 아무튼 시간을 들여 쓰신 댓글 감사합니다 ㅠ 앞으로도 열심히 뭔가 써야겠네요 ㅠ

해외에서 살다오셨군요ㅎ패션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