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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바라보는 방향성에 대해
Antifragile긴 잡설

시장을 바라보는 방향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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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2026.06.09조회수 6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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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구독자 403명구독중 47명
Don't Panic

안녕하세요. KIKOHO입니다.


오늘은 기존 글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제가 현재 시장을 보는 방향성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정교한 밸류에이션이나 종목별 숫자를 다루려는 글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제가 지금 한국 시장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 시점에서 한국의 자본시장과 몇몇 산업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를 기록해 두는 글에 가깝습니다.


요즘 시장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반도체는 말도 안 되게 강하고, AI라는 단어가 붙은 기업들은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는 것처럼 거래됩니다. 반대로 며칠 전까지 좋아 보이던 특정 섹터, 예컨대 전력기기나 에너지, 우주, 소부장 등 관련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함께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장은 어렵습니다. 단기 변동성이 극도로 심하며, 노이즈와 신호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사람들은 수많은 의견을 쏟아냅니다. 한 명의 개인 투자자가 이런 휘몰아치는 장세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늘 흔들리고 스스로의 판단에 의문을 가집니다. 이런 장 속에서 연약한 마음을 붙잡음과 동시에, 제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글로 정리해보고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매수 추천도, 포트폴리오를 자랑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글도 아닙니다.


요즘 제가 붙잡고 있는 생각들을 한 번 펼쳐보려는 글입니다.


요즘 제 생각은 대충 이쪽으로 모입니다.

AI가 진짜라면 한국은 어디쯤에 있는지.
한국이 메모리 병목을 쥐고 있다면, 그 힘이 반도체 주가에서 끝나는지.
아니면 자본시장과 부동산 중심 자산배분까지 조금씩 건드릴 수 있는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정확하고 올바른 답을 내놓을 자신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생각이 밸리 유저분들께 어느 정도 참고 할 수 있는 시각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의 시장을 그저 “반도체가 많이 오른 장” 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제 눈에는 반도체 주가보다 조금 더 큰 변화가 같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두가 AI를 말하지만

요즘 시장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AI로 돌아갑니다.


요즘의 시장을 보면, 조금 조심스러워집니다. AI라는 단어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오르고, AI와 조금이라도 연결된 기업들이 전혀 다른 성격의 기업처럼 거래되는 모습은 확실히 과열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주가가 앞서갔다는 말과 산업의 수요가 가짜라는 말은 다릅니다.


좋은 산업도 비싼 가격에서는 좋지 않은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가가 너무 앞서갔다고 해서 그 산업의 변화 자체가 허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AI 수요를 진짜에 가깝다고 보는 이유는, 이제 AI가 챗봇이나 모델 성능 경쟁에 머무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의 GTC 2026을 참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wSp6AiNIrsY?si=blGFWwnfo91BpoK4


올해 GTC는 accelerated computing, AI factories, open models, agentic systems, physical AI를 전면에 놓았습니다. 화면 속에서 답변을 잘하는 모델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 자율주행, 공장 자동화로 AI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숫자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image.png

데이터센터는 2024년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5%, 415TWh를 사용했고, 2030년에는 약 945TWh까지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숫자는 오늘날 일본 전체 전력 소비보다 조금 큰 규모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방향성, 그리고 프론티어 랩 및 빅테크 리더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았을 때 저는 AI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진짜이며, 그에서 파생되는 수요 및 투자 아이디어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해당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본문이 너무나도 길어질 수 있기에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AI가 진짜라면, 그 수요는 어딘가에 병목을 만들 것입니다. 요즘 저는 그 병목을 따라 내려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GPU였습니다.
그다음에는 메모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데이터센터, 전력, 클라우드, 자본시장이 있었습니다.

병목은 메모리다

작년 말부터 저는 AI 인프라의 병목이 메모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GPU가 AI 시대의 가장 눈에 띄는 주인공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GPU만 있다고 AI 인프라가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GPU가 처리할 데이터를 충분히 빠르게 공급하지 못하면, 연산장치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메모리 월의 문제입니다.


과거 메모리 산업은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처럼 취급되었습니다. DRAM 가격이 오르면 좋고, 공급이 늘면 꺾이는 산업. 가격이 오를 때 사고, 공급과잉을 걱정해야 하는 산업. 그 성격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메모리는 여전히 사이클을 가집니다. 공급은 언젠가 늘고, 가격은 언젠가 흔들립니다.


다만 AI 시대에는 메모리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GPU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는 더 많아집니다. 그러면 메모리의 대역폭과 용량은 AI 서버 성능을 좌우하는 물리적 제약이 됩니다. HBM과 고성능 DRAM은 더 이상 부품 하나가 아니라, AI 인프라를 가능하게 하는 병목 장치에 가까워집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이상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한국은 엔비디아와 같이 GPU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GPU가 더 많이 팔리기 위해 필요한 메모리 병목의 상당 부분을 쥐고 있습니다. HBM, 고성능 DRAM, 서버 메모리, 차세대 메모리 모듈은 AI 인프라가 커질수록 더 중요해집니다.


SK하이닉스는 GTC 2026에서 HBM4, HBM3E, SOCAMM2, AI용 eSSD 등을 공개했습니다. 특히 엔비디아의 GB300과 HBM3E/HBM4, Vera Rubin 200과 SOCAMM2/HBM4를 함께 전시하며 양사의 기술적 연결을 보여주었습니다.


젠슨 황의 이번 방한도 매우 눈여겨볼만했습니다.

image.png

엔비디아는 방한 기간 동안 SK하이닉스, SK텔레콤, 네이버, 두산, LG, 현대차 등 한국 주요 기업들과 AI 인프라 관련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용 고급 메모리 개발을 위한 장기 기술 파트너십을 맺었고, SK텔레콤은 기가와트급 AI 클라우드를 구축하기로 했으며, 네이버와 두산도 엔비디아 기술을 활용한 데이터센터와 로봇 관련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image.png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젠슨 황의 코멘트였습니다. 그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의 가장 큰 메모리 파트너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SK하이닉스가 2030년까지 메모리 웨이퍼 캐파를 두 배로 늘리더라도 급증하는 AI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삼성전자도 이 흐름에 들어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수장은 젠슨 황과 차세대 파운드리, 자율주행 칩, AI 가속기, HBM4E와 HBM5 같은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협력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출 숫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6년 5월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53.2% 증가했고, 반도체 수출은 169.4% 증가해 월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로이터는 이 배경으로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와 메모리 가격 상승을 지목했습니다.

image.png

이 정도면 한국 반도체를 경기민감 수출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GPU가 엔비디아의 영역이라면, 그 GPU를 먹여 살리는 메모리와 제조 인프라의 상당 부분은 한국의 영역입니다.

이것이 제가 한국 시장을 다시 보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한국은 고객이면서 공급자다

엔비디아와 한국 기업들의 관계는 꽤 묘합니다.


엔비디아는 GPU를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GPU만으로 AI 팩토리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HBM이 필요하고, 고성능 DRAM이 필요하고, 서버 메모리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그 병목을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한국은 GPU와 AI 클라우드, 소버린 AI, 피지컬 AI에 대해 강한 욕구를 보입니다. 정부는 글로벌 AI 3강을 말하고,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로봇, 제조 AI로 내려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한국은 엔비디아에게 공급자이면서 고객입니다. 그리고 길게 보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고 싶은 잠재적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image.png


한국은 GPU를 원합니다.
엔비디아는 메모리를 원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AI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를 원합니다.
엔비디아는 한국 기업들이 AI 인프라를 더 빨리, 더 크게 구축하기를 원합니다.


서로 필요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관계입니다. 긴장이 있는 협력은 생각보다 오래 가곤 합니다.


엔비디아가 한국에 와서 메모리 회사뿐 아니라 통신사, SI, 포털, 제조 기업까지 같이 만난 것도 흥미롭습니다.


한국은 GPU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GPU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메모리를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모리를 쥔 그룹 안에는 통신, 클라우드, SI, 제조 계열사들이 같이 있습니다.


한국이 가진 메모리 병목이 반도체 가격 상승에서 끝나지 않고 클라우드와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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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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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과 사색
2026.06.09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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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작성자
2026.06.09

저도 사색님 글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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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2026.06.09

좋은 인사이트 감사합니다. 시류에 편승해서 함께 성장하면 좋겠는데.. 너무 급격한 장에 발만 살짝 담그고 있는 것 같네요.. 몸을 담글 깡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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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작성자
2026.06.09

조급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ㅎㅎ 급격한 장이라는 것은 곧 기회가 빠르게, 자주 온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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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치
2026.06.09

와.. 뭐에 홀린 것처럼 후루룩 읽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네요 ㅎㅎ 항샅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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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작성자
2026.06.09

재밌었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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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스기
2026.06.09

아재님의 멘토링세션 컬럼을 읽고, 직후에 이 글을 봤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봤고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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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작성자
2026.06.09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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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
2026.06.09

지려버렸다..

감사합니다!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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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작성자
2026.06.09

제가 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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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2026.06.09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부디 창업국가로 변모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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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작성자
2026.06.09

감사합니다! 같이 관찰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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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녀석
2026.06.10

저도 한국에 인구 위기로 인한 망국의 길에서 빠져나올 마지막 기회가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인생 몰라요. 아니 국가 운명 몰라요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긍정적인 내러티브와 방향성을 많이 제시해주셨는데, 그 근원을 따라올라가보면 결국 메모리반도체에서 나오는 돈(법인세, 회사의 부, 임직원의 부, 그리고 그 낙수 효과들 모두 포함한)과 바로 위에는 AI혁명이 있네요.

구체적으로 종목을 보면 아직도 삼전 하닉은 선행 PER이 6~7정도에서 놀고 있고, 설령 이제 가격 상승이 둔화되고 심지어 조금 하락하더라도 그때쯤에는 캐파가 훨씬 늘어서 매출과 이익은 더 늘어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끝이 2010년대 후반 메모리 사이클처럼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릴지, 아니면 폭발적 성장은 안하더라도 늘 이정도 이익은 기본으로 내주는 기업일지에 따라 밸류에이션을 더 받을지, 이정도에서 끝일지가 결정되겠죠.

쓰고 보니 다들 아시는 이야기를 제 생각 정리겸 길게 썼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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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작성자
2026.06.11

저도 메모리반도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많은 게 바뀌기에 반도체 산업을 가장 집중해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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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_3_star
2026.06.11

잘 읽었습니다. 개인투자 뿐만 아니라 국가적 관점에서도 말씀하신 방향성으로 가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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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HO
작성자
2026.06.1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식으로 정책이 집행되는지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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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무새
2026.06.1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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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끝났어야 할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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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최적해

우리는 인생을 풀어야 할 문제처럼 대한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연봉, 더 넓은 집. 마치 어딘가에 정답이 있고, 그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나보다 대단한 사람의 인생이 모범답안인 것처럼.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을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언젠가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이 사고방식에는 이름이 있다. 수학에서는 이것을 optimization(최적화)이라 부른다. 수학이 말하는 최적해 최적화는 수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널리 쓰이는 프레임워크 중 하나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어떤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가 있고, 그 함수의 값을 최대화하거나 최소화하는 점을 찾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local maximum과 global maximum이다. Local maximum은 "주변보다는 높은 봉우리"이다. 산 위에 서 있으면 사방이 다 내리막이니까, 여기가 꼭대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 더 넓은 지도를 펼쳐보면, 저 멀리 더 높은 봉우리가 있을 수 있다. 그곳이 global maximum이다. 문제는, local maximum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도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gradient ascent처럼 국소적인 기울기만 따라가는 방법으로는 local maximum을 빠져나올 수 없다. 더 높은 봉우리로 가려면 일단 내려가야 한다. 잠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최적화 이론에서는 이를 위해 simulated annealing 같은 기법을 쓴다. 일부러 무작위로 점프하거나, 일정 확률로 안 좋은 방향도 수용하는 것이다. 인생에 대입하면 이런 뜻이 된다. 지금 자리가 나쁘지 않더라도,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보다 나빠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창업하거나, 잘 나가는 커리어를 접고 전혀 다른 분야를 시작하거나. 매력적인 비유이다. 자기계발서 한 권이 나올 법하다. "리스크를 감수하라, 안전지대를 벗어나라, 그래야 더 높이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비유를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아주 불편한 질문이 고개를 든다. 인생은 어떤 종류의 함수인가 최적화가 작동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목적함수를 알아야 한다. 뭘 최대화하고 있는지를 모르면 gradient(기울기)를 계산할 수 없다. 인생에서 목적함수는 무엇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행복인가, 의미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인생의 절반이다. 그리고 그 답은 시간에 따라 바뀐다. 둘째, 함수의 형태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 걸음 내딛는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인생의 목적함수는 비정상(non-stationary)이다. 25살의 봉우리와 35살의 봉우리가 다르다. 더 심하게는, 어떤 봉우리에 올라서면 landscape 자체가 바뀌어서 전에 보이지 않던 봉우리가 새로 나타난다. 돈을 벌고 나면 돈이 목적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안정을 얻고 나면 모험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셋째, 공간이 연속이어야 한다. 국소적 기울기를 따라가는 방법은 미분 가능한 연속 공간에서만 작동한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은 연속이 아니라 이산(discrete)이다. 결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 퇴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 여기에는 gradient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을 0.7만큼 해본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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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리는 느리고, 조급함은 비싸다

— 느린 부와 빠른 삶 사이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천천히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부자가 되기 어려운 선택을 반복한다. 이 문장은 늘 듣던 교훈처럼 들릴 수 있다. 사람들은 조급하고, 그래서 큰 실수를 저지른다는 식의 익숙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평면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빠른 부를 원하는 이유는 단지 탐욕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오히려 꽤 정확한 감각적 지식이 내재돼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다. 같은 돈이라도, 언제 손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젊을 때의 돈은 늙어서의 돈보다 훨씬 더 큰 효용을 가진다. 같은 10억이라도 스물여덟의 10억과 예순여덟의 10억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젊은 시절의 돈은 단순한 소비 여력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권이고, 시간이고, 실험할 자유다. 하기 싫은 일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힘이고, 더 나은 기회를 기다릴 수 있는 여유이며,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완충재다. 무엇보다도 젊은 시절의 돈은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감각이 된다. 원한다면 다른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 더 늦기 전에 내 시간을 내 뜻대로 배치할 수 있다는 감각은 늦은 나이에 얻는 부와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합리적인 욕망이다. 인간은 단지 돈의 현재가치만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생의 현재가치도 계산한다. 지금의 1은 미래의 1보다 무겁다. 특히 젊을 때는 더 그렇다. 나이와 시간의 속도는 비례한다는 '자넷의 법칙'. 그것이 엄밀한 법칙이든 아니든,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는 낯설지 않다. 스물다섯의 1년과 쉰다섯의 1년은 달력상으로는 같은 길이지만, 체감상으로는 결코 같은 시간이 아니다. 젊은 시절의 1년은 더 길고, 더 무겁고, 더 결정적이다. 그 안에는 방향 수정의 가능성, 관계의 확장, 실패 후 회복, 새로운 세계와 부딪칠 기회가 훨씬 더 많이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젊은 사람에게 "천천히 부자가 되라"는 말은 그저 재무 조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때로는 이렇게 들린다. 지금 가장 값비싼 시기를 참고 견디라는 말, 가장 선명한 시간들을 나중을 위해 유예하라는 말.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정확히 느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급함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조급함은 완전히 어리석은 것도, 단순히 탐욕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현실을 정확히 읽은 결과다. 문제는 그 정확한 감각이 자주 잘못된 행동으로 연결된다는 데 있다. 젊은 부의 가치가 크다는 사실은 맞다. 그러나 그 사실이 곧 조급한 베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빠른 부를 원하는 욕망은 대개 시간을 건너뛰고 싶다는 욕망과 연결된다. 남들보다 빠른 정보, 더 공격적인 레버리지, 이번 한 번이면 된다는 확신, 복리의 지루한 경로를 단숨에 뛰어넘게 해줄 것 같은 기회. 사람들은 부를 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짧은 시간 안에 인생이 달라졌다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부 자체보다도, 부가 상징하는 급격한 서사의 전환을 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교의 압력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더 깊어진다. 사람은 혼자 늙지 않고, 혼자 돈을 벌지 않는다. 늘 또래와 함께 간다. 누군가는 창업으로 크게 벌었고, 누군가는 스톡옵션으로 인생이 달라졌고, 누군가는 어떤 자산의 급등 위에 올라탔다. 나는 아직 천천히 쌓고 있는데, 남은 이미 도착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 사람은 쉽게 흔들린다. 그때부터 복리는 수익률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가 된다. 느리게 가는 길은 틀린 길이 아니라도, 패배한 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멈추고 ...
긴 잡설
2026.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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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최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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