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후배의 청첩장 모임이 있어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데도, 일찍 눈이 떠졌다.
이번 한주는 지갑을 잃어버리는 이벤트가 있어, 썩 기분이 좋지 않은 한주였다.
그래도 나나 와이프나 성장했다고 느끼는 점은 이런 일로 감정의 동요가 그리 크지는 않다는 점이다.
슬픔이 조금 올라올 뿐, 짜증이나 허탈함 등의 감정까지 치닫지는 않았고,
와이프도 나를 질책하거나 비난하기 보다는 위로와 걱정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느냐는 오롯이 개인의 판단이다.
그런 면에서 과거보다도 조금은 더 성숙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조금은 뿌듯한 마음이 드는 한주였다.
불확실함도 그런것 같다.
불확실성의 시대
불확실함은 늘 나를 불안케 했다.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치는 않았기에 늘 사회에 진출하는 처음부터 생존에 대한 걱정을 해왔던 것 같다. 사회에 나와서는 어떻게든 절제를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로 인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시간들이 있었다. 돈을 많이 써야할 것 같은 모임은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하고, 소개팅을 나가서도 과하게 편하게 돈을 지출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 당시처럼 불안함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를 믿고 한 배를 타고 있는 가족이 있고, 어느정도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그래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늘어가는 자산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로 가는 것은 분명하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두 가지로 진단한다.
첫 번째는 양극화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 공통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통념이 뿌리 내리면서, 우리는 더욱 주변과 비교하게 되었다. 과거의 신분제 시대는 어차피 신분은 바뀔 수 없다는 인식을 대체로 갖고 있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때도 양극화가 있긴 했겠지만, 신분이란 벽이 있었고, 같은 신분 내에서는 차이가 커지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변화가 적으면 불확실성도 줄어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본은 내가 자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돈을 번다. 100억원이 있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