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확률을 언제든 바꿀 준비




베이지안 사고관은 전통적인 확정적인 사고관에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세상은 단순히 흑과 백으로 분리할 수 없으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스펙트럼을 인정해야 한다는 감각은 낮설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14.87보다는 15.00을 선호하듯이, 사람들은 딱 떨어지는 무언가에 열광한다. 처리해야하는 정보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특성은 흔하디 흔했다. 대표적인게 유교다.
유교의 특징이 뭘까? 일단, 유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토론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가장 연장자의 말이 가장 힘이 세다. 더 나아가서는 조상님을 숭배하고 제사를 치른다. 조상님을 숭배하는 문화는 과거 중국의 은나라 때, 당시 온갖 토템과 잡신을 숭배하던 중원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된 조갑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한 정치적인 수단이었다고 한다. 이는 은나라가 패망한 뒤에 오히려 강화되면서,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완벽히 자리잡았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김경일 교수님의 책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 재미있게 쓰여있다.)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권력자가 하는 말에 힘을 실어주면 된다. 그리고 그 힘은 보통 명분이나 정당성으로 불린다. '옛말에 틀린거 하나 없다'라는 말의 배경에는 이런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다. 선황의 옛 말씀에 정당성을 부여하면, 단순히 그걸 인용하는 것으로 정당성은 쉽게 부여된다. 이는 더 나아가서,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인용한 척만 하면 정당한 말이 된다. 자, 이런 상황에서 누가 토론을 할 수 있을까? 토론이 부재하면, 의견은 고착화되고, 단순히 누가 옳냐 그르냐의 문제가 된다. 실제로 무엇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이건 위에서 언급한 확정적인 사고관과 결탁하면서 엄청난 문제를 만든다.
대표적인게 '사농공상'으로 직업에 귀천이 나뉜다는 관념이다. 이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다. 대학의 서열은 완벽하게 수직으로 정렬되어 순위가 매겨져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서울대를 가야한다. 그보다 더 잘한다면 '의치한약수'로 대표되는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야 한다. 소위 '지잡대'로 대표되는 지방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의 말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준다. 물론, 사회는 많이 발전하였고, 기업의 채용을 비롯해서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다면 이런 경향이 굉장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지만, 사회의 분위기와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통념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직업이 뭐냐', '어느 회사에 다니냐', '연봉은 얼마나 되냐', 등등등... 정확한 숫자가 찍히기에, 돈이 정확히 그 사람의 수준을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사람들은 이미 위와 아래를 기준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수직적인 사고를 ...


우리는 모두 틀린다... 멋진 명제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