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의 시대>





미의 추구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홍진채 대표님의 추천이 있어서 사뒀다가, 이번에 기회가 되어 읽게 된 책이다.
결론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처음과 끝만 읽으면 된다. 중간은 논문에 가까운 수준으로 어마어마한 정보량을 자랑하는데, 학술적으로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이정도로 다학제적인 정보를 일괄로 처리하기엔 굉장히 무리가 있다. 적어도 이 책이 발을 걸치고 있는 영역 중 하나에 학문적 백그라운드가 있어야 이 책의 전개에서 즐거움을 많이 느낄 수 있다.
분명 어딘가 학문적 아름다움을 느낄만한 위대한 책이라는 느낌은 거의 확실하게 든다. 세상에 책은 많고, 결국 필요하다면 돌아서 다시 이르게 될 터이니 너무 아쉽게 생각말고 이 정도 마무리하고 넘어가는 것만 해도 충분한 책거리이지 않을까 셀프로 위로…
저자의 위대함에 대비해서 내가 너무 무지렁이라서 책에 죄송할 따름. (저자 에릭 캔들은 학습과 기억의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밝힌 공로로 2000년 노벨 생리학상 수상, 아직 살아계심) 자신의 전문 분야를 이토록 확장하여 글로써 족적을 남기는 것은 학자로서 이룰 수 있는 또 하나의 위대한 성취가 아닐지 싶다.
나는 어릴 때 빈을 떠나야 했지만, 그 세기의 전환기에 접했던 빈의 지적인 삶은 내 피가 되어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내 심장은 그 시대의 음악에 맞추어 4분의 3박자로 뛴다.
이 책은 그 뒤로 내가 1890년부터 1918년까지의 빈의 지성사에 푹빠져 지낸 매혹의 산물이자, 오스트리아 모더니즘 예술, 정신분석, 예술사에 대한 내 관심과 평생에 걸쳐 연구한 뇌과학을 종합한 결과물이기도하다. 나는 이 책에서 세기 말의 빈에서 기원하여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예술과 과학 사이의 대화를 살펴보고 그 대화가 주요한 세 단계를 거쳐왔음을 밝히고자 한다.
첫 번째 단계는 모더니즘 예술기들과 빈 의대의 연구자들이 마음의 무의식적 과정에 관해 깨달은 것들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1930년대에 빈 미술사학파가 도입한 미술과 인지심리학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속된 시기다. 세 번째 단계는 20년 전에 시작되었는데, 이 인지심리학이 생물학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정서적 신경미학의 토대가 마련된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신경미학이란 미술 작품에 대한 우리의 지각, 감정, 감정이입 반응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분야를 말한다.
뇌과학과 미술 사이의 이 대화와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노력 덕분에 우리는 미술 작품을 볼 때 그 사람, 즉 관람자의 뇌에서 어떤 과정이 진행되는지를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21세기 과학의 핵심 도전 과제는 인간의 마음을 생물학적 용어로 이해하는 것이다. 20세기 말에 인지심리학, 즉 마음의 과학이 뇌의 과학인 신경과학과 융합되었을 때 이 도전 과제의 해결 가능성이 열렸다. 그 융합은 새로운 마음의 과학을 낳았고,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지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 것일까? 정서, 감정이입, 생각, 의식의 본질은 무엇일까? 자유의지의 한계는?
이 새로운 마음의 과학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뇌과학과 다른 지식 분야들 사이에 의미 있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런 대화는 예술에서든 과학에서든, 인문학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간에 지각과 창의성을 가능케 하는 뇌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더 넓게 보면, 이 대화는 과학을 우리 공통의 문화적 경험의 일부로 만드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새로운 마음의 과학이 예술과 처음에 어떻게 관련을 맺기 시작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 핵심적인 과학적 도전 과제에 접근할 것이다. 재개되는 이 대화에 일관적이고 실질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나는 의도적으로 미술의 특정 형태 (초상화)와 특정한 문화적 시기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빈의 모더니즘)에만 논의를 한정했다. 이렇게 한 것은 핵심이 되는 주제들에 논의의 초점을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미술 형태와 이 시기가 예술과 과학을 결부하고자 한 일련의 선구적인 시도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빈 1900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사진술의 등장 이래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찾아야 했던 미술계가 우연히 빈에서 창발한 의술과 생물학, 심리학의 발달에 영향을 받아 창작자 중심의 예술을 관람객 중심으로 확장해갈 수 있었던 성취에 대해 논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면을 빈 1900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연구까지) 서로에게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던 과학과 예술이 서로에게 어떤 도전적인 과제를 낳아 발전을 이룩해왔는지 다루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논의는 더 확장되어 예술과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질문까지 환원적으로 파고 들어간다. 인간은 왜 예술을 추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엔) 책 내에서 명쾌하진 않다. 발전의 근원부터 전개, 원리에 대한 설명들이 책의 압도적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정작 궁금했던 궁극적 질문에 대한 깔끔한 결론 하나를 이 정도 책을 읽고도 얻어가지 못하는건 좀 많이 아쉽긴 하다. 그냥 타고 나기를 그렇게 타고 났다로 넘겨야 할련지? 애초에 답하기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환원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뇌가 우리의 처음이자 끝, 부분이자 전부인데, 인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인지?
우리는 왜 예술과 과학, 더 나아가 과학과 문화 전반의 대화를 촉진하고 싶어 하는가? 뇌과학과 미술은 마음을 보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을 대변한다. 과학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정신생활이 뇌의 활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활동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미술 작품에 대한 우리 반응의 토대가 되는 과정들을 이해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눈을 통해 모은 정보는 어떻게 시각으로 전환되는 것일까? 생각은 어떻게 기억으로 전환될까? 행동의 생물학적 토대는 무엇일까? 한편, 미술은 마음의 더 덧없고 경험적인 특성들, 특정한 경험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제공한다. 뇌 영상은 우울증의 신경 징후들을 밝혀낼 수 있겠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은 우울하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드러낸다. 마음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관점이 다 필요하지만, 둘은 결합되는 일이 거의 없다.
시지각과 감정 반응의 과정들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다면 미술, 새로운 미술 형식, 더 나아가 예술 창의성의 새로운 표현 방식에 관한 새 언어가 출현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밝혀진 사람의 해부 구조를 이용하여 인체를 더 정확하고 압도적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현대의 많은 예술가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밝혀진 사항들을 토대로 새로운 재현 방식을 창안할지도 모른다. 예술적 통찰, 영감, 작품을 본 관람자의 반응 등의 배경이 되는 생물학을 이해하는 일은 창작력을 증진하고자 애쓰는 예술가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뇌과학은 창의성 자체의 본질을 밝힐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다.
과학은 복잡한 과정을 핵심 활동들로 환원하고 그 활동들의 상호작용을 연구함으로써 그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며, 이 환원론적 접근 방식은 미술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사실 한 미술 학파, 그것도 겨우 세 명의 주요 인물로 이루어진 학파에 초점을 맞추는 이 책은 바로 그런 접근법의 일례다. 일부에서는 환원론적 분석이 미술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것이고, 미술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만들고 미술이 지닌 특별한 힘을 앗아가 결국 관람자의 역할을 평범한 뇌 기능으로 환원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나는 정반대라고 주장한다. 과학과 미술 사이의 대화를 장려하고 한번에 마음의 한 가지 과정만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권함으로써, 환원론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미술의 본질과 창작 과정을 간파하는 새로운 통찰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이 새로운 ...






좋은 책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앗, 제목과 저자만 보면 읽고 싶은데, 글로리아님의 독후감을 읽으니 쓸데없이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에 엄두가 안나게 되버린;;;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인상깊은 감상을 남겨주셔서 흥미가 생겨 관심도서 리스트에 적어놓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