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한 통신사의 '0.3초의 기적'이라는 광고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 한 꼬마가 선로로 떨어졌다. 모두가 얼어붙은 찰나, 반대편 선로에서 내 또래의 소년이 튀어나와 꼬마를 낚아채고 다시 돌아갔다. 전광석화 같은 그의 움직임 뒤로 브라운관 특유의 지지직거리는 잔상이 보였다. 그 잔상은 내 가슴에 도달할 때쯤, 동경 같은 질투로 변해있었다. '나도 저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기회가 없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등하굣길에 위험에 처한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곤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십 년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국으로 건너왔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흐릿한 브라운관으로 보았던 그 소년의 용기는 이제 내 머릿속에서 선명한 OLED로 재생된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저기에 있었으면...’ 하고 열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거기에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안도한다. 0.3초라는 기적을 꿈꾸기에는 너무 꽁꽁 얼어버렸다.
여느 날처럼 북적북적한 기차를 타고 출근하던 길이었다.
'쿵!'
둔탁한 소리에 놀라 고개를 빼꼼 내어보았다. 바닥에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한 여학생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뭐지? 마약쟁이인가? 아니면 내가 잘 모르는 요즘 세대들의 장난인가?’
주변 눈치를 살폈지만 다들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 바닥에 쓰러진 학생의 눈이 흰자위를 보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이거 기절이구나.’
수차례 돌렸던 시뮬레이션의 영향인지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학생 옆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억 저편에 분명 민방위 교육의 파편들이 가라앉아 있었으나 바로 앞에서 움찔거리는 학생을 보니 도저히 건져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