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의 사상 - 박수근의 경우

나목의 사상 - 박수근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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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2025.02.26조회수 3회

들뢰즈는 말한다. 화가가 화폭 앞에 앉아서 무언가 그리려 할 때, 그가 최초로 하는 일은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캔버스는 텅 빈 "순백의 표면"이 아니다. 화폭에는 이미 (매스 미디어나 사진 같은 시각 매체들이 생산한) 기성 이미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림을 시작할 수 있기 위해서, 화가는 우선 저 선행하는 이미지들을 제거해야 한다. 파괴가 창작에 우선한다.




모든 형상들을 지워버리는 일, 캔버스에 사막을 창설하는 일, 카오스르 도래시키는 일, 윤곽을 뭉개고 힘의 선들이 뒤범벅된 혼돈을 만드는 일, 들뢰즈는 이를 '파국'이라 부른다. 회화적 창작은 파국을 불러오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떤 화가의 고유한 인장이 찍힌 이미지가 솟아나는 것은 파국으로부터다. 반 고흐의 그림에서 소용돌이치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의 선영, 베이컨의 뭉개진 얼굴과 살은 이제 막 파국에서 솟아 나오는, 누구도 아직 그려낸 적 없는 새로운 형상이었다.


세잔은 자신 이전에 그려진 모든 사과들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이후, 그로부터 자신만의 사과를 끄집어냈다.




박수근도 그러하다. 누구나 한번 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고유의 화풍을 탄생시키기 위해 그가 창조했어야 할 미학적 파국은 그의 그림에 어느 순간부터 자리 잡게 된 화강암적 파국이다. 오래 세월의 비바람에 풍화된 듯, 닳아 없어지고 마모된 석북의 몸통인 듯, 울퉁불퉁 파인 요철의 표면. 형상도 색채도 다 희박해진 암각화 같은 캔버스. 모든 것은 그 고요한 파국의 진행 소게, 마치 폭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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