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영국 음악 잡지의 품에서 자랐고 그 접근법과 정신을 이어받은 90년대 잡지에서 추가적인 영양분을 섭취한 마크 피셔는 사라져 가던 부류, 즉 예언자로서 음악 비평가 중 아마 마지막 인물일 것이다.
으뜸가는 소명은 최전선을 식별하고 이를 위한 개종 활동을 벌이는 한편, 부정성이라는 레이저 광선을 발사해 잘못된 경로를 격하하고, 우리 시대의 참된 음악을 위한 빈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메시아주의적인 비평가는 새롭고 급직적인 것에 무기화된 찬사를 바치는 동시에 음악에 - 또 청자와 독자에게 - 도전할 채비도 갖추어야 했다.
마크가 고급 문화 - 시각 예술, 사진, 문학, 작가주의 영화 - 에 관해 쓴 글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정치, 철학, 정신 건강, 인터넷, 소셜 미디어(디지털 삶의 현상학 - 접속된 외로움과 산만한 권태라는 그 삶의 특유의 정동)에 관해 쓴 글은 정곡을 찔렀다.
가장 결정적으로 그의 글을 종종 이것들 다수 - 때로는 전부 - 를 한꺼번에 아우르곤 했다. 서로 멀리 떨어진 영역들을 연결하고, 미적 특수성들에 생생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줌-인을 사용하는가 하면, 가능한 한 가장 넓은 범위를 포괄하고자 다시 줌-아웃을 사용하면서 마크는 <사파이어 앤드 스틸> 같은 티비쇼에서 형이상학을, 조이 디비전 노래에 점복한 정신분석학적 진실을, 베리얼 앨범이나 큐브릭 영화의 짜임새에 꿰매어진 정치적 반향을 찾아냈다.
그의 주제는 인간 삶의 모든 것이었다. 야심은 드넓었고, 시야는 총체적이었다.
피셔와 버처 모두에게 "대립"의 엄격한 고수는 진지함의 표식, 무언가에 내기가 걸려 있으며 차이들을 놓고 맞서 싸울 필요가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그러니까 밍밍한 관용이나 만사형통하리라는 긍정이 아니라 바로 이 부정적인 역량 - 반대편을 격하하고 폐기하고자 하는 의지의 힘 - 덕분에 음악과 문화가 맹렬한 기세로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 만들기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