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는 개인들이 태어나 그 안으로 내던져지는 거대한 우주인 바, 이 우주는 개인들에게 그들이 살아가야만 하는 사실상 불변적인 껍데기로서 주어진다. 그 우주는 개인들이 시장에 관련되는 한 자신의 경제적 행위의 규범을 강요한다. 이러한 규범에 적응할 수 없거나 적응하려고 하지 않는 노동자는 실업자로 길거리에 내던져지듯이, 이러한 규범에 지속적으로 대립해 행위를 하는 공장주는 경제적으로 반드시 제거된다. 그러니까 경제적 삶을 지배하게 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경제적 도태과정을 통해 필요한 경제 주체(기업가와 노동자)를 교육하고 창출하는 것이다.
- 막스 베버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제적 행위의 규범"은 두 가지 준칙으로 구성된다.
첫째, 자본주의는 약탈이나 폭력에 의한 갈취가 아니라, 오직 "평화롭게 영리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에 근거하는 행위"를 규칙으로 한다. 근대 자본주의는 이런 점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비합리적, 투기적, 폭력적, 약탈적 자본주의와 질적 차이를 갖는다.
둘째, 자본주의적 질서는 평화롭게 획득된 재화를 강박적인 동시에 무제한적인 방식으로 축적하는 것을 행위준칙으로 한다. 즉, 잘 살기 위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기 위해 부를 축적하도록 강제되는, 동어반복적 자기목적화 과정이 그것이다. 이것이 근대 자본주의에 강박충동의 성격을 부여한다. 자본주의가 '세속적 금욕주의'로 이해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부의 감각적 향유가 계속 미래로 미루어지는 상황에서, 인간 행위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왜 노동을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는 사회경제적 시스템이기 이전에 심리 시스템이다. 마음의 운영 원리다.
우리는 흔히 '심리적인 것'을 '사회적인 것'과 대립시키고, 심리를 인간의 의식이나 내면에 위치시키곤 한다.이때 마음은 피부로 둘러싸인 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로 표상된다. 하지만, 심리적 힘들은 인간 행위자의 내면에 위치하고 있다기보다는 모든 관계들과 사물들 사이를 흐르는 에너지에 더 가깝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마음은 일종의 '욕망기계'다. 그것은 다른 기계들과의 연결접속을 통해 형성되고, 작동되며, 흐른다. 혹은 가브리엘 타르드처럼 말하자면, 마음은 모방된다. 즉, 한 두뇌와 다른 두뇌 사이에서 전달되는 '뇌간 에너지', 혹은 정동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마음은 결코 (맑스주의의 역사적 유물론이 상정했던 것처럼) 상부구조로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것은 생산력으로 기능하는 하부구조다.
여러 씨앗-자본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미래를 선취하여 거기에 자신의 이상적 가능성을 투사하고, 현재적 쾌락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