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주의적 통치성과 근대의 꿈 - 박정희를 중심으로
벤야민의 몽상사는 이렇게 각성사로 이어진다. 꿈은 찬란한 유토피아지만, 그것이 부서질 때 비로소 유토피아가 숨기고 있던 디스토피아적 양상들이 나타난다. 몽상의 역사가 꿈의 내용들을 기술한다면, 각성의 역사는 꿈의 어둡고 아이러니한 실패들을 직관한다.
디스토피아의 참혹성을 직시함으로써 과거의 꿈과 결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것이다.
꿈의 고고학을 통해 드러난 과거의 꿈, 지나간 세대의 꿈, 아버지의 꿈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움직이지 못한다.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꿈이 폐기될 때, 한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벤야민은 과거가 이미 고정되고 굳어진, 변화 불가능한 사태라고 보지 않았다.
과거는 현재의 사건이 불러일으킨 충격에 의해 새로운 이미지들을 방출하는 만화경과 같다.
주지하듯, 우리는 현기증 나는 변화를 겪어낸 사회를 산다.
60년대 이후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체험했고, 80년대에는 민주화를 겪었으며, 97년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 있다. 상이한 시대들, 상이한 정신들, 상이한 가치들과 꿈들이 한 인간, 한 세대에, 한 그룹의 행위자들에 내적으로 공존하다.
말하자면, 많은 한국인들은 발전주의자이며, 민주주의자이며, 동시에 신자유주의자다.
이러한 분열증적 다각성은 한국적인 것의 중요한 특성이다.
거기에는 매력도, 위험도, 피로도 있다. 이 복합성, 모순성, 유연성이 이른바 'K-컬처'에 짙게 배어 있다. 우리는 빠른 적응, 빠른 발전, 빠른 포기, 빠른 변형에 능하며, 그런 새로운 고단한 고투를 겪어내면서, 도태된 수많은 약자들을 또 빠르게 망각하며, 자신은 이 광기 어린 속도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분투하면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
유럽 근대는 진보의 꿈이라는 엔진으로 가동되었다. 팽창의 꿈, 문명의 꿈, 해방의 꿈, 더 나은 미래는 그들에게 믿음의 대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서구 모더니티의 아카이브는 기술적, 혁명적, 공상적 유토피아로 가득하다.
반면, 한국 모더니티를 이끈 몽상적 엔진은 저 유럽적 근대가 밀고 들어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 굴욕, 폭력의 자리에서 형성된다. 트라우마적 비상상황 생존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비상상황에 던져진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생물학적 목숨으로 인식하고, 이를 유지하고 보존해야 하는 급박한 과제와 씨름한다. 이른바 '서바이벌'의 꿈이다.
생존주의는 인간 본성이나 이데올로기, 의식형태, 혹은 사상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 인간들을 움직이는 절박한 꿈이다. 정치는 이 꿈을 통치성 논리로 전환시켰다. 생존의 꿈은 20세기 중반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최상급의 문제였고,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과 행위능력을 보여준 인물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박정희다.
꿈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는 거기서 민중의 욕망에 언어와 상징을 부여하여 그들을 이끌고 간 강력한 리더들을 만난다. 이들은 랜들 콜린스가 말하는 이른바 "에너지 스타"들이다. 타인에게 정서적 에너지를 제공하고, 그들의 욕망을 청취하고, 꿈을 조형하고, 매력적인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는 존재들이다.
내가 보기에, 박정희는 매우 일관적이며 선명한 통치 논리를 구사한 인물인데, 그것은 '생존'이라는 의미소를 중심으로 한다. 생존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