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주의 욕망기계 - 김기영의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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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2025.02.27조회수 3회

아버지 날 살려줘. 못 죽어, 정말 못 죽어. 시커먼 죽음의 쓰레기통에 날 넣지 말어.

죽음은 뵈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바람도 없고 빛도 없어. 날 한 줌의 흙과 한 방울의 물로 제발 만들지 말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날 살려줘. 아버지. 아버지 살려줘.

죽음은 정말이지 파리새끼만한 가치도 없잖아. 꿈틀거리는 구더기만한 가치도 없잖아. 무서워, 무서워.



한국 영화사에는 유현목의 뱀만큼이나 인상적인 또 다른 비인간 배우가 존재한다. <오발탄>에 일 년 앞서 상영된 김기영의 <하녀>에 등장하는 쥐들이 그것이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가정부가 찬장에서 쥐를 붙잡아 바닥에 던져 때려죽인 후 특유의 무표정을 하고는 가족들에게 그 사체를 보여주는 장면. 갑자기 스크린에 나타나 대롱거리는 저 동물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충녀>의 지하실 하수구에서 우글거리며 번식하며 해골을 파먹고, 갓난아이의 요람에 마구 기어오르고, 아이에게 잡아먹히면서도 수시로 실내에 출몰하는 저 징그러운 흰쥐 떼는 도대체 무엇인가?




유현목의 뱀이 인간 역사에 합류하는 하나의 상징이라면, 김기영의 쥐는 타자성을 유지한 채 상징화에 저항한다. 인간과 쥐의 소통 가능성은 없다. 쥐는 설득되거나 포섭되지 않는다. 박멸되지도 않는다. 그저 들끓는다. 생활의 요청, 가령 부엌의 찬장이나 침실 같은 곳에 돌연 나타나 중산층 가정의 기초를 뒤흔든다.


쥐가 출현하는 고은 가부장제의 크랙(crack)이 공포스럽게 노출되는 지점이다. 쥐가 등장하면, 거울이 불길하게 쪼개지듯 취약한 질서의 균열이 드러나고, 정돈되어 있던 것들이 야비하게 흐트러진다. 어처구니없는 파멸, 치욕, 전염과 부패의 예감이 솟아난다.


중산층의 장밋빛 환상을 갉아먹으며,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 준동하는 이 기생적 존재는 인간 의미의 투사를 무력화시킨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쥐의 인간화'가 아니라, 인간이 쥐의 힘에 전염되어 쥐의 세계에 연결되는 '쥐-되기'의 운동이다.


쥐가 된다는 것은 설치류의 소리나 행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종의 연결(가령 쥐약)을 통해 쥐의 영토, 쥐의 세계, 쥐의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쥐약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 가부장의 주체성이 치정에 얽혀 수치스럽게 해체되는 곳, 그 파탄의 자리에서 동식은 자신의 쥐-되기를 자각한다.




<충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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