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간은 금이라고, 친구"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계관에는 돈을 거의 종교처럼 숭배하는 '고블린'이라는 종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유저(우리)를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한다. "시간은 금이라고, 친구." 그러면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자신의 시간을 빼앗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들은 모든 일을 돈과 시간의 관점에서 살피는 철두철미한 상인의 전형이다.
고블린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해서일까? 이 말은 종종 식상하게 들린다. 대부분의 오래된 격언이 그렇듯, 세월이 지나며 그 말이 주는 본래의 무게감을 잃어버린다. '시간이 돈이라는 걸 누가 모르나?'라며 가볍게 넘기기 쉽다.

하지만 나는 이 낡아 보이는 명제야말로, 돈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 영원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돈 관리에 대한 논의는 이 문장에서 시작해 이 문장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명제는 돈을 '버는 것(득점)'과 '쓰는 것(수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핵심을 짚는다.
첫째, '득점'의 관점이다. 시간을 투입해야 돈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이 나의 노동력을 들인 시간의 대가든, 나의 자본을 빌려준 시간의 대가든 마찬가지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돈을 버는 방법은 '운(복권, 상속, 누군가의 실수 등)'뿐이며, 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금융교육을 기본 교육과정에 포함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바꿔서 말한다. “시간은 돈을 만드는 기계다”(Time is money-maker). 이에 대한 관점은 다른 글에서 논의하도록 하겠다.
둘째, 그리고 이 글의 핵심 주제인 '수비'의 관점이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명제를 뒤집으면 "돈은 시간이다(Money is Time)"가 된다. 우리가 돈을 쓴다는 것은 곧 나의 시간을 쓴다는 의미다. 시간은 우리 삶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면, 나의 시간(돈)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구두쇠'가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아가 나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일이다.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려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이전 글에서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욕망과 불안을 계기로 발생하는 소비와 마음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돈을 관리하는 체계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1. 돈은 시간이며, 시간은 삶이다
어떤 것에 지불한 값은, 내가 기꺼이 '삶'이라고 부르는 것을 내어준 것이다. 그것이 당장이든, 혹은 평생에 걸쳐서든 말이다.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The cost of a thing is the amount of what I will call life which is required to be exchanged for it, immediately or in the long run. <Walden; or, Life in the Woods> - David Henry Thoreau
생태주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우리가 물건을 살 때 지불하는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비용은 그 돈을 벌기 위해 투입한 '시간', 즉 내 삶의 일부이자 '생명력' 그 자체다.
그렇기에 소로는 사람들이 더 크고 좋은 집이나 불필요한 사치품을 사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바치는 현실을 비판했다. 그는 '삶'을 지불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만의 오두막을 짓겠다고 선언한다. 호숫가에 지은 그의 오두막은 총 28달러 12.5센트가 들었고, 그 돈을 버는 데는 소로의 인생에서 단 몇 주만이 필요했다. 그는 집을 사기 위해 몇십 년의 삶을 바친 사람보다, 단출한 오두막과 더 많은 '삶'을 소유한 자신이 더 부자라고 말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소로처럼 살기는 어렵다. 특히 가족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많은 이들에게 가장 큰 삶의 목표이자 현실적인 과제다. 소로의 주장을 '집을 사면 안 된다'는 식의 극단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확실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바로 '가치의 자각'이다. 내가 지불하는 돈이 얼마나 무거운 '삶의 시간'과 교환되는지 인지하는 것. 그리고 내가 얻으려는 대상이 과연 그만한 삶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다.

'삶의 총량'이라는 극단적 비유: 영화 <인 타임>
이러한 '돈=삶'의 개념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세계관이 있다. 바로 영화 <인 타임(In Time)> 속 세상이다. 이 영화는 ‘돈이 곧 시간, 즉 생명이 화폐인 세계'를 그린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내 생명의 10분을, 버스를 타기 위해 1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수명'을 번다. 그리고 물건을 살 때 자신의 수명을 지불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일해 고작 24시간 남짓의 수명을 번다.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이다. 진짜 문제는 물건의 가격, 즉 지불해야 할 '수명'이 계속 오르면서 시작된다. 어제까지 커피 한 잔이 10분이었는데, 오늘부터 15분으로 오른다. 매일 물가는 오르지만 내 노동의 가치(받는 수명)는 그대로다.
이런 세상에서 누군가는 오히려 물건값이 비싸지는 것을 통해 수명이 영원히 늘어난다. 이미 물건을 생산할 수단을 가진 이들이다. 그는 자신의 부(삶)를 영원히 지속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일해도 오르는 물가(시간)를 따라잡지 못하고 결국 죽어간다. 반면 누군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살아간다.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이 부자들의 시간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종의 '로빈 후드'식 결말이다. 이런 극적인 해결책은 현실의 우리에게 잠시 통쾌함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의 결말이 아니라, 이 영화가 제시한 '극단적인 설정' 그 자체다. 그 설정이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불하는 돈은 내 삶의 일부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해진다. 이토록 소중한 '삶'이라는 자원을 무방비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돈, 시간의 총량은 한정적이다. 우리 생애 전체를 고려하며 적절하게 자원을 배분하고 관리하는 기술은 노후준비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필수 생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