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처음 보는 이에게 곧잘 말을 거는 편이다. 택시 기사님에게 슬쩍 정치 이야기를 던지기도 하고, 식당 사장님에게 요즘 경기를 묻기도 한다. 어제는 머리를 자르다 미용사와 주식 이야기를 나눴다. 주식은 꽤 괜찮은 스몰토크 주제가 된다. 물론 나의 수익보다는 손실 이야기를 마중물로 넣어야 상대의 이야기도 술술 터져 나온다.
코로나 시기 야심 차게 입문했다가 '국장'에 배신당하고 '미장'으로 망명했다는 이야기, 그러다 결국 개별주식 레버리지 ETF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형적인 한국 투자자의 연대기를 듣던 중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그가 한국 시장을 평하는 논리였다.
"한국 주식은 믿을 게 못 돼요. 원화 가치는 떨어졌는데 외국인이 싸니까 잠시 사는 것뿐이죠. 가치도 없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어요."
그의 관점이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놀라운 건 그가 읊조리는 ‘국장 회의론’이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 그리고 어제 다른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비단 경제뿐만이 아니다. 정치, 사회 사건, 심지어 영화 한 편에 대한 감상조차 우리는 누군가 정해놓은 ‘표준화된 관점’을 자신의 생각인 양 이야기하곤 한다.
왜 우리는 타인의 해석을 내 생각의 거처로 삼는 걸까? 나는 그 원인을 ‘정답을 갈구하는 문화적 관성’에서 찾는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스포츠 중계는 서구권과 확연히 다르다. 서양의 중계가 상황 묘사와 기술적 데이터 전달에 집중하며 시청자에게 해석의 여백을 남겨둔다면, 한국의 중계는 지나치게 친절하다. “지금은 위기입니다”, “저 선수는 지금 간절합니다”라며 시청자가 느껴야 할 감정과 관점의 가이드라인을 실시간으로 주입한다. 우리는 스스로 느끼기보다, 전문가가 내려주는 ‘해설’을 소비하며 비로소 안도한다.
이런 특성은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레퍼런스 강박’으로 나타난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는 항상 외국의 선례부터 찾는다. 이미 검증된 ‘정답’이 있어야만 상급자와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사회. 그래서 우리 사회는 모두가 동의하는 ‘상식’이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갖는다.
불확실성이 본질인 시장조차 우리는 스포츠 해설 듣듯 확실한 해석을 원한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스스로 기업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유행하는 스타일을 ‘골라잡는’ 쪽을 택한다. 마치 미용실 메뉴판에서 댄디컷이나 가르마펌을 고르듯 가치 투자, 매크로 투자, 혹은 특정 테마주라는 스타일 속에 자신을 편입시킨다.
이번 글은 이런 현상의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투자 행위 이면에 흐르는 심리적 층위를 현상학적으로 진단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무엇에 지배당하고 있는지 자각할 때, 비로소 시장의 소음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주체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사유의 첫 페이지를 넘겨본다.
요즘 시장을 떠도는 회의론 중 가장 대중적인 서사는 ‘불균형’에 대한 불만이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같은 반도체만 오르고 나머지는 제자리다”, “지수가 오르면 뭐 하나, 내 종목은 소외됐는데” 같은 탄식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시장이 비정상적이라며 혀를 차지만, 내가 경험한 한국 시장은 단 한 번도 ‘정상적’이었던 적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시장에서 ‘쏠림’은 예외가 아니라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조방원(조선·방산·원전)’, ‘반바지(반도체·바이오·지주사)’ 같은 줄임말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단어들은 단순한 산업 분류가 아니라 당대를 지배했던 '유행의...




제 평소 생각이랑 너무 비슷하시네요.
아.. 동질화 안되는데 ㅋㅋ

와우. 명문 감사합니다!

개인이 쉽게 실천해서 바꾸기 어려운 것들이라 긴 기간 동안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지 않을까 합니다 심리적 통찰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면서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글을 남깁니다.
과연 한국만이 집단 소외에 불안해하고 유행에 쏠리는 사회일까요? 저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욕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의견 개진이 자유롭다고 알려져 있는 미국의 크록스 열풍이나 스탠리 텀블러 광풍만 봐도 그렇죠. 제가 미국에서 만난 지인들(모두 대졸이며 이들의 페르소나가 미국이라는 사회의 대표성을 포함하지는 않지만)도 "FAANG은 무조건 오를 거야, 가장 안전한 선택이니까"라고 말하더군요. 제 생각엔 '대장주'와 'FAANG'은 표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인것 같아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이 유행에 민감해 보이는 걸까요?
경험 속도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 높은 인구밀도, 빠른 공급망, 신속한 행정처리가 맞물려, 두쫀쿠 열풍이 일주일 만에 전국을 휩쓸고, 한 달 뒤면 골목마다 똑같은 간판이 걸수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 음식 유행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퍼지는 건, 장기 임대 계약이나 긴 행정 절차, 넓은 점포 간 거리 같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같은 욕구가 있어도 물리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어려운 환경이랄까요. 단적인 예로 한국은 새로운 점포를 열기 위해서 위생점검을 신청하면 이틀에서 삼일이면 받을 수 있지만, 미국의 주의 경우 6개월 이상 걸린다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바로 생산하여 공급할 수 있는 신발, 물병 등은 유행이 돌고 있다는 경험을 더 빨리 쉽게 할 수 있는 거죠.
정리하자면,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더 유행에 민감한 게 아니라, 유행을 더 자주, 더 눈에 띄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본질은 비슷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훨씬 빠르고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 이네요~
사실 한국 사람의 문화, 특성 이런 것이 실재하냐는 관점의 차이고 넓은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이지요.
사람 차이보다 제도나 주어진 환경 차이도 분명 영향이 클거 같네요.
말씀해주신 부분은 상당히 타당한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대장주에 올라타는 행위는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가장 뜨거운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는 행위일 뿐이다."
명문입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인적자본 하나만으로 이렇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또 그만큼 빠르게 환경에 적응하고 아닌건 빠르게 버리는 집단적인 경험이 내재화 된것 아닐까요? 애초에 우리같이 없는나라는 취향의 다양함이라는게 결국 마이너한 고립을 불러온다는게 생존 dna에 각이 되었다고 할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