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와 대장주의 현상학

두쫀쿠와 대장주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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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백
2026.01.28조회수 284회

‘해설’에 대한 소비욕구

나는 처음 보는 이에게 곧잘 말을 거는 편이다. 택시 기사님에게 슬쩍 정치 이야기를 던지기도 하고, 식당 사장님에게 요즘 경기를 묻기도 한다. 어제는 머리를 자르다 미용사와 주식 이야기를 나눴다. 주식은 꽤 괜찮은 스몰토크 주제가 된다. 물론 나의 수익보다는 손실 이야기를 마중물로 넣어야 상대의 이야기도 술술 터져 나온다.


코로나 시기 야심 차게 입문했다가 '국장'에 배신당하고 '미장'으로 망명했다는 이야기, 그러다 결국 개별주식 레버리지 ETF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형적인 한국 투자자의 연대기를 듣던 중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그가 한국 시장을 평하는 논리였다.


"한국 주식은 믿을 게 못 돼요. 원화 가치는 떨어졌는데 외국인이 싸니까 잠시 사는 것뿐이죠. 가치도 없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어요."


그의 관점이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놀라운 건 그가 읊조리는 ‘국장 회의론’이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 그리고 어제 다른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비단 경제뿐만이 아니다. 정치, 사회 사건, 심지어 영화 한 편에 대한 감상조차 우리는 누군가 정해놓은 ‘표준화된 관점’을 자신의 생각인 양 이야기하곤 한다.


왜 우리는 타인의 해석을 내 생각의 거처로 삼는 걸까? 나는 그 원인을 ‘정답을 갈구하는 문화적 관성’에서 찾는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스포츠 중계는 서구권과 확연히 다르다. 서양의 중계가 상황 묘사와 기술적 데이터 전달에 집중하며 시청자에게 해석의 여백을 남겨둔다면, 한국의 중계는 지나치게 친절하다. “지금은 위기입니다”, “저 선수는 지금 간절합니다”라며 시청자가 느껴야 할 감정과 관점의 가이드라인을 실시간으로 주입한다. 우리는 스스로 느끼기보다, 전문가가 내려주는 ‘해설’을 소비하며 비로소 안도한다.


이런 특성은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레퍼런스 강박’으로 나타난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는 항상 외국의 선례부터 찾는다. 이미 검증된 ‘정답’이 있어야만 상급자와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사회. 그래서 우리 사회는 모두가 동의하는 ‘상식’이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갖는다.


불확실성이 본질인 시장조차 우리는 스포츠 해설 듣듯 확실한 해석을 원한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스스로 기업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유행하는 스타일을 ‘골라잡는’ 쪽을 택한다. 마치 미용실 메뉴판에서 댄디컷이나 가르마펌을 고르듯 가치 투자, 매크로 투자, 혹은 특정 테마주라는 스타일 속에 자신을 편입시킨다.


이번 글은 이런 현상의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투자 행위 이면에 흐르는 심리적 층위를 현상학적으로 진단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무엇에 지배당하고 있는지 자각할 때, 비로소 시장의 소음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주체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사유의 첫 페이지를 넘겨본다.



대장주 현상

요즘 시장을 떠도는 회의론 중 가장 대중적인 서사는 ‘불균형’에 대한 불만이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같은 반도체만 오르고 나머지는 제자리다”, “지수가 오르면 뭐 하나, 내 종목은 소외됐는데” 같은 탄식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시장이 비정상적이라며 혀를 차지만, 내가 경험한 한국 시장은 단 한 번도 ‘정상적’이었던 적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시장에서 ‘쏠림’은 예외가 아니라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조방원(조선·방산·원전)’, ‘반바지(반도체·바이오·지주사)’ 같은 줄임말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단어들은 단순한 산업 분류가 아니라 당대를 지배했던 '유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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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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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자이자 금융강사. 단순히 재무적 안정이나 부자되기를 넘어, 물질과 정신 모두 풍요로운 삶을 지향한다. 이를 '멋지게 나이들기'라는 철학으로 삼고, 이곳 <멋나들 연구소>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