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트럼프, 일론 머스크, 샘 알트먼..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구글딥마인드의 수장인 데미스 하사비스도 인류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저는 기업 창업기나 중요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는것을 즐겨합니다.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는 출간 전 이지만 (번역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전기 [The Infinity Machine (무한의 기계)]를 먼저 읽어보고 최대한 자세하게 아티클로 작성해보았습니다.
5 part로 나눠서 올릴 계획입니다. 내용이 길지만, 저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새벽 두 시, 진실이 나에게 소리친다
“새벽 두 시에 제 책상에 앉아 있으면, 진실이 저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요.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내가 들을 수만 있다면…”
이 고백은 데미스 하사비스를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입니다. 그는 자신을 야심 찬 테크 기업의 CEO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주가 보내는 신호를 해독하는 번역자에 가깝게 봅니다. 이 기묘한 자의식이 오늘날 알파벳(Google의 모회사)이 가진 강력하면서도 중요한 무형 자산입니다.
그의 출신은 실리콘밸리식 성공 신화와 결이 다릅니다. 1976년 7월, 런던 북부 핀칠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싱가포르계 중국인. 어린 시절 일부를 싱가포르 길거리의 고아로 지내다 친척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영국으로 건너와 간호학을 공부했습니다. 데미스가 자라던 무렵 어머니는 백화점 존 루이스의 판매원이었고, 부업으로 청소부 일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리스계 키프로스 출신, 가문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었지만 회사 일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한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를 꿈꿨고, 망가진 빨간 폭스바겐 밴 뒷자리에서 장난감을 팔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테크 리더들은 모두 ’부와 권력’을 쫓는다면, 하사비스가 쫓는 것은 결이 달랐습니다. 그는 과학적 계몽에 더 가까운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어린시절 데미스와 부모님 (왼쪽), 그리고 싱가폴에 있는 친척들
지금 하사비스는 인류 최후의 발명품이 될지 모를 인공일반지능(AGI)을 만들면서,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뒤에 마주했던 딜레마를 다른 형태로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기계는 암을 치료하고 무한한 청정에너지를 설계할 신의 도구일 수도, 인류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통제 불능의 무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진합니다.
투자자가 그를 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알파벳 주식을 산다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 이 남자의 집착, 판단, 속도감, 그림자에 베팅한다는 뜻입니다. 구글 딥마인드에 알파벳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월스트리트는 분기 실적 발표에서 제미나이 벤치마크와 TPU 투자 규모를 숫자로 쪼개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은 자주 뒤로 밀립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지금 정확히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이 글은 그 세 질문을 따라갑니다.
전화번호부 위에 앉은 꼬마 천재 — “죽기 직전까지 나를 밀어붙였다”
네 살이었습니다. 북런던의 작은 아파트 거실, 의자 위에 올라가 아버지와 삼촌이 두는 체스 경기를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만에 두 어른을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살에는 토너먼트에 나갔습니다. 키가 작아 의자 두 개를 쌓고 그 위에 전화번호부를 깔고 앉아야 보드 위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습니다. 그는 종종 자기보다 나이 많은 아이들을 이겼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한 명이 그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스파클링하다(sparkling-빤짝인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경쟁적이다.”
여섯 살, 영국 14세 이하 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얻었습니다. 두 경기를 이긴 다음, 게임이 저녁까지 늘어지자 그는 테이블 위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습니다. 잠자리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국 체스의 살아있는 전설, 레너드 바든이었습니다. 1950~60년대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고, 이후 잘 알려진 칼럼니스트이자 TV 해설가가 된 인물입니다. 그가 데미스의 아버지에게 다가와 부모들이 사랑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종류의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당신 아들은 제가 본 여섯 살 중에 최고입니다.”
이 한마디가 가족의 6년을 바꿔놓았습니다. 아버지는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말마다 어린 데미스를 빨간 폭스바겐 밴에 태워 외딴 교회 회관의 토너먼트장으로 데려갔습니다. 어머니는 둘째와 셋째 아이를 보살피며 여러 일을 떠맡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때로 밴 뒤편 엔진 위에 침낭을 깔고 잤고, 때로는 싸구려 호스텔의 이층 침대를 함께 썼습니다. 아들이 우승하면 상금이 호스텔 비용을 메웠지만, 어머니는 늘 여행경비를 걱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절대적인 가난 속에서 자라셨거든요. 부모님이 돈 때문에 다투는 일도 많았을 거예요. 우리 집에 돈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체스 커리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홉 살에 잉글랜드 11세 이하 대표팀 주장이 됐고, 열세 살에 체스 마스터 등급에 도달했으며, 동연령대에서 세계 두 번째로 강한 선수였습니다. 동시에 압박은 무거워졌습니다. 체스가 모든 주말과 모든 학교 방학을 잡아먹었습니다. 보통 아이의 일상은 사라졌습니다. 토너먼트는 잔혹했습니다. 테이블 아래에는 선수들이 서로의 다리를 차지 못하도록 나무판이 깔려 있었습니다.

의자에 배게 두개를 쌓아야 테이블이 닿았다는, 어린시절의 데미스.
때론 아버지가 폭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외딴 호스텔에서 데미스가 룩 한 개를 더 가지고도 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격분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떻게 이걸 던질 수가 있어! 이게 말이 되느냐!” 어느날 데미스가 처음으로 맞섰습니다. “이건 말이 안 돼요. 저는 분명히 최선을 다했어요. 일부러 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날 이후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아이의 평생을 지배할 철학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늘 말했습니다. “이기든 지든,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하는 거야.” 데미스는 그 말을 다소 기형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그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몰아 붙였을 때만 알 수 있다. 만약 죽으면, 그러니까 번아웃되면, 살짝 지나친 거다. 마치 마라톤 같다. 결승선 통과하고 바로 탈진해서 쓰러져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병원에 실려가야 하지만, 죽지는 말아야 한다. 그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다. 만약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고 여전히 서 있다면, 더 노력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나는 아홉 살인가 열 살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