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정이님 댁에는
아주 고약한 귀신이 살고 있다고 하셨다.
분명히 여기 둔 물건이 없어져서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다가 갑자기 이상한곳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갑자기 가스레인지 불을 켜서 냄비를 홀랑 태워버리고
외출을 다녀오면 현관문이 활짝 열려져 있고
온갖 고약한 짓을 일삼는 건망증이라는 귀신이 살고 있다고 하셨다.
터키 여행중에 만난 Gordon은
하루에도 몇번씩 Passport Panic을 겪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처음엔 나도 덩달아 놀래서 지켜보곤했는데
여행 말미엔 서로 눈을 마주치며 키득키득 웃곤 했지.
요즘, 칠정이님, Gordon을 닮아가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외출중에 '아빠 문열어두고 나갔다'는 문자가 잦아지고
설겆이 후에 디시워셔 시작버튼을 누르지 않는것도 다반사다.
전화는 왜 또 자꾸 사라져 버리는것인지.
아직 냄비는 태워먹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밸리에서도 글을 읽다가 끝까지 다 읽지도 않고
댓글이나 글을 쓰다보니 자꾸 엉뚱한 소리가 잦아진다.
얼굴 화끈거리는건 보이지 않을테지만 그걸 봐야만 아는건 아닐것이다.
조금 천천히
뒷짐지고 느릿느릿 움직여도 괜찮은것을 느껴야 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직 그 나이는 아니잖아?
맘속에서
점점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잘 죽어야겠다는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지 않나?
지금부터 연습해야지 내년이 내후년이
십년후, 20년 후가 추하지 않고 봐줄만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뒷짐거사가 되기로 한것 잊지 말자.
적어도 오줌발 끊어지기 전에 빤쓰 먼저 올리는 괴팍한 노인네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