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4. 카더가든과 부재자의 인질 (김혜순)

[시리즈 연재] 4. 카더가든과 부재자의 인질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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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
2026.01.26조회수 2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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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Vettriano - 'The Singing Butler')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떠난 아르헨티나 여행의 기억이 있다. 당시 축구에 열광하던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축구의 성지이자 메시의 고향으로 향한다는 소식은 설렘 그 자체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가죽 공장 특유의 스모키하고 비린 내음 속에서 축구공을 샀던 순간이다. 바람을 뺀 채 바다를 건너온 그 공은, 이제는 내 방 한구석을 차지한 낡은 골동품이 되었다. 축구와 멀어진 지는 오래지만, 차마 버리지 못한 그때의 추억은 어느덧 8년째 내 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비행기에 싣고 온 것이 비단 축구공만은 아니였고 흐릿한 기억 속엔 아르헨티나의 탱고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란 감정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지만, 사랑을 말할 때면 어김없이 그때 본 탱고의 잔상이 떠오른다.


아르헨티나 탱고 특유의 즉흥성, 그리고 상체를 밀착해 서로의 심장 박동을 공유하는 ‘아브라소(Abrazo)’는 어린 눈에도, 지금의 내게도 묘하게 에로틱하다.


상대를 집어삼킬 듯한 강렬한 눈빛과 밀착된 자세 속에서도, 결코 상대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을 내어주는 절제미. 가깝지만 결코 하나로 함몰되지 않는 그 적당한 거리감. 가깝고도 먼 그 사이야말로 탱고가 사랑에 가장 닮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환승연애 4

가깝지만 멀다. 알송달송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요즘 유행하는 연애 프로그램 중에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환승연애>는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나간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연애 프로그램이다.


쉽게 말해서 한 집에 헤어진 사람들을 모아 놓고 X(전 연인)와 재결합할지, 혹은 거기에서 만난 다른 사람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지를 선택하는 도파민 터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나는 직접 보진 않고 쇼츠로 소비하는 '쇼츠 전문가'인데, 최근에 내 기억에 남은 쇼츠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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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연애4]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 18화 클립)


너무 사랑했지만 재회할 수 없음을 직감한 커플이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그때 자신이 얼마나 잘 못 생각했는지를 고백하고 작은 선물을 줬는데 거기에는 카더가든의 노래가 시처럼 써져 있었다. 이 노래는 둘이 사귀던 시절에 침대에 누워서 가사가 좋다면서 들었던 노래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카더가든이 카더가든이 아니던 오랜 시절부터 팬이였어서 이 노래를 알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분명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구석이 있다.

그대 작은 나의 세상이 되어

그려 본 적 없는 꿈을 꾸게해

이 구절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오늘날 사랑이라는 것은 '가지다', '알다', '붙잡다'와 같이 할 수 있음(I can do)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인 "할 수 없음(can't)" 아닐까.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그려 본 적 없는 꿈을 꾸게 할 정도로 예측할 수 없는(할 수 없음) 일들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한다.


저번 주에 우리는 사랑과 소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소비는 왜 소비일까. 내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소비다. 소비가 아니라 사랑이려면, "내가 통제할 수 없음"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내가 통제할 수 없음"이라는 부정성(not)을 가진다. 중요한 부분이니 반복해서 이야기하겠다. 사랑은 긍정성(할 수 있음)이 아니라 부정성(할 수 없음)의 성격을 가진다. 부정성(할 수 없음)이야말로 '타자' 즉, 소비되는 물건이 아닌 진정한 실존적 인간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말을 빌리자면 "관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 왜? 부버가 말하는 "근원 거리"는 타자가 하나의 대상인 '그것'으로 전락하고 사물화되는 것을 막고 그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전제다.


오늘날 관계에 중요한 전제가 되는 '근원 거리'를 파괴하고 우리를 에로스의 종말로 밀어넣은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를 풍족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빼앗고 사랑을 소비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 아닌가.


오늘날의 MBTI를 보자. 이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굉장히 편리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지우고 소비 가능하도록 16개의 최적화 옵션으로 제한해버린다.


연예인들을 예시로 들면 우리는 그들을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MBTI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본질적으로 그들과 나 사이의 근원 거리를 파괴하고 타자성을 지워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가까우면서 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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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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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그렇다는 걸 나는 몰랐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지만 어쩌자고 이런 것까지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