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연재]현대 중동의 탄생 1부 - 민족으로 흥하고 민족으로 망하다





1538년 9월, 그리스 서해안 프레베자 앞바다에 기독교 세계가 끌어모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함대가 모였습니다. 교황과 스페인,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손을 잡았고, 지휘봉은 당대 최고의 제독으로 꼽히던 제노바의 안드레아 도리아가 쥐었습니다. 그 맞은편, 오스만 함대의 사령탑에는 하이레딘 바르바로사라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바로 저 기독교 해안을 약탈하고 다니던 ― 요컨대 해적이었습니다. 게임 대항해시대를 해본 분들에게는 하이레딘으로 유명한, 바로 그 해적입니다. 그런데 술탄 쉴레이만은 이 해적을 붙잡아 목매다는 대신, 제국 해군 전체를 호령하는 카푸단 파샤, 곧 대제독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 해적 출신 제독은, 기독교 연합함대를 보란 듯이 격파했습니다. 이 무슨 캐리비안의 해적같은 상황일까요?
이 한 장면 안에 오스만(Ottoman)이라는 제국의 비밀이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다만 그 정체를 캐묻기 전에, 잠시 육지로 눈을 돌려 보겠습니다. 술탄이 거느린 가장 두려운 군대, 예니체리는 과연 어떤 자들이었을까요. 놀랍게도 그들은 태어날 때 기독교도였습니다. 오스만은 발칸의 기독교도 마을에서 사내아이들을 정기적으로 징발했는데, 발칸 사람들이 '피의 세금'이라 부르며 이를 갈았던 데브시르메 제도입니다. 이렇게 끌려온 소년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술탄의 친위 정예로 길러낸 것이 바로 예니체리였습니다. 즉 기독교 세계를 무너뜨리고 빈 성문까지 두드린 창끝이, 다름 아닌 기독교 세계의 아들들로 벼려져 있었던 셈입니다.
해적을 제독으로 쓰고 적의 아들을 친위대로 삼는 나라. 도대체 이 제국은 무엇을 접착제 삼아 굴러갔던 걸까요. 피도 아니었고 민족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건조한 거래였습니다. 거래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세금만 꼬박꼬박 내면 이교도라도 눈감아 준다"는 바로 그 방식입니다. 비무슬림은 인두세(지즈야, 오스만식으로는 지즈예)를 바치는 대가로 제 신앙을 지키고 제 공동체를 제 손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리스 정교도는 정교도대로,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아르메니아인은 아르메니아인대로 ― 각자의 율법과 성직자 아래 살아가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술탄은 이렇게 거둬들인 인두세를 주로 군대를 굴리는 데 썼습니다. 이교도의 지갑이 곧 정예군의 군자금이었던 셈입니다.
여기서 정말 기이한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이슬람 제국이 한 손에 칼, 한 손에 경전을 들고 개종을 강요했으리라 상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곳간을 들여다보는 재정 관리의 눈에는 사정이 정반대였습니다. 비무슬림이 무는 세금이 더 무거웠으니, 백성이 무더기로 개종해 버리면 그만큼 세수가 쪼그라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 우마이야 왕조는 재정이 쪼들리자 갓 개종한 이들에게마저 인두세를 그대로 물리기까지 했습니다. 신앙을 내건 제국이 정작 신자가 느는 것을 반기지 않는 진풍경 ― 오스만의 인두세 체제도 그 속내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교도 백성은 칼로 박멸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해마다 알을 낳아주는 거위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관용이 꼭 고결한 신념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느슨한 거래의 그늘에서, 뒤에 우리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될 아랍 세계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흔한 짐작과 달리, 아랍인들은 오스만 치하에서 그럭저럭 잘 지냈습니다. 이스탄불의 술탄은 저 멀리 앉아 세금과 명목상의 충성만 챙겼을 뿐, 사막과 오아시스 도시의 부족장과 명망가들이 제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사실상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가 훗날의 복선이 됩니다. 그들은 여전히 '부족'으로 살았지, '국민'으로 살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한 줄이 4세기 뒤 어떤 청구서가 되어 날아오는지는 뒤에서 차차 보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해적과 개종자와 부족들을, 스무 개의 언어와 대여섯 개의 종교를 한 깃발 아래 400년이나 묶어 둔 이 거대한 잡탕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으며 ― 그리고 왜, 끝내 산산조각 났는가. 오스만은 민족이 없어서 흥했고, 민족이 생겨서 망했습니다.


앞서 던진 질문 ― 어떻게 그 잡탕이 가능했는가 ― 에 답하려면, 우리 머릿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 의심조차 해 본 적 없는 한 가지 전제를 먼저 끄집어내야 합니다.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그림을 떠올립니다. 한 영토 안에 하나의 국민이 살고, 그 국민은 대체로 같은 말을 쓰며,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감각으로 묶여 있다는 그림입니다. 당연히 생김새도 비슷해야하고요. 대한민국도 그렇고 일본도 프랑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나라의 기본값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인류 역사에서 지극히 최근의 발명품입니다. 길게 잡아야 200여 년, 프랑스 혁명 언저리에 태어난 발상입니다. 오스만 제국이 600년 역사의 대부분을 보낸 세계에는 이런 그림이 아예 없었습니다. 술탄의 백성에게 "당신은 어느 민족이오?"라고 물었다면 질문 자체가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답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무슬림이오" 혹은 "나는 정교도요", "나는 술탄의 신민이오" 정도였습니다. 자신을 '튀르크 민족'이라 여기는 농민은 없었습니다. '튀르크'라는 말은 오히려 아나톨리아의 무지렁이 시골뜨기를 깔보아 부르는 호칭에 가까웠고, 이스탄불의 세련된 지배층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모욕으로 여겼습니다. 제국을 다스리는 엘리트가 정작 제 민족 이름을 욕으로 듣던 나라 ― 이것이 오스만이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거대한 잡탕이 가능했습니다. 오스만은 백성을 민족으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신앙으로 나누었습니다. 이 종교 공동체별 자치 제도를 밀레트라 부릅니다. 정교도는 정교회 총대주교를 우두머리로 하는 하나의 밀레트를, 아르메니아 교회는 또 다른 밀레트를,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자기 밀레트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각 밀레트는 제 종교 지도자 아래에서 혼인과 상속, 분쟁 조정, 교육, 세금 징수까지 사실상 제 손으로 처리했습니다. 술탄은 그 위에 앉아 충성과 세금만 거두어들이면 그만이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오스만은 다스리지 않음으로써 다스렸습니다. 깊이 개입하지 않는 대신, 깊이 개입할 비용도 치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고 가야겠습니다. 사람들은 이 밀레트 체제를 두고 오스만이 유달리 '관용적'이었다고 칭송하곤 합니다. 같은 시기 유럽이 신교와 구교로 갈려 서로를 불태우던 것과 견주면, 무슬림·기독교도·유대인이 한 도시에서 어울려 산 이스탄불은 분명 너그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이 너그러움의 정체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오스만이 다양성을 사랑해서 품은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미워할 민족'이라는 단위 자체를 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워할 일도 없었던 것에 가깝습니다. 증오에는 대상이 필요한데, 근대 민족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저들은 우리와 다른 민족이니 몰아내야 한다"는 발상의 문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관용이라기보다 무관심에 가까웠고, 그 무관심이야말로 제국의 가장 값싸고 가장 효율적인 통치 기술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잠깐 단어 하나를 해부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민족주의'라고 옮겨 온 영어 단어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입니다. 그런데 이 번역에는 미묘한 함정이 있습니다. 내셔널리즘의 뿌리인 네이션(nation)은 본래 '민족'이라기보다 '국가' 혹은 '국민'에 더 가까운 말입니다. 그래서 학계 일각에서는 내셔널리즘을 '민족주의'로 옮기는 것이 오역에 가깝고 '국가주의'가 더 정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이 구분이 사소해 보일지 모르나, 오스만의 운명을 이해하는 데는 결정적입니다. 오스만에는 충성을 바칠 '네이션'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술탄이라는 군주, 그리고 신앙이라는 끈입니다. 다만 그 네이션이 '민족'은 아니었을 뿐입니다. 장차 유럽에서 건너올 사상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너희가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술탄도 신앙도 아니라, 같은 피와 같은 언어를 나눈 민족"이라는 전혀 새로운 문법을 들고서 말입니다. 그 전염병이 도착하기 전까지, 오스만은 안전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의 부재는 오스만의 결함이 아니라 비결이었습니다. 민족이 없었기에 스무 개의 언어와 대여섯 개의 종교를 한 깃발 아래 묶을 수 있었고, 민족이 없었기에 해적을 제독으로, 적의 아들을 친위대로 쓰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민족이 없다는 것이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흥성의 토대이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시절이 영원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18세기 말, 유럽에서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이 터집니다. 프랑스 대혁명입니다. 우리는 이 혁명을 흔히 자유와 평등의 이야기로 기억하지만, 통치술의 관점에서 보면 혁명의 진짜 발명품은 따로 있었습니다. '국민'이라는 존재입니다. 혁명은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더 이상 왕의 소유물인 신민이 아니라,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곧장 어마어마한 군사적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1793년, 혁명을 저지하고자 모인 사방의 왕정 국가들에 포위된 혁명 프랑스는 국민총동원령(levée en masse)을 내립니다. 모든 성인 남성을 조국 방위에 동원한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발상이 작동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병사들이 "이 나라는 곧 내 나라"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의 땅을 지키러 끌려 나가는 용병이라면 봉급이 끊기는 순간 도망치지만, 제 조국을 지킨다고 믿는 국민병은 봉급이 없어도 싸웁니다. 혁명 프랑스는 바로 이 심리적 연료로 수십만 대군을 거의 공짜로 뽑아냈고, 나폴레옹은 그 대군을 몰아 유럽 전체를 ...

지금 못읽어도 책갈피에 저장하는 설레임과 반가움이 생기는 Ottoman님의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항상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단순히 오스만 문명의 패퇴기에 벌어진 광기로만 기억했던 아르메니아 학살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깊은 역사적 지식과 세계관을 엿보았습니다. 거기에 재미까지 더해져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시대의 트렌드를 후행하는 역사를 따라가보니 다음 편이 자연스럽게 기다려집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습니다 진짜... 압도적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어찌나 빠져들어 읽는지 모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와... 필력이 ㄷㄷ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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