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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연재]중간선거,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3등상[시리즈 연재]국제정치와 지정학

[시리즈연재]중간선거,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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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man
2026.03.30조회수 653회
트럼프 국정연설: 재선 의지 트럼프와 연설문 찢은 펠로시 - BBC News 코리아

트럼프 뒤에서 연설문을 찢는 낸시 펠로시

방탄유리를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교과서적인 답은 "정당성"이나 "강제력" 같은 개념들을 나열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에게 권력이란 결국 "얼마나 두꺼운 유리 뒤에 앉아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금 앉아 있는 그 유리는 방탄유리입니다. 총알이 날아와도, 화염병이 날아와도, 두꺼운 서류 더미가 날아와도 튕겨냅니다. 탄핵 시도도, 청문회 소환도, 예산 전쟁도 일단 이 유리 앞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그 유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의회 다수당'입니다.

이 유리가 있는 한 민주당은 트럼프를 공격할 수단이 없습니다. 하원 위원회는 공화당이 쥐고 있으니 청문회 소환은 꿈도 못 꾸고, 상원도 공화당 차지이니 인사 검증에서 딴죽을 걸기도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논란적인 행보를 해도, 방탄유리는 그를 보호합니다. 그러나 2026년 11월 3일, 그 유리가 얼마나 두꺼운지를 다시 시험하는 선거가 열립니다. 하원 435석 전석과 상원 100석 중 35석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입니다.

이쯤해서 질문을 해봐야합니다. 중간선거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대통령 선거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인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사실상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내각을 꾸리고, 국정 방향을 정하고, 인사를 단행합니다. 야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하면 골치는 아프지만, 대통령이 갖는 인사권과 행정권의 범위는 여전히 광대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다릅니다. 미국 헌법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거의 동등한 무게추로 설계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의회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국회에서 법안이 안 통과된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의회는 합법적으로 행정부를 수사,감사하고 인사권을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탄핵은 물론이고요. 이 과정에서 한국과 달리 법관들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의회에서 대통령을 내치면, 그 순간 탄핵입니다.

트럼프는 그 상황을 이미 한 번 경험했습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잃은 순간, 그의 1기 후반부는 방어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두 차례의 탄핵소추, 끊이지 않는 청문회, 세금 신고서를 둘러싼 법정 공방, 정책보다 스캔들이 더 큰 뉴스가 되는 나날들. 결국 그는 2020년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2기 2년 차를 맞은 트럼프를 향해 같은 위협이 다시 다가오고 있습니다.


1. 하원과 상원은 왜 이렇게 다르게 움직이는가

11월 6일 미 중간선거 민심은?‥트럼프, 재선에 가까이 가나 |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본격적인 판세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 의회의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 의회는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과 상원(Senate)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두 기관은 같은 건물(미국 국회의사당)을 나눠 쓰고 있지만, 사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정치 장치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단원제 국회 하나만 있는데, 미국은 두 개의 국회가 서로 견제하면서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하원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하원은 인구 비례로 의석을 배분합니다. 캘리포니아처럼 인구가 많은 주는 54석을, 와이오밍처럼 인구가 적은 주는 1석을 갖습니다. 의원 임기는 2년으로, 전원 435명이 2년마다 전국 동시 선거를 치릅니다. 이 구조의 특성상, 민심의 변화가 선거 결과에 거의 즉각 반영됩니다. 지난 2년간 물가가 폭등했다면?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면? 해외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면? 그 모든 불만이 2년마다 돌아오는 하원 선거에서 곧장 터져 나옵니다. 하원은 민심의 온도계입니다. 온도가 오르면 바늘이 올라가고, 내리면 내려갑니다.

상원은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상원은 인구와 무관하게 각 주에서 무조건 2명씩 의원을 선출합니다. 캘리포니아(인구 약 3,900만 명)와 와이오밍(인구 약 58만 명)이 똑같이 2석을 갖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논쟁을 낳은 이 '비민주적' 구조는, 역설적으로 상원을 더 안정적이고 더 독립적인 기관으로 만들었습니다. 의원 임기는 6년이고, 2년마다 전체 100석의 약 3분의 1씩만 선거를 치릅니다. 즉, 전국적으로 아무리 큰 정치 바람이 불어도, 상원 전체가 한꺼번에 뒤집히는 일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한 번 상원 다수당을 잡으면 그 다수가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상원은 권력의 브레이크입니다. 아무리 민심이 들끓어도, 상원의 수온계가 변하는 속도는 느립니다.

이 두 기관의 차이를 이해하면, 왜 이번 2026년 선거가 하원과 상원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지가 보입니다. 하원은 전국 435석이 동시에 선거를 치르는 만큼, 전국적인 여론과 대통령 지지율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습니다. 반면 상원은 이번에 35석만 선거를 치르는데, 그 35석이 '어느 주의 의석이냐'가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전국 여론이 민주당 쪽으로 흐른다 해도, 선거를 치르는 35석이 전통적으로 공화당 텃밭인 주라면 상원에서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판세는 어떨까요? 하원은 공화당 217석, 민주당 214석에 공석 3석입니다. 미국 하원 과반은 218석입니다. 즉, 공화당은 지금 기술적 과반에서 딱 1석 모자라는 상태로 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석 3석도 아직 채워지지 않은 상황이라, 사실상 단 몇 표 차이로 버티고 있는 형국입니다. 상원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에 민주당과 함께 움직이는 무소속 2석으로, 실질적으로는 공화 53 대 민주 47입니다. 숫자만 보면 상원은 안정적인 것 같지만, 이 숫자에는 곧 살펴볼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 이 판세에 여론조사 숫자를 더해 보겠습니다. 가장 최근 입소스 조사에서 트럼프의 경제 운영에 대한 순지지율은 -21.3포인트, 인플레이션 대응에 대해서는 -32.7포인트로 2기 출범 이후 최저 수준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숫자가 있습니다. 무당파 유권자 사이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불과 26%로, 지난 1년 사이 15포인트나 급락했습니다. 중간선거는 결국 열성 지지자들의 싸움이 아니라, 이 무당파를 누가 가져가느냐로 결판이 납니다. 26%라는 숫자는, 방탄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2. 역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미국 정치를 오래 연구해온 학자들 사이에는 일종의 철칙처럼 통용되는 공식이 하나 있습니다. "중간선거는 집권당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선거"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통념이 아니라 수치로 입증된 이야기입니다. 1946년 이후 20번의 중간선거 가운데, 집권당이 하원 의석을 잃은 경우는 18번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지지율이 50% 미만일 때, 트루먼 이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하원 의석을 잃었습니다. 현재 트럼프의 지지율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이 공식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 공식이 얼마나 가혹하게 작동하는지, 역사적 사례를 하나씩 들여다보겠습니다.

Newt Gingrich - New Georgia Encyclopedia

첫 번째 사례는 1994년입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2년 전 "변화"를 외치며 12년 만에 민주당에 백악관을 되찾아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첫 2년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핵심 공약이었던 전국민 의료보험 개혁은 거대한 반발에 부딪혀 좌초됐고, 클린턴 본인과 부인 힐러리가 연루된 부동산 투자 의혹(화이트워터 스캔들)이 터지면서 도덕성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무엇보다 1994년 미국 경제는 회복 중이기는 했지만, 유권자들이 체감할 만큼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낮에는 실직의 공포가 여전했고, 저녁 뉴스에는 대통령 스캔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하원 원내대표 뉴트 깅그리치는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이름의 공약집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감세, 복지 축소, 범죄 강력 대응, 의회 개혁 등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이 문서는 공화당 후보 300여 명이 함께 서명하며 "우리는 이걸 지키겠다"고 약속한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유권자들은 환호했습니다. 그 해 11월, 공화당은 하원에서 54석을 한꺼번에 가져갔습니다. 1954년 이후 40년 만의 하원 다수당 교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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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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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man
구독자 1,098명구독중 27명
다양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쓰는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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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yru
2026.03.30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올해 중간선거가 참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미국의 정치제도에 대해서 상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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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보안관
2026.03.3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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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2026.03.30

역사적 평균이 또 다시 반복될지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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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창이
2026.03.30

미국의 상원, 하원 구성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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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빛
2026.03.30

와. 자세하고 꼼꼼한 설명 덕분에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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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LEY_FRESHMEN
2026.03.30

중간 선거에 대해서 잘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가로 중간 선거에서 패배한 경우, 주식 시장은 어떻게 흘러갔는 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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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man
작성자
2026.04.01

중간선거에서 여당 패배는 보통 국룰에 가깝고 (90%), 여당 패배시 단순 퀀트상으로는 시장은 그 후 12개월 유의미하게 좋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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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2026.03.30

방탄 유리 이미 깨진 것 같습니다....

영화 아저씨에서 김희원의 마지막 명대사가 떠오르네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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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wwww
2026.03.30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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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로잉
2026.03.30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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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잼
2026.03.30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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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연재]하루 1조 원짜리 전쟁

1. 100시간에 37억 달러 2026년 2월 말일, 미국이 이란을 공습했습니다. 작전명은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 이름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작전 개시 6일째 되던 3월 5일,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 전쟁이 앞으로 몇 주는 더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의회도, 언론도, 그리고 세금을 내는 미국 시민들도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얼마짜리 전쟁인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그 답을 내놓았습니다. 작전 개시 후 100시간(H+100) 기준으로 추산한 비용은 37억 1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조 원입니다. 하루로 환산하면 8억 9천만 달러, 약 1조 2천억 원입니다. 전쟁터에서 하루에 1조 원 이상이 증발하는 셈입니다. 전쟁 보름이 다되어가는 지금, 추산이 가능한 6일차까지만 세어도 미국이 전쟁에 사용한 비용은 113억달러로, 우리돈 약 16.7조원에 달합니다. 13일 중 6일입니다. 숫자만 보면 그저 크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내역을 한 꺼풀 벗겨보면, 단순한 전쟁 비용 청구서 이상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대전이 어떻게 싸워지고, 왜 이렇게 비싼지, 그리고 이 구조가 세계 방산 지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보고서로 비교적 내용이 명확하게 밝혀진 개전 초 100시간의 비용 분석을 기반으로 알아보는 내용입니다. 2. 미국의 '진심 펀치'는 얼마인가 먼저 이번 작전에 동원된 전력 규모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규모를 알아야 비용의 맥락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공중에는 미국이 자랑하는 200대 이상의 전투기가 떴습니다. F-22와 F-35 계열 스텔스기 약 50대, F-15·F-16·A-10 등 비스텔스 전투기 110대, 그리고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F/A-18과 F-35C 80대가 이란 상공을 누볐습니다. 공중급유기와 수송기, 조기경보기와 전자전기까지 더하면 하늘은 그야말로 미군 전투기의 무대였습니다. 해상에서는 항모 2척, 구축함 14척, 연안전투함(LCS) 3척이 아라비아해와 페르시아만, 동지중해에 포진했습니다. 지상에서는 HIMARS 다연장로켓과 THAAD·패트리어트 방공 포대가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개전 초에는 160발 이상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이란 지휘부와 방공망을 향해 쏟아졌습니다. 토마호크는 함선이나 잠수함에서 발사해 수천 킬로미터 밖의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입니다. 미군 조종사가 적의 방공망 사정거리 안에 발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뒤에서 설명할 '목숨값' 논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국의 그 유명한 방산업체 레이시온(RTX)가 생산하는데, 개당 가격은 36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억 원입니다. 토마호크에 이어 JASSM(재즘·공대지 순항미사일)도 사용됐습니다. 전투기에 탑재해 역시 적 방공망 밖 원거리에서 발사하는 방식입니다. 뒤이어 HARM이라는 대(對)레이더 미사일이 투입됐는데, 이 미사일은 적 방공 레이더가 내뿜는 전파를 역으로 추적해 파괴하는 용도입니다. 방공망의 눈을 멀게 만드는 역할입니다. 이번 작전에서는 LUCAS 드론과 PrSM 정밀타격미사일이 사상 첫 실전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LUCAS는 연안전투함(LCS)에서 발사되는 일회용 공격 드론이고, PrSM은 기존 ATACMS(에이태큼스, 지상발사 미사일)보다 두 배 이상 먼 사거리를 자랑하는 지상 발사 정밀미사일입니다. 압도적인 전력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전력을 운용하는 비용은 초기 100시간의 37억 달러 중 얼마일까요. 항공기 운영비, 함정 운항비, 지상군 유지비 등 순수 운용·지원 비용을 모두 합치면 약 1억 9,600만 달러입니다. 전체의 5% 남짓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31억 달러, 무려 85%는 전부 탄약 보충 비용입니다. 항공모함 2척과 전투기 200대가 무대 장치라면, 진짜 주인공은 탄약입니다. 현대 공중전은 결국 '탄약 전쟁'입니다. 2-1. 미군 병사의 목숨값 — 정치가 만든 전쟁 비용 탄약에 왜 이토록 많은 돈을 쓰는가. 여기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이 등장합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정치의 DNA를 바꿔버린 사건입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70%를 웃돌던 전쟁 지지율은, 관 속에 든 미군 병사의 사진이 텔레비전 뉴스를 타고 거실로 들어오면서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5만 8천 명의 전사자, 그리고 '도대체 왜 싸우는가'라는 질문에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채 철수한 이 전쟁은,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에게 일종의 저주처럼 따라붙었습니다. 린든 존슨은 재선 도전을 포기했고, 닉슨은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의 이중 수렁에서 끝내 사임했습니다. '다음 베트남'이 되지 않으려는 공포가 이후 수십 년간 미국의 군사 개입 방식을 규정하게 됩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그 공포가 얼마나 근거 있는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초기, 조지 W. 부시의 지지율은 70%를 넘었습니다. '미션 어컴플리시드(임무 완수)'를 선언하던 그 순간이 사실상 정치적 절정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내리막이었습니다. 매달 수백 명씩 쌓여가는 전사자 명단, 끝이 보이지 않는 점령 비용, 그리고 결국 발견되지 않은 대량살상무기. 부시는 임기 말 30%대 지지율로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더 길고 더 무기력했습니다. 20년을 싸우고 2조 달러를 쏟아부은 끝에, 미군이 철수하고 72시간도 안 돼 탈레반이 카불을 접수했습니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그 혼란스러운 철수 장면 이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것이 훨씬 어렵고, 그 청구서는 언제나 대통령에게 날아온다는 것을 미국 정치는 반복해서 배워왔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사람 대신 기계에, 병사 대신 미사일에 돈을 쏟아붓는 전쟁 방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개당 360만 달러짜리 토마호크를 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저렴한' 선택인 것입니다. 이번 작전에서 개전 초 160발 이상의 토마호크가 발사된 것은 전술적 선택인 동시에, 미군 조종사를 이란 방공망의 사정거리 밖에 두겠다는 정치적 계산이기도 했습니다. CSIS 보고서에 따르면 작전 4일차에 댄 케인 합참의장이 "정밀 교전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원거리 순항미사일 중심에서 근접 정밀폭탄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인데, 이는 미사일 기반의 공격/방어 작전이 얼마나 비쌌는지를 ...

[시리즈연재]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사실을 보면, 물가, 즉 기름값과 고기값에는 트럼프가 아니라 트럼프 할아버지라도 장사가 없습니다. 그것이 미국입니다. 이러한 미국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라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한스'라는 한 가상의 미국인을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한스의 토요일 토요일 아침 일곱 시, 텍사스 주 플레이노(Plano) 교외. 한스(Hans)는 차고 문을 열고 자신의 포드 F-150 픽업트럭에 시동을 겁니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홈디포(Home Depot)입니다. 지난주부터 욕실 수도꼭지가 물을 뚝뚝 흘리고 있고, 뒷마당 울타리 판자 하나가 썩어서 교체가 필요합니다. 배관공을 부르면 출장비만 200달러(약 30만 원)가 훌쩍 넘으니, 그냥 직접 하는 편이 낫습니다. 홈디포 주차장은 이 시각에도 픽업트럭들로 가득합니다. 토요일 아침의 홈디포는 미국 중산층 남성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부품을 고르고 나면 다음 목적지는 코스트코(Costco)입니다. 일주일치 장을 보는 날입니다. 카트에는 1.5kg짜리 스테이크 두 팩, 닭가슴살 4kg, 연어 필레, 블루베리 두 통, 수박 한 통, 우유 1갤런(약 3.8리터) 두 개, 오렌지주스 대용량 한 병, 그리고 화장지 40롤짜리 한 묶음이 실립니다. 계산대를 통과하면 영수증 합계는 쉽게 300달러(약 45만 원)를 넘깁니다. 이것이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일주일치 식료품 구매입니다. 카트를 끌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트럭 짐칸에 짐을 싣고, 한스는 집으로 향합니다. 저녁이 되면 한스는 소파에 눕습니다. TV에서는 NFL 경기가 한창입니다. 맥주 한 캔을 따며 한스는 오늘 하루를 되짚습니다. 홈디포에서 쓴 120달러(약 18만 원), 코스트코에서 쓴 310달러(약 46만원), 오가는 길에 넣은 기름값 70달러(약 10만원). 숫자들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그러나 곧 경기에 집중합니다. 걱정은 내일 할 일입니다. 오늘은 금요일에 들어올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날이기도 하니까요. (많은 미국 직장은 월급을 한 달에 2번 나눠서 준다) 이 평범한 토요일의 풍경이 왜 중요한가. 한스의 하루는 단순히 한 미국인의 일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 경제 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의 축소판이고, 미국 정치인들이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확인하는 지표들의 근원이며,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결정할 때 머릿속에 그리는 인간의 얼굴입니다. 한스의 지갑이 두터우면 세계 경제가 돌아가고, 한스의 지갑이 얇아지면 월스트리트가 흔들립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죠. 그는 어떻게 사는가 한스가 사는 집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텍사스 교외의 단독주택은 평균 면적이 약 232㎡, 한국 단위로 환산하면 약 70평입니다. 한국 아파트 평균 면적(약 85㎡)의 2.7배에 달합니다. 넓은 거실, 침실 서너 개, 차고 두 칸, 그리고 잔디가 깔린 앞뒤 마당이 기본 사양입니다. 이 집을 관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한스의 몫입니다. 미국에서는 집 수리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것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중산층 남성들은 배관, 전기, 목공, 페인트칠 정도는 직접 해결하는 DIY(Do It Yourself)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홈디포와 로우스(Lowe's), 두 대형 DIY 체인의 연간 합산 매출이 2,000억 달러(약 300조 원)를 돌파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의 집주인들이 주말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집에 쏟아붓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이동 수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인 1인당 연간 주행거리는 약 2만 4,000km로, 한국(약 1만 2,000km)의 두 배에 달합니다. 미국 전국 대중교통 분담률은 5% 미만입니다. 서울 시민이 지하철과 버스로 자가용을 문자 그대로 앞서나가는 동안, 한스는 출근길, 장보기, 아이들 학교 픽업, 병원 방문, 모든 것을 자신의 차로 해결합니다. 미국 교외 도시에서 차 없이 산다는 것은 핸드폰 없이 산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픽업트럭은 한스에게 사치품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입니다. 이 모든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압도적인 구매력입니다. 구매력 평가지수(PPP) 기준으로 미국의 1인당 구매력은 한국의 약 1.7배에 달하며, 서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우위를 점합니다. 그런데 이 높은 구매력은 저축으로 쌓이지 않습니다. 미국의 개인 저축률은 장기 평균 5% 안팎입니다. 한국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하는 동안, 미국인들은 버는 족족 쓰는 나라입니다. 그 결과 미국 민간 소비는 GDP의 약 70%를 차지합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의 성장 엔진은 공장도, 수출도 아닌, 바로 한스가 코스트코에서 긁는 신용카드입니다. 그런데 이 풍요로운 일상의 이면에는 서늘한 현실이 존재합니다. 미국인의 약 60~70%가 이른바 'Paycheck to Paycheck', 즉 이번 달 월급이 들어와야 다음 달 생활이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집계됩니다. 연봉 8만 달러(약 1억 2,000만 원)는 한국적 기준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입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텍사스 교외에서 한스가 매달 지불해야 하는 항목들을 나열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30년 만기 모기지 상환액 월 2,200달러(약 330만 원), 자동차 할부 월 650달러(약 97만 5천 원), 학자금 대출 상환 월 400달러(약 60만 원), 가족 의료보험료 월 800달러(약 120만 원), 식비와 생활비 월 1,500달러(약 225만 원). 숫자들을 더하다 보면 비상금 1,000달러(약 150만 원)조차 남기기 어려운 구조가 됩니다. 물론 한스도, 그 이웃 미국인들도 '아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집값은 오를 것이고, 주식도 오를 것이고, 미래를 밝으니까요. 미국 가계의 신용카드 부채 총액은 현재 1조 달러(약 1,500조 원)를 돌파했고, 학자금 대출 잔액만도 약 1조 7,000억 달러(약 2,550조 원)에 달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풍요는 실물 자산의 축적이 아니라 '미래 소득의 가불'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소비하는 기계 : 쓰고, 버리고, 또 쓰는 나라 한스의 코스트코 카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스테이크 두 팩과 닭가슴살 4kg을 산다고 했는데, 이것이 일주일 안에 전부 소비됩니다. 한국의 4인 가족이 일주일치 고기를 산다면 삼겹살 500g에 소고기 200g 정도면 충분하다고 ...

[시리즈연재]원교근공, 중국이 아시아에서 더 예민한 이유

동심원으로 읽는 중국 외교의 천 년 프롤로그 중국은 왜 멀리 있는 나라보다 국경을 맞댄 이웃에서 훨씬 격렬하게 반응하는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빼는 데는 몇 달이 걸렸지만, 중국이 대만 해협에 군함을 보내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는다.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어선이 물고기를 잡는다고 중국 해경의 물대포를 맞는 사건은 이제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지만,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해적이 나타나 선박을 직접 나포해가도 중국이 군사력을 직접 행사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비대칭성은 우연이 아닙니다. 춘추전국시대 병법에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 나라와는 외교로 손잡고, 가까운 나라를 먼저 친다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것은 단순한 전술을 넘어 하나의 관성처럼 작동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까운 위협을 먼저 제거하고, 가까운 땅을 먼저 묶어두려는 관성. 이것이 이 글이 '동심원'이라는 비유로 설명하려는 중국 외교의 작동 원리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송나라 때도, 명나라 때도, 청나라 때도, 그리고 2025년의 시진핑 치하에서도 놀랍도록 일관되게 반복됩니다. 1. 송: 국경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생기는 일 이야기는 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중국은 당(唐)이 멸망한 뒤 다섯 왕조가 50년 만에 교체되는 혼란기, 이른바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후진(後晉)이라는 왕조의 창업자 석경당(石敬瑭)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북방 유목민족인 거란(契丹, 요나라)의 군사력을 빌리기로 결심했고, 그 대가로 거란에게 지불한 것이 오늘날 베이징 일대를 포함하는 '연운 16주(燕雲十六州)'였습니다. 역사상 가장 비싼 용병비용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결정이 이후 중국 역사 200년을 규정하는 지정학적 족쇄가 됩니다. 연운 16주가 왜 그토록 중요했는가? 지도를 펼쳐보면 이해가 됩니다. 이 지역은 화북 평원 북쪽에 펼쳐진 산맥과 고원 지대로, 유목 기병이 중원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막아주는 자연 방어선이었습니다. 이것을 내어준다는 것은 수도를 포함한 중원 심장부가 북방 기병의 직접 공격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후 936년부터 이 땅을 돌려받기 위해 송나라(960년 건국)는 수십 년간 전쟁을 거듭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1004년 요나라와 굴욕적인 강화 조약(전연의 맹)을 맺어 매년 막대한 비단과 은을 바치는 조건으로 평화를 사야 했습니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타격은 1127년에 찾아왔습니다. 이른바 '정강의 변(靖康之變)'입니다. 당시 송나라는 북방에서 새롭게 흥기한 여진족의 금(金)나라에 맞서기 위해 거란(요)과 싸우고 있던 금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먼 적의 적은 친구"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실제로 거란은 금과 송의 협공에 멸망했습니다(1125년).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금은 거란을 멸망시킨 직후 동맹국이었던 송을 향해 칼을 돌렸고, 불과 2년 만에 수도 개봉(開封)을 함락시켰습니다. 송의 황제 흠종(欽宗)과 상황 휘종(徽宗), 황실과 후궁, 그리고 수천 명의 관료들이 포로가 되어 북방의 황무지로 끌려갔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굴욕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는 이 사건 이후, 황실의 일원이 남쪽으로 도망쳐 항저우에 새 수도를 세운 것이 남송(南宋)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송의 외교가 왜 '얇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송은 원정형 대외정책을 구사할 조건이 애당초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북방 방어선은 뚫려 있었고, 재정의 상당 부분은 북방 세력에 바치는 공물과 군사비로 소진되었으며, 매 세대마다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북방 땅을 되찾을 것인가"가 조정 최대의 논쟁 주제였습니다. 원거리 팽창을 꿈꿀 여유가 없었습니다. 생존이 먼저였습니다. 2. "먼 동맹, 가까운 목표": 1234년, 금의 멸망 그렇게 잃어버린 북방 땅을 되찾으려는 집념이 송을 또 한 번 위험한 도박으로 이끕니다. 13세기 초, 이번에는 몽골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유라시아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칭기즈 칸과 그 후계자들이 이끄는 몽골군은 금나라를 압박하며 남하하고 있었고, 송 조정 안에서는 오래된 유혹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 먼 세력과 손잡아서 가까운 적을 먼저 치자." 1233년, 남송과 몽골은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었습니다. 협약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몽골이 금의 허난(河南) 지역을 공략할 때 송이 군량을 지원하고 병력을 파견하며, 금이 멸망하면 그 땅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1234년,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 애종(哀宗)은 몽골과 송의 협공에 밀려 채주(蔡州)에서 포위당했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년 원한의 금나라가 마침내 역사에서 사라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역사는 100년 전의 악몽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금을 함께 멸망시킨 몽골은 이번에는 송을 향해 방향을 틀었고, 결국 1279년 남송도 완전히 멸망합니다. 이 반복되는 패턴이 흥미롭습니다. 송은 두 번 모두 "가까운 적을 치기 위해 먼 세력과 손잡았다"는 동일한 전략을 구사했고, 두 번 모두 그 먼 세력에게 배신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전략을 반복했다는 것은 그만큼 북방 회복이라는 목표가 송에게 얼마나 강박적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가까운 목표가 있으면, 먼 세력과도 기꺼이 손을 잡는다. 이것이 동심원 외교의 첫 번째 법칙입니다. 3. 국경의 확장, 주변국의 확대 1368년, 주원장(朱元璋)이 이끄는 한족 반란군이 원(元)나라를 몰아내고 명(明)나라를 세웠습니다. 거란·여진·몽골로 이어지는 북방 유목 세력에게 100년 넘게 짓밟혀 온 중원이 다시 한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주원장은 곧바로 북벌에 나서 원의 수도 대도(大都, 오늘날의 베이징)를 함락시켰고, 몽골 세력을 초원 너머로 밀어냈습니다. 주원장의 성공은 중국 역사상 단 두 번있는 남쪽에서 일어난 왕조, 즉 남조(南朝)의 통일 성공사례이자, 최초였습니다. 이 '북방 회복'은 단순한 영토 수복이 아니었습니다. 명이 동아시아 질서의 중심으로 복귀한다는 선언이었고, 그 선언과 함께 주변국들의 지위도 재편되었습니다. 이 변화 속에서 한반도는 새로운 위치를 부여받았습니다. 원나라 시대에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駙馬國)으로서 수십 년간 수탈과 간섭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명이 들어서자 조선(1392년 건국)은 명의 새로운 조공 질서 안으로 편입됩니다. '멀어서 방치'가 아니라 '가까워져서 관리'해야 할 권역이 된 것입니다. 한반도는 명의 동북쪽 방어선과 직접 맞닿아 있었고, 이 지역의 안정이 명의 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명 조정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식이 가장 극적으로 시험받은 사건이 1592년에 벌어집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15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 임진왜란입니다. 왜 명은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도 출병했는가 임진왜란 당시 명의 상황은 결코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명의 참전이 얼마나 중대한 결정이었는지가 살아납니다. 첫째, 명은 당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만력제(萬曆帝)는 제위 초반 장거정(張居正)의 개혁 덕분에 어느 정도 재정 여유를 누렸지만, 장거정 사후 개혁이 후퇴하면서 재정은 다시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둘째, 내부 반란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북부 변경 지역에서는 여진족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었고, 서북부에서는 크고 작은 반란이 잇따랐습니다. 만력제 자신도 1587년부터 ...

[시리즈연재]억압과 배신의 100년, 이란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이란이 이슈가 된 김에 미리 짜두었던 것을 급하게 써봅니다. 월요일까지 쉬는 도중에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는 요깃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란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하나는 1970년대 테헤란의 거리입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유럽풍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있고, 대학 캠퍼스의 강의실에는 남녀 학생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2026년 1월의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입니다. 셔터를 내린 상인들의 행렬,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 그리고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구호. 정말 같은 나라인지 의심스러운 변화죠 이 변화는 1979년 이슬람 혁명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혁명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 100년 동안 이란 시민들은 '위로부터의 강제'와 '밖으로부터의 배신'을 번갈아 경험하며,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권위를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국가가 근대화를 강요하면 외세가 그 국가를 갈아치웠고, 혁명으로 국가를 갈아치우면 혁명이 또 다른 강압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주말 사이에 천천히 살펴보시죠 1부: 카자르의 몰락과 레자 샤의 등장 (1900~1941) "구원자"는 어떻게 독재자가 되는가 1900년대 초, 이란(당시 국호는 페르시아)을 통치하던 카자르 왕조는 사실상 이름뿐인 국가였습니다.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영국이 석유와 교역로를 놓고 이란 땅을 분할 경영하다시피 했고, 왕실은 재정난을 메우기 위해 이권을 팔아넘기기 바빴습니다. 1906년 입헌혁명으로 의회(마즐리스)가 탄생하며 잠깐 희망이 보였지만, 외세의 간섭과 왕실의 방해 속에 의회는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이란이 1차 대전의 전쟁터로 유린당하고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동안, 카자르 왕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이 대목에서 묘한 데자뷰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시기 조선 역시 청나라·러시아·일본 사이에서 똑같은 수난을 당하고 있었으니까요. 강대국의 각축장이 된 반도와 고원, 두 나라는 20세기를 비슷한 상처로 시작했습니다. 그 혼란이 키운 열망의 수혜자가 레자 칸이었습니다. 카자르 왕실 산하 코사크 여단의 장교 출신인 그는 1921년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하고, 1925년 스스로 왕위에 올라 팔라비 왕조를 열었습니다. '샤'는 이란의 왕좌를 뜻합니다. 왕이 된 레자 샤의 등장은 처음에는 기대를 받았습니다. 근대적 군대와 관료제를 세우고, 철도를 놓고, 여성 교육을 장려하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드디어 나라다운 나라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방법이, 어쩌면 시대가 문제였습니다. 레자 샤의 근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강제였습니다. 복장·의례·종교 전반에 국가가 개입하여 '새 이란인'을 주조하려 했고, 1936년에는 히잡과 차도르 착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강제 탈베일(카쉬프-에 헤자브)'이라 부르는 이 조치의 집행 과정에서 일제시대의 단발령을 방불케하는 강제적 조치가 행해졌습니다. 히잡을 쓰고다니는 여성은 길거리에서 히잡을 찢기고 폭행당하기도 했으며, 이 장면은 훗날 이슬람 공화국의 '강제 히잡'과 정확히 거울상을 이룹니다. 한쪽은 벗기겠다고 강제하고, 다른 한쪽은 쓰라고 강제합니다. 이란의 많은 가족사에서 히잡은 신앙의 문제이기 이전에 '국가가 내 몸을 지배한 기억'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세대를 건너 전해졌습니다. 레자 샤는 2차 대전기에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연합국(영국·소련)은 보급로 확보를 이유로 이란에 진주하고 그를 강제로 퇴위시켰습니다. 근대 국가를 만들겠다고 내부를 강압했더니, 외부가 그 국가 자체를 갈아치워버린 것입니다. '이란은 강대국의 장난감'이라는 냉소가 사회 깊숙이 박혔습니다. 축출 이후 아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국가의 주권이 외부에 의해 어이없이 교체되는 장면을 지켜본 이란인들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2부: 민주주의가 민주 국가에 의해 박살나다 (1941~1963) 모사데크, 그리고 1953년의 상처 팔라비 왕조 초기, 이란 의회는 완전히 무력하지 않았습니다. 모하마드 모사데크는 테헤란 명문가 출신의 법학자로, 귀족 배경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입헌주의와 의회 주권을 주장해온 인물이었습니다. 1951년 총리에 취임한 그는 이란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카드를 꺼냅니다. 석유 국유화입니다. 당시 이란 석유 수익의 대부분은 영국 회사인 앵글로-이라니안 오일(훗날의 BP)이 가져갔습니다. 모사데크는 '이란의 석유는 이란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논리로 대중을 결집시켰고, 국유화를 단행했습니다. 의회에 대한 지지는 어느 때보다 높았고, 제국주의 시절 수탈당한 국가적 자원을 되찾을 수 있는 이 순간이, 이란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가까이 손에 닿을 것 같았던 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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