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연재]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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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man
2026.03.08조회수 416회



바보야, 문제는 중소기업이야

사실을 보면, 물가, 즉 기름값과 고기값에는 트럼프가 아니라 트럼프 할아버지라도 장사가 없습니다. 그것이 미국입니다. 이러한 미국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라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한스'라는 한 가상의 미국인을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한스의 토요일

Home Depot orders corporate staff to take 8-hour retail shifts | Fortune

토요일 아침 일곱 시, 텍사스 주 플레이노(Plano) 교외. 한스(Hans)는 차고 문을 열고 자신의 포드 F-150 픽업트럭에 시동을 겁니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홈디포(Home Depot)입니다. 지난주부터 욕실 수도꼭지가 물을 뚝뚝 흘리고 있고, 뒷마당 울타리 판자 하나가 썩어서 교체가 필요합니다. 배관공을 부르면 출장비만 200달러(약 30만 원)가 훌쩍 넘으니, 그냥 직접 하는 편이 낫습니다. 홈디포 주차장은 이 시각에도 픽업트럭들로 가득합니다. 토요일 아침의 홈디포는 미국 중산층 남성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부품을 고르고 나면 다음 목적지는 코스트코(Costco)입니다. 일주일치 장을 보는 날입니다. 카트에는 1.5kg짜리 스테이크 두 팩, 닭가슴살 4kg, 연어 필레, 블루베리 두 통, 수박 한 통, 우유 1갤런(약 3.8리터) 두 개, 오렌지주스 대용량 한 병, 그리고 화장지 40롤짜리 한 묶음이 실립니다. 계산대를 통과하면 영수증 합계는 쉽게 300달러(약 45만 원)를 넘깁니다. 이것이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일주일치 식료품 구매입니다. 카트를 끌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트럭 짐칸에 짐을 싣고, 한스는 집으로 향합니다.

저녁이 되면 한스는 소파에 눕습니다. TV에서는 NFL 경기가 한창입니다. 맥주 한 캔을 따며 한스는 오늘 하루를 되짚습니다. 홈디포에서 쓴 120달러(약 18만 원), 코스트코에서 쓴 310달러(약 46만원), 오가는 길에 넣은 기름값 70달러(약 10만원). 숫자들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그러나 곧 경기에 집중합니다. 걱정은 내일 할 일입니다. 오늘은 금요일에 들어올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날이기도 하니까요. (많은 미국 직장은 월급을 한 달에 2번 나눠서 준다)

이 평범한 토요일의 풍경이 왜 중요한가. 한스의 하루는 단순히 한 미국인의 일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 경제 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의 축소판이고, 미국 정치인들이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확인하는 지표들의 근원이며,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결정할 때 머릿속에 그리는 인간의 얼굴입니다. 한스의 지갑이 두터우면 세계 경제가 돌아가고, 한스의 지갑이 얇아지면 월스트리트가 흔들립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죠.

그는 어떻게 사는가

Important new patterns in the American suburbs: Three key trends to know  about

한스가 사는 집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텍사스 교외의 단독주택은 평균 면적이 약 232㎡, 한국 단위로 환산하면 약 70평입니다. 한국 아파트 평균 면적(약 85㎡)의 2.7배에 달합니다. 넓은 거실, 침실 서너 개, 차고 두 칸, 그리고 잔디가 깔린 앞뒤 마당이 기본 사양입니다. 이 집을 관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한스의 몫입니다. 미국에서는 집 수리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것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중산층 남성들은 배관, 전기, 목공, 페인트칠 정도는 직접 해결하는 DIY(Do It Yourself)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홈디포와 로우스(Lowe's), 두 대형 DIY 체인의 연간 합산 매출이 2,000억 달러(약 300조 원)를 돌파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미국의 집주인들이 주말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집에 쏟아붓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이동 수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인 1인당 연간 주행거리는 약 2만 4,000km로, 한국(약 1만 2,000km)의 두 배에 달합니다. 미국 전국 대중교통 분담률은 5% 미만입니다. 서울 시민이 지하철과 버스로 자가용을 문자 그대로 앞서나가는 동안, 한스는 출근길, 장보기, 아이들 학교 픽업, 병원 방문, 모든 것을 자신의 차로 해결합니다. 미국 교외 도시에서 차 없이 산다는 것은 핸드폰 없이 산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픽업트럭은 한스에게 사치품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입니다.

이 모든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압도적인 구매력입니다. 구매력 평가지수(PPP) 기준으로 미국의 1인당 구매력은 한국의 약 1.7배에 달하며, 서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우위를 점합니다. 그런데 이 높은 구매력은 저축으로 쌓이지 않습니다. 미국의 개인 저축률은 장기 평균 5% 안팎입니다. 한국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하는 동안, 미국인들은 버는 족족 쓰는 나라입니다. 그 결과 미국 민간 소비는 GDP의 약 70%를 차지합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의 성장 엔진은 공장도, 수출도 아닌, 바로 한스가 코스트코에서 긁는 신용카드입니다.

More Americans Are Living Paycheck to Paycheck – Here's Who ...

그런데 이 풍요로운 일상의 이면에는 서늘한 현실이 존재합니다. 미국인의 약 60~70%가 이른바 'Paycheck to Paycheck', 즉 이번 달 월급이 들어와야 다음 달 생활이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집계됩니다. 연봉 8만 달러(약 1억 2,000만 원)는 한국적 기준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입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텍사스 교외에서 한스가 매달 지불해야 하는 항목들을 나열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30년 만기 모기지 상환액 월 2,200달러(약 330만 원), 자동차 할부 월 650달러(약 97만 5천 원), 학자금 대출 상환 월 400달러(약 60만 원), 가족 의료보험료 월 800달러(약 120만 원), 식비와 생활비 월 1,500달러(약 225만 원). 숫자들을 더하다 보면 비상금 1,000달러(약 150만 원)조차 남기기 어려운 구조가 됩니다. 물론 한스도, 그 이웃 미국인들도 '아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집값은 오를 것이고, 주식도 오를 것이고, 미래를 밝으니까요. 미국 가계의 신용카드 부채 총액은 현재 1조 달러(약 1,500조 원)를 돌파했고, 학자금 대출 잔액만도 약 1조 7,000억 달러(약 2,550조 원)에 달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풍요는 실물 자산의 축적이 아니라 '미래 소득의 가불'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소비하는 기계 : 쓰고, 버리고, 또 쓰는 나라

Which countries eat the most meat? - BBC News

한스의 코스트코 카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스테이크 두 팩과 닭가슴살 4kg을 산다고 했는데, 이것이 일주일 안에 전부 소비됩니다. 한국의 4인 가족이 일주일치 고기를 산다면 삼겹살 500g에 소고기 200g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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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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