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다시 담장 안으로
상편에서 우리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진자처럼 고립과 개입 사이를 오가는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고별사부터 냉전 시대의 세계 경찰 역할까지, 미국은 언제나 '담장 안의 안전'과 '마당 밖의 책임'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진자가 다시 고립 쪽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그저 우연일까요, 아니면 필연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고립주의는 트럼프 개인의 성향 아닌가요?" 아닙니다. 트럼프는 원인이라기보다 증상에 가깝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이미 미국은 장기 개입의 비용을 줄이고, 동맹국에 비용 분담을 압박하고, 중국 견제를 초당적 과제로 만들어왔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방향은 같았습니다. 트럼프는 그저 이 흐름을 거칠고 노골적으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고립주의라면서 왜 관세는 더 올리고 수출통제는 더 세지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립주의는 19세기식 은둔이 아닙니다. 선택적 집중입니다. 총과 기지를 줄이는 대신, 관세와 보조금과 수출통제라는 경제적 수단으로 전장을 바꾸는 겁니다. 군사력으로 직접 개입하지 않되, 경제적 압박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식입니다.
"중국이 위협이면 더 개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바로 그 반대입니다. 위협이 커질수록 전력을 분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곳에 얇게 퍼지기보다, 핵심 전선에 두껍게 집중해야 합니다. 유럽과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부담을 덜어야, 인도태평양과 기술 전쟁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 직면한 냉혹한 현실입니다.
중편에서는 이 질문에 답하려 합니다. 왜 지금 다시 고립주의인가? 무엇이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 경찰의 배지를 벗게 만들었는가? 전쟁의 피로, 중산층의 붕괴, 중국의 부상, 에너지 지형의 변화, 그리고 국내 정치의 양극화가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개입의 비용이 쌓인 방식: 전쟁 피로와 '승리의 부재'
1.1. 9/11 이후의 전쟁: 목적은 선명했으나 종착역이 흐려진 전쟁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 미국인들의 분노는 명확했습니다. 알카에다를 응징하고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겠다는 목표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2003년 이라크 전쟁 역시 초반에는 여론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복수극의 시작은 깔끔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탈레반 정권은 무너뜨렸는데, 알카에다 지도부는 파키스탄 국경 지대로 도망갔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체포했는데, 이라크는 종파 갈등으로 내전에 빠졌습니다. 전쟁의 목적이 '응징'에서 '국가 재건'으로, 다시 '질서 유지'로 변질됐습니다. 애초에 약속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뉴스의 중심도 바뀌었습니다. 승전보 대신 철수 일정이, 적의 소탕 대신 미군 전사자 숫자가, 작전의 성공 대신 전쟁 비용이 헤드라인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운대학교 '전쟁 비용 프로젝트'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투입된 미국의 직접 비용은 2조 달러가 넘습니다. 간접 비용까지 포함하면 8조 달러를 훌쩍 넘는다는 추산도 있습니다. 미군 전사자는 7천 명이 넘고, 부상자는 5만 명이 넘습니다.
문제는 이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승리'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베트남전쟁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이 끝나지 않는 순간 깔끔했던 복수극은 치정극이 됩니다. 국민들은 묻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왜 저기 있는 거죠? 언제 돌아오나요? 이기긴 이기는 건가요?"
1.2. '영구 주둔'의 피로: 군사적 개입이 일상 행정이 되는 순간
냉전 시절 미국의 군사 전략은 명확했습니다. 소련의 팽창을 막는 것. 유럽에 NATO를 만들고, 한국에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일본에 기지를 두는 것은 모두 소련이라는 적을 억제하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적이 명확했고, 전략도 명확했습니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사라진 뒤에는 어땠을까요? 적이 없어졌는데도 미군은 전 세계에 그대로 주둔했습니다. 새로운 임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발칸 반도의 인종 학살을 막고, 소말리아의 내전을 중재하고, 리비아의 독재자를 제거하고,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는 식이었습니다. 이제 미군의 역할은 적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분쟁을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분쟁 관리는 끝이 없다는 점입니다. 장군이 전장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부족장들과 외교를 하고, 경찰 훈련을 시키고, 인프라를 재건하고, 학교를 짓는 일까지 떠맡게 됐습니다. 군인이 행정관이 되고, 전쟁이 일상이 됐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약 750개의 군사 기지를 운영하고 있고, 80개국 이상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수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영구 주둔'은 피로를 낳습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 탈레반이 순식간에 수도를 점령하는 장면을 전 세계가 목격했습니다. 2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수조 달러를 쓰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 겁니다. 미국인들은 지쳤습니다.
1.3. 국내 정치로 환산되는 전쟁

전쟁 비용은 추상적인 숫자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유권자의 물가와 세금과 복지와 경쟁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쓴 2조 달러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미국의 노후화된 인프라를 전면 재건할 수 있었고, 학자금 대출을 탕감할 수 있었고, 의료보험 제도를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유권자들은 이런 계산을 합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런 비교는 더욱 첨예해졌습니다. 중산층은 붕괴하고, 실업률은 치솟고, 집값은 폭락했는데, 정부는 중동에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도로는 고치면서 왜 우리 동네 다리는 방치하나요?"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개입은 더 이상 군사 전략이 아니라 정치적 부채가 됐습니다. 해외 개입을 지지하는 정치인은 '엘리트'이고 '워싱턴 내부인'이며 '서민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찍혔습니다. 반대로 철수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애국자'이고 '납세자의 편'이며 '상식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전쟁 피로는 정치적 무기가 됐고, 고립주의는 선거 전략이 됐습니다.
2. 세계화의 배당이 표로 돌아오지 않다: 중산층의 균열
2.1. '국가의 GDP'와 '가정의 월급'이 갈라진 시기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경제는 호황이었습니다. GDP는 성장했고, 주가는 올랐고, 실업률은 낮았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세계화의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자유무역이 모두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논리였습니다. 통계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통계가 보여주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세계화의 혜택이 지역과 계층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분배됐다는 사실입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은 글로벌 자본 흐름을 타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며 성장했습니다. 상위 1%의 소득은 급증했습니다.
반면 중서부 러스트벨트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어땠을까요? 공장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습니다. 일자리는 중국이나 멕시코로 이전됐습니다. 한때 중산층의 자부심이었던 자동차 공장, 철강 공장, 섬유 공장이 폐허가 됐습니다.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같은 주들은 '러스트벨트'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녹슨 벨트. 오명입니다. 한때 미국 제조업의 심장이었던 곳이 이제는 쇠퇴와 몰락의 상징이 됐습니다.
프린스턴의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의 연구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습니다. 1990년대 이후 고졸 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기대 수명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기대 수명 감소라니, 이는 선진국에서는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자살이 급증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절망사(deaths of despair)'라고 불렀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희망을 잃고, 결국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겁니다.
국가의 GDP는 올랐지만 가정의 월급은 정체됐습니다. 아니,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세계화는 파이를 키웠지만, 그 파이를 나눠 먹는 방식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던 '낙수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풍요가 넘쳐야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논리였는데, 실제로는 위에서 더 큰 그릇을 가져다놓고 다 담아버렸습니다.
2.2. 보호주의의 감정적 토대: 불공정의 체감

경제학 교과서는 자유무역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가르칩니다. 비교우위 이론에 따르면 각국이 잘하는 것에 특화하면 전체 효율이 올라간다는 논리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라는 단서와 '모두에게'라는 가정입니다.
미시간에서 30년 동안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된 50대 노동자에게 "장기적으로는 이익입니다"라고 말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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