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작은 나라, 큰 주먹
요즘 이스라엘의 국제적 이미지는 솔직히 바닥입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이 매일 뉴스에 올라오고, 유엔 총회에서는 규탄 결의안이 쏟아지며,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는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끊이질 않습니다. 인구 1,000만도 안 되는 나라가 어떻게 이토록 세계의 분노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그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수수께끼가 숨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면적은 충청남도 수준이고, 인구는 주변 아랍 국가들의 몇십 분의 1에 불과합니다. 이란 9,000만, 이집트 1.1억, 터키 8,500만 — 이스라엘을 둘러싼 이슬람권 인구를 합치면 3억을 가뿐히 넘깁니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건국 이후 78년간 주변의 훨씬 덩치 큰 국가들을 사실상 일방적으로 두들기고 다녔습니다. 단순히 이겼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상대 영토를 점령하고, 핵시설을 폭격하고, 4,000킬로미터 떨어진 아프리카 내륙에까지 특수부대를 보내 인질을 구출하는 수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현상을 한 단어로 설명합니다. "미국." 미국이 뒤를 봐주니까 강한 거 아니냐는 겁니다. 물론 미국의 역할은 큽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십 년간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서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를 사들였지만, 예멘의 후티 반군 하나를 수년간 제압하지 못해 오히려 홍해 주도권을 반군에게 빼앗겨버렸습니다. 남베트남은 미국이 50만 대군을 직접 파병하고도 무너졌습니다. 돈과 무기만으로 강한 군대가 만들어진다면,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석유 왕국들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강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이 나라는 건국 이래 체계적으로 —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때로는 치명적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으며 — '강소국이 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청사진은, 놀랍게도 2,4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한 도시국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 지도 위의 불가능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성립 자체가 어쩌면 지정학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보겠습니다. 동쪽으로 요르단, 북쪽으로 레바논과 시리아, 남서쪽으로 이집트. 이스라엘의 가장 좁은 지점은 폭 15킬로미터 — 서울 강남에서 강북까지의 거리입니다. 전략적 종심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한국이 북한과의 대치에서 전략적으로 끊임없이 지적당하는 부분은, 수도이자 경제 중심지 서울이 너무 국경에 가까워 종심이 얕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북쪽이라는 단일 방향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면, 이스라엘은 삼면이 적입니다. 유일하게 열려 있는 방향은 서쪽의 지중해뿐인데, 거기는 바다입니다. 도망칠 곳이 없는 나라입니다.
1948년 5월, 인구 약 60만의 유대인들이 건국을 선포하자, 다섯 아랍 국가가 동시에 침공했습니다. 배후 인구 수천만. 서울의 한 자치구가 대한민국 전체를 상대로 독립을 선언한 것에 비견할 만한 비대칭이었습니다. 적대의 성격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뿌리내리자, 1964년에는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결성되었습니다. PLO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민족자결권을 내건 정치·군사 조직으로 이 조직의 헌장이 명시한 목표는 영토 협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파괴'였습니다. 아랍 국가 대부분이 지도 위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상황이 나아진 지금조차도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랍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 종교적 차원이 겹칩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의 성지가 중첩된 세계 유일의 도시입니다.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은 솔로몬 성전이 있던 곳이고, 기독교인에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며, 무슬림에게는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입니다. 보통의 국경 분쟁은 몇 킬로미터의 양보로 풀 수 있지만, '신이 약속한 땅'을 둘러싼 분쟁에서 타협이란 신학적 배반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아랍 세계에도 마찬가지여서, 양측 모두에게 이 분쟁은 처음부터 제로섬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지정학적 논리라면, 이 나라는 생존에 매달리거나 외교적 타협에 목숨을 걸었어야 합니다. 실제로 1948년 건국 이후 수십 년간, 이스라엘을 공식 인정하는 아랍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유엔에서 이스라엘은 만년 소수파였고, 아시아·아프리카 비동맹 국가들 대부분이 아랍 편에 섰습니다. 외교적으로 완전한 고립. 그런데 이스라엘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3. 호전광(?)

이스라엘의 현대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밥 먹듯이 전쟁을 했습니다.
건국 78년간 주요 전쟁과 군사작전의 목록은 숨이 막힙니다.
1948년 독립전쟁,
1956년 수에즈 전쟁,
1967년 6일 전쟁,
1968~70년 소모전쟁,
1973년 욤키푸르 전쟁,
1976년 엔테베 작전,
1978년 레바논 침공,
1982년 레바논 재침공 ,
1981년 이라크 핵시설 폭격,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
2007년 시리아 핵시설 폭격,
2008·2012·2014·2021년 가자 작전,
그리고 2023년~현재 가자 전쟁
2026년 이란과 전쟁...
대규모 전쟁만 8회, 크고 작은 작전까지 합치면 연평균 1건 이상입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이스라엘의 국외 출병 빈도는 1,500년 전 고구려의 해외 원정과 비슷한 수준으로, 현대 국가로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호전적인, 그야말로 전쟁이 일상인 나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시작부터 그랬습니다. 1948년 독립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정규군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영국 위임통치 시절 비밀리에 조직된 민병대 하가나가 군대의 모태였고, 무기는 세계 각지에서 밀수해온 잡다한 소총과 중고 전투기 몇 대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오합지졸이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다섯 나라의 정규군을 상대로 이겼고, UN이 배정한 영토보다 50% 더 넓은 땅을 확보한 채 전쟁을 끝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깨달은 것은, 싸울 수밖에 없다면 누구보다 잘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은 그 교훈이 시스템으로 성숙한 결과물입니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시나이 반도에 10만 대군을 집결시키고 티란 해협을 봉쇄하자, 이스라엘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6월 5일 새벽,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들이 초저공으로 지중해 상공을 비행해 이집트 공군기지 위에 나타났습니다. 이집트 조종사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시각이었습니다. 3시간 만에 이집트 공군기의 대부분이 활주로 위에서 파괴되었고, 뒤이어 시리아와 요르단 공군도 같은 운명을 맞았습니다.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 지상군은 시나이 반도,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골란고원을 6일 만에 모두 장악했습니다. 이스라엘 사상자 약 700명 대 아랍 측 약 2만 명. 한 번의 전쟁으로 국토를 세 배 이상 넓힌 것입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은 더 극적입니다. 유대교 최대 명절인 욤키푸르 당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동시에 기습했습니다. 이날은 이스라엘 전역이 멈추는 날이었습니다. 라디오 방송도, TV도 꺼지고, 거리에 차도 다니지 않는 날.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를 도하해 이스라엘이 난공불락이라 자부하던 바레브 라인을 돌파했고, 골란고원에서는 시리아 전차 1,400대가 이스라엘 전차 177대를 향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초기 48시간은 이스라엘 건국 이래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비군이 동원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고, 이스라엘은 오히려 수에즈 운하를 역도하해 이집트군 제3군을 포위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기습을 당하고도 역전승. 다만 이 전쟁은 이스라엘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상자가 2,600명을 넘었고, '무적 이스라엘'이라는 신화에 금이 갔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충격이 이후 이스라엘 군사 독트린의 대대적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다시는 기습당하지 않겠다는 집념이 정보 역량의 비약적 강화로 이어졌고, 예비군 동원 체계의 속도가 수일에서 수시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실패에서 배우는 능력 — 이것이 어쩌면 이스라엘의 가장 무서운 역량일 수 있습니다.
1976년 엔테베 작전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공세적인 나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에어프랑스 여객기를 납치해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착륙시켰을 때, 대부분의 나라였다면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것입니다. 테러범과의 협상 말이죠. 하지만 이스라엘은 달랐습니다. 4,000킬로미터 — 서울에서 인도네시아까지의 거리 — 를 C-130 수송기 4대로 야간 비행해, 적국 한복판의 공항에서 인질 102명을 구출하고 돌아왔습니다. 작전 시간 53분. 이스라엘 측 전사자는 지휘관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 한 명이었습니다. 네타냐후. 맞습니다. 그의 동생이 지금의 총리가 되는 그 유명한 베냐민 네타냐후입니다.
1981년에는 프랑스가 이라크에 독단적으로 기술을 전수해 원자로를 건설하려 하자, 건설 중이던 오시라크 핵 원자로를 F-16 편대가 폭격해 파괴해버렸습니다. 2007년에는 시리아가 북한의 기술 지원으로 건설하던 알키바르 핵시설을 역시 공습으로 날려버렸는데, 이 사실을 10년 넘게 비밀에 부쳤습니다. 적의 전략적 역량이 완성되기 전에 먼저 파괴하는 '베긴 독트린' — 방어가 불가능하니 차라리 먼저 공격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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