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를 찾아서 : 불안을 양분삼아 살아온 또 다른 자아를 위로하며

내 안의 나를 찾아서 : 불안을 양분삼아 살아온 또 다른 자아를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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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핑이
2025.12.25조회수 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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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커서 OOO(본명)이 될 거예요!

  세상이 뭔지, 사람이 뭔지, 돈이 뭔지 모르던 어린 시절. 누군가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내가 내놓은 대답이다. 어린 녀석이 당돌하게도 철학적인 대답을 내놓았는데, 돌이켜보면 그저 남들과 다르고 싶어 던진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추구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꿈이 뭐냐는 질문에 누구보다 소박하게 답하곤 했다. “그냥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어른이 된 지금(여전히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낯설지만), 나는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고민하곤 한다. 이제는 내 삶의 궤적이 어느 정도 그려졌고, 그간 내가 했던 말들과 살아온 시간들이 어우러져 어릴 적 그 대답의 윤곽을 조금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

  평범한 아빠가 되고 싶다던 바람과 달리,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성공을 향해 달렸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선택해 왔다. 집안 형편과는 무관하게 ‘자사고’라는 이름의, 소위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이 모이는 기숙사 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생 내내 나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들만 골라 했다. 남들이 자정까지 공부할 때, 나는 잠이 중요하다는 강박에 빠져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과학탐구 과목도 물리, 화학, 생물처럼 평범한 선택지를 거부하고, 학교에 수업조차 개설되지 않은 과목을 골라 들을 정도였다. 그때 선택한 ‘지구과학’ 때문에 천문학자를 꿈꿨고, 결국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기상학을 전공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당시에도 기후변화는 장래가 유망한 분야라고들 했다(아이러니하게도 그 분야는 여전히 장래‘만’ 유망하다).

  그 고집은 대학 입시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오로지 기상학과 관련된 전공만을 고집했다. 당시 대기과학과는 전국 국립대에나 겨우 있었고, 서울엔 이름 들어본 사립대 단 한 곳뿐이었다. 공대를 선택했다면 훨씬 수월하게 인서울 대학에 진학했겠지만, 나는 대기과학이 아니면 안 된다며 항공대와 대기과학과만 골라 쓰는 처참한 입시 전략을 고수했다. 결국 일부 장학금을 주겠다는 수도권 대학 대신, 전액 장학금을 제안한 지방 국립대를 선택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대기과학을 공부하게 됐으면 거기에 만족할 법도 한데, 대학에 가자마자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군 문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인 결정이었다. ‘운항관리사’가 대기과학 전공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직업이라 판단했고, 그 직업의 핵심 전공인 항공우주공학을 복수전공하기 시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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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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