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의 신화 너머, 상처투성이 용이 바다로 간 까닭은

'노오력'의 신화 너머, 상처투성이 용이 바다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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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핑이
2025.12.28조회수 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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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다.

  어릴 적 나는 이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아니, 20대 중반까지도 믿었던 것 같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성실과 열정만으로 성공을 이루어내는 자수성가 이야기. 그 끝은 늘 해피엔딩이라 믿으며, 나 또한 개천에서 날아오를 용이 되리라 다짐했다.

용은 오직 개천에서만 나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이 믿음은 점차 그릇된 방향으로 변질되었다. 고생 끝에 얻은 성공만이 ‘진짜 성공’이며, 좋은 환경에서 쉽게 얻은 성공은 ‘반칙’이라 치부하게 된 것이다. 내게는 자수성가만이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성과였고, 드넓은 바다에서 태어난 용은 용이 아닌 그저 배부른 이무기일 뿐이라 굳게 믿었다.

  이러한 비뚤어진 신념 덕분에 얻은 것이 있다면, 그건 지독한 생존력이었다. 이 생존력은 학창 시절 유일한 성공 지표였던 성적을 올리는 데 나를 몰아붙였고, 공부 외의 웬만한 난관들도 악바리처럼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방의 한 기숙사형 자사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17살 어린 나이에 집과 멀리 떨어져, 군대보다 더 집에 가기 힘든 3년간의 기숙사 생활이 시작됐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사했다. 나는 물리적인 안식처뿐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마저 잃어버렸다. 가족들은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느라, 또 당시 고3이던 형을 뒷바라지하느라 내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사고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이곳 친구들은 대부분 ‘개천’이 아닌 ‘바다’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교육 지원을 받으며 중학생 때부터 외고, 과고 입시를 준비해온 친구들이 많았다. 고1 입학 당시, 이미 수능 외국어영역 만점을 받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6등급 성적표를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을 보며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공부 투자는 기본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까지 ‘플러스알파’로 누리는 친구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처럼, 나는 그들 틈에서 매 순간 가랑이가 찢어지는 듯한 버거움을 느꼈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형편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지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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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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