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양은 갚을 능력이 있는 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 리포트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부분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누적되면 큰 파급력을 가진 것들에 의해 발생합니다. 유동성과 재정 안정성이라는건 평상시에는 넘쳐나다가 가장 필요할 때는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양적완화에 대해 우려섞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통제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 문제는 2010년대 내에는 일어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전시가 아님에도 역대급 재정적자로 돌아가는 미국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경제가 저축이 아니라 소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아무도 파산하지 않고, 악재가 호재로 변하는 기이한 사회이죠. 인플레이션이 없는 한, 정부가 돈을 풀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만 보입니다. 2022년에 쑥 들어가긴 했지만 정부는 무제한으로 돈을 풀어도 괜찮다는 MMT같은 경제이론도 반짝 관심을 받았었죠.
JP모건의 한 칼럼에서도 미국의 정부부채와 재정적자는 경제에 부담을 줄 수는 있어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이나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 위협, 국가부도로 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습니다. 재정지출은 금리에 상승압력을 넣기는 해도 여전히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한 부문에 잘 투자되고 있으며, 미국의 탄탄한 경제는 세수와 이자부담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저같이 경제논리로만 시장을 접근하는 사람들은 AI의 생산성 증대효과를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미국의 경제성장이 예상대로 이뤄질 때의 시나리오입니다. 원래 돈을 빌릴때 본인의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PF도 똑같이 자본비용을 초과하는 부동산 가격의 장기적인 상승을 기반으로 설계됩니다. 다른 많은 채권, 구조화상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문제가 된 부채담보부증권(CDO)도 그랬습니다.
블랙록의 하반기 전망 보고서에서 내놓은 분지도가 현재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AI가 제대로 일해줘서 기업의 수익성이 자본비용보다 높게 유지되고, 실질경제성장이 인플레이션과 이자비용을 초과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채권자에게 호언장담했던 생산성 향상이 예상만큼 가파르지 않거나, 더 지연되어 발생하면 상황은 빠르게 끔찍해질 것입니다. 대상승장과 대폭락장이 종이한장 차이로 갈릴 수 있다는 것이죠.
중간이 없는 전망: 다 잘되거나 망하거나

출처: Hildebrand et al. (2024). 2024 Midyear Investment Outlook: Waves of transformation. Blackrock
기초체력없이 성장을 원하는 사회
제 이전 글들을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비관론자에 더 가깝습니다. 저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역할이 경기변동에 대응하는데 있지, 적극적인 경제성장을 돕는데 기여하려 하면 안된다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는 양적완화를 시작으로 장기 경제성장을 소비 증진, 투자 촉진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장기적인 경제성장, 즉 번영은 원래 자본과 기술의 축적에 의해 이뤄집니다. 저축된 잉여 자본은 생산수단의 가격을 낮춰 디플레이션적 경제성장을 일으킵니다. 기술 발전도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이뤄내는 효율성 증대로 디플레이션적 경제성장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은 디플레이션이라면 전부 몸서리쳐서 아에 2%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시행해버렸죠. 이들은 저축이 아니라 더 많은 대출, 소비를 하라고 부추겼습니다.
문제는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단지 미래의 이익을 현재로 앞당긴 것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사회에 신용화폐가 늘어나면 처음에는 이득을 본 것처럼 느껴지지만 장기적으로는 화폐가치가 그만큼 하락해서 비용이 증가합니다. 정치인들은 물가를 낮춘답시고 주요 부문에 보조금을 풀어 가격을 낮춘다고 주장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두더지잡기처럼 접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값이 오르니 사과 보조금을 주고, 반도체값을 내리기 위해 반도체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모든 부문을 지원해봤자 결과는 인플레이션입니다. 내재가치의 상승없이 주가배수의 상승으로 주가를 올린 주식처럼 우리 사회의 기대수익률은 낮고, 요구수익률은 높습니다. 우리 사회도 그걸 아니까 무리한 성장을 추구하며 AI가 뭐라도 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지출로 이끈 인위적 성장의 댓가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입니다. AI 붐이 오니까 전력 인프라 수요가 증가하고, 구리 가격이 증가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현상이 아닙니다. 원래 에너지 사용량은 문명의 척도이고, 우리 분수에 맞지 않는 에너지를 억지로 끌어다쓰려 하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탄소배출 문제도 돈을 쏟아부어야 기존 에너지 소비량을 유지하면서 탄소절감을 이뤄낼 수 있는데, AI로 에너지 소비량을 늘리면 환경 문제도 나중에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우리에게 필요한건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거지, 산지 얼마안된 내연기관차를 자율주행 테슬라로 바꾸는게 아닙니다.
주식시장도 지금 분수에 맞지 않는 이익 성장을 원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식시장의 장기 실질국채금리 대비 초과기대수익률은 1.2%에 불과합니다. 물론 1년 단위로는 얼마든지 벨류에이션을 무시할 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