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함정, 우리 안의 괴물

확신의 함정, 우리 안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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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2025.06.04조회수 62회



확신의 함정, 우리 안의 괴물

확신의 함정.jpg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드디어 21대 대선의 막이 내렸습니다.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밤하늘을 수놓았을 환호와 탄식,

거리 위를 스쳐 가는 무수한 얼굴들 속에 뒤섞인 각기 다른 표정들.


결과는 단 하나이지만, 그 의미는 저마다의 가슴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을 겁니다.

기쁨과 분노, 기대와 체념이 마치 거대한 추처럼 온 사회를 흔들며,

우리 마음속 감정의 파고를 일으키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격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바로 ‘확신’이라는 이름의 그림자입니다. 이 확신이라는 감정은, 때로는 너무 뜨거워

우리 자신마저 태워버릴 수 있는 위험한 불꽃이 되곤 합니다.


내적인 자신감과 타인에게 투사되는 자신감


내적인 자신감은 우리를 고양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도 도전하게 하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는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자질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자신감이 타인에게 과도하게 투사될 때,특히 그 자신감이 지적 허영을 넘어선 독선으로 연결될 때,

비극적인 결말로 귀결되곤 합니다.

타인을 가르치려 들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강요하며,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오만한 태도는

주변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역사 속 수많은 독재자와 오만한 리더들이 이러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토록 뜨거운 확신은 어디에서 왔을까 – 우리 교육의 자화상


우리는 왜 이토록 스스로를, 자신의 판단을 맹신하는 걸까요?


"나라 망하게 생겼다!",

"저들이 권력을 잡으면 빨갱이 세상이 온다!",

"그 사람만은 절대 안 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점심 메뉴를 고르듯 쉽게 단정 짓는 말들이 난무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봅시다.


우리의 그 확신, 얼마나 확신할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 인터넷 게시판에 쏟아내는 한 줄의 문장에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다고,

3년 뒤에도 그 글에는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유효할 것이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돌이켜보면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틀리고, 후회했습니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번만큼은, 이 문제만큼은 ‘나만이 옳다’고 이토록 강하게 믿게 되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는 ‘진실’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승리’하기 위해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이겨야 한다’는 투쟁 본능이,

차분한 설득보다는 ‘압도해야 한다’는 지배 충동이

우리 안의 괴물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를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아집에 가까운 태도는 어디서부터 싹텄을까요?

많은 이들이 그 뿌리 중 하나로 ‘교육’을 지목합니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독일 교육이 토론과 비판, 다름의 존중을 통해

‘생각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반면, 우리 교육은 경쟁과 서열화 속에서 정답 찾기에만 매몰되어

자유로운 사유의 날개를 꺾어버렸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의 일침은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합니다.


“한국 교육은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정답을 찍는 기계’를 만든다.”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게 하는 획일적 구조는, 결국 파시즘적 사고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질문하고 토론하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여정 대신,

정해진 답을 암기하고 점수로 평가받는 시스템에 길들여졌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개인의 사고를 넘어 사회 전체가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신념만이 정의롭다는 극단적 확신에 빠지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토론이 아니라 ‘정답 맞히기’로 단련되었고, 경청보다는 반박에,

이해보다는 승부에 익숙해졌습니다. 입시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조건 옳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맹목적으로 확신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점수가 주어지고, 등수가 매겨지고, 선망하는 대학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확신’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확신하는 법’을 배운 셈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칼날 위를 걷는 일인지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편향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의 노예


곰곰이 되짚어보면, 크든 작든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수없이 많을 겁니다.

심지어 철석같이 믿었던 전문가의 분석이나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참으로 간사해서, 자신이 옳았던 소수의 짜릿한 순간은 오래도록 곱씹으며 간직하고

-그 것도 왜곡하기까지 하면서 - 틀렸던 대다수의 민망한 기억은 ‘그럴 수도 있지’하며 망각의 강물 뒤로 흘려보내곤 합니다.


특히 정치나 이념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확증 편향’이 더욱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특정 진영의 논리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우리 편은 절대선(絶對善)"이고, "상대편은 절대악(絶對惡)"이라 쉽게 단정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과거 자신들의 수많은 오류와 모순은 편리하게 삭제해 버립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 특히 유튜브와 같은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증폭됩니다. 알고리즘은 마치 내 마음을 읽는 것처럼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

이미 믿고 있는 견해를 강화하는 정보만을 끊임없이 눈앞에 펼쳐 보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편향된 정보의 ‘필터 버블’ 안에 갇히게 되고,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극적인 가짜 뉴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때로는 조회수만을 위해 급조된 함량 미달 채널의 저질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며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깁니다. 이렇게 편향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지고, 특정 아젠다에 자신도 모르게 깊이 동화되어 버립니다.


결국, 주변의 다양한 목소리와 관점을 돌아볼 여유조차 상실한 채, 마치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주마처럼, 한 가지 생각에만 매몰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의견이나 새로운 정보에는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게 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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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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