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심장은 도키도키
귀멸의 칼날을 통해서 본 애니메이션 서사시 (上)
부제: 지금까지 이런 분석은 없었다. 이것은 리뷰인가 강의인가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며칠 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고 왔습니다.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첫 장면이 나오는 순간부터 제 심장의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작품이 끝나고도 가슴 속 여운은 불길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애니가 아니라 제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덕왕의 숨겨왔던 또 하나의 덕을 꺼내어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1장. 만화방 사장님과의 추억
제가 만화를 좋아하게 된 건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노량진에서 눈물의 컵라면을 먹으며 공부하던 시절, 한O학원 앞 지하에는 만화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처음 가본 그 곳은 아침부터 계속된 수련에 지친 덕왕의 마음에 단비를 뿌려주었고 그 후 하루 2시간씩 만화책을 보곤 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은 중요하니까요.
TMI: 당시 노량진 학원가에는 "당구장 vs 만화방" 이라는 영원한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당구장은 시간당 2,000원, 만화방은 1시간에 1,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의 투자 관점에서는 만화방의 ROI(투자수익률)가 훨씬 높았습니다. 당구장에서는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고 뻥카에 당할 수도 있으며 패배하면 상대의 게임비까지 내야 하는 리스크가 있던 반면에 만화방에서는 노력한만큼(?) 확실한 힐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만화방에서는 ‘권수’요금과 ‘시간제’ 요금이 있었는데 남들보다 훨씬 책을 빨리 보던 제게 시간제 요금은 남는 장사였습니다. 2시간 요금을 지불하고 라면 한 그릇 때리며 여유있게 봐도 보통15권 정도의 만화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만화를 보고 있는데 만화방 사장님이 인기척을 내시곤 저를 노려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자네... 한 만화 하는 것 같은데?"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달까. 그의 매서운 눈매에서 만화방 주인다운 푹 쩔은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네. 제가 좀 합니다."
호기롭게 던진 말에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같이 와서 수십 권을 보고 가던데... 나랑 내기 하나 하지..."
"내기? 무슨 내기요?"
만화책을 집어든 채 소파에 가로로 누워 담배를 뻐끔 피어대며 올려다보는 저의 눈빛 너머 사장님은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나랑 장편 만화를 누가 빨리 보는지 내기 하지. 내가 이기면 자넨 앞으로 권수 요금제로 바꿔."
"제가 이기면요...?"
"훗... 자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콜”
곧 양보할 수 없는 세기의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는 <보스의 두 얼굴>이라는 만화책이었고 다른 하나도 그와 비슷한 장르의 만화책이었는데 카지노 칩처럼 서로 수십 권을 앞에 쌓아 두고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습니다. 만화방의 수많은 덕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그 중 한 사람이 심판이 되어 시작을 알리자 저와 사장님은 읽기 시작했습니다. 만화방 안은 고요한 채 오직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고 하우스는 담배연기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3시간이 넘어서는 순간 제가 먼저 완독을 선언했습니다.
사장님은 만화책에 잠겼던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들어올렸고
"다 읽었나.... 내가 졌네...." 라며 쿨하게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에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제가.... 다 읽지도 않았는데 거짓말한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장님은 그 물음에 너털웃음을 짓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씀하셨습니다.
"후우... 그렇게 거짓말할 친구로는 보이지 않아."
그 말에 저의 교만함이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무엇을 원하냐는 사당님의 질문에 저는 그저 일주일에 한 번만 공짜 라면을 먹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시험 전까지 계속 시간요금제를 지불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공짜 라면을 얻어먹으며 신나는 만화라이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만화의 덕인지, 운 좋게 과거시험을 통과한 후 그간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코자 위스키 한 병을 사 갖고 찾아뵈었을때 사장님은 놀라셨습니다.
"아니! 자네가!! 자네가 대학에 갔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같이 말린 오징어마냥 소파에 누워 줄담배를 피워대며 만화만 쳐보던 저를 보며 사장님은 당연히 시험에 실패했을거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만화가 있었기에 오늘의 영광이 있었다며 그 깊은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이 후에도 가끔씩 찾아뵈다가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느라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고 몇 년 후 다시 찾아갔을 때는 그 만화방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장님의 말씀이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만화라는 것은 참 멋지지. 우리를 어디로든 데리고 가줄 수 있어.
앉아서 모든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고 배움 또한 얻을 수 있으니 정말 멋지지 않아?"
오랜 시간이 지난 저는 지금도 만화와 애니를 사랑하는 덕중의 최고, 덕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만화를 보고 계시겠지요? 언젠가 다시 만나서 승부를 겨룰 수 있기를!
제2장. 귀멸의 칼날 - 덕후의 심장을 불태운 도약점
왜 귀멸은 다른가?
본격적으로 귀멸의 칼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2020년 5월까지 작가 '고토케 코요하루'에 의해 일본의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작가의 신상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으며 다만 여러 정황상으로 여자분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워낙 낯가림이 심해서 편집부 내에서도 담당 편집자 말고는 만나본 사람이 없을 정도고, 소년 점프를 출판하는 슈에이샤 사장조차도 만나지 못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귀멸의 칼날은 4년 3개월 동안의 연재기간 동안 인기 있던 작품이었지만 진정한 인기는 애니메이션화 된 후부터입니다. 1기부터 어마무시한 작화와 액션씬에 작가가 애니메이션 제작사 유포터블이 있는 방향으로 절을 했다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로 귀멸의 칼날은 애니 전후로 나뉩니다.
귀멸의 칼날은 왕도물이지만, 기존의 소년만화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기존의 소년만화의 성공 공식에서는 선악이 분명했다면 귀멸의 칼날에서는 '악인'인 혈귀들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가족을 살리려다 길을 잘못 든 자, 가난과 차별에 무너진 자 등, 그들의 과거는 단순한 악이 아니라 비극으로 다가옵니다.
혈귀들의 비극적 배경 설정은 사실 매우 현대적인 세련된 스토리텔링 기법입니다. 이는 선악구조가 아닌 '상황의 피해자'라는 관점을 제시하는데, 마치 경제위기 때 대출을 못 갚는 사람들을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덕분에 독자와 시청자는 괴물과 싸우면서도 연민을 느끼며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이것이 귀멸의 칼날의 인기를 더 크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1979년 방영된 <기동전사 건담>도 기존의 선악구도가 확실했던 로봇물과는 달리 각자의 납득할만한 서사가 있는, 지구연방과 지온공국의 대결구도를 그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실제로 건담의 탑승자는 주인공 ‘아무로 레이’였지만 지온공국의 에이스 ‘샤아 아즈나블’의 인기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봐도 굉장히 흥미로운 점들이 많습니다. 특히 '선악구조의 해체'는 현대 투자 환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에는 '좋은 기업 vs 나쁜 기업'으로 단순하게 나누어 투자했다면, 이제는 훨씬 복잡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석유회사가 환경을 파괴한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투자처는 아닙니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친환경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친환경적 이미지를 가진 기업이 원재료를 생산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유포터블의 기적
귀멸을 만든 스튜디오 유포터블(Ufortable)은 이미 <공의 경계>, <Fate/Zero> 등의 작품을 통해 오타쿠들 사이에선 품질로 소위 '작붕'(작화 붕괴:作画崩壊)이 없습니다. 작붕이란 애니메이션에서 그림의 품질이 불안정해지거나 원본과 다르게 망가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비율이 맞지 않거나, 눈이나 손발의 위치가 어긋나고 그림이나 색채의 퀄리티가 갑자기 떨어져 작화가 무너진 상태가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이런 현상은 보통 촉박한 제작 일정 때문에 원청 회사가 하청을 주면서 자주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유포터블은 원화·동화·3D·합성 등의 과정을 모두 내부에서 처리하는 체계 덕분에 팬들로부터 "작붕을 모르는 스튜디오"라는 찬사를 들었고 귀멸에서는 한 단계 더 올라섰습니다.

코로나가 만든 글로벌 팬덤
이미 될성싶은 떡잎이었던 유포터블이 떡상한 계기는 2020년 <무한열차>편이었습니다. 당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컨텐츠 수요는 폭발했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해졌고 신규 영화에 대한 투자 또한 급감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다르지 않아 2019년 하루 평균 4~50만 명이던 영화의 관객 수는 2020년 3월 24일 기준 하루 총 2만 명대로 떨어졌는데, 이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시작 이후 역대 하루 최저치였습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OTT혁명이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OTT 이용률은 2019년 41.0%에서 2020년 72.2%로 급증했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규 제작이 급감하며 컨텐츠 부족은 계속되었습니다.
(독자들의 예상반응: 아 이때 넷플릭스 주식을 사놨어야 했는데!!)
이런 와중에서 2020년 유포터블은 엄청난 퀄러티를 자랑하는 무한열차편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코로나19로 업무가 원활하지 않았음에도 유포터블은 체계화된 시스템 안에서 믿을 수 없을만큼 훌륭한 퀄리티의 작품을 완성해냈던 것입니다. 거기에 희망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서사까지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전까지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일부 매니아만이 즐기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무한열차는 8개월 동안 아무런 경쟁작 없이 극장에 상영되었고 극장에 상영된지 6개월만에 전세계 OTT에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즉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게 되었고 유포터블은 일약 글로벌 탑티어 제작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무한열차 이전에는 여러 스폰서들이 모인 ‘제작위원회(製作委員会)’ 형태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습니다. 리스크를 분산한만큼 각 투자 기업들의 위험은 제한되었으나 이로 인해 작품의 내용이 간섭받고 작화 퀄리티가 떨어지는 등 여러 병폐가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해외 진출하려면 스폰서의 이익을 위한 수많은 유통 단계를 거쳐야 했으며 막상 제작사의 이익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폰서들은 일본 내수시장에서만 팔아도 매니아층의 존재로 인해 그런대로 이익을 거둘 수 있었기에 해외 진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무한열차가 상업용 OTT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기존의 판이 뒤짚어지게 된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글로벌 팬덤이 형성되었고 이 후 유포터블을 대표하는 1티어 제작사들은 먼저 투자를 받고 안정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계약과정에서 방영에 대한 수익은 OTT회사들이 더 많이 가져갔지만 유포터블은 글로벌 팬들에게 굿즈 등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설이 된 기록들
무한열차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5억 달러 수익으로 2020년 전세계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영국과 미국 외 국가 영화로는 1915년 집계 시작 이후 최초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총 218만 명을 동원해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중 역대 5위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당시 코로나로 극장가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나온 성과라 더욱 놀라웠습니다. 또한 일본 영화사상 최단시간 100억엔을 달성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총 7,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유포터블의 제작 철학과 기술적 혁신
유포터블의 핵심 정체성은 "사내 일원화"입니다. 배경 3D팀을 포함한 디지털·합성 부문을 내부에 두고 섹션 간 경계를 낮춰, 컷·샷 단위에서 감독·원화·3D·합성이 서로의 의도에 맞춰 즉시 조율되는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이 구조는 Fate/Zero 시기부터 지향해 온 로드맵으로, 2016년 내부 3D(BG) 아트팀 창설 같은 조직적 정비를 통해 결속을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무한성편은 원래 3년에 1편 정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만큼 업계에서는 상당히 복잡한 작업으로 평가했지만, 유포터블은 1년 반만에 첫번째 작품을 놀라운 퀄러티로 완성했습니다.
"작붕 최소화"의 구조적 이유
유포터블은 샷 설계를 3D 프리비주얼로 먼저 잡고(카메라 이동·공간계획), 여기에 2D 캐릭터 작화와 이펙트를 정밀하게 맞물리며 최종 합성에서 색·광·심도를 통합 조정합니다. 이 순서는 컷 간 질감 편차나 작화 난이도 급등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합니다.
또한 제작전부터 정밀하게 설계된 가이드는 특히 촬영(합성) 단계에서 광원, 대기층, DOF·모션블러·색보정·글로우·입자 등을 처리하는 여러 팀들의 결과물을 일관된 표현으로 유지하여 일부 외주작업이나 팀 분할에 따른 작업물간의 차이에 의한 흔들림 없이 에피소드 간 '같은 작품 같은 공간'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유포터블은 2D와 3D의 경계가 눈에 띄지 않도록 컬러 매칭·엣지 처리·노이즈/그레인·미세 블러를 활용해 이질감을 낮추는 기술로 유명합니다.
장비빨을 위한 대대적 확충
유포터블은 무한성편의 방대한 CG를 렌더링하기 위해 자체 렌더 팜(render farm)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TMI: 렌더 팜(render farm)이란 컴퓨터 그래픽(CG) 작업을 할 때 필요한 대규모의 렌더링 전용 컴퓨터 클러스터를 의미합니다.

렌더 팜 확장은 마치 배달의 민족에서 주문이 폭증하자 치킨집 사장이 튀김기를 10배로 늘리고, 알바생도 대거 충원하며, 배달 오토바이까지 추가로 구매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대의 컴퓨터로 수년이 걸릴 작업을 몇 시간 또는 며칠 만에 끝낼 수 있도록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기존에도 2D와 3D를 혼합하며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왔던 유포터블이지만, 무한성처럼 복잡하고 방대한 공간을 3D CG로 구현하려면 기존과는 다른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유포터블 자체 분석 결과, 기존 자원만으로는 무한성편의 렌더링에만 3년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측될 정도였으니까요.
이에 유포터블은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무한성이 총 3부작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한 번 구축해놓으면 향후 모든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유포터블은 고성능 장비들을 도입하고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보통 유포터블을 비롯한 최상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은 3D CG 및 렌더링 작업용으로 NVIDIA Quadro 또는 RTX 시리즈 등을 주로 사용하는데, 무한성편 제작을 위해 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까지 고성능 컴퓨터와 그래픽 카드를 대량으로 사들여 렌더링에 필요한 연산 자원을 폭발적으로 늘렸습니다. 또한 장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관리하기 위해 서버룸의 냉각 시스템을 개선하여 더 많은 장비를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회사의 3D 모델러들을 갈아넣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3장. 귀멸 세계관의 역사적 배경
다이쇼 시대의 빛과 그림자
애니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저보다 덕력이 깊으신 분들께서 이미 마르고 닳도록 다루셨기 때문에 저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겠습니다.
귀멸의 칼날의 배경이 되는 다이쇼 시대(大正: たいしょう, 1912~1926년)는 일본에서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불리며 비교적 자유롭고 문화가 꽃피운 시대로 회자되곤 합니다. 다이쇼 시대 이전은 유명한 메이지 시대였으며 다이쇼 시대의 다음은 쇼와시대로, 2차세계대전의 전범 ‘히로히토 천황’의 재위시기였습니다.
다이쇼 시대는 일본에게 있어서는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의 기술과 문화가 유입되었고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자신감이 넘쳐흘렀습니다. 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정당정치가 발전했으며 의무교육의 보급으로 대중의 수준이 향상되었고, 상공업의 발전으로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달했습니다.
![애니 [귀멸의 칼날] 7화_ 키부츠지 무잔 (鬼舞辻無慘) 줄거리, 결말, 후기.png](https://post-image.valley.town/2FO7sU9B_rla_SWrGJU4h.png)
특히 서양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일본의 전통문화와 혼합되는 독특한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당시는 '다이쇼 로망(大正浪漫)'이라고 불리며, 낭만적이고 향수 어린 분위기로 묘사되곤 합니다. 남성들은 중절모에 양복을 입거나 전통 기모노 위에 서양식 코트를 걸치는 '화양절충(和洋折衷)' 스타일이 유행했고 여성들 사이에서는 기모노 위에 하카마를 입고 구두를 신는 '하이칼라' 스타일이 유행했습니다. 중절모를 쓴 무잔의 모습은 당시 멋쟁이들의 대표적인 패션스타일이었습니다.
탄지로의 야마카케 우동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길거리 음식 문화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우동은 저렴하고 따뜻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가게는 물론 포장마차(야타이)에서도 인기 있는 메뉴였습니다.
귀멸의 칼날 1기에서 탄지로가 도쿄에 갔을 때 노점에서 우동을 사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야마카케 우동’인데 찐득하게 간 참마(마)와 짭짤한 육수, 그리고 쫄깃한 우동면을 함께 먹는 일본식 우동 요리입니다.
야마(山)는 “산”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산에서 캐는 뿌리채소, 특히 ‘참마’를 가리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