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이 왜 정치 앞에서는 악마가 되는가?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에른스트 블로흐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멈추고 악에 동참하게 되는지,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적으로 느끼는 정치적 극성화 현상까지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여섯 겹의 덫을 확인했습니다. 정치를 생존의 위협으로 착각하는 뇌, 부족주의를 강화하는 호르몬, 자기기만을 정당화하는 확증편향, 우리 대 그들의 프레임을 만드는 집단 정체성, 경제적 결핍이 빼앗아가는 인지 능력, 그리고 분노를 상품으로 파는 알고리즘 미디어까지.
이 모든 것이 거미줄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하기는 이릅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탈출구를 찾아볼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을 되찾을 것인가?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냉철해야 할 투자자로서 어떻게 이 광기에서 벗어날 것인가?
본격적으로 해법을 탐구하기 전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두 번째 시간의 글은 첫 번째 시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민감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안의 작은 아이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간절히 속삭였지만 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마음은 두려움을 필연적으로 수반하지만 상자 속엔 희망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자료에 근거하여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객관화란 존재할 수 없으며 여러분의 생각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이유는 덕왕의 '무지'와 '부덕'에서 나온 것이기에 모든 비판은 제게 해주십시오. 상호 간의 건전한 토론은 환영하지만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과 세대 및 성별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은 자제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글을 다 읽고 난 이후에는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두 번째 시간을 시작합니다.
PART 3: 이대남과 이대녀, 세대 간 단절의 뿌리
12. 일곱 번째 덫: 20대 남자의 보수화와 그들의 진짜 속마음
앞서 살펴본 여섯 겹의 덫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치명적인 두 개의 덫이 더 있습니다. 바로 20대를 중심으로 한 세대와 성별 간 갈등입니다.
숫자가 말하는 세대 전쟁
20대 남녀의 정치 성향이 극명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58.7%가 윤석열 후보에 투표했고, 20대 여성의 58.0%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습니다.
2025년 대선에서는 이 균열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20대 전체에서 41.3%가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이를 성별로 나누어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약 74%가 보수 후보들 중 한 명에게 투표하고 이재명 후보에게는 24.0%만이 투표한 반면, 20대 여성에서는 약 58%가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고 35.6%만이 보수 후보에게 표를 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닌 같은 세대 내에서 완전히 다른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2022년 대선에서 처음 드러난 20대 남성의 보수화와 20대 여성의 진보화라는 균열의 조짐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정당의 지지율도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 2월 기준,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36%인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14%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20대 여성은 민주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한국갤럽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대를 통틀어 20대 남성의 보수화 경향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전통적으로 젊은 세대는 진보 성향을 보여왔고,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20대 남성은 50-60대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2023년 Financial Times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도 젊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정치 성향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격차는 40점 이상으로 미국의 31점, 독일의 30점, 영국의 25점을 훨씬 상회합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7-10점 차이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도 세계 1등을 하다니, 자랑스러워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한국의 20대를, 특히 20대 남성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기성세대들은 20대 남자들을 '이대남'으로 부르며, 뭐가 부족해서 보수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이것은 세대 간의 보수화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60대 이상의 세대가 '반공'과 '정부 주도의 성장 우선주의'를 핵심으로 한 '이념적 보수'라면 20대 남성은 '반(反) 페미니즘'과 '공정성'을 핵심으로 한 '기능적 보수'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다른 세대와 다르게 돌아선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경제적 박탈감: 사다리가 사라진 세대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 박탈감입니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단순히 가난하다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격차의 확대"입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20-30대의 순자산은 연평균 4.3% 증가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수치처럼 보이지만 같은 기간 40-50대의 순자산은 6.8% 증가했습니다.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피케티의 경고: r > g의 저주
토마스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r > g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다)라는 유명한 부등식을 통해, 자산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사람이 땀 흘려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이미 자산을 가진 기성세대와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 세대의 격차는 좁혀질 수 없습니다. 마치 아무리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제논의 역설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자본수익률(r)이 연 5%이고 경제성장률(g)이 연 2%라고 가정해 봅시다. 10년 후의 격차를 보면, 1억 원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1.6289억 원(6,289만 원 증가)이 되고, 연봉 3,000만 원인 사람은 3,657만 원(657만 원 증가)이 됩니다. 격차는 9.57배입니다.
20년 후의 격차를 보면, 자산 보유자는 2.6533억 원(1억 6,533만 원 증가)이 되고, 노동자는 4,458만 원(1,458만 원 증가)이 됩니다. 격차는 11.34배로 벌어집니다.
2024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 이하(20~39세)의 순자산은 평균 약 2억 2천만 원인 반면, 40-50대는 4억 5,000만 원에서 5억 초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대 간 자산 격차가 두 배 가까이 벌어진 것입니다. 2억 원 이상의 절대적 격차도 이들에겐 아득한 차이인데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은 절망감을 안겨줄 뿐입니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이 격차가 좁혀지기 어렵습니다. 2024년 기준 서울의 PIR(주택가격/연소득 배수)은 13.9배입니다. 숨만 쉬고 일해도 내 집 마련에 14년이 걸립니다. 청년가구(19-34세)의 자가점유율은 12.2%로 전체 평균의 5분의 1 수준입니다. 40년 전만 해도 20대의 자가 보유율이 30%였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추락한 것입니다.
이를 부채질한 것이 바로 '금리'와 '통화정책'입니다. 돈을 많이 풀면 필연적으로 자산가격이 높아지는데 비해 이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는 불평등하게 이루어집니다. 소득이 높고 자산가치가 높은 사람들은 저금리로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지만 소득이 낮고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적은 금액을 고금리로 대출받거나 아예 그마저도 불가능합니다.
결국 기성세대의 부는 더욱 증가하고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젊은 세대의 부는 상대적으로 감소하여 세대 간 차이가 더욱 확대됩니다. 지난 십 년 이상의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와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저축해도 노후를 준비할 수 없으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사치를 넘어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성 프레임: 과연 평등한가?
두 번째 이유는 "공정성"에 대한 의문입니다. 20대 남성이 느끼는 박탈감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채용 시 여성 할당제에 대한 불만,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무고죄"로 악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2018년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편파 수사 논란과 이에 대한 메갈리아의 반응, 미투 운동의 확산 등은 20대 남성에게 "우리는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TMI: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
2018년 홍익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은 여성 모델이 남성 모델의 나체를 몰래 촬영해 남성혐오 사이트인 워마드에 유포한 사건으로, 가해 여성은 징역 10개월 실형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편파 수사' 논란을 일으켜 대규모 페미니즘 시위를 촉발했습니다. 여성들은 '피해자가 남자라서' 여성 피의자에 대한 가혹 수사를 비판했으나, 젊은 남성들은 오랫동안 남성들에 대한 편파수사가 있었음을 주장하며 남성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가해자를 피해자처럼 포장한다고 느꼈습니다.
보수 진영은 이 불만을 "공정성"의 프레임으로 포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자산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 "역차별이 만연하다", "능력주의가 무너졌다"는 메시지는 경제적으로 불안한 젊은 남성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그들이 지난 진보 정권에 의해 소수의 목소리와 감정에 좌우되어 공정이 파괴된 사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수 및 약자를 보호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저 또한 찬성하나 개인의 노력을 무력화시키거나 공론화의 과정 없이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법의 제정은 지난 진보 정권이 저지른 분명한 실수입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제정된 '민식이법'은 희생자의 아픔에는 동의하지만 법률 제정에 있어서 충분한 토의와 공론화 과정 없이 당시 사회적 분위기 몰이로 인해 제정되었습니다. 운전자가 아무리 조심해도 불가항력적 사고가 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형량을 부과하여 감성이 법리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요원들의 정규직 채용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정의 공정함과 결과의 정의로움을 외쳤던 진보 정부의 목소리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치들은, 노력 없이도 운만 좋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노력하는 청년들을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양성 평등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스스로를 페미니즘 정권이라 자처했던 것도 정치적으로는 아마추어적 패착에 가깝습니다.
의무와 사랑을 혼동하는 사회: 군대 문제
그리고 20대 남성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 바로 군 복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휴전 국가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군인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세계의 군인 대우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국가는 그 나라가 배출한 인물뿐만 아니라, 그 나라가 기억하고 존경하는 인물에 의해 그 정체성이 드러난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시민들은 군인을 마주칠 때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말하고, 노르웨이에서는 여성 징병제를 '특권'으로 여깁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의무만 있고 존중은 없습니다. 군인을 '군바리', '집 지키는 개'라고 비하하며, 성스러운 군복무의 의무를 '군캉스'라고 비웃는 목소리는 젊은 남성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20대 남성의 보수화는 단순히 보수 정당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국가가 나를 부려먹고 버렸다", "젊음을 희생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비웃는다"는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국은 2013년부터 공무원·공기업 채용 시 군가산점제를 전면 폐지했습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미국은 연방 공무원 채용에서 Veterans' Preference 제도를 통해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부여합니다. 영국은 공공부문에서 제대 군인 채용의 우선권을 주며 채용 기업에 세제혜택 및 홍보를 지원합니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이스라엘은 제대 후 대학 진학 시 학비의 75%를 장학금으로 지원합니다. 국가를 위한 헌신을 교육의 기회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역시 징병제 국가인 싱가포르는 현역 복무부터 예비군 완료 시까지 NS HOME Award를 통해 총 17,000~18,500 싱가포르 달러(약 17,000~19,000 미국 달러)를 지급합니다. 이는 단순한 월급 외에 국가가 제공하는 확실한 금전적 보상입니다. 또 다른 징병제 국가인 스위스는 징병제 유지에 대한 국민투표 찬성률이 73%에 달할 정도로 사회적 합의가 견고합니다. 그 비결은 '소득 보전'입니다. 고용주는 복무 중인 직원에게 급여를 100% 지급하고,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환급받습니다. 징집병이라도 실질 소득 손실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군가산점제는 폐지되었고, 복무 기간 동안의 학비 지원도, 전역 후의 세제 혜택도, 사회 진출 시의 소득 보전도 전무합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된 나라에서 말입니다.
최근 병장 월급이 2025년 기준 150만 원, 지원금을 합치면 205만 원까지 오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충분한 보상일까요? 2025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0,030원입니다. 주 40시간 기준 월 환산액은 약 209만 6,270원입니다. 병사들은 사회와 격리된 채 24시간 부대 내에서 생활하며 통제를 받습니다. 노동 시간과 자유의 박탈을 고려하면, 205만 원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입니다. 이건 마치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데 고무신을 주며 "발 안 아프지?"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출산과 군 복무: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이 논쟁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남자는 군대 가지만, 여자는 애 낳잖아"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틀린 비교입니다.
의무 vs 권리: 군 복무는 헌법과 법률이 강제하는 '법적 의무'입니다. 반면 출산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과 사랑에 기반한 '선택'적 권리입니다.
본질의 호도: 만약 출산이 군 복무의 등가교환이라면, 아이를 낳지 않은 비혼 여성은 병역 기피자와 같은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이런 비교가 더욱 나쁜 이유는 본질에 대한 사유와 토론을 그 시작부터 불가능하게 만들며 사회적 합의를 위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0대 남성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부름에 응해 가장 빛나는 젊음을 바치고 위험을 무릅쓴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사회적 존중"입니다.
13. 여덟 번째 덫: 20대 여성의 두려움과 유리천장의 현실
이제 고개를 돌려 반대편에 앉아 있는 20대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20대 남성이 '공정성'과 '역차별'에 분노한다면, 20대 여성은 '생존'과 '구조적 차별'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분노 역시 막연한 감정이 아닌, 차가운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생존의 문제: 안전에 대한 공포
많은 20대 남성에게 밤길은 그저 어두운 길이지만, 많은 20대 여성에게 밤길은 '죽을 수도 있는 길'입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대검찰청의 <2023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흉악 강력범죄(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피해자의 약 85%가 여성입니다. 특히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여기에 더해 '딥페이크 성범죄', 'N번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불법 촬영(몰카)', '스토킹 범죄' 등 디지털 성범죄와 신종 범죄의 타깃 역시 압도적으로 젊은 여성을 향하고 있습니다. 20대 여성들은 뉴스를 볼 때마다 자신의 얼굴을 대입합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들에게 정치는 단순한 정책 대결이 아니라, "누가 나를 죽지 않게 지켜줄 것인가"라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치권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이들에게는 생존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유리천장: 보이지 않는 벽
20대 남성이 군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과 사회 진입 지연을 억울해하듯, 20대 여성은 취업 이후 마주할 거대한 벽, 즉 '유리천장'에 절망합니다.
"여대생이 학점도 더 높고, 공무원 시험 합격률도 더 높지 않으냐"는 반문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회 진입 초기, 즉 20대 초중반의 스펙 경쟁에서는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보면 현실은 다릅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The 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2013년부터 2024년까지 12년 연속 OECD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23년 기준 약 6%에 불과합니다. 입사는 비슷하게 했더라도,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은 사라집니다.
M-커브의 절망: 경력 단절의 덫
20대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M-커브'입니다. 여성의 연령별 고용률 그래프가 30대 중후반에 푹 꺼졌다가 40대 이후 다시 올라가는 M자 모양을 그린다는 데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이 푹 꺼진 구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Career Break)입니다. 20대 여성들은 선배들이 출산과 함께 회사에서 밀려나거나, 복직하더라도 승진에서 누락되고 한직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합니다.
"애 낳으면 회사 그만둬야 하나?"라는 고민은 20대 남성에게는 드물지만, 20대 여성에게는 실존적인 공포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 일자리는 대부분 기존보다 임금과 처우가 낮은 비정규직이나 서비스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채용 성차별의 잔재
2023년에도 여전히 채용 면접장에서 "결혼 계획이 있느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야근이 많은데 여자가 버틸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는 여성들이 존재합니다. KB은행, 신한은행 등 여러 금융권과 서울메트로, 한국가스안전공사 등의 공기업의 채용 비리 사건에서 남성 지원자의 점수를 올려주기 위해 여성 지원자를 고의로 탈락시킨 사례들은 20대 여성들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성별 때문에 안 될 수 있다"는 깊은 불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행성, 같은 고통
정리해 봅시다.
20대 남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군대 가서 2년 썩고 왔는데, 사회는 나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고, 역차별받는 느낌이다. 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원한다."
20대 여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전하게 살고 싶고, 결혼과 출산이 내 커리어의 무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구조적 차별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 두 목소리는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 뿐입니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은 같은 2025년을 살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마치 같은 영화관에서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치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이들을 '제로섬 게임'의 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보수는 "공정"을, 진보는 "페미니즘"을 외치지만 실상은 "쟤를 죽여야 네가 산다"는 악마의 속삭임을 하며 갈등을 키우고 싸움을 부추기며 표를 구걸하고 있습니다.
14. 공정이라는 이름의 가면: 통계의 이면
두 진영은 통계의 함정을 이용하여 그들의 목소리에 권위를 부여합니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차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2024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9%로 회원국 중 최하위입니다. 지표에서 여성 고용률은 남성보다 20% 포인트 낮고, 관리직 여성 비율은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20대 남성에게 이런 통계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체감 현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여학생의 높은 성적, 공무원 시험에서의 여성 합격자 증가, 미디어에서의 페미니즘 담론의 확산입니다. 반대로 20대 여성들은 이 통계를 보며 그들이 여전히 차별 속에서 살고 있으며 나아지지 않는다며 더 많은 정책적 보호를 호소합니다.
서로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 공통점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색의 부족과 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 공급되는 의견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조로 인해 서로를 적으로 돌리며 진정한 해결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 불평등의 갈라치기를 위해 가장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수치가 바로 OECD 성별 임금격차(OECD Gender Pay Gap)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2024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9%로 부동의 1위입니다. 이 숫자를 두고 한쪽에서는 "여성 차별의 명백한 증거"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조작된 선동"이라고 합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각자의 결론을 잠시 내려놓고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OECD 통계의 맹점: 중위소득의 함정
OECD 통계에서 말하는 성별 임금격차는 정확히는 "남녀 전체의 중위 임금(median earnings)을 비교한 값"을 의미합니다. 이 지표는 전체 현황의 평균일 뿐 동일노동, 동일조건을 보정하지 않습니다. 즉 직종, 직급, 근속연수, 근로시간, 고용형태(정규·비정규), 기업 규모 등 다양한 요소를 따로 통제하지 않은, 이른바 '조정 전(unadjusted)' 격차입니다.
OECD Gender wage gap / 출처: https://www.oecd.org/en/data/indicators/gender-wage-gap.html
이 수치는 "전체 남성 ...






